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이 바람 살랑 살랑 불어 오고 창 안으로 맑은 햇빛 가득히

쏟아져 들어와 몸과 마음에 따뜻한 기운을 안겨주는

이월의 한 날은, 이 곳에서의 생활을 처음 시작한  해의 이월을

떠 올리게 한다.


어쩔 수 없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살게된 인생 여정에서

큰 아이의 한국학교 적응 실패로, 갑작스레 가방 몇 개 들고 와

시작한 이 곳에서의 생활이 벌써 칠년째가 되었다


큰 아이 대학가면, 삼년 반만 지나면 다시 돌아 갈거라고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들을 멀리하고 머리가 히끗 히끗해지려는

남편을 뒤로 하고 두 아이 양편에 데리고 씩씩하게 아주 씩씩하게

시작한 기러기 엄마의 생활이 가슴 속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어도,

겉 모습은 아주 씩씩하게 지금까지 건재하다


두 집 살림의 긴장 속에 근검과 절제가

세월이 흘러 가면서

two bedroom apt가 three bedroom apt로

그리곤 어느 날 house 로

인간의 욕망이 날개를 달고 한없이 비상하였다


앞 마당 뒷 마당을 가꾸느라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해보지 아니하였던 삽질을 얼마나 했던가

부엌 창문을 통해서 바라다 보이는 단풍나무, 배나무, 내가  좋아하는

백목련, 자목련, 키 작은 철쭉......

이월이 지나고 한 차례의 꽃샘추위 지나 삼월이 오면

지난 날 고생하며 심은 그것들이 기쁨으로 화답한다

벌써 꽃눈이 나오기 시작한다


deck 아래로 concord grapes 나무 두 그루를 심었는데 별로 신통치 않아서

봄이 오면 새로이 옮겨 심을까도 한다

그 옆으로 깻잎, 고추나무, 부추, 파 등을 심어 한 여름 태양 아래

참으로 잘 자라나서 이웃들에게도 나누어 주는 기쁨을 더해준다

아~~~ 내 사랑하는 나팔꽃벽

어느 날 나팔 꽃씨 하나 불어 와 심겨져 숲을 이룰 정도로 무성하게

거칠게 질서없게 잎이 나고 꽃이 피고......

한 여름 날 부터 늦은 가을까지 새벽 아침 문 열고 deck으로 나가면

연보라빛의 나팔꽃이 수줍게 그러나 당당하게 얼굴을 활짝 열고 반긴다

올 해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무성하게 피리다

난 아직까지 그 마른 줄기들을 거두어내질 못했다.

그냥 거두기가 싫었다


벽 아래 한 쪽으로 무성히 심은 zinnia 백일홍, 특히 분홍 백일홍

주황색 보단 덜 화려하고 순해 보여, 내가 너무 좋아한다

그렇지, 이사 온 다음 해 봄, 조그만 가지 하나 얻어 심은 복숭아꽃 나무

그것도 핑크빛이 좋아 앞 마당 가운데 심었다.

모든 수고 중에서도 내 가슴을 가장 설레이게 하는 것은

porch 아래로 심은 빠알간 찔레꽃 (덩굴장미?) 이다

어렸을때 꿈이, 정말 꿈같은 꿈이, 언덕 위에 하얀 집 담장에 빠알간 장미가

무성한 그런 집에서 살고 싶은거였다.

내가 살던 그 한옥집 마당 한 쪽에도 그 장미꽃이 있었지만,

그 장미는 하얀 집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였다

사월이 오면 하얀 porch 아래로 장미 봉오리가 하나 하나 피어 올라 오면

난 그저 순전한 행복을 느낀다.



이렇게 애써 가꾸어 놓은 나무와 꽃들이

한 여름이 오면 사슴떼들의 귀여운 습격을 받는다

이 년전 여름 아주 늦은 밤에 귀가하는데

오! 달 빛과 별 빛 아래 한 떼의 사슴들이 내 마당의 꽃들을

가시 많은 장미꽃과 잎까지 먹는 그들의 모습이

차라리 환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올 해도 기꺼이 내 가꾸어 놓은 꽃밭이 그들에겐 한 밤의 잘 차려진 식탁이 될지도 모른다

날씨가 순해지면, 따뜻해지면

늦은 밤 deck 에 나아가 밤하늘을 바라 보면 눕는다

저 멀리 반짝이는 별들이 가슴으로 수 많은 보석이 쏟아지듯 그렇게 쏟아져 들어온다

이런 일상의 작은 것들이 생활의 힘이 되기도 하고 기쁨이 되기도 하고 슬픔이 되기도 한다



이 곳에서의 생활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고, 모든 면에서,

때론 너무나 쓸쓸하고 외롭고 그렇지만, 그것을 즐기는 법을 알기에

이젠 이런 생활이 익숙하고, 오히려 복잡해지면 감당이 되질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하고

하고 싶은 공부하고

............

그저 감사할 뿐이다. 감사 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