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오후 학교 도서관 앞에서 한 학생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그 학생은 보라색으로 염색된 셔츠들에 갖은 내용들을 다 적어 빨래줄에 빨래를 널 듯 걸어놓고는 셔츠를 머리위까지 뒤집어 쓰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져있을 뿐이었다. 각기 제 일에 바쁜 사람들은 더러는 서서 빨래줄에 널린 셔츠에 쓰인 내용을 읽기도 하고, 더러는 '으음, 동성애자 옹호 퍼포먼스로군' 하는 그저그렇다는 표정으로 지나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한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그 곳을 지나치다가 그 쓰러진 사람을 보고는 눈길을 떼지 못한다. 대략 너댓살이나 되었을까? 가슴팍에는 턱까지 받쳐오르는 곰인형이 들려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걷던 엄마가 뒤처지는 아이 때문에 걸음을 멈춘다. 걱정스러운 아이에게 엄마가 키를 낮춰 속삭인다. 저 아저씨 일부러 그러는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아이는 못 믿겠다는 눈치다. 아이의 걸음이 안 떨어진다. 꼭 다문 입술 사이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일지 어떻게 아느냐고 따지는 듯한 음성이 새어나올 것 같다. 설득이 불가능할거라고 판단한 엄마는 곤란스레 학생에게 다가선다. 우리 아이에게 한 번 웃어주실래요....라고 했을까? 그 후 손인사와 눈인사를 받은 아이는 그러나 몇 번인가 더 뒤를 쳐다보며 석연찮은 표정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교회에서 어린이 성극하던 아이가 배부른 마리아를 위해 여관방을 찾는 요셉에게 '방없어요!' 하고 문닫고 들어가야 하는 대목에서 '내방이 있는데...' 하며 눈물나게 웃기는 실수를 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그날 그 아이를 본 날처럼 찡했던거 같다.
우린 언제 어디서 이 마음을 다 잃어버리고 만걸까?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어느새 너무 영리해진 내 모습이 그 아이 때문에 그날 내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