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꾸물한게 비가 한바탕 더 뿌릴것 같긴했지만
촉촉하게 젖은 차 청소하기는 딱 제격이겠다싶어
작은아이 열쇠 심부름 다녀온 김에 내쳐 트렁크를
열고 정리를 시작했다.

몇년전부터 내가 이용했나... 오래된 탁상용 달력에,
아는 언니 산책때 비상용으로 넣어둔 운동화며, 광내는데
쓴다고 넣어둔 조각 천, 냄새 없애는데 쓰는 팡이제로,
이런것도 있었네, 부동액 남은통, 한번도 써본적 없는
차바퀴 들어올리는 묵직한 연장들, 뭐야 이건, 삼각대가
두개나...

트렁크 열고 몇시간째 쓰레기통쪽으로 왔다갔다하니 경비아저씨
궁금하신지 "제가 도와드릴 것 없나요?"

아, 이제 팽개치고 집에 들어가고싶다.
그러나 언제 또 다시 기회가 오겠어.  트렁크 열린김에 아침결에
뿌린 빗물 고인 홈에 쌓인 몇년 묵은 매연 먼지, 나뭇잎 찌꺼기,
여름동안 죽은 작은 벌레 시체들을 주유소에서 공짜로 얻은 1회용
물휴지로 박박 닦아냈다.  수십장 물휴지가 다 없어질때쯤에야
좀 개운해진것 같아 네개의 문을 열고 세차장에서 휙 물뿌려도
없어지지 않았을 문틈사이의 먼지들을 닦아내니 근 3시간이나
주차장에서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에 있는 사람에게 자랑스러이
"나 여태 작은아이랑 있는 줄 알았지?
내가 차 틈새에 있는 먼지 다 닦아냈어.  와 굉장하더라.  아이구 힘들어."


저녁때가 되니 오른팔 팔꿈치의 느낌이 이상했다.
밤에 잘때는 구부리지도 못하고 물파스 찾아다 냄새나게 뿌리고  몸통에
착 붙이고 잤다.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

다음날 아침 김치자르기는 왼손으로 했고..
그 다음날 아침 사과는 왼손으로 자르고 배는 오른손으로 톱질하듯 밀어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