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날씨가 기가막히게 좋았어.
온순한 사람의 눈길처럼 부드러운 햇살이 온 몸을 감싸 주었지.
행여 땀이라도 날세라 적당히 바람도 불어 주었어.
맨 얼굴을 햇볕에 내밀고 있어도 두렵지 않았어.
까짓 기미가 조금 생기거나 얼굴을 그을리는 것이 대수가 아니었거든.

대전청사에서 인천으로 가는 첫 시외버스는 아침 여섯시에 있더라.
그 버스를 놓치고 나면 다음 버스 시간이 애매해서 좀 이르다 싶지만 꼭 그 차를 타야만 했어.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밤새 푹 자지 못하고 자다깨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5시에 일어났지.
그냥 내 마음이 자리를 못 잡고 허둥거리더라구.
그렇게 노심초사를 한 끝에 인천행 첫차를 타게 되었단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졸립기는커녕
짙은 안개와 막 떠오른 말간 태양과 잠이 덜 깬 풍경들 속에서
애타게 그리운 이를 떠올리느라 창 밖을 응시하다 보니 인천 터미널이었어.

인천 지하철을 타고 내 어머니가 사시던 집에 갔지.
어머니는 거기에 계시지 않음을 알면서도 새삼스런 그리움에 목이 메더라.
3년 전 오늘, 우리와 영영 작별을 고하고 어머니는 떠나셨어.
그날도 기가막히게 날씨가 화창하고 좋았지.
이렇게 너무도 환하고 좋은 날에 세상을 떠나시다니....
그 날 이후부터 나는 아주 쾌청한 가을날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되었단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누워계신 무덤을 찾아갔어.
가는 길에 소주를 한 병 샀지.
같이 가던 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라.
평소 어머니가 술 잡수시는 것을 아주 지긋지긋해 하던 내가 웬일이냐는 얼굴로 말야.

- 그냥.... 좋아하시던 술이나 한 잔 대접하고 싶어서...
   산소에다 뿌려 주면 소독도 되고...

그리움은 내 기억 속에 있던 악몽같은 순간들마저 아름답게 편집을 해 놓았더라.
어머니에 대한 모든 기억들이 다 아름답고 가슴이 에이도록 좋은 모습으로 살아났어.
정말로 보고싶은 나의 엄마....
차갑게 식어버린 엄마를 땅에 묻던 그 날이 선연하게 떠오르더라.
3년 전 그 날이 바로 어제일 처럼 생생하게 떠올랐어.
통곡, 오열, 더할수 없이 깊은 슬픔, 회한, 미안함으로 점철되었던 순간들 말야.
후우..... 어느 결에 3년이나 지났네.

산소 위에다 골고루 소주를 뿌려 드리고 나니 내 마음에 취기가 돌았어.
술기운이 퍼지는 것처럼 온 몸에서 힘이 좌악~ 빠져 나가더라.
그래서 무장해제를 한 군인처럼 신문지를 깔고 무덤에 등을 기대고 앉았어.
사방이 온통 무덤 뿐인 그곳이 엄마 품처럼 포근하고 참 편안하더라.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어.
시간이 갈수록 새록새록 그리움은 더하고 후회스런 죄책감은 커지고....

- 살아계실 때 조금만 더 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하고, 아주 조금만 더 잘 해 드릴걸 그랬어.
내가 읊조린 이 대사는 아주 전형적인 만시지탄이지?


산에서 내려 와 부평 혜수기네 연구소로 갔어.
너무도 착하고 좋은 내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간 거야.
친구들을 보니 또 다시 무장해제를 당하듯 온몸에 맥이 쭉...빠지더라.
편안한 안도감이 들었어.
아무런 부담도 없이 같이 노래를 부르고 웃고 떠들고 먹고....
그냥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할 수 없이 큰 위로가 되는 친구들.
친구들은 내게 따뜻한 사랑을 충전해 주었어.
내 어머니의 빈자리를 너끈히 채우고도 남는 아주 커다란 힘으로.


친구들아 ~
어제는 내가 너희들 속에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맙더라.
내게 든든한 울타리가 있음을 다시 느꼈어.
정말 사랑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