송편 닷되 만드는 일을 끝으로 추석 준비는 끝났다.
그래도 올추석에는 구여운 사촌 동서들 덕분에 일이 쉬 끝났다.
추석 날 아침,
일찌감치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러 갔다.
나는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집에 남아  뒷정리를 했다.
서둘러 집안을 치워 놓고 성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면
얼른 점심 먹여 보내고 달랑 보따리들고 집으로 오려는 심산이었다.
탈출을 꿈꾸며 마른 행주질도 신나게 쓱쓱.
드디어 왁자지껄 성묘꾼들이 돌아왔다.
예전보다 많이 줄어 십여명이다.
전에는 그너른 공동묘지에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집보다 많이 온집은 없었다.
3열 횡대,또는 4열 횡대로 늘어서서 절을 하고 나면 집안 어른들은 그많은 숫자에 뿌듯해했다.
심사가 꼬여 있는 나는 '질이 문제지 이까짓 양으로 무슨... 중공군을 닮았나? 왠 인해전술'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이십여명남은 식구들의 점심상을 차려 나가고 국을 펐다.
스텐국그릇 이십여개를 가스렌지위에 놓고 한것이 화근이었다.
마지막 국그릇을 넘겨받는 순간
"앗! 뜨거"
하는 소리와 함께 살이 지져지는 소리와 냄새가 났다.
스텐국그릇이 가스렌지 불꽃에 제대로 달구어져 있었던것이다.
난 독립군이 고문을 참아내듯 이를 악물고 국그릇을 지켜내면서 상위에 올려 놓고야 말았다.
이런 바보. 오른손 엄지,검지,중지가 허예졌다.
바닥에 있던 '이슬'을 집어들고 부었다.
먹다 남은 '산'도 그대로 쏟아 부었다.
무럭무럭 김이 난다.
다시 수도물을 세게 틀어 놓고 손가락의 화기를 빼본다.
도무지 가라앉지를 않는다.
혼자서 눈물을 삼켜가며 이다지도 바쁘건만 거실에선 그저 먹기에만 여념이 없다.
내가 바세린연고를 찾으며 주방을 빠져 나오자
동서가 "형님 손 데었다"고 한마디 한다.
워낙 표현이 적고 느린 우리 어머니.
"조심하지. 아무 연고나 찾아 발라라"
하신다.

아무리 찾아봐도 화상에 바르는 연고는 없고 손가락은 점점 더 화끈거린다.
화가 나서 점심도 굶었다.
나에게 있어 한끼를 굶는다는 것은 몇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큰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화를 삭이느라  계속 잠만 잤다.
휴게소에 차를 세우며, 치켜들고 있는 내손을 바라보며 남편이 겨우 한마디했다.
"그거 많이 아플텐데"
"그럼, 얼마나 아픈데"
남편은 적선하듯 그말만 하곤 휴게소로 들어가버린다.
나혼자 안내소에 가서 화상연고를 얻어 바르고 왔다.
'그까짓 국한그릇 내던지면 될것을.
깨지는 유리그릇도 아니고 스텐국그릇을 무에 그리 아깝다고 몸바쳐 지켜냈을꼬.
아마도 그릇이 아니라 내용물을 엎지않기위해서였나?
아니다. 내자신을 지켜내기 위해서였겠지.
어쨌거나 이인순. 너 너무 미련하다 미련해.'
이리하야 상처뿐인 추석을 보내고 다시 컴앞에 앉아 넋두리를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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