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수 2,306
여기다가 글 쓰고, 이젠 가물가물해진 엣 기억들을 살려내서 서로 인사를 주구받고 하는게
신기하고 즐거우면서도 몇가지 당황스러운 게 있는데 하나는 내가 드러내지는 거.... 그런 건 얘기가
길어질테니까 그만 두고 또 하나 당황스러운 건 비슷한 이름들에 성만 다른 같은 이름들이 많아서
누군가를 기억해내는데 혹시 실수할까봐 꼭 앨범이 필요하다는거야. 게다가 나는 고등학교 때 앨범도 없어서 여기 주소록에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잘 보이지 않는 아래 이름들을 뚫어져라 쳐다봐야하니...
내 이름만해도 김혜숙 박혜숙 이혜숙... 인옥이도 정인옥 한인옥 김인옥... 비슷한 이름도 부지기수라서
영숙혜숙경숙화숙인숙, *순,*희 ,*자, *영, *경... 그러니 우리가 서로에 대해 긴가민가하는 건 우리 기억력 탓이라기보다는 이 이름들 탓일 확률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에 개성이 있는 친구들은 그래도 그 이름과 얼굴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빨리 떠오르쟎아?
언젠가 엄마에게 이름 좀 잘 생각해서 지어주지 그랬냐고 했더니 그래도 그 때는 열심히 생각해서 지은 거라고 하시더라고.
벌써 한 10년전 쯤에, 어떤 마음이 많이 아픈 장례식을 치루고 강화에 있는 장지로 가서 하관하기를 기다리는 중에 뭔 생각을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어서 혼자 그 곳 묘들을 지나면서 무심히 묘비들을 보는데,
그 중 한 묘비 뒷면에 자녀들의 이름을 써넣은 중에 "큰 년, 작은 년"이라고 쓴 게 있는거야.
처음 보고는 그 슬픈 와중에 웃음이 날뻔하다가 그 다음엔 그런 이름을 거기에 새길 때의 식구들 마음을 생각하다가 그랬는데, 거길 떠나와서도 오랬동안 그 이름으로 살았을 두 분을 생각하게 되더라.
신기하고 즐거우면서도 몇가지 당황스러운 게 있는데 하나는 내가 드러내지는 거.... 그런 건 얘기가
길어질테니까 그만 두고 또 하나 당황스러운 건 비슷한 이름들에 성만 다른 같은 이름들이 많아서
누군가를 기억해내는데 혹시 실수할까봐 꼭 앨범이 필요하다는거야. 게다가 나는 고등학교 때 앨범도 없어서 여기 주소록에 있는 사진들을 보면서 잘 보이지 않는 아래 이름들을 뚫어져라 쳐다봐야하니...
내 이름만해도 김혜숙 박혜숙 이혜숙... 인옥이도 정인옥 한인옥 김인옥... 비슷한 이름도 부지기수라서
영숙혜숙경숙화숙인숙, *순,*희 ,*자, *영, *경... 그러니 우리가 서로에 대해 긴가민가하는 건 우리 기억력 탓이라기보다는 이 이름들 탓일 확률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에 개성이 있는 친구들은 그래도 그 이름과 얼굴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빨리 떠오르쟎아?
언젠가 엄마에게 이름 좀 잘 생각해서 지어주지 그랬냐고 했더니 그래도 그 때는 열심히 생각해서 지은 거라고 하시더라고.
벌써 한 10년전 쯤에, 어떤 마음이 많이 아픈 장례식을 치루고 강화에 있는 장지로 가서 하관하기를 기다리는 중에 뭔 생각을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어서 혼자 그 곳 묘들을 지나면서 무심히 묘비들을 보는데,
그 중 한 묘비 뒷면에 자녀들의 이름을 써넣은 중에 "큰 년, 작은 년"이라고 쓴 게 있는거야.
처음 보고는 그 슬픈 와중에 웃음이 날뻔하다가 그 다음엔 그런 이름을 거기에 새길 때의 식구들 마음을 생각하다가 그랬는데, 거길 떠나와서도 오랬동안 그 이름으로 살았을 두 분을 생각하게 되더라.
2005.03.07 11:33:37 (*.100.229.203)
하하..
내 이름을 기억 못하면 아예 모르는 사람..이 될까?
나야말로 아직 앨범을 들쳐보질 못해서 기억에 나는 혜숙일 생각하고 있는데..
집에 가면 꼭 확인해 볼께..미안..
내 이름을 기억 못하면 아예 모르는 사람..이 될까?
나야말로 아직 앨범을 들쳐보질 못해서 기억에 나는 혜숙일 생각하고 있는데..
집에 가면 꼭 확인해 볼께..미안..
2005.03.07 14:30:26 (*.59.124.217)
이름들을 보면 우리는 시대상으로 영자, 말자, 숙자, 명자, 경자, *자,*자.....
영자의 전성시대는 아닌것 같고...
이노기, 여노기, 그노기, *노기, *노기......등 노기의 전성시대???? ㅎㅎㅎ
먼곳에서 열심히 친구찾아 삼만리로 찾아오는 혜숙이를 생각하니
일을하다가도 틈만 나면
어떤 사무실이든지 컴퓨터만 눈에 띠면
인일에 들어오게 된다.
중독 증세?
여기는 동구청이거든....
어린시절 다니던 서림초등학교가 있는곳...
자주 들어와서 만나자.....
혜숙이는 아직도 듬직한 맏며느리감의 풍채인지 궁금하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아닌것 같고...
이노기, 여노기, 그노기, *노기, *노기......등 노기의 전성시대???? ㅎㅎㅎ
먼곳에서 열심히 친구찾아 삼만리로 찾아오는 혜숙이를 생각하니
일을하다가도 틈만 나면
어떤 사무실이든지 컴퓨터만 눈에 띠면
인일에 들어오게 된다.
중독 증세?
여기는 동구청이거든....
어린시절 다니던 서림초등학교가 있는곳...
자주 들어와서 만나자.....
혜숙이는 아직도 듬직한 맏며느리감의 풍채인지 궁금하다.
2005.03.07 14:55:20 (*.234.141.38)
나는 이름이 두개야.
춘선이라는 이름은 호적에 올라 있는 것이고
내가 아홈살 때 당시 유명한 작명가였던 김봉수씨가 지어 준 이름이 김 희재.
이름에 돌림자로 하필이면 '춘'자를 쓰는 바람에 우리집 딸들은
춘선, 춘옥, 춘남이가 될 수 밖에 없었거든.
당시 우리 엄마가 친구를 따라 무심히 김 봉수씨를 찾아갔는데
내 놓은 이름을 보고 다짜고짜 당신은 딸들을 모두 기생으로 만들 작정이냐는 말에
허겁지겁 돈을 주고 새로 지어 온 이름이 희재, 희신, 희선이였지.
아홉살 때부터 나는 집에서는 희재로 불리웠지만 학교에선 여전히 춘선이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 내 스스로 이름값을 생각하게 될 즈음부터
나는 춘선이란 이름보다 희재를 즐겨 쓰게 되었어.
봄 춘에 착할 선으로는 아무 의미도 만들 수가 없었지만
바랄 희, 실을 재로는 많은 의미를 만들 수가 있었거든.
늘 희망을 싣고 다니는 사람이 될 것 같았거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암울하고 비관적이었던
유년기의 모든 기억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어.
그래서 철이 들면서부터 스스로 김희재가 되기를 고집해서
결혼을 할 때도 신부 김희재였고, 모든 사회생활과 교회에서 김희재로 통했지.
너무도 완벽하게 김희재로 살았기 때문에
심지어 우리 아이들은 김춘선이란 이름조차도 모르고 컸단다.
내가 김춘선이란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단지
주민등록증이나 면허증 같은 신분증을 볼 때,
은행에 통장 만들때, 여권을 내거나 병원에 입원을 할 때 뿐이었어.
그럴때도 나는 춘선이란 이름에 얼마나 낯설어 했는지...
사실, 근 30년을 내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 때가 많았단다.
처음 풀무원에 입사를 할 때도 호적에 있는 이름을 쓰느라 할 수 없이 춘선이로 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이름은 희재라고 강변을 하고 다닌 바람에
지금은 회사 안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김 희재로 불러줄만큼
나는 철저히 김희재로 살았어.
그렇게 나는 춘선이란 이름과 함께 내 유년의 모든 기억들을 지워버렸던거야.
선택적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로지 현재의 내가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 왔던 것이지.
그랬는데 말이다.
이렇게 나를 춘선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내 삶이 아주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거 있지.
신기하게도 내가 춘선이었음을 기억하게 해 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운거야.
내가 지워버리고 싶었던 그 유년기가
사실은 오늘의 내가 있도록 거름이 되어 준 아주 소중한 순간들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 거지.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내가 그에게로 다가가 꽃이 될 수 있다는 걸
단지 이론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내가 절감하고 있는거야.
혜숙아, 옥규야, 경래야!
너희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니 내가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거 있지.
내 안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춘선이를 너희가 불러내 주니 왜 이리도 기분이 좋니?
자칫 <빈둥지증후군>에 빠져 의욕을 잃을 뻔 한 시기에 있는 나를
이리도 들뜨게 하고 신나게 하고 살 맛나게 해주어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니
옛친구보다 더 좋은 것이 없구나.
이제는 춘선이도 좋고 희재도 좋단다.
이름이야 어쨌든지 내 본질이 변하지 않고 아직 내게 이리 싱싱한 생명력이 있다는 걸
친구들과 대화하는 동안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이지.
이제야 옛 어른들이 포도주와 친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하신 말씀의 뜻을 알겠다.
춘선이라는 이름은 호적에 올라 있는 것이고
내가 아홈살 때 당시 유명한 작명가였던 김봉수씨가 지어 준 이름이 김 희재.
이름에 돌림자로 하필이면 '춘'자를 쓰는 바람에 우리집 딸들은
춘선, 춘옥, 춘남이가 될 수 밖에 없었거든.
당시 우리 엄마가 친구를 따라 무심히 김 봉수씨를 찾아갔는데
내 놓은 이름을 보고 다짜고짜 당신은 딸들을 모두 기생으로 만들 작정이냐는 말에
허겁지겁 돈을 주고 새로 지어 온 이름이 희재, 희신, 희선이였지.
아홉살 때부터 나는 집에서는 희재로 불리웠지만 학교에선 여전히 춘선이었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 내 스스로 이름값을 생각하게 될 즈음부터
나는 춘선이란 이름보다 희재를 즐겨 쓰게 되었어.
봄 춘에 착할 선으로는 아무 의미도 만들 수가 없었지만
바랄 희, 실을 재로는 많은 의미를 만들 수가 있었거든.
늘 희망을 싣고 다니는 사람이 될 것 같았거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암울하고 비관적이었던
유년기의 모든 기억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어.
그래서 철이 들면서부터 스스로 김희재가 되기를 고집해서
결혼을 할 때도 신부 김희재였고, 모든 사회생활과 교회에서 김희재로 통했지.
너무도 완벽하게 김희재로 살았기 때문에
심지어 우리 아이들은 김춘선이란 이름조차도 모르고 컸단다.
내가 김춘선이란 이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단지
주민등록증이나 면허증 같은 신분증을 볼 때,
은행에 통장 만들때, 여권을 내거나 병원에 입원을 할 때 뿐이었어.
그럴때도 나는 춘선이란 이름에 얼마나 낯설어 했는지...
사실, 근 30년을 내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 때가 많았단다.
처음 풀무원에 입사를 할 때도 호적에 있는 이름을 쓰느라 할 수 없이 춘선이로 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이름은 희재라고 강변을 하고 다닌 바람에
지금은 회사 안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김 희재로 불러줄만큼
나는 철저히 김희재로 살았어.
그렇게 나는 춘선이란 이름과 함께 내 유년의 모든 기억들을 지워버렸던거야.
선택적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로지 현재의 내가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 왔던 것이지.
그랬는데 말이다.
이렇게 나를 춘선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내 삶이 아주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거 있지.
신기하게도 내가 춘선이었음을 기억하게 해 주는 사람들이 너무나 고맙고 사랑스러운거야.
내가 지워버리고 싶었던 그 유년기가
사실은 오늘의 내가 있도록 거름이 되어 준 아주 소중한 순간들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 거지.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내가 그에게로 다가가 꽃이 될 수 있다는 걸
단지 이론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내가 절감하고 있는거야.
혜숙아, 옥규야, 경래야!
너희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니 내가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거 있지.
내 안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춘선이를 너희가 불러내 주니 왜 이리도 기분이 좋니?
자칫 <빈둥지증후군>에 빠져 의욕을 잃을 뻔 한 시기에 있는 나를
이리도 들뜨게 하고 신나게 하고 살 맛나게 해주어 생활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니
옛친구보다 더 좋은 것이 없구나.
이제는 춘선이도 좋고 희재도 좋단다.
이름이야 어쨌든지 내 본질이 변하지 않고 아직 내게 이리 싱싱한 생명력이 있다는 걸
친구들과 대화하는 동안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이지.
이제야 옛 어른들이 포도주와 친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하신 말씀의 뜻을 알겠다.
2005.03.07 16:19:58 (*.229.146.245)
옥규야, 그 노래들은 우리 엄마 아버지도 좋아하시는 건데. 아버님 곁에서 그 노래부르던 네 모습... 생각만 해도 따뜻하다.
경래야, 안녕! 너도 바쁘고 열심히 사는 것 같네.
연옥이는 지난번에 강화에서 쓴 글을 봤는데 이번에는 동구청이니?
난 여기 오니까 내 싸이즈에 맞는 옷이 많아서 좋다.
춘선아, 희재란 이름 뜻 정말 맘에 든다. 그래도 우린 너의 말을 걸어오는 듯한 큰 눈과
춘선이란 이름이 함께 떠오르는 이 자동현상을 잘 못바꿀거다.
경래야, 안녕! 너도 바쁘고 열심히 사는 것 같네.
연옥이는 지난번에 강화에서 쓴 글을 봤는데 이번에는 동구청이니?
난 여기 오니까 내 싸이즈에 맞는 옷이 많아서 좋다.
춘선아, 희재란 이름 뜻 정말 맘에 든다. 그래도 우린 너의 말을 걸어오는 듯한 큰 눈과
춘선이란 이름이 함께 떠오르는 이 자동현상을 잘 못바꿀거다.
2005.03.07 20:12:58 (*.176.164.98)
내 이름에 대한 추억?
내 이름도 너무나 흔했어
아마 우리 동기에도 김인순이 2-3명?
다행이 정인순은 어느 곳에가도 흔지 않지만 ...
우리 아버지 내 청소년 시절 내내
내게 몹시 시달림을 받으셨지
딸 이름 하나 어찌 그렇게 생각없이 지으셨냐고
내가 투정 할라치면
아버지 말씀 "어질 仁 순할 順"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어디 있냐며
세종대왕님의 왕비가 인순왕후였다시며 커서 어질게 살 거라 하셨지..
그렇지만 난 당시 내이름보다 더 흔했던 언니 이름 뒤에 붙은 "숙"자가 더 좋았다
"순"자는 촌 스럽고 맑을"숙"자는 뜻 만큼 깨끗하고 고급스럽단 생각을 했거든..
그땐 아마도 언니의 큰 눈과 가름한 얼굴 누가 보아도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나랑은 전혀 다른 언니에 대한 시샘으로 가득찼었기 때문이었을거야
지금까지도 우리 형제를 형제로 보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중3때 김인순과 시골출신이란 이유로 단짝이 되어 다닐 때
박영자 담임선생님 왈 "두 인순이 어쩜 그렇게 꼭 붙어 다니니" 하셨고
난 나보다 조용하면서 공부 잘 하는 김인순이와 어울리는 것이 좋았다.
그 당시 우리집은 동인천 - 박촌행 버스 종점 '박촌 '
김인순 집은 동인천 - 신천리행 버스종점 '신천리' 였으나
힘든 것도 모르고 그애집도 몇번씩이나 갔었다.
아무리 서로 말이 잘 통하고 좋은 친구라 하여도
두 집 거리는 거의 반나절 길이었으니
요즘 아이들 같으면 꿈도 못 꿀 옛 이야기일테다.
아직가지도 김인순과는 잘 지내고 있다
아참 엊그제 한참 바쁠 때 전화 왔었는데
전화나 해 봐야겠다..
내 이름도 너무나 흔했어
아마 우리 동기에도 김인순이 2-3명?
다행이 정인순은 어느 곳에가도 흔지 않지만 ...
우리 아버지 내 청소년 시절 내내
내게 몹시 시달림을 받으셨지
딸 이름 하나 어찌 그렇게 생각없이 지으셨냐고
내가 투정 할라치면
아버지 말씀 "어질 仁 순할 順"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어디 있냐며
세종대왕님의 왕비가 인순왕후였다시며 커서 어질게 살 거라 하셨지..
그렇지만 난 당시 내이름보다 더 흔했던 언니 이름 뒤에 붙은 "숙"자가 더 좋았다
"순"자는 촌 스럽고 맑을"숙"자는 뜻 만큼 깨끗하고 고급스럽단 생각을 했거든..
그땐 아마도 언니의 큰 눈과 가름한 얼굴 누가 보아도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나랑은 전혀 다른 언니에 대한 시샘으로 가득찼었기 때문이었을거야
지금까지도 우리 형제를 형제로 보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중3때 김인순과 시골출신이란 이유로 단짝이 되어 다닐 때
박영자 담임선생님 왈 "두 인순이 어쩜 그렇게 꼭 붙어 다니니" 하셨고
난 나보다 조용하면서 공부 잘 하는 김인순이와 어울리는 것이 좋았다.
그 당시 우리집은 동인천 - 박촌행 버스 종점 '박촌 '
김인순 집은 동인천 - 신천리행 버스종점 '신천리' 였으나
힘든 것도 모르고 그애집도 몇번씩이나 갔었다.
아무리 서로 말이 잘 통하고 좋은 친구라 하여도
두 집 거리는 거의 반나절 길이었으니
요즘 아이들 같으면 꿈도 못 꿀 옛 이야기일테다.
아직가지도 김인순과는 잘 지내고 있다
아참 엊그제 한참 바쁠 때 전화 왔었는데
전화나 해 봐야겠다..
2005.03.07 22:14:12 (*.221.56.136)
정인순아 안녕? 와-- 앨범 보고 너 확인했어. 세상에 애들 하나 하나 확인할 때마다 정말 이상한 감정에 싸이게 된다. 잘 지내는구나. 반갑다. 근데 정인순아 김인순 잘 있니? 그애랑은 고 3 때 홍예문 너머에 있는 독서실에서 같이 밥먹고 자면서 공부했는데, 걔네집인 신천리에도 포도철에는 가서 포도도 따고 한 바구니씩 얻어 오고 했는데..... 그애 정말 착하고 진국인 아이였어. 고등학교 때부터 벌써 됨됨이가 좋은 사람의 모습을 가졌던 아인데. 간호사하다가 산파 한다는 말 들었는데 안부 좀 전해주고 전화 통화하자고 해줘. 번호는 주소록에 있거든.
참 반갑다 인순아.
참 반갑다 인순아.
2005.03.08 08:02:18 (*.55.33.143)
비슷한 이름이 많아 혼동하기 쉬운 친구들, 더구나 3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 당연하지.
그래도 앨범을 찾아보면 다 조금씩 생각나더라.
며칠전에 이 곳에 있는 임채경이와 어렵게 통화되었는데, 채경이도 내모습을 희미하게
기억하는지 정인옥이 두명이 아니었나 하더라
다행이 인일여고에 정인옥은 한명이라고 했지 (정말로 인옥이가 많네)
그래도 여고 동창이라는 인연으로 밤 12시가 넘도록 몇시간을 전화에 대고 회포를 풀었다.
곧 날짜를 잡아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정인순아, 나와 이름이 두자나 같은데, 다른 친구들이 혼동할까?
1월 동창회때 보니 연옥이 말대로 진짜 예뻐져서 몰라보겠더라
옥규야, 새학기라 바쁜데 빈수업시간을 이용해 댓글도 달고 기특하다
너는 행동이 민첩해 잘 할거야
아버지의 마지막 삶의 시간에 노래를 불러 드렸다니 마음이 찡하다.
경래야, 바쁘게 잘 지내지? 이제는 노련한 BUSINESS WOMAN 의 모습이 보여진다
춘선아, 동그란 눈의 예쁜아이라고만 생각되었는데, 암울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었다니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각자 삶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인 것을 새삼 느낀다.
문제는 그 고난을 지혜롭게 여과시켜 아름다운 생의 열매로 키우느냐에 달려있겠지
그런 사람은 삶의 깊이가 있고 성숙해 가는 거 같애.
춘선인 그렇게 살아온 것 같구나.
삶의 긍정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니 기쁘고 축하한다.
사실 지금 우리의 나이는 과거 어떻게 살아왔든 새롭게 새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앨범을 찾아보면 다 조금씩 생각나더라.
며칠전에 이 곳에 있는 임채경이와 어렵게 통화되었는데, 채경이도 내모습을 희미하게
기억하는지 정인옥이 두명이 아니었나 하더라
다행이 인일여고에 정인옥은 한명이라고 했지 (정말로 인옥이가 많네)
그래도 여고 동창이라는 인연으로 밤 12시가 넘도록 몇시간을 전화에 대고 회포를 풀었다.
곧 날짜를 잡아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다.
정인순아, 나와 이름이 두자나 같은데, 다른 친구들이 혼동할까?
1월 동창회때 보니 연옥이 말대로 진짜 예뻐져서 몰라보겠더라
옥규야, 새학기라 바쁜데 빈수업시간을 이용해 댓글도 달고 기특하다
너는 행동이 민첩해 잘 할거야
아버지의 마지막 삶의 시간에 노래를 불러 드렸다니 마음이 찡하다.
경래야, 바쁘게 잘 지내지? 이제는 노련한 BUSINESS WOMAN 의 모습이 보여진다
춘선아, 동그란 눈의 예쁜아이라고만 생각되었는데, 암울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었다니
우리 모두는 나름대로 각자 삶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인 것을 새삼 느낀다.
문제는 그 고난을 지혜롭게 여과시켜 아름다운 생의 열매로 키우느냐에 달려있겠지
그런 사람은 삶의 깊이가 있고 성숙해 가는 거 같애.
춘선인 그렇게 살아온 것 같구나.
삶의 긍정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니 기쁘고 축하한다.
사실 지금 우리의 나이는 과거 어떻게 살아왔든 새롭게 새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5.03.08 12:01:18 (*.82.74.39)
인순아,
내가 지난 1월 모임에 못간게 정말 억울하다.
예뻐진 네 모습을 보고 팔짝 뛰며 반가워했어야 하는데 말야.
홈커밍 때는 더 예쁘게 있는 멋 없는 멋 다 부리고 올거지?
정말 보고싶다.
인옥아,
너도 1월에 왔었구나...
나도 가서 볼걸...
홈커밍 때도 꼭 올거지?
네가 나를 동그란 눈의 예쁜 아이라고 기억을 해 주니 내가 진짜 예쁜아이가 된거 같아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너는 사람의 마음을 격려하고 위로하여 세우는 탁월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구나.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너로 인하여 많이 위로받고 행복하겠다. 그치?
경래야,
너는 어떤 사업을 하니?
사진으로 본 네 모습이 무척 당당해서 좋았어.
사업초보인 내게 아주 좋은 스승이 되어 주려므나.
나는 모르는 것을 하나씩 배워가며 일하는 재미에 하루가 참으로 잘 간단다.
아주 작은 자투리 시간만 나도 이렇게 친구들 만나러 들어 와 글을 읽고 올리고...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요즘은 정말 정신없이 바쁘다.
혜숙아,
캐나다 생활 좋아?
우리 중학교 때 연극했던거 생각나니?
우리 반은 <사육신>인가 했는데 내가 성삼문을 하고 미영이가 신숙주 부인 윤씨를 했지.
너는 내 기억에 수양대군을 했었고.. 그치?
교내 연극 경연대회였는데 여자배역은 달랑 미영이 하나고 다 남자역을 했어.
우리는 그 슬픈 사극을 무지 웃긴 코미디로 만들어 냈지.
수양대군 앞에 끌려 온 사육신들이
끝끝내 자신들의 절개를 굽히지 않고 저항을 하는 장면이었어.
크라이막스에서 성삼문이 가슴에 품고 있던 칼을 들어 장렬하게 자결을 하게 되어 있었거든.
내가 (성삼문) 칼을 치켜 들고 죽으려고 보니
아 글쎄 이 칼이 내허리 춤에서 그만 기역자로 꺾여버린거야.
낫도 아닌 것이 칼도 아닌것이...
도저히 그 칼로 죽을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터졌어.
그래서 대사도 제대로 못하고 우물쭈물 하며 그 칼로 어찌 죽나 고민하다
대강 죽은 척 하고 쓰러져 있는데
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대사에도 없는 걸 외치는 거야.
"잘 죽었다! 푸하하하하~~~~"라고..
그 바람에 죽었던 나도 온 몸이 흔들리게 웄었고
미처 죽지 못한 다른 사육신들도
관객들도 다 혼이 빠지도록 웃었어.
근데 유독 너만 웃지 않은거 있지.
얼마나 진지하게 연기를 하던지....
그런 네 모습에 우린 더더욱 자지러졌고 말야.
내 기억이 맞았는지 모르겠다.
그 때 신숙주 역은 명순이가 했던거 같은데 다른 역은 생각이 안난다.
우리 언제 다시만나서 연극 한번 또 할 수 있을까?
이번엔 칼도 구부러뜨리지 않고 웃지도 않고 아주 잘할 수 있을까?
옥규야,
너도 윤지경전 했던거 생각나니?
그러고 보니 참 재미있는 기억이 많네...
연옥아,
홈피 덕에 내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많이찾았어.
네가 열심히 우리 홈피를 지키는 덕분이다.
빨리 홈커밍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 만나면 무지무지 할 말이 많을거야 그치?
내가 지난 1월 모임에 못간게 정말 억울하다.
예뻐진 네 모습을 보고 팔짝 뛰며 반가워했어야 하는데 말야.
홈커밍 때는 더 예쁘게 있는 멋 없는 멋 다 부리고 올거지?
정말 보고싶다.
인옥아,
너도 1월에 왔었구나...
나도 가서 볼걸...
홈커밍 때도 꼭 올거지?
네가 나를 동그란 눈의 예쁜 아이라고 기억을 해 주니 내가 진짜 예쁜아이가 된거 같아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너는 사람의 마음을 격려하고 위로하여 세우는 탁월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구나.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너로 인하여 많이 위로받고 행복하겠다. 그치?
경래야,
너는 어떤 사업을 하니?
사진으로 본 네 모습이 무척 당당해서 좋았어.
사업초보인 내게 아주 좋은 스승이 되어 주려므나.
나는 모르는 것을 하나씩 배워가며 일하는 재미에 하루가 참으로 잘 간단다.
아주 작은 자투리 시간만 나도 이렇게 친구들 만나러 들어 와 글을 읽고 올리고...
그렇지 않아도 바쁜데 요즘은 정말 정신없이 바쁘다.
혜숙아,
캐나다 생활 좋아?
우리 중학교 때 연극했던거 생각나니?
우리 반은 <사육신>인가 했는데 내가 성삼문을 하고 미영이가 신숙주 부인 윤씨를 했지.
너는 내 기억에 수양대군을 했었고.. 그치?
교내 연극 경연대회였는데 여자배역은 달랑 미영이 하나고 다 남자역을 했어.
우리는 그 슬픈 사극을 무지 웃긴 코미디로 만들어 냈지.
수양대군 앞에 끌려 온 사육신들이
끝끝내 자신들의 절개를 굽히지 않고 저항을 하는 장면이었어.
크라이막스에서 성삼문이 가슴에 품고 있던 칼을 들어 장렬하게 자결을 하게 되어 있었거든.
내가 (성삼문) 칼을 치켜 들고 죽으려고 보니
아 글쎄 이 칼이 내허리 춤에서 그만 기역자로 꺾여버린거야.
낫도 아닌 것이 칼도 아닌것이...
도저히 그 칼로 죽을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터졌어.
그래서 대사도 제대로 못하고 우물쭈물 하며 그 칼로 어찌 죽나 고민하다
대강 죽은 척 하고 쓰러져 있는데
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대사에도 없는 걸 외치는 거야.
"잘 죽었다! 푸하하하하~~~~"라고..
그 바람에 죽었던 나도 온 몸이 흔들리게 웄었고
미처 죽지 못한 다른 사육신들도
관객들도 다 혼이 빠지도록 웃었어.
근데 유독 너만 웃지 않은거 있지.
얼마나 진지하게 연기를 하던지....
그런 네 모습에 우린 더더욱 자지러졌고 말야.
내 기억이 맞았는지 모르겠다.
그 때 신숙주 역은 명순이가 했던거 같은데 다른 역은 생각이 안난다.
우리 언제 다시만나서 연극 한번 또 할 수 있을까?
이번엔 칼도 구부러뜨리지 않고 웃지도 않고 아주 잘할 수 있을까?
옥규야,
너도 윤지경전 했던거 생각나니?
그러고 보니 참 재미있는 기억이 많네...
연옥아,
홈피 덕에 내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많이찾았어.
네가 열심히 우리 홈피를 지키는 덕분이다.
빨리 홈커밍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 만나면 무지무지 할 말이 많을거야 그치?
2005.03.08 12:52:27 (*.229.146.245)
인순아, 그러면 6년을 박촌에서 버스로 통학한거니? 대단하다!
여기오기 전에 계산동에 살았어서 나도 박촌은 낯설지 않아.
네 글과 옥규 글을 읽으니 김인순이 궁금해져서 찾아봤어. 나도 기억이 난다. 늘 웃고 차분했던 애지. 박촌에서 신천리라니... 너희 둘은 제대로 청소년기를 보낸거 같다.
인옥이도 왔었네. 미국생활도 바쁜 거 같던데, 건강 조심해.
춘선아. 네 기억력에 놀랐다. 내가 그랬니? 정말 전혀 기억이 안난다.
그런데 그 연극 얘기를 읽다가 잊혀졌던 기억 하나가 떠 올랐어.
그 때 연극 의상으로 어느 선배의 옷을 빌려 입었었는데 왜 그랬는지 연극하다가 옷을 틑어뜨린 채로 그냥 돌려줬었어. 귀한 옷 같았는데...그 게 한동안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여기오기 전에 계산동에 살았어서 나도 박촌은 낯설지 않아.
네 글과 옥규 글을 읽으니 김인순이 궁금해져서 찾아봤어. 나도 기억이 난다. 늘 웃고 차분했던 애지. 박촌에서 신천리라니... 너희 둘은 제대로 청소년기를 보낸거 같다.
인옥이도 왔었네. 미국생활도 바쁜 거 같던데, 건강 조심해.
춘선아. 네 기억력에 놀랐다. 내가 그랬니? 정말 전혀 기억이 안난다.
그런데 그 연극 얘기를 읽다가 잊혀졌던 기억 하나가 떠 올랐어.
그 때 연극 의상으로 어느 선배의 옷을 빌려 입었었는데 왜 그랬는지 연극하다가 옷을 틑어뜨린 채로 그냥 돌려줬었어. 귀한 옷 같았는데...그 게 한동안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2005.03.10 15:22:54 (*.251.223.97)
내 이름 확실이 알려진 것 같네 ㅎㅎ
덧글에 또 덧글
계속 찾아주는 친구들이 새삼 고마운 것은
모두가 연옥이 덕분이겠지 ?
연옥아 너무너무 고맙다
학년초 매년 겪는 연중행사인데...
올해는 유난히 더 바빠서
한동안 사무실 에선 홈피 들어오기 힘들었었는데
오늘 찌뿌둥한 날씨가
나를 이 즐거운 곳으로 안내 해 주더라
뭐니뭐니해도
한생에서 여고 시절이 가장 즐거웠던 나날이 아니었을까...
기억해 주는 친구들
그리고 앨범을 뒤져서 기억해 내는 친구들
모두들 고맙다
옥규야! 김인순에게 이야기 해서 전화 하도록 할께 ...
덧글에 또 덧글
계속 찾아주는 친구들이 새삼 고마운 것은
모두가 연옥이 덕분이겠지 ?
연옥아 너무너무 고맙다
학년초 매년 겪는 연중행사인데...
올해는 유난히 더 바빠서
한동안 사무실 에선 홈피 들어오기 힘들었었는데
오늘 찌뿌둥한 날씨가
나를 이 즐거운 곳으로 안내 해 주더라
뭐니뭐니해도
한생에서 여고 시절이 가장 즐거웠던 나날이 아니었을까...
기억해 주는 친구들
그리고 앨범을 뒤져서 기억해 내는 친구들
모두들 고맙다
옥규야! 김인순에게 이야기 해서 전화 하도록 할께 ...
우리가 딸이 셋이었는데 아버지는 자기 맘대로 부르셨어. 그래도 아버지 어조로 보아 누구 부르는지 알고 다 알아서 대답했지. 우습지? 그런데 나중에 80세가 넘으시니까 진짜 구분을 못하시더라. 심하진 않았지만 약간 치매끼가 있으셨는데 마치 -난 이제 기억할 건 다했고 이젠 쉬고 싶다- 하는 느낌을 받았어. 여동생인 고모 남편이 왔는데도 우아한 미소만 지을실 뿐 대화를 하지 못하실 때 아-좋은 기억으로만 있는 관계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 아버지가 숨을 놓으시기 일주일간 의식이 없으셨는데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돌보아 드리기로 했거든. 의식없는 아버지를 위해 무엇을 해드릴까 생각하다가 아버지가 술 드시면 늘 부르시던 노래를 해드리기로 했단다. 아버지 침대 옆에 가까이 앉아 -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 아무튼 쉴새없이 불렀거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부르다가 나도 놀랬단다. 이상하더라. 그 뽕짝이라는 노래는 거의가 비슷해서 한번 끝나도 다른 노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더라구. 아버지가 눈꺼풀을 움직이셨어. 난 아버지께 좋은 선물을 해드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손을 따뜻이 잡아 드렸지.
내가 학교 생활을 힘들게 했던 큰 이유도 준비물을 잊어버린다는 거였는데, 나 우짜지? 진짜 걱정돼. 춘선이처럼 홈에 있는 치매 예방 오락을 해야 하나? 그건 싫은데..........
잘 지내렴. 오늘도 좋은 하루.
식당 가는 길에 있는 산수유꽃이 곧 모습을 보일 것 같아 그 나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무가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