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이 넘도록 한글을 못치다가 이제 한국에 와서 한글을 대하니 마치 고향에 온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각만 머리에서 맴돌지 적당한 문구가 생각이 안나서 답답할때가 있다.
그래도 오늘은 요즘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남동생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내 바로 밑의 남동생은 9살이나 차이가 나는 1965년생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때 갑자기 간염으로 죽은 남동생을 이어
엄마가 소위 한약을 먹고(?) 낳은 복덩이이다.

얼굴도 잘 생겼지만 이 동생이 나고 부터 집안의 모든 일이 잘된다고
온식구들은 이 아이를 왕자처럼 키우느라 극진히 아낀것 같다.
나도 이동생을 어렸을때 많이 돌보았는데 딸과 아들을 구별하는 가족의 풍토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사회와 인습의 불합리함을 일찍 깨우치게 된것 같다.

내가 대학 3년때 우리 가족은 많은 소용돌이를 거친후 볼리비아로 이민가게 되었을때
동생은 교대부국 6학년을 다니다가 가족과 함께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1년반 후에 가족은 미국의 LA 로 건너왔고
내가 결혼과 함께 미국에서 4년만에  다시 만났을 때는
정말 몰라볼정도의 멋진 청년 JAMES 로 자라고 있었다.

내가 남편과 함꼐 동부로 가서 척박한 이민1세의 개척생활과 함께
두아이를 낳아 기르며 이민목회의 숨막힌 생활을 하는 동안
세월은 강같이 흘러갔다.

10여년 전부터 친정엄마와 전화를 하면 노총각 JAMES 를 장가보내는 일로
엄마의 끊임없는 한숨과 걱정을 들어주어야 했다.
"아니 교회에 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모두 JAMES 이야기로 화제거리를 삼으니 이제는
너무 스트레스가 싸인단다. 그 집 아들은 잘생기고 돈도 있는데 왜 아직도 장가를 안간 거야?
지난번 소개해준 이쁜 약사 아가씨와는 어떻게 됐어?
맞선을 수십번을 보면 뭐하니? 여자쪽에서는 계속 만나고 싶어 하는데 이놈이 꿈쩍도 안하니
도대체 알수가 없어.  니가 좀 잘 타일러서 말좀 해봐라. 나이가 40이 되었는데 이거 참."

엄마 암만 나이가 많아도 아직 JAMES 에게는 때가 아닌것 같아.

내가 생각하기에는, 일류와 성공만을 위해 달리는 한인교포들의 편집증적인 사고,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끝없는 경쟁속에 자기인생을 가두어야 하는 현실.등
결혼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쉽게 자기자신을 내놓기가 싫은 것 같았다.
결국 인생의 자유를 갈구하는 것이겠지.  그렇지만.

1년전 JAMES 는 10여년 다닌 증권회사에 사표를 내더니
2년간 혼자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먼저 2달동안, 태국, 베트남, 홍콩,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를 돌고
잠시 돌아왔다가 호주, 중국 ......

그런데 어느날 엄마한테 전화가 울려왔다.
"얘, JAMES 가 여자가 생긴것 같다. 어느날 편지가 왔는데 영어로 쓴 주소옆에 한글로 '독일에서'
라고 써 있더라, 그리고 이틀에 한번씩 국제 전화가 오는데 처음에는 꼭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하더라"

그 여자는 1년전 베트남 여행때 한 호텔에 있으면서 만났는데
그 부모는 베트남인으로 독일로 이민가서 그 여자를 나았으니
베트남계 독일인 2세인 셈이다.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국제적인 제약회사의 마케팅 담당이라
1년에 대여섯번은 해외출장을 다녀야하는 32세의 LAN.
한국에도 출장을 여러번 왔었고 한국의 연속극 비디오와 김치, 등을 너무 좋아한다나.

지난 12월에는 LAN 의 생일이라고 독일에 한달간 다녀온 JAMES 가 가져온
스크랩북에는 한국의 전통사찰과 가옥 풍경등을 사진에 담겨 있었는데
그 뒤에는 "I AM SO HAPPY TO HAVE YOU IN MY LIFE.  
I AM LOOKING FORWARD TO EXPLORING THE WHOLE WORLD WITH YOU"
라고 써 있었다.

이제 엄마의 근심은 다른것으로 바뀌었다.
"얘, 그 애가 오면 영어로 뭐라고 말해야 하니? 여기에다 한글로 좀 적어줘라.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영어 연습해야지"
"엄마 걱정 마세요. LAN이가 요즘 일주일에 3일씩 한글 개인교습을 받는다잖아요.
4개국어를 하니 한글도 금방 배울거에요"

한달전부터 김치를 맛있게 담가놓고 기다리는 우리 엄마, 지금쯤
LA 에서는 LAN이와 무슨 대화가 오고 가고 있을까?
3월에는 출장으로 한국에 온다니, 사진으로만 본 LAN 이를 만나볼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