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 캘거리에는 몇 개의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가 있다.

주로 다운타운에 모여 있는데 먼저 내가 근무하였던 보우밸리컬리지에서 강 쪽으로 바라보면 벽돌색의 캘거리 드렆인 쎈터가 한 눈에 들어오곤 하였다.
한국식당이  있는 캘거리타워 뒤 쪽으로는 머스타드 씨드(겨자씨) 쎈타가 있어서 가끔 식당에 갈 때 줄을 길게 늘어선 그 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가다보면 CUP라고 불리는 쎈타에 커다란 손으로 하얀 비둘기를 받아들이는 그림 아래로 노숙자들이 모여 서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

우연히 길에서 노숙자들을 만나면 그들에게서 풍기는 냄새에 코를 막고 우선은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삥 돌아서 가기 일 수였다.
출근 길 전철에서 만나는 그들에게서는 술냄새가 아주 고약하게 풍겨왔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영어도 잘하면서 왜 저럴까?"하며 비난 아닌 비난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성당 레지오회합을 함께 하는 형님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다.
이번 주 함께 봉사를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땅히 레지오 활동을 찾지 못하던 차에 나는 얼른 대답을 하고 그 형님과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다.
거리는 스탬피드 축제로 차들이 많이 밀렸고 우리는 약 5분 정도 늦게 그 쎈타에 도착하게 되었다.
10시에 문을 여는데 시간이 늦어지면 노숙자들이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서둘러 들어갔더니 그 곳 (의류쎈타)직원들로 보이는 케네디언 남자가 우리를 향해 총을 쏘는 시늉을 하였다.
"뱅 뱅..."
긴장되었던 나의 마음이 웃음과 함께 풀어져나갔다.

직원이 문을 열어도 되겠느냐며 자물쇠를 풀자 노숙자들이 문을 밀치며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홈리스는 다같은 홈리스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 들도 우리처럼 제 각각 개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름을 대고 자기가 필요한 옷들을 찾는데 정말로 옷을 아주 잘고르는 사람도 있었고 메이커 옷만 찾는 사람도 있었다.
아기 엄마인 듯한 어떤 흑인은 아기들 내복을 여러 벌 가지고 나왔다.
이곳에서는 한 번에 5가지 이상을 내줄 수 없는데 차마 아기 옷을 놓고 가라고 할 수 없어 우리는 가져온 옷 모두들 비닐백에 넣어주면서
"다음에는 안되요"라고 가만히 말해주었다.

어떤 스페인 남자는 들어오면서부터 인상을 쓰고 왔다.
신발을 가리키면서 누군가 내 신발을 훔쳐가서 대신 남은 것을 신었더니 너무 작아서 발가락이 너무 아프다는 것이었다.
이 것 저 것 신어보더니 맞는 것이 없자 긴 고무장화를 신고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편안하게 걷는 그의 뒷모습을 보자 왠지 나도 마음이 좋았다.

이 곳 의류쎈타는 안 입는 옷이나 팔다가 남은 옷들을 수거하여 깨끗이 세탁해서 노숙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해 주는 곳이다.
아침에 일찍 온 사람들은 속옷과 양말을 챙겨 갔지만 늦게 온 사람들은 가져 갈 수 없었다.
하긴 집에서도 양말은 떨어져야 버리니 양말 도네이션이 넉넉할 리 없었다.

어떤 사람은 스탬피드 축제에 가려는지 카우보이 부츠를 골라가고 여름 잠바를 이 것 저 것 입어보면서 어떤 것이 더 잘 어울리는지 묻기도 하였다.
피하려고만 했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노숙자들...
오늘 하루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도와주면서 뭔가 알지 못할 느낌이 마음 속으로부터 밀고 나옴을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이 무척 가벼웠고 다음 봉사 날짜가 기다려지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