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자꾸 나와서 미안타 마는 난 이 번주 학원 안가서 한가하거든
그래 어제는 나의 어릴적부터 다정한 친구 (김) 주연이하구 남대문 시장에도 여유롭게 갔다왔다
남대문 도깨비 시장 예전엔 여기도 부자집 마나님만 간 적이 있었지 70년대에
우린 이것 저것 구경하며 (몇) 만원 짜리들 낄낄대며 고르기도 했단다

아마도 다음주부터는 또 눈팅만 하면서 쓰고 싶어도 못쓸테니까 용서해주구랴
옥규의   "헉, 가난'   이라는 글을 보면서 난 인일여고 3학년 2반 울 담임 생각이 났다 누구신고 하면
때는 1974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루트,루트,로그,로그" 외치시며 여러 문제 내 주시고 스텝에 맞춰 교실 뒷쪽에서 발동작 연습하시던
거의 청이한 목소리 단 한번도 들을 수 없었던 나의 담임 이형 선생님.

"넌 어머니도 돌아가시고(우리 엄만  나 고 3 때 돌아가셨다 이건 설경이가 아주 잘 안다.
30년 만에 만난 내게 보자마자 한 말이니까 . 설경이 그 말이 얼마나 그립고 반가웁던지 그 것까지 기억해 주다니...)
집도 어려우니 교대나 가서 장학생하면 밥은 먹을꺼다"
툭 던진 그 말 한마디를 나는 쪽집게 신통형통한 말씀으로 받들고 지금 까지 지키고 있으니 밥은 먹고 살고 있다.
그래 나는 우리 담임 이형 선생님을 평생 존경할끼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말하면 내게 유익인데 요즈음 애들은 찰떡 같이 말해도 개떡 같이 받아들이니
열나게 고스톱 치다가도 먹는 다는 그 소중한 밥을 먹을 수 있을려나 몰라?

우리의 다산형인 (송)정금이가 30년이 넘어 처음 만난 우리에게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고등학교때 납부금 못내 교무실에 불려간 이야기를 영웅담 전설처럼 씩씩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난 느꼈다
정금이의 저 말은 자랑이 아니고 (지금 정금이 남편은 대한민국이 두려워하는 경찰 높으신 분이시다)
자기의 정체성이다. 이 친구가 자기의 정체성을 찾았구나
옥규가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 어린 자기를 위로 해 줬듯이......

언제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