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혜수기네서 연습을 마치고 행사장인 파라다이스 호텔을 향해 가는 길이었어.

부평에서 간석동을 지나 가다보니 선인재단 뒷길이 나오는거야. (그 길을 따라 간게 30년도 넘은거 같다 )

거기에서 조금 더 내려가니 현대극장 로터리가 나오고 동산학교 올라가는 길이 보였어.

내가 어렸을 적에는 그리도 넓었던 대로가  왜 그리 좁아졌는지....

문화극장은 뜯겨졌는지 흔적도 없고 송림동에서 송현동으로 넘어가는 일명 똥고개라 불리던 동네도

간곳없이 사라져 버리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거야.

모두들 대단한 걸 발견이라도 하는듯이 서림학교 다니던 아무개가 살던 골목이 여기였고,

송림학교 출신의 누가 살던 집이 저기였다고 기억을 더듬으며 가다 보니 배다리 철교가 나오더라.

철교 오른 쪽으로는 중앙시장이 그대로 있고 왼쪽에는 지성소아과가 아직도 있는거야.

그게 언제적 병원인데....

어릴 적에 늘 골골거렸던 내가 단골로 다녔던 병원이었고,

10년 터울의 남동생이 아프면 울 엄마가 냅다 업고 뛰어가던 모습이 눈에 선한 병원이었지.



배다리에서 그대로 직진을 해서 올라가니 애관극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더라.

애관극장 근처에 키네마 극장이 있었던가?

그 근처 어딘가에 인형극장도 있었을텐데 어제 내 눈에는 보이질 않더라. 없어졌는지...

다들 딱히 말은 안 해도 그 시절에 보았던 영화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재수없게 걸려서 화장실 청소를 하던 악몽같은 기억도 떠올렸어.

극장도 작아졌는지 애관극장이 코딱지만하게 보이는거 있지.

길만 좁아지는게 아니라 별게 다 작아져요 글쎄.....




그렇게 가로질러 가는 바람에 동인천역은 보지 못하고 그대로 신포동으로 들어가게 되었어.

우리가 인일여고 다닐 때에는 그리도 번화했던 인천의 명동거리가 왜 그리 좁은 길로 변했다니?

가로질러 가는 바람에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답동 성당>과 <성지 다방>이 그 근처에 있음을 기억했어.

첫눈이 오는 날 저녁 7시에 <답동 성당>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던 열아홉살도 기억이 나고,

귀가 째지게 시끄러운 <성지 다방>에 죽치고 앉아서 음악을 신청해 듣던 스무살도 기억이 나고,

주머니가 얇으니 어디 갈 데도 마땅치 않아 늘 동인천에서 공원을 넘어 하인천까지 걷던 청춘들도 기억이 났어.



그 때는 나팔바지가 유행이어서 온 동네를 바짓가랭이로 쓸고 다니며 청소를 했던 아이들이

어느새 중년의 아지매들이 되어서 더 이상 걸으며 길도 쓸지 않고

차를 타고 그 길을 지나며 남 이야기 하듯 옛날 이야기를 하며 간거지.



그 시절에 인천에서 분위기 그럴싸한 경양식집이 제일 먼저 생겨난 곳도 신포동이었어.

경양식집은 음식보다 분위기를 즐기고픈 젊은이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했고, 파티장이 되기도 했어.

그 때 유행했던 풍속 중 하나가 경양식 집을 빌려서 파티를 하는 것이기도 했지.

대학생들이 종강파티, 개강파티 등도 하고 가끔은 단체 미팅도 그렇게 통째로 전세를 내어 하기도 했어.

간혹 그런 곳에서 약혼식이나 상견례를 하기도 했고 말야.


- 이 근처에 있던 <주노>라는 경양식 집에서 내가 약혼식을 했는데....


어슴프레한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중얼거리자  운전을 하던 某양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어.


- 거기서 니가 진짜로 약혼을 한거야?


- 아니 이사람아, 그럼 약혼을 진짜로 하지 연기로 하냐?

   내가 무슨 배우라도 되는줄 아남?



그 때 거기서 약혼식을 한 그 남자랑 지금껏 살고 있으니 진짜로 한게 맞지?  아무개양 ~



그렇게 우연히 추억의 거리를 가로질러 우리는 어제 동문 합창제에 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