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쉘이 대이케어를 처음으로 정식방문하는 날이다.

지난 주에 아빠 품에 안겨 왔을 때는 매니저인 안젤라와 전체적인 대이케어 규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자세히 보지도 못하였고  인사를 나눌 여유도 없었다.

이곳에서는 아이가 대이케어에 오기로 결정되면 부모와 함께 여러차례에 걸쳐서 방문을 하면서 아이들이  차차 적응해가도록 훈련기간을 갖는다.
미쉘이 왔을 때는 아이들이  바깥놀이에서 돌아와서 막 점심을 먹으려고 준비할 때였다.

모습으로 보아 중국인들 같았는데 어딘지 모르게 본토중국인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하였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다운타운 한복판에 있는 패트로 캐나다 석유회사 건물인데 주로 케네디언들이 일하고 가끔 중국인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2층에 있는 후드코트에 가면 한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커피나 샌드위치를 파는 작은 가게들을 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곳 대이케어에 근무하면서 나는 한번도 한국아이를 본 적이 없다.
미쉘이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엄마와 놀이를 하고 나는 점심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물었다.
"중국에서 오셨나요?"
미쉘 엄마인 케런이 하이톤의 목소리를 더 높여 말했다.
"나는 중국에서 왔고 남편인 킴은 한국인이예요."

나는 더이상 영어를 쓰지 않았다.
미쉘 아빠인 킴도 오랜만에 만나는 누이를 본 것처럼 내게로 다가와 팔을 뻗었다.

킴은 1살 때 브라질로 이민을 갔고 13년 동안 그 곳에서 살다가 캐나다로 왔다는 것이다.
누나는 뉴욕에서 살고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온 형은 이 곳 캘거리 북쪽에 있는 에드몬튼(앨버타의 주도)에 산다고 했다.

나는 미쉘의 한국이름이 궁금해졌다.
아빠의 말을 듣고보니 미쉘에게서 전형적인 한국아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축처진 작은 눈에 그리 높지 않은 코...
순둥이처럼 낯가림도 안하고...

"저희 부모님은 지금도 브라질에 살고 계시는데 너무 바쁘셔서 아직 이름을 보내오지 못하셨어요."
킴은 1살 때 이민을 간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한국말을 잘 하였다. 그리고 더욱 대조적인 것은 아내에 비하여 남편 목소리가 더 잔잔하였다.

아이를 대이캐어에 보내려고 결정을 했지만 아이보다 엄마가 많이 불안해 하였고 아빠인 자신도 편치 않았는데 이제 마음을 놓을 수 있다고 하면서 ...
교실을 떠나가며 내 손을 꼭 잡는 것이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며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한국이름으로
한국 사람의 정으로
그렇게 따스하게 키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