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를 받는다고 했잖니. 이번 학기에 <대안교육>이란 수업을 들어.
주제를 하나 잡아 글 하나를 내는 숙제가 있어.
난 선생님이 주신 제목을 쫙쫙 지우고 <나의 수업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번 학기의 수업을 정리해 봤어.

무슨 의미냐면 자꾸 나에게 종주먹을 대어 꼼짝 못하게 해야겠다는 마음? 정신차리라는, 사기치지 말라는 그런 맘으로 정리를 해 봤어.
쓰고 나니 기네.
멍청하기 짝이 없는 내 모습 뭐 그대로인지라 쑥스럽기 짝이 없지만 뭐 친구들인데 뭐 다 비슷하지 뭐 뭐 없으면 뭔 말 할라고 이렇게 뭐 뭐 그럴까.

규가 아프다는 것도 마음 쓰이고, 사진에서 보이는 선희의 얼굴이 무척 야윈 것 같아서 것도 그렇고, 마스크 우먼이 돼버린 현여사는 어떠신지, 영양실조임이 분명한 안나씨도 그렇고, 쩜쩜쩜 여사는 잘 지내고 계신지 인옥이는 무슨 영화 보며 미국에 갔는지 두루두루 궁금하여 안부 겸 증인 서라고 오늘의 싸비스!



<나의 수업 이야기>

선생님이 주신 대안학교 관련 선생님들의 글을 읽고 생각한 것을 쓸까? 그냥 내가 생각하는 대안학교에 대한 바램을 쓸까? 20년 전에 그 감명 깊이 읽었던 서머힐을 다시 읽어 보고 그 생각을 쓸까? 대안학교에 어울릴 만한 프로그램?.........


며칠을 곰곰이 생각하고 난 나의 수업 이야기를 쓰기로 하였다.
어설프고, 부족하고, 불완전하며 간혹 위험하기까지 하고, 또 언제 어디에 복병이 숨어있는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수업이지만 그래도 <나의> 수업을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수업은 내 삶이다.
이 안에서 나의 삶이 펼쳐지는 것이고 그 펼쳐진 자락에 따라 아이들의 삶도 펼쳐진다.
이런 것을 알게 된 것은, 마음으로 절실하게 느끼게 된 것은 너무나도 충분히 나이가 들고 난 후였고, 충분히 실수를 한 후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중. 고등학교에서 6년, 특수학교에서 10년, 다시 일반 중. 고등학교에서 10년, 그리고 올해 다시 청각장애 학교로 돌아오기까지 정말 참 오랫동안 쉬지 않고 달려 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초반에 쉰 적이 있다. 처음 만난 학생들이 너무나 좋아 미친 듯이 마음을 쏟으며 3년 쯤 하고 나니 마치 알몸이 빠진 매미 껍질이 돼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나 무력하고 무서웠다. 충전하지 않으면 사기꾼이 돼 버릴 것 같은 느낌에 앞 뒤 재지 않고 무조건 사표를 냈다.
그리고 다시 교직에 들어오기까지의 무진장한 고생.(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그 춥고 쓸쓸한 도서관에서 버티던 시간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그 때 너무 놀라서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힘들어도 버틴다!


올해 다시 청각장애 학교에 와서 1년 동안 고 2학년 애들과 생활을 같이 했다.
그 중의 한 반은 문학과 국어 생활까지 하여 일주일에 여섯 번의 수업을 했다.
12월 마지막 주에 나와 수업을 하는 세 반은 하루 두 시간을 잡아 세 반 연합 수업 발표회를 하려고 한다.(모두 21명)
일 년 동안 했던 국어 수업에 대한 회고와 결과를 연극이나 노래극이나(청각장애아들도 노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동영상으로 표현하고, 다시 한 번 자기들의 수업 결과를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고 새로운 학년으로 올라가기 위한 시도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준비하고 나는 나대로 준비하려고 한다.
나도 이 수업의 일원으로 열심히 함께 해 왔고 그런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수하고 버벅대면서도 끝까지 아이들 사이에 끼는 것.

아이들과 함께 할 작품을 구상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우선 아이들과 함께 한 일을 분류해 보았다.


<아이들과 먹기>

이 학교에 오니 선생들마다 자기 교실이 있었다. 청각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여러 기자재가 필요하고 그런 것을 이리 저리 옮기려면 어려움이 많으니까 아마 그렇게 했나 보다. 나로서는 무진장 좋은 일이었다. 우선 교실에 브루스타(취사도구), 큰 후라이팬 두 개를 갖다 놓았다. 그리고 짬짬이 학교 측 몰래(교실에서 불 피우면 안 된다. 그래서 냄새나는 것은 되도록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고구마는 구워 먹어야 더 맛있지만 냄새가 너무 퍼지므로 삶아 먹는다. 감자는 냄새가 은은해서 잘 모른다. 떡볶이는 창문을 열어 놓고 만든다...)
교실에서 끊임없이 만들어 먹었다.(물론 미리 만들어 놓는다)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기숙사에 있다.(국립이므로 모든 것이 무료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떨어져 하루 세 끼를 기숙사에서 먹는다. 이상하게 고등학교 정도 쯤 되면 얼굴색이 나빠진다.
혈색이 안 좋고 상당히 마른다. 충분히 교육받은 영양사의 음식과 친환경 제품의 식 재료를 사용한 훌륭한 음식인데도 아이들은 살이 안 찐다. 왜 그럴까? 돈을 안 내고 먹어서일까? 부모님이 그리워서일까? 밥도 양껏 먹는데도 그렇다.
어쨌든 나는 아이들과 기회가 있으면 먹는다.
먹는 종류는 고구마 삶아먹기(가을 겨울 내내), 감자 삶아 먹기, 감 깎아 먹기, 사과 깎아 먹기, 요즘엔 귤 먹기, 떡볶이 만들어 먹기......(내가 돈을 벌어서 정말 좋다)

어느 날 떡볶이를 해 먹고 있는데 먼저 근무하던 학교 애들이 놀러 와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이런 거 하려고 우리들 버리고 갔지요?-

그 사진들1


<움직이는 아이들 박수치며 구경하기>

드물지 않게 자원 봉사자들이 와서 아이들에게 특기 적성 교육을 해 준다.
그래도 제일 지속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청각장애 선배들이다.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아이들은 그 배움을 통하여 여러 능력을 얻고 활용한다. 거의 감로수다.
그리고 작은 기회라도 생기면 이 아이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참여한다.


예를 들어 태권도만 배운 아이들도 전국 체전 후 열리는 장애자 체전 유도 시합에 꼭 출전을 한다.
왜냐하면 장애자 체전에 나올 아이들이 뻔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이 아이들을 꼭 상을 타온다.
베드민턴부 아이들은 아주 잘 한다. 전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 체육 선생이었을 때 거의 10년 간 아이들을 잘 가르쳐 놓았다. 그 아이들은 거의 장애자 국가대표들이다. 그 선생님이 나가고 난 뒤 많이 약화되었다.
모든 것이 그렇다.

외부 팀들과 시합을 몹시 하고 싶어 하는 축구부 아이들(난 축구부 감독이다. 물론 바바리코트만 입고 운동장을 얼쩡거리는 게 다지만), 댄스팀을 만들어 춤 연습을 하고 발표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 추운 강당 2층에서 거의 날마다 태권도 연습을 하는 아이들, 스스로 만든 체육 대회를 멋지게 치르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던 아이들.  


얼마 전에 있었던 언어치료 건물 개관식을 위한 학예발표회.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던 무대.

서울시에 있는 특수학교 연합 학예발표회. 나를 울렸던 연세 재활학교 아이들의 핸드벨 연주. 천천히 느린 동작으로 아름답게 흔들어 만들던 <메모리>.

얼마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청각장애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와서 공연을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민 가수라는 사람이 노래를 하고 그 노래에 맞춰 아이들이 수화를 했다. 자연스럽고 순수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서로 마음이 잘 통하는구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런 사진들 2


<특별한 취미를 가진 아이들>

아이들 중에 자기만의 취미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예를 들어 햄스터를 기르는 아이. 쉴 새 없이 번식하는 햄스터를 지극 정성으로 키우는 아이가 있다. 그것도 교실에서.
시간 있을 때마다 따라다니며 종알종알종알종알.... 정말 귀찮을 정도다.
한 놈 한 놈 전부 이름을 붙여 좋고 이놈이 어쩠네 저놈이 어쩠네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한다.
엉~ 엉~ 그랬어? 응 그랬어? 대답해 주다가 나중에는 귀찮아서 건성으로 대답한다.
자꾸 임신을 해서 미치겠어요, 쥐 발정한 거 보셨어요?
(발기 아닌가? 음! 올바른 성 인식을 위하여 단어 교육을 철저히 해야겠군!) 아니.
쥐도 발정하니까 커져요. 그래?(이상하다, 쥐좆 만한 게 이런 욕 있는데...) 얼마만한데?
손톱만큼 커져요.(그럼 그 욕 틀렸잖아)

너 햄스터 소개하는 동영상 만들어 볼래?  .............어!.... 네.



아이들 중에 기숙사 사감의 허락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처음에는 돈을 벌고 싶어서 하고, 원한대로 돈을 벌면 아낌없이 써 버린다.
그러면서 그만 두는 아이들, 남는 아이들로 나뉜다.
그 중에 아르바이트의 지존이 있다. 쉽게 그만 줄 줄 알았는데 봄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한다.
그 아이가 말했다. 많이 배웠어요. 돈보다도 일하는 어떤 보람을 느껴요. 열심히 하니까 제 위치도 생기구요, 책임이라는 게 뭔지 말보다 몸으로 배우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느껴져요.
그래? 정말 훌륭하구나! 너 그거 보고서 좀 써 볼래?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붙이고 너무 어렵게는 하지 말고 그냥 소개 하는 정도로. .......
네, 해 볼게요.
역시 움직여서 알게 된 일은 사람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 같다. 아무리 어리더라도.

그래도 햄버거 너무 먹지 마. 너 살쪘어. ......네


어이, 거 만화! 네. 자네는 만화 좀 그려 오지.
어떤 거요?
작가 마음이지 감히 독자가 뭐라 말할 수 있나요? ......
그러죠 뭐.

그런 이야기와 보고서와 만화들 3



<수업 이야기>

수업 교재는 내가 만들었다.

고2, 청각장애, 문장 표현력 초등 4학년보다 낮음, 문장 이해력 중 1 수준, 평균 나이 18세, 세상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18세, 배우고자 하는 욕구 25세, 앞으로 살아가는 길에 어려움 300배.


아이들의 수업 시간은 40분. 어려운 말이 많으면 모른다. 설명하느라 시간을 다 쓰면 안 된다. 하지만 아이들이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더 많은, 더 깊은, 더 진실한, 깊이 성찰할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러면 그 목적에 맞는 교재를 만들어야지.

1회용 자료를 만들자.(가능하면)
한 시간에 설명을 다 하고 질문지를 함께 풀고 자기 의견을 쓸 수 있는 교재.
그래서 남는 시간에 교재 사냥하는 게 나의 일이다.
신문을 읽다가 아! 이거 오리고!, 잡지 보다가 이거!, 이 책, 저 광고지, 오토다케가 선생님이 되었다고? 맹농 중복 장애 아저씨가 한국에 오셨네, 영화 광고지, 메리 포핀스? 이거 아주 교육적이구만, 좋아하는 사이트의 글들, 뉴스.....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가 다 수업 자료가 된다.

물론 가장 기본이 되는 자료는 전국 국어교사 모임에서 만든 <우리말 우리글>이다.
그 책은 정말 좋다.  
찾고 편집하고 출력하고. 쉽게 정리하도록 가위, 칼, 풀, 자, 색연필, 색 싸인펜 준비....
그 자료를 2000원짜리 두꺼운 공책에 차근차근 다 모아 놓는다.
2학기가 끝나는 요즘 그 공책은 아주 두꺼워졌다.  
거기에 자기가 그린 그림들, 사진들, 편지들, 시, 체육대회 감상문, 만화, 여행기, 한달에 한 번씩 꼭 썼던 일기 <요즘에 저는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이 공책을 책상 위에 죽 늘어놓고 전시할 것이다. 다음 학년 아이들을 위하여.
더 나은 다음 해의 교재를 위하여 수업 자료를 정리하는 일은 내게 아주 필요하다.


지금 네 명밖에 없는 2반 아이들이 수업발표회를 위해 의논하고 연습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몸짓으로 잘 설명한다. 지금도 어떤 상황을 설정해 놓고 즉흥적으로 연습하고 있다.
나는 또 기대에 차서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또 실수하는 걸까?



어떤 일도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이렇게 하면 이렇게 돼, 또는 이렇게 되어야만 해! 이런 생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이가 주는 마음일 수도 있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실수가 준 깨달음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 생각을 놓지 않아야 한다.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것, 이것이 내 생의 가치 기준이다. 그래야만 한다.
너무 비장한가? 아니다 나는 이런 생각은 아무리 지나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주위에는 이런 선생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는 사랑이 부족해, 난 실수투성이야- 하며 매일 부끄러워한다.

능수능란함, 이런 것들은 이미 나와 무관하다.
즐겁게 실수하고 탐색하면서 마음 끝을 놓지 않아야 한다.


-함께 고생하고 함께 일 했던 동료들을, 내가 어렵거나 바쁠 때 도와주던 옆 반 선생님들을, 내가 아파 학교에 못 나올 때 보결해주고 우리 반 아이들 살펴주던 그 선생님들을 일렬로 세워서 등급을 줘야 하는 오늘.-

그럼에도 난 수업 속에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