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창 밖으로 보이는 새해 둘째 날의 늦은 저녁 모습은, 여느 날과 똑같아
부족함도 넘침도 분주함도 소란함도 없는 어제와 같은 오늘 저녁의 모습이야.
하루 종일 비 온 끝이라 거리는 너무나 말쑥하고 군데군데 빗물 고여 있음으로
오히려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하네.

십이월의 마지막 날 오후 주섬주섬 가방 챙겨들고 이제 겨우 여독 풀린 남편
운전대에 앉히고 그대로 세 시간 달려 carolina beach에 당도 했네.
그저 묵은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로 시작되는 해의 첫날을 하나님께서 허락한
가족 이란 것을 서로 확인하기 위해, 그렇게 떠나 시원하게 펼쳐진
대서양을 향한 구층 방 하나 얻어 여장을 풀었네,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고 파도는 쉼 없이 밀려와
부서지고 부서지고 .......
마치 우리네의 인생이 높고 낮은 파고를 넘고 넘어 지금 이 순간에 와 있듯이 말이야.

저녁은 무엇으로 먹을까 궁리 하며 논하니, 모두들 분위기 좋은 근사한 곳을 원하네.
front desk에 다가가 어디 좋은 seafood restaurant 없냐고 물어 보니 약 15분 정도
서쪽으로 가면 그 곳에서 꽤나 유명한 음식점이 있다고 해서 주차장으로 나와
차에 타려하는데, 길 건너편에 하얀 건물 지붕에 deck house라고 게그림과 함께
빠알간 색의 글씨가 한 눈에 들어오는 예쁜 하얀 건물이 보여, 내가 대장이니,
그 곳으로 가자고 했지.
1945년도에 지어진 장로 교회를 개조해서 만든 식당이었어. 교회를 개조한 식당이라....
그리 높지 않은 종탑까지도 맑은 색의 꼬마 전구와 빨간 리본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어 보기 좋았어. 실내도 실외의 그 것과 대조하여 실망되지 않을 정도로 그리 호화롭진
않아도 적당한 장식이 정감 있게 느껴졌다오.
근데 음식은 분위기로 용서할 정도의 맛이었지.

밤새도록 네 식구가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누기도 하다가
아이들은(아들은 대학 3학년, 딸은 9학년) 신체적으론 그렇게 컷는 데도
몸 부딪치며 소란 떠는 게 좋은지, 아니면 그 동안 그럴 기회가 없어서 였는지
작은 일에도 때론 소란스럽게 의견 충돌이 나더라. 그리곤 낄낄 대더라고.
어느 새 세월이 이다지 흘러 청년의 남자는 머리가 희끗 희끗해졌고 총기 있게
반짝이던 두 눈은 그저 인자한 아저씨 모습으로 변했고, 귀엽고 에너지 충만 하던
그 아가씨는, 눈꼬리 올라가 고민하던 젊은 날 모습의 눈은 어디로 가고 그저 보기
좋은 인상의 아줌마로 변했고, 그 속에서 나온 아이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네.

내가 준비해 온 종이와 펜을 각각 나누어 주곤 새해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 보라고 했지.
각 자 네 방향으로 돌아 앉아 열심히 쓰기 시작했어.
“자, 이제 다 썻으면 준호부터 발표하려무나.” 했더니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That's no good." 하더라고. 나는 ”왜?“
비밀스럽게 일 년 동안 보관해야 한데.
그래서 올 해의 마지막 날 그 것을 펴 보곤 일 년 동안 최선을 다 했나 서로를
평가해야 한데.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서 적은 종이를 잘 접어서 준비한 봉투에
넣고 봉했지. 각 자의 resolution 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 것을 위해 최선을 다 할
모두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엄마가 마침 기도하세요.” 하는 아들의 명령 따라 길고
긴 간절한 기도 드리고 눈가에 눈물 맺힘으로 그 나눔의 시간을 마쳤네.

점차 자정이 다가 옴에 따라 베란다 창 밖은 연속 터지는 폭죽 소리와 곧 이어 공중에
흩어지는 현란한 색채의 불꽃으로 황홀하였네. 한 없이 소리치며 밀려와 부서지던 흰
파도들도 불꽃이 피어오르는 순간에 한 몸이 된 듯이 숨죽이며 불꽃 속으로 들어간듯
조용했다네. 그렇게 밤은 지나 2007년이 우리 속으로 들어왔네.

밤새 바람 불고 비도 간간히 내려 아침 7시 17분에 예정된 해돋이를 크게 기대하지
않고 느긋한 맘으로 커피 한 잔 후에 곱고 고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로 나갔네.
유명한 바닷가이지만 한국 사람들과 정서가 다른지 정작 바닷가에서 해돋이를 보려
나온 이들은 얼마 안 되었네. 저만치 한국 사람인 듯한 한 가족이 있는 게 보였고
새벽 공기 속에 자유로운 갈매기 떼들만 우리 곁에 있었네.

오호 애재라!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이는 하늘이여!
짙은 검은 구름이 수평선과 나란하여 어디가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르는 어슴푸레한
새벽 아침이었네.
그래, 이런 날도 있지. 2007년도의 첫 날은 구름 낀 날이구나..... 체념했네.
아들은 신발 벗고 양말 벗더니 가만 가만 물속으로 밀려 오는 파도 속으로 들어가고
우리들은 말없이 바라다만 보고.....
그런데
조금 있으니 기적과도 같이 그 검은 구름을 비집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지 않겠어?

마치 우리네의 인생이 때론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어려움을 만나 슬프고 고통스럽고
애닲고 허망하고 쓸쓸하고 열매가 없고 희망이 없는 것 같아도, 이렇게 검은 구름
뚫고 나타내는 해와 같은게 아닐까?

올 해의 화두는 그래서 고진감래로 잡았어.
내 기러기 엄마 생활도 만 7년으로 접어드는데(미국 생활이 17년째인가 18년째인가)
삼년 반만 지나면 자유로운 여인되어, 그 땐 나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어.
아마 저 검은 대륙의 태양을 베게 삼아 새로운 생활(소명)을 시작하진 않을까?

친구들아
올 한 해도 주어진 이의 뜻 안에서 모두들 행복했으면 해.

I JUST WANT TO GIVE YOU THE BEST WISHES WITH ALL MY HEART.
A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