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인옥이는 서울에 잘 도착하여 기다리던 임 앞에 함박웃음 지으며 눈 맞춤하고
있겠고, 채경, 규희, 영옥이는 며칠 전 만나 즐거움을 같이 하였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일상생활이 기쁨으로 충만하겠고, 아니면 규희는 일주간의 나들이로 피곤하여 침대
속에서 뭉개고 있을지도 모르고, 나는 그 만남의 기쁨과 행복함을 되 뇌이며 글을 올려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을 느끼며 이렇게 컴 앞에 앉아있네.

지난 주 금요일 새벽아침, Hurricane Ernasto 의 북상으로 Florida 로부터 저 Washington  
지역 위까지 비바람이 상당 할 거라는 예보도 마다하지 않고 나는 그대로 북으로 북으로
달려 네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길을 여섯 시간 조금 넘게 걸려 인옥이 집 앞에 도착
하였네.  안개 빗속 터널을 뚫고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은, 마치 소설 “폭풍의 언덕”에서
히드클리프가 케더린의 환영을 찾아 헤메이던 그 아름다운 폭풍의 언덕을 연상케했네.
낮으막한 언덕 위에 조금은 호화스러울 정도의 견고한 돌벽 외관을 보이는 타운 하우스들이
비를 맞으며  줄지어 앉아 있는 모습이 주위 환경과 어우러져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네.  
집집마다 앞  뜰에 피어 있는 가지 가지색들의 꽃들이 비로 말미암아 더욱 선명한 색을
띄우며 생동감 있어 보여 이 꽃과 나무들을 보는 즐거움을 더했네. 그리곤 이내 생각은,
가을이 오면, 단풍 짙게 물들어 불타는 듯한 가을이 오면 이 동네도 가을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울거라 생각되었네.

먼저 도착한 규희와 진한 포옹을 나누고 이내 인옥 사모의 환영을 받으니 장시간에 걸친
운전의 피곤함도 금방 가시는 듯 하였네. 이렇게 해서 큰 아이에게 작은 아이 베이비 시터
하라며 모든 것 뒷전으로 미루고 오직 친구들 만날 일을 생각하며 먼 길 달려 와 함께 할
삼박사일의 여정이 시작 되었다네.
인옥 사모는 얼마나 야무지고 알뜰한지......  우리 온다고 손수 만든 나물 반찬(꽈리고추
멸치조림, 도라지 볶음, 녹두전, 총각김치.... )이 정말 맛있었네.
인옥이 집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 적막하고 호젓해 보여서 인옥 혼자 지내기에는
쓸쓸할 것 같아도 너무나 잘 생긴 아들과 영리한 모습의 딸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장식하고 있어 혼자 지내도 외롭지 않을 만큼의 기분을 유지시키는 듯 했네.
그리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야트막한 절벽이 마치 병풍처럼 드리워진 호수가 그림같이
아름다워 우리네들도 그 호수 절벽을 배경 삼아 사진 몇 장 찍지 않을 수 없었네.
다행히도 일요일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아 풀 섶마다 물방울 촉촉한 호수길 가를 따라서
아침 산책을 즐길 수가 있어 그 아침이 참으로 행복했네. 그 여러 날 숙식을 함께 하는 동안
언제나 방긋 방긋 웃으며 피곤한 내색하지 않고 어디로든지 종횡무진 운전해 준 인옥이가
정말 고맙네.

지난여름 모임에서 많은 친구들이 채경이의 큰 눈망울과 눈물을 기억하듯이 그녀는 아직도
가냘픈 몸매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때론 틀어 올리기도 하고, 겉으로는 약해 보이고 그 큰
눈망울에서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아도, 조근 조근한 목소리엔 힘이 있어 새로 시작한
미국 연방정부 한 부서에서의 그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잘 감당하고 있네.
아들과 딸이 있는데 두 아이들이 성격적으로는 무척이나 대조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찌나
조화로운지 참으로 아름다운 가족이라 생각했네. 특히 딸 비비(이름이야)는 너무 예뻐. 얼굴뿐
아니라 말하는 목소리며 전혀 남을 신경 쓰지 않는 말씨며, 근데 얼마나 남을 배려하는지 몰라.
내가 너무 반했어. 예를 들면 우리가 비비랑 함께 먼저 채경이 집에 도착했는데 비비가 하는 말
“난 아직 스토브 만지면 안 되기 때문에 티 마시고 싶으시면 전자레인지에 물을 데워 줄 수가
있어요.”하지 않겠니?  어찌나 사랑스럽게 말하는지 그리고 참으로 솔직한 아이더구나.
아들은 영감 하나가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의젓하고 말은 별로 없지만 예의 바르고.....  
채경이가 두 아이들과 아롱다롱 살아가는 사랑의 모습에내 가슴이 안도감으로 충만했네.
채경이는 통계학에 관한 일을 하면서도, 다들 알겠지만, 화가의 직분도 틈틈이 감당하고 있는
모습을, 온통 벽들을 장식하고 있는 그 녀의 작품들에서 느낄 수가 있었네.  
색감들도 원색적이며 붓의 텃치가 참으로 힘이 있어 보여 채경이 속에 내재하고 있는
열정을 엿볼 수가 있었네. 채경아!  행복하게 잘 지내.

영옥이는 마눌님 모시기를 극진히 하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의 남편과 영옥이
두 배도 넘을 듯한 몸이 장성한 아들 둘과 함께 버지니아주 Burke근교의 아담하고 아늑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게 보여 가슴 푸근했네. 살림을 얼마나 살갑게 하는지 구석구석이
먼지 하나 없이 반들거려 미끄러질 뻔 했네. 양말을 신지 않아서 다행이었네.
얼굴이 발그레 해져서 그 약한 몸으로 회덮밥 준비하던 영옥이가 눈에 선하고 얼마나
고마운지.... 다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회덮밥과 새우구이를 정말 맛있게 먹었네.
알고 보니 규희 셋째 오빠와 영옥 낭군님이 옆 집 학교 동창이었네. 그리하여 이야기
거리가 많아졌네.  영옥아 고마워.

규희 아씨는 이 번 여행이 올 해 마지막이라는 낭군님의 충고를 감사히 받아 들고
서쪽 끝에서 동 쪽 끝으로 날라 왔네. 결코 쉽지 않은 휴가를 그저 보고픈 마음에
적지 않은 비용 들여가며 그렇게 날아 왔네.
친구들, 그녀 특유의 웃음을 기억하나?  어찌나 환하고 활력 있게 웃는지 - 사진 속에서
그 녀의 함박웃음 짓는 모습이 증명 되네 - 나도 그 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덩달아
기분 좋아 진다네.  규희야! 너의 웃는 모습과 웃음소리는 보물이야. 남들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아주 귀한 거야.

일요일 저녁 우여곡절 끝에 채경이 하고 Annapolis에서 만날 수가 있었네.
그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도시가 그리 아름다운지 몰랐네.
가로등 아래로 늘어져 있는 색색의 꽃 화분들, 그 아래 놓여 있는 커다란 화분 속에
때로는 다소곳이 때로는 대담하게 피어 있는 많은 꽃과 나무들, 결코 현대적인
건물들이 아닌 겨우 이 삼층 정도의 낡은 건물들이 아주 보기 좋게 조화롭게 채색되어
그 main street를 친근감 있고 활력감 넘치게 하는 아름다움, 비온 뒤의 청명함.
아주 더움도 차가움도 느낄 수 없는 완전한 기온, 그 위에 살살 불어오는 바닷바람,
그리고 적당히 많은 사람들.
바닷물이 바로 앞에 있어 수많은 요트들이 정박하여 있고, 그 안에서 맥주 한 잔
나누며 영혼의 자유 함을 누리는 그 많은 사람들. 영혼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어디 그들뿐이랴. 책점에서, 커피샾에서, 길 가에서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과 우리 모두들 그 완벽한 날씨가 선사해 준 행복지수 100으로 모두
영혼의 자유 함을 누리지 않았나 하네. 그 일요일 밤에.....

seafood 음식점에서 우리 넷은 서로 얼굴들을 마주하며 서로 많이 먹을 것을 권하며
내가 말하기를 “왜 이 순간 남편들이 함께하지 않아도 행복한거니?”, 내가 와인 한 잔
하지 않았어도 이런 말이 그저 나올 정도로 그날 밤, 함께 한 그날 밤이 참으로 행복했네.
나이 들어가며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맛의 기쁨인가?
그래서 친구들이 이 번개 저 번개 쳐가며 만나나?
ㄱㄱㄹ 모임, 규와의 여행 모임 등을 비롯하여 순호 언니의 홀연한 여행길.
나도 참으로 이런 만남이 부러웠는데, 이번엔 아이들 뒤로 한 채 그대로 떠나 보았네.
내가 벗어나지 못하고, 벗어나볼 용기도 없었고, 그렇게 저질러 볼 강단도 없었는데,
내가 지금 있는 자리가 최선의 자리라고 믿으며 그렇게 오랜 세월을 지내왔는데,
한 번 떠나 보니 참으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네.

규희와 인옥이에게 핀잔 받을 정도로 아이들한테 전화 해대고 했는데,
나는 아이들이 잘 챙겨 먹고 있는지, 할 일들 잘 하고 안전하게 있나 해서
아마도 못 미더워서 수시로 전화를 했는데, 아이들이 전화 받는 걸
귀찮아하는 걸 느꼈네. “엄마 알았어. ok. 너무 일찍 오려고 마세요.”이러네.
자식에 대해선 영원히 짝사랑이지 않을까 하네.

영옥이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오고 싶었지만, 행여나 휴가 끝날 교통체증으로
지체될까봐, 기숙사로 돌아 갈 아들 그래도 저녁 밥 한 끼 먹어 보내야 하지 않나 해서
“내가 너희들한테 빨리 갈께.“ 하며 시속 80마일로 달리고 달려 4시간 20분 만에 집
앞에 도착했네.
처음으로 이렇게 길게 외유한 엄마를 반갑게 마지는 했는데,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 않아 쉰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내 영혼의 자유를 잠시나마 누리게 해 준 식구들이 고마워 침만 꿀꺽 삼켰네.

이렇게 만나 며칠을 함께한 친구들이 소중하고 감사하고, 가슴 광주리에
하나 가득 행복을 담고 돌아 온 기분이네.
그 광주리 속에 사랑, 웃음, 기쁨, 인내, 이해, 너그러움, 수다 등 모든 좋은 것들을
가을 추수하듯 가득 담아 왔으니, 이것으로 우리내 인생의 가을을 풍요히 하며 다가
올 인생의 겨울을 더불어 따뜻하게 보내기를 내가 소원하네.

꽁꽁 숨어있는 친구들아, 얼마 안 있으면 해가 지려 하니, 다 저물어 가기 전에
얼른 나와 가슴 풀어 놓고 질긴 사랑의 인연을 노래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