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도 여느 때처럼 그렇게 앉아 있었다.
은은한 음악과 커피향이 즐거움을 더해 주는 그 까페의 이른 아침에.
냉방이 잘된 실내가 부담스러운데 등 뒤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볕이 가슴을 푸근하게 한다.

오늘의 신문은 New Orleans' situation desperate, city of the dead, city of the desperate
이런 다양한 제목하에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말이암은 피해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자연적인 재앙으로는 1906년에 San Francisco 를 강타한 지진과 화재 다음으로 가장 큰 근래의
재앙이었음을 낱낱이 보도하고 있다. 이것으로 인한 영향이 전 미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가솔린 값의 급등인것 같다. 넘쳐나도 지나치지 않은 기사들 가운데 눈에
띄는 몇 장의 사진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나의 시선을 사로 잡은것은 카트리나 피해로 모든 것을 잃었을 한 흑인여성의 넋이
나간 모습의 사진이었다. 아이의 한 쪽 이마에 자신의 머리를 기댄채 망연자실한 눈빛 아래로
눈물을 흘리는 그 엄마와는 다르게 아이는 그저 눈가에 물기가 밴듯한 모습의 덤덤한 표정일
뿐이다. 이 대비된 모녀의 모습은 나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하여 결국은 코끝이 시큰해지며
내 작지않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게 만들었다. 무엇을 잃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여인의 속절없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 거린다.

이 아침 나를 슬프게 만든 또 하나의 사진은 이라크에서 성지 순례 여행 중에 거짓된 자살 폭탄에
대한 소문에 놀라 다리 아래 강물로 뛰어든 Shiite 순례자들의 엄청난 수의 주검 앞에 통곡하는
검은 옷의 여인네들과 그 다리 위에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신발들이었다. 대부분의 주검은
아녀자들과 아이들이라는데......

이런 모습과 대조적으로, 다른 한 장의 사진은 미국 주부들의 우상인 Martha Stewart의 즐거워
하는 모습이었다. 미국 가정 경제의 대모 역활을 하는 그녀는 작년에 주식의 내부자 거래와
관계당국에 대한 위증으로 5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하였고 오늘은 5개월에 걸친 가택연금
상태에서 벗어나는 날이었다. 지난 5개월 동안  발목에 차고 있던 전자 장치를 풀기 전에
많은 시청자들 앞에 발목을 들어 올리며, 커다란 미소와 함께, "여러분 누구도 이런 것을 차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하고 말한다. 억만장자인 그녀는 수십만 달러 더 벌자고 내부 거래를
시도했고 위증도 하였다. 그녀는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그렇게 당당하게 웃는다.

이 세컷의 사진들을 바라 보면서 우리가 살아 가는 세상살이의 기쁨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하지 않을 수 없었네.
아무리 우주를 왕복하는 우주선의 발사가 성공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어도 자연의 힘 앞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 우리의 인생임을, 자연을 거스릴 수 없는 우리의 인생임을, 알게하네.
또한 무엇을 믿든 그 믿는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 간다 하지만, 한 순간의 어처구니없는 오보에
살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우리의 나약한 영혼이 아닌지.....
한편으로는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갖고 싶어하는 탐욕이 이글거리는 본능을 숨김없이 발휘할 수
있는 우리가 아닐런지.......

현재 주어진 자리를 재정검 해보면서 성경 한 구절을 떠 올렸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마음으로 기쁨을 누리며, 인생의 봄 여름을 지나 추수할 때인 가을을 맞이 하였는데
얼마만의 결실을 맺어 추수를 할 수 있을까? 그 결실을 가슴에 안고 다가 올 겨울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곰배령 하늘 아래 <천상의 화원>에 잠깐 앉아 휴식 취하는 우리 친구들이, 삼십년만에 이렇게도
만나려고 모이려고 애씀은 인생의 내리막 길에 쓸쓸하지 않으려고 세상의 기쁨을 함께 나누려고
함이 아닐까?  그 내려갈 길은 분명 올라 온 길보다도 빠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