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부는 이미 과거 속의 사람이 되었다..
누나가 없는 제부는 나에게 누님누님 그렇게 불렀다.

제부는 제물포 고등학교 시험 마지막 세대다.
제고를 앞에서 몇 등으로 입학해 뒤에서 몇 등으로 졸업한
다양한 삶을 경험한 제부였다.

제부는 30대 전성기 때 모교인 제물포 고등학교에 재직했다.
그는 후배이자 제자들을 뜨겁게 사랑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고교시절 방황했던 경험을 되살려 제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제부는 어떤 개그맨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춤 노래 개그 등이 뛰어났다.
그의 밑에서 김구라 지상렬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동기 중 하나가 나올까 말가 하는 개그맨이  김구라 동기에서 셋이나 나왔다고 한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시사하는 부분이다.

제부는 막내 누이동생이 간난 아기일 때 아버지를 여웠다.
이십 대에 혼자된 어머니가 장사를 해 네 남매를 키웠다.
그런 어머니께 제부는 굉장한 효자였다.
제부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밤새 병원에서 간병을 하고 다음날 출근을 하는 생활을 꽤 여러날 했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제부가 발병을 했다.
평소 학교 일에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생겼던 병이
피로로 인해 그때 나타난 것이라고 우리는 추측할 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외아들인 제부는 빈소를 지키지 못하고
병상에 있는 제부의 병실을 내가 지키고 있었다.

지난 목요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발병을 하여
제부는 그대로 세상을 떴다.

제부는 부모가 실향민이라 친척들이 없어 사람을 무척 좋아했다.
우리는 친척이 많아 사촌간에 별로 왕래도 없는데
어쩌다 만난 우리 사촌들과도 우리 보다 더 친하게 지내곤 했다.
빈소에는 제부를 좋아했던 사람들과 제부를 좋아하던 제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누구나 좋아했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았던 제부,
사람에게는 평생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양은 한정이 되어 있어서
그 양이 다 차서 더 이상 주지 못할 때 이렇게 떠나는가 보다.
짧은 생을 뜨겁고 굵직하게 살았던 사람이었다.

망향의 동산 납골당에 제부의 뼈를 두고 나오는데 웬 비가 그리오는지,
제부를 좋아했던 사람들의 슬픔처럼 하늘은 천둥번개까지 치며 울었다.
제부를 추억하니 평소 못해준 것만 생각나 더욱 슬펐다.

상주는 제부와 모습 뿐 아니라 재능까지 꼭 닮은 중학교 2학년 아들이었다.
아버지의 기억이 없다는 제부는 아들과 친구처럼 잘 놀아,
어린 상주가 다정했던 아버지 그리워 어찌 살까 생각하니
그것이 안타까워 상가에 온 사람 모두는 울었다.

아직도 지난 몇일의 일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지난 주 까지 작전여고에 근무했던 제부 <정치수선생님>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