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어.
약간 쌀쌀하면서도 화창하면서도 바람은 그저 머리를 흩날릴 정도로 불고.


지난 봄에 이사를 오면서 심어다 놓은 여러 화분 중에 '애니시다'라는 꽃이 있었어.
이파리가 작고 연한 초록색 가지 끝에 노란색 꽃이 피는데 향이 아주 그윽하고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마는 조촐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꽃이었지.
애니시다가 물도 좋아하고 햇빛도 좋아하고 솔솔 부는 바람도 좋아하기에
특별히 침실 베란다로 옮겨다 놓고 정말로 애지중지 길렀단다.

하루가 다르게 새 잎이 나오는 것이 사랑스러워서
날마다 샤워 꼭지로 스프레이도 해 주고
작은 바이올렛 화분과 난초들을 그 옆에 옮겨다 주어 동무도 만들어 주었지.
덕분에 휑하니 비어있던 침실 베란다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생겨났어.
나는 그 작은 동무들로 인해 정말로 행복하게 여름을 났단다.

그랬는데 말야.
어느 날부터 갑자기 애니시다가 마르기 시작을 하는거야.
내가 그렇게 매일 아침 어루만지며 사랑의 물줄기로 샤워를 해 주었는데도
마치 물 한 모금 구경 못한 것처럼 그대로 바싹 마르더니 결국 죽어버렸어.

나는 너무나 당황을 했지.
왜 죽었을까?
내 딴에는 규칙적으로 물도 주고 사랑도 듬뿍 주었건만
죽을것 같은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기습적으로 죽어버린 바람에
마치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어.
다른 화분들보다 더 많이 사랑을 했는데 그렇게 날 배신하다니....


죽은 화분을 그대로 두고 보기가 싫어서
날씨가 좋길래 지난 토요일에 남편하고 같이 그걸 들고 화원에 갔어.
도대체 왜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계속 툴툴거리면서 말야.

화원 주인의 진단은 아주 간단하고 명쾌했어.

'물을 너무 많이 주셔서 뿌리가 썩었을 겁니다.
나무에 물이 부족해서 말라 비틀어진 것은 어떻게든 살릴 수가 있지만
뿌리가 썩어버리면 어떻게 살려 볼 방도가 없답니다"

정말 그렇더라.
나무를 뽑아 보니 딸려 나오는 뿌리가 하나도 없더라.
다 녹아버렸던 거야.

나는 사랑의 표현으로 물을 아주 듬뿍 주었는데
나무는 그것으로 인해 삶의 뿌리를 상실해 가고 있었던 거야.

어디 꽃나무뿐일까?
내 아이들 삶의 밑둥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너무 물을 많이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약간 부족하여 갈하면 살아도 넘쳐서 썩으면 아니되는데....

생각이 많았어.
요즘 아이들이 우리 세대보다 훨씬 풍요롭게 자랐지만
우리보다 그리 강하지 못함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깨달아지더라.
넘치지도 않으면서 부족하지도 않게 줄 수 있는 사랑과 관심.
그 적정량을 찾아낼 수 있다면 진정으로 자식 농사를 성공할 수 있을거 같은데....


어디 자식 뿐이겠니?
사람 간의 모든 관계가 다 그렇겠지.
너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정을 주고 받으면 다 원만하지 않겠니?


죽은 나무를 들어 낸 빈 화분에다가
이번에는 훨씬 강한 기질을 가진 남천이라는 나무를 심어왔어.
중국 단풍이라고도 부르는 그 나무는 지금 마침 단풍이 아주 곱게 들었더라.
봄이면 흰 꽃도 피고 가을엔 빨간 열매도 맺는다나...
애니시다가 있던 자리에 놓으니까 훨신 더 폼나고 예쁘네.


이번에는 물을 덜 줄거야.
예쁘다고, 기분 좋다고 마구 스프레이를 뿌려대는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을거야.
때로는 부족함이 넘침보다 훨씬 낫다는 걸 배웠으니까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