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까지
여행다녀오고 그 뒷풀이 이야기로
한참동안 우리 12기의 친구들과 재미나게 이야기하려 했는데.....


오늘 오후에
슬픈 소식을 알게되어 지금도 마음이 많이 떨린다.
나의 소중한 친구 A의 남편이 지난 달 세상을 떠나 내일이 49제란다.
바보같은 A는 그 사실도 모르고 멍하니 있겠지....

내 친구 A는
평범하지만 그래도 유복한 가정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라
인천여중,인일여고,대학을 다니며
주위에는 항상 친구들이 같이 몰려다니는 예쁘고 착한 아가씨였다.
나랑은 중학교 때 같은 반을 한 이후로
그룹 친구모임이 아닌 둘만이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친구다.
하얗고 선하게 생긴 모습과 커다란 눈과 긴 생머리의 A와
가을 어느날 A의 대학 교정에서 낙엽이 흩날리는 가운데서 찍은 사진은
지금의 A의 모습대신 내 마음에 그대로 살아있다.

고등학교 시절
여름 방학동안 자율학습이 끝난 일주일 동안
A랑 둘이서 기차를 타고 서울 구경을 가기로 했다.
매일 오후 2시 정도에 동인천역으로 가면
A네 가정부 아이가 미수가루를 진하게 타서 얼음을 동동 뛰어 마호병에 넣어 날라온다.
그 때 A의 아버지가 은행 지점장이셨던 것 같다.

A가 대학 졸업하자마자
외국계 은행에 취직하여 바쁘게 지내던 어느 봄날(아마 바람 부는 4월)
종로 2가에서 둘이 저녁을 먹고 지하상가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어느 양품점에 들어가
인디언 핑크색의 봄잠바를 고르며 어떠냐고 묻는다.
전철을 내리는데(내가 먼저) 내 손에 잠바가 든 쇼핑백을 쥐어준다.
내가 너무 추워보였다나...
하긴 그 때 나는 학교 조교하랴 대학원다니며 아르바이트하랴
시간적 경제적 여유없이 빠듯하게 살던 때였던 것 같다.

나보다 1년 먼저 결혼한 A는
최고 학벌의 신랑과 경제적 여유 있는 시댁의 사랑을 받으며
모든 것이 순탄하게 시작됐다.
내가 결혼하자마자 시카고에 와서 외롭게 살고 있을 때에
출장오는 A의남편 편으로
다정한 편지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아마 임신 7개월쯤?) 우리 아기 옷을 보냈더라.

내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캐나다로
이리저리 이사 다닐 적에도 틈만 나면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환한 미소와 함께 그렇게 사람을 편하게 해주던 A...

6년 전 어느 여름에
A의 머리 속에 조그마한 양성 종양이 자라고 있다고 간단한 수술을 한다고 하더라.
겁도 되게 많고 여유도 있으니까
서울의 S, Y,K병원등 모두 가서 검사 받고
그 중 제일 믿음이 가는 한 병원을 골라 수술을 받았단다.
수술하러 들어가기 전
우리 친구들 5명이 A를 만나 점심을 같이 먹으며
수술 후 당분간은 가발을 써야하니 이 기회에 획기적인 모습을 보이라는 둥
엄청 웃으며 이야기했는데.......그만.
그 것이 내 친구 A와 정상적(?)으로 나눈 마지막 이야기였다.

A의 딸이 그 때 고3이라 여름방학 동안 수술하고 얼른 회복하여
수능 뒷바라지를 하겠다고일부러 더운 여름에 했는데...
수술은 잘 끝나서 회복실로 옮겨져 이럭저럭 괞찮다고 했는데
퇴원하기로 예정되어있던 전전날
갑자기 쇼크가 와서 재수술 들어갔는데..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지난 6년 동안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A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나마 안심이 되는 것은,
예쁘게 잘 자라준 두 딸과 그래도 힘이되어주는 남편과
헌신적인 친정부모님들
불쌍한 며느리를 아까워 하시던 시부모님들,시누이들...

그런데...
작년에 시부모님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돌아가시고
지난 달엔 A의 남편마저...

오늘 A의 친정어머님이랑 통화했는데
어찌나 우시는지...
A의 부모님들은 병원에 누워있는 딸의 뒷바라지에 다른 모든 삶은 포기하시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기만 소망하신단다.

우리가 졸업 30주년을 치루며
그래도 우리들의 마음을 전하느라 A의 남편과 통화한게 마지막이었다니...
인생이 너무 허무하고 마음이 안 좋구나.
몇 달전 한국에 잠깐 갔을 때 병원에 들러
A의 친정부모님과 그래도 희망을 갖자고 이야기를 드리고 왔는데...

A의 현 상태는
혼자 힘으론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고 한 쪽 팔만 들을 수 있단다.
내가 가면 얼굴을 찡그리며 우는데..목소리가 안 나온단다.
입으로 씹지도 못하고 아직도 코로 유동식으로 먹어야하고.
반가우면 손을 세번 꽉 잡아보라고 하면 정확히 세번은 잡곤 하는데.
그 호전되는 과정이 너무도 조금씩 오래 걸려서
주변의 가족들이 지쳐가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친구들아~~~
모두들 바쁘고 힘들겠지만
우리들의 정말 착했고 예뻤고 성실헀던 친구 A를 위해
모두모두 마음을 모아주길 바란다.

우리 친구 A를 위해 애쓰다 가신 남편님의 명복을 빌며.....
부디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시기만을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