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에 본 책이라 기억되는데 강유일이라는 여자가 쓴 <생명 채집>이라는 글이 있어.
아마 맞을 거야.

지금은 얼마 전에 본 책도 기억이 하나도 안나서 맨날 새 책 보는 것처럼 매번 새롭기만 한데 그래도 그 때는 총총했었나? 기억이 난다.

어느 의사가 화자였는데, 매력을 느끼는 어느 여자가 결정적인 병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거야.
노란 원피스를 입고 경쾌한 미소를 띠고 나타난 그 여자가, 사랑스러운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어야 너무나 마땅한 그 여자가 그런 절망적인 병에 걸렸다는 게 믿을 수 없어 너무나 마음이 아픈 거야.
그 여자는 결국 죽게 되는데, 그 의사는 그 여자의 생생하고 아름답고 탄력있는 모습을 그대로 기억하면서 아름다운 그 여자의 지금 순간을, 그녀의 생명을 채집한다고 생각해.

우리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며 서로 -어머 너 똑같다,  하나도 안 변했네- 하는 이야기를 하며 문득 그 글을 생각한다.

네모 반듯한 상자에 하얀 솜을 깔고, 조심스럽게 잡은 곤충을 넣어서 핀으로 곱게 꽂은 채집함 기억하지?
그래, 우리의 기억은 그 때 그 시절의 우리 모습의 채집인지도 몰라.

특히 나처럼 고등학교 이후로 별로 동창들을 만나지 못한 친구들은 아마 나와 비슷한 감정일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가 보낸 세월이 얼마나 길고, 그 동안에 겪은 일들도 그 얼마나 많았겠니?

그런데 나 같은 아이는 세월이 가도 맨날 그 모양 그 타령으로 덜 떨어져서 그런지 그 옛날의 기억만 그대로 기억했다가 그대로 표출하곤 했어.
그런 게 아무리 친구지만 무례가 될 수도 있고, 상처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거야.

반갑다는 감정과 그립다는 감정은 세월을 직선으로 넘는 것일까?

하지만 철없어 항상 부끄러운 내가 그리 쉽게 변할 것 같지도 않고, 하여 실수도 계속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하지만 분명한 것은 채집함 속에 두근거리며 넣어 둔 그 채집물들은 내 인생의 정 중앙에 늘 위치하고 있고, 그리고 그 채집물들이 매우 소중했었다는 것은 변함이 없으리라는 거지.
누가 뭐라고 해도......


그냥 생각해 봤어 얘들아. 반가워서.  신기해서.
세상에는 이런 빙충이도 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