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마주 앉아 따뜻한 커피가 든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고 밖을 바라본다. 소나기가 주룩주룩 내리니 운치가 있다. 오랜만에 일없이 편안히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것 같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스타벅스 커피점 안엔 손님들이 테이블마다 가득히 앉아 이야기들을 소곤소곤 나누고 있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집에 가서 게나 사다 쪄 먹어요.”
“너무 오랫동안 걷지 않았어.  이일 저일 핑게대고 말야. 산이 부르고 있잖아. 한번 가 보자구.”  

1번도로를 타고 주택가를 지나 산길에 오르니 비가 그치고 환히 트인 하늘에 바다가 보인다.   멀리 길게 뻗은 Stinson 비치에 밀려드는 하얀 파도 줄무늬가 시원하니 아름답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Steep Ravine Trail을 따라 산을 오른다.  비를 맞은 나무와 풀들은 생기가 돌고 밝은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다.  막 세수하고 나온 새색시 얼굴 마냥.  

등산로와 나란히 흐르는 옆의 Webb Creek에 물이 불어 괄괄 웅장한 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가는 남편은 부러져 길을 막고 있는 잔가지를 치우기도 하고 길 위에 있는 바나나 슬러그가 밟힐까봐 집어 옮겨 놓아준다.  레드우드와 잡목들이 우거져 하늘을 덮고 있다.  멀리 건너편엔 나뭇잎이 반짝 반짝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몸도 다리도 무겁다.  산 정상을 향해 허리를 구부리고 몸을 굽혀 한발 한발 내딛는다.  냇물을 가로지르는 나무로 만든 다리가 곳곳에 있어 보기도 좋고 편하다.  쓰러진 레드우드가 여기저기 길을 막고 있어 그 밑으로 몸을 구부려 앉듯 지나간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듯 하군.”
바위사이로 냇물은 수없이 폭포를 만들며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 가고 있다. 골진 곳마다 빗물이 흘러 내려서 냇물을 만든다.  폭포 옆에 젖은 나무 사다리가 가파르게 걸려 있다. 벌벌 떨며 두손 두발로 하나 하나 딛고 올라 간다.   산안개가  숲속에 자욱하니 신비롭고 아름답다.  

“여보, 교회 건축문제로 교인들끼리 의견이 달라 불화가 생기는 것 아녜요?”
“아냐, 우리 교회는 그럴 일 없어. 왜냐하면, 왜냐하면 말야,  우리 교회분들은 모두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그래.   또,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고 남의 일을 내 일처럼 돌아보는 예수님의 마음을 지녔거든. 겸손한 마음을. 우리 교인들은 그런 분들 이잖아.  
교회의 일치와 화목을 위해서, 크리스천인 우리가 이제 공통된 목적과 관심사가 있으면 더욱 하나가 되고 평화로울거야.  
이번에 내 고향 만리포에 원유 유출 사고 난 것 알잖아.  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자원봉사하여, 얼마나 멋져!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모두 하나가 되어 바닷가의 기름 때를 씻어내고 있잖아.  우리는 그런 사람들 이잖아.   사고는 안타깝지만 그 시간 한국은 하나가 된거야.  우리 교회도 그럴거야.”  

"우리 인일여고 친구들이 태안 원북면으로 자원봉사 간대요. 추울텐데..."
"고마운 일이야. 배도 없고 양식장도 없이 맨손으로 굴 따고 고동이랑 조개 줍고, 파래, 김, 미역에 해삼, 전복, 게, 낙지 잡고 갯바위에서  낚시로 고기잡아 먹으며 가난하게 살던 촌사람들은 보상 받기도 힘들텐데...  인천에서 예쁜 분들이 오셔서 도와 주시니 얼마나 힘이 되고 고맙겠어."  

뒤에서 한쌍의 젊은 남녀가 뒤따라 올라온다.  
“이런 날씨에 우리 모두 산에 미친 사람들이군요.”
“해피 뉴 이어!”  
웃으며 인사 한마디하고 앞서 올라간다.  
사진 찍기도 어렵게 어둡던 산위가 훤하게 밝아온다.  거의 다 올라 왔나보다.  

“오늘 등산하면서 깨달았어요.  높은 산에 오르려면 바늘귀 같은 좁은 곳은 낙타처럼 다리를 굽히고 고개숙여 지나가고,  몸을 굽혀 한발 한발 딛으며 걷는다. 겸손해야  된다는 것을요.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흘러가 넓은 바다에 이르는 시냇물에게서도요.”  
“맞아,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신거야. 겸손하라고.  그러면 평안하다고…”  





                                                                                           1월 6일 20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