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후배님, 친구들 모두 모두 손에 손잡고 둥글게 둥글게 둘러 서서  ‘나의 살던 고향 ’ 을 한목소리로 부른다.  
조명은 꺼지고 음악도 그쳤다.   내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덕담도 나눈다.  
안녕, 안녕히 가세요.  즐거웠어요.  건강하게 또 만나요.

우리 친구들은 2층 한방에 모였다.  드레스를 벗고 새구두도 벗고  꽉 조였던 속옷도 풀고, 긴장된 마음도 풀고 앉아있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자세로…     경수가 말한다.  “신데렐라 같애.  12시 땡치면 옛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오늘 즐거웠던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며 남편 이야기들을 한다.

군살없이 늘씬한 몸매로 골프만 즐기는 친구가 따발총 쏘아대듯 명랑하게 남편이야기를 한다.   대학 때는 모두가 알아주는, 글래머만 좋아하여 두 글래머들과 사귀었는데 회사에서 자기를 만나 폭 빠졌다고…  결혼 후에 말하길 “ 속았네, 이렇게까지 인줄은 몰랐지.”  

한 때 좋아하던 사람과, 결혼까지 하기는 힘든가보다.  첫사랑은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했지.    
남편도 국민학교 3학년 때 회장하던 예쁜 여학생을 살짝 이야기하곤 한다.  이성에 대한 사랑을 눈뜨게해 주었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만나볼 수 있을까 조마조마 했었다고…  
오늘도 8회, 9회 언니들이 안보인다고 두번씩이나 말하는걸 보면 은근히 소식이라도 기대했었나보다.

나도 옛날 생각이 난다.
내가 연애한다는 소식을 듣고 눈오는 늦은 겨울 밤 교회친구가 전화가 왔다.  다방에서 한번 만나잰다.  비장한 목소리가 가슴을 적신다.  오빠는 다방 밖에서 기다리고,  교회친구와  마주 앉아 커피잔을 앞에 놓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다.    내가 이렇게 빨리 결혼할꺼라 생각 못했다고.   조금 더 크면 프로포즈 하려 했다고.  어릴 때부터 한 교회에서 지내며 마음에 사랑을 꼭꼭 숨기고 있었노라고…   교회에서 산으로 등산갈 때나,  강으로 소풍갈 때나, 바닷가 캠핑에서도 남보다는 특히 더 잘 해 주었었지.    진작 말이나 해 볼것이지…  그런데 왜 눈물은 이렇게 나오지…  

눈물이 나온다.  뜨거운 눈물이 나온다.  그러나 어쩔거나 나는 이미 내 마음이 오빠에게 사로 잡혀있는데…  
부디 행복해야한다는 말을 들으며 마지막 악수를 하고 먼저 지하다방을 나왔다.  
눈물을 닦으며 나오는 나를 오빠는 아주 말없이 내 어깨를 감싸준다.
훗훗, 남들은 인연이 아니었다고 하지.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한 신랑은 따로 있는걸.

둘째가 내 평상복을 들고 왔다.  친구들은 금방 알아보고 예비신부와 함께 인사시킨다.  좋아 어쩔줄 몰라 웃는 저 넓적한 얼굴좀 봐. 친구들이 고맙다.  
첫째는 요새 혼자다.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댄다. 교회에서 만나 오랫동안 같이 지냈는데…  놓치고 싶지 않은 순수하고 착한,  예쁜 앤데…  
겉으로는 괜찮다고 내색않지만 속으론 어디 그럴까.

새해 세배 때 둘째에겐 웃으며 결혼 축하한다며 덕담을 건네고,  자기에겐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고 투덜거렸었다. 괜히 식구들 모두 첫째 눈치만 보고있다.  힘내라, 첫째야.  하나님께서 예비한 신부가 지금 어디에선가 너를 만날 때까지 예쁘게 예쁘게 크고 있을거야.  
세상 살아가면서 만날 사람은 꼭 만나게 해달라고 늘 기도한단다.

흉허물 없이 친구들은 호호 깔깔 웃고 있다.  신랑이 어쨌대나, 흉도 보고 자랑도 해 가며…  
그래 어디서 이렇게 겉옷도 벗어 버리고 편안하게 앉아 남편 흉도 보고 자식 걱정도 하며 떠들수 있겠니?  

어린시절 장미동산에서 함께 공부하며 함께 뛰놀고 함께 꿈을 키우며 티없이 자란 우리가 아니니?  
밤은 깊어가고 집에는 가야하는데 살아온 이야기에 웃음은 끝이 없다.  그리웠던 친구와 헤어질 수 없어 아쉬움만 마음에 가득하다.  

친구야,  사랑하는 친구야.  예쁜 친구야.  
아름다웠어,  오늘밤 우리 정말 아름다웠어.    




                                                                                                               1월 27일 200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