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이 위협받고 있다"

공업용 소금 멸치젓,쓰레기 만두가 우리집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1식5찬의 가지수가 유지되는 것은 다행스러우나, 식탁 메뉴가 몇 일 동안 고정된 것을 두고

아들 녀석이 오늘 조간 경제 신문  헤드라인을 유감 섞어 소리내어 읽고 있는 것이다.

아침과 저녁, 봄과 여름의 메뉴가 당연 달라져야 하거늘,

우리집 식탁이  변화의 조짐조차 없자, 

식단을 주관하는 제 엄마 눈치를 살피며 불만 메시지를 전달해 보려 함이리라.

디지틀 시대라며 친정 아버지가 인일 여고 입학 기념으로 사줬다는 그 애지 중지하던 아날로그

니콘 카메라를 둘째 아이 숙제 전용으로 선심쓰듯 내주고,본인 필요를 위한  디카는 준비하면서도

어찌 계절이 바뀌었는데도 식단 메뉴를 새로 짤  생각은 없는 것일까?

20여년을 한결같이 아이들의 건강과 내 입맛을 위해 농수산물 센터까지 찾아가

다양하고 신선한 재료로만    맛있는 밥 상을 차려 내던,

바뀌지 않아야 할 좋은 습관만 나쁘게 바뀐것 같다.



곰곰 생각해 보면 이상 징후가 이미 감지되고 있긴하였다.

고요한 밤 되면 내 왼팔을 베개삼아  다소곳이 잠들던 그녀가  

언제부턴가 내가 잠들고 나면 소리없이 사라지곤 하는게,....

어떤 의구심을 영 떨칠 수 없다.

얼마전, 과음한 탓에 목말라  잠에서 깨어 물 한잔 마시려 부시럭대며 부엌에 나가는데도

눈길은 커녕 내 인기척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게다가 모니터에 고정된  눈에선 광채가 나는 듯  했고,

간혹 얼굴엔 묘한 미소까지 그려지는것 같다.

설상가상, 소리나지 않게 조심조심 자판을 두드리기까지 한다.

이런 야밤에도 저렇게 매달려 있을진대, 혼자 남아 있는 낮 동안에는 얼마나

저 피씨 앞에 매달려 있었을꼬.그래서 시장 볼 시간이 없는게 분명해.

텔리비젼 9시 뉴스, 중년 남자 앵커의 한탄 섞인  보도 음성이 불현듯 생각난다.

"요즘 인터넷 주부 채팅으로 피해 가정이 늘고 있습니다"



평소 그녀는 내 친구나 직장 동료들 앞에서는  가증스러울 정도로 고상함을  연기하며

그녀의 컨셉을 우아함으로 위장 한다.그래서 내가 그들의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표리 부동한 그녀 행동을 잘 아는 나는 그들의 안목이 형편없다고 비웃는다.

외부용 컨셉 엘레강스함과 달리  가정용 컨셉 터프함의  전형적인 야누스의 두 얼굴을

그 누구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렇게 말하는 것이겠지.

가정의 안녕을 위해서 대응하는 그녀의  행동은

소림사 주지승 보다 내공이 강하고 사무라이 보다 날렵하다.

익숙한 망치질로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박힌 못을 빼고 또 박으며  

걸린 액자들의  위치를 계절 따라 바꿔다는 일은,

그녀에겐 한 여름 마당에 쳐놓은 파라솔 아래서 하양,파랑 의자를 번갈아 앉아 가며

팥빙수 먹는 거 보다 더 쉽고,

제 등치 서너배 되는 대형 냉장고도 내 도움을 거추장스러하며 ,혼자 수건 깔고

적당한 자리 찾아  이리저리 옮겨놓고 그 성취감에 무거운 엉덩이를 흔들냥이면,  

차라리 골리앗 최홍만 천하장사의 테크노는 너무 고전적이다.

아들 녀석이 중학교 때 친구와 한바탕 하여 병원에 보냈다는 담임교사의 걱정스런 연락에,

팔 걷어 부치며 신발을 옆구리에 끼고 큰길까지 뛰지 않았던가. 그 비호같은 날렵함.

"천하무적 대한민국 아줌마"가 그녀의 가정용 컨셉이다.



그런데 요즘 그녀의 피씨 앞 행동은 제집 안방이건만 앉은 자세가 무척 엘레강스하다.

마치 2말3초의 여대생처럼 다소곳 하면서도,  있는 멋을 다 부리질 않나,

헤어진 첫 사랑과의 재회를 기대하는 설레임에 가득차 있는 조심스런 자세로 앉아있다.

대관절 그녀를 잠못들게  하는 저 수상쩍은 사이트는.....저기가 시애틀도 아니고.

저게 바로 심각한 주부 채팅... ,

그 뉴스의 한가지 사례란 말인가?

저 사이버 공간에 어떤 유혹이 그녀를기다리고 있을까?

늑장 대처 하다 20년간 평온하게 이끌어온 내 가정에 환란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아침마다 출근하는 맘이 무겁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의구심은 너무나 어이없게 순간적으로 해결되고 만다.

회의를 막 마치고 돌아와 휴대전화를 보니 부재중 전화가 집에서 3통이나 와있다.

무뚝뚝한 음성으로" 무슨 일 있어?" 물어보는 내 기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응" 당신 www.inil.or.kr 좀 쳐봐.

우리 여고 동문 사이트인데, 그동안 몇 일 밤 내내 내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오늘 올렸거든..

당신도 한번 보고 리플 좀 달아줘!  명령하듯 닥달한다.

아 이런 사람 봤나 !

여태 홈피에 작품하나 올리려 그 많은 밤을 ....

그러면 그렇다고 얘기나 진작하지.

......

그렇다면 내일부터는 식탁의 위협은 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