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공자왈 맹자왈'이 쓸데없는 소리로만 생각되지 않는 걸 보면 
나도 노땅이 되었나 봅니다. 
공자님이  40이 不惑이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나는 40대에 풀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불혹의 의미는 40대는 남이 꼬셔도(유혹해도) 못넘어가고 
내가 남을 꼬실 수도 없는 별볼 일 없는 나이'라고.. 
그런데 나는 40대에도 유혹으로 수 없이 흔들렸습니다. 
맹세컨데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someone이 아닌 something의 유혹입니다. 
아! 주체할 수 없는 나의 속물근성이여!  
40대 숙제를 풀지 못한 채 50 知天命이 되었습니다. 天命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天命을 못풀면 나는 밀린 숙제를 안고 60 耳順에는 듣는 것마다 거슬려서
귀구멍이 늘 불편해지는 것은 아닐까 저으기 염려되어 
다른 사람들이 해낸 숙제를 참조해 보았습니다. 

맹자왈 

莫之爲而爲者 '天'也
莫之致而至者 '命'也

"그대가 하고자 한 것이 아닌데도 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하늘이 시킨 것이요
그대가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한 것이 아닌 데도 그 일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운명"
이라고나 할까? (짧은 실력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음을 밝힘)

그리고 도종환님의 시구가 
맹자님의 뜻을 현대적으로 절묘하게 해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어봅니다.
(물론 시인께서 이 시를 천명에 비유해서 쓰신 것은 아니겠지만)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여고 졸업 30년후 50의 나이에 세월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각양각색의 길이 보이지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타인이 걸어온 길에 함부로 침이나 껌을 뱉지 않고 
그의 길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2005년 7월 15일 김인숙

* 앞으로는 3학년 2반 김인숙이란 표시로 김인숙(2)로 표기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