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우연히 국악 연주회에 갈 기회가 있었어.
별로 기대하지 않고 간 국악관현악단 정기 연주회였는데 말야.
거기서 난 눈이 벌개지도록 실컷 울다 왔구나. 글쎄...

국악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편곡해서 연주하는 것도 좋았고 ,
인도 악기 시타르와 까탁으로 연주하는 인도 음악과 어우러진 <아리랑>을 듣는 것도 좋았고,
구전되어 오던 고려 가요 <정읍사>를 전자악기를 가미한 구음으로 듣는 것도 좋았어.


그런데 내가 울기 시작을 한 건 칠십이 넘은 노장, 이 생강씨가 부는 <대금산조> 연주에서 발동이 걸렸어.

마침 비가 오는 날이라 마음이 가라앉아 있던 차에
대금 가락이 마음 속을 깊숙히 파고 휘감아 들어 오니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이 한줄기 울컥 올라오는 거야.
내 마음 깊은 곳에 서리서리 감겨 있던 정체도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락을 타고 서서히 형상화 되었다고나 할까....
굳이 내 개인의 슬픔이라고만 할 수 없는,
한민족이기에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느낄 수 밖에 없는 恨이라 부를 수 있는 느낌이었어.


그렇게 한껏 차오른 내 마음에서 물을 퍼 내듯 눈물을 빼낸 건 <회심곡>이었어.
김 영임씨가 부르는 회심곡을 그렇게 가까이서 직접 들은게 처음이었거든.
특히 회심곡 중에서도 부모님 은혜에 대한 내용이 담긴 부분을 부르는데 말야
나도 주체할 수 없는 황소울음이 터져 나오는 거야.
꺼이 꺼이 터져 나온 울음은 끝내 엉엉 소리를 내며 목놓아 우는 통곡이 되었어.
내 어머니 하관식 이후로 그렇게 울어 본 적이 없을거야.

그건 회심곡 가사에 나오는것처럼
어버이 살아 계실 때 좀 더 잘하지 못한 자책만은 아니고
그 가락과 구성진 목소리가 마음에 착 감겨 들어 온 때문이었어.
무어라고 표현을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겠어.


그 날 그들이 막무가내로 퍼 올린 내 울음은 말야.
어쩌면 내가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몰라.
아니,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단 증거인지도 모르고....


그런데 더 신기한 건 말야.
그렇게 실컷 울고나니까 가슴이 뻥 뚫리듯이 속이 시원한 거 있지.
스트레스가 확 ~ 풀리는 거야.
내가 곡비(哭婢) 노릇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
남의 초상 집에 가서 내 설움에 겨워 울었던 옛 여인이나 음악회에서 엉엉 우는 나나 다른게 없더라고.


한 세상 산다는 건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들이나 다 거기서 거기....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