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이면  세자매는 어김없이 찜질방에 간다.

몇달 전부터 그러기로 약속을 한 이후 두어번 집안일로 빼먹은 것 외에는 거의 빠뜨리지 않고 찜질방을 간다.

대개는 첫째가 찜질방에서 먹을 음료며 과일을 준비해 오고, 첫째가 전철역에서 픽업을 해 온 둘째를 태우고 집 앞으로 오면

셋째는 난짝 그 차에 올라 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은 송도부근의 찜질방을 가보기로 했다.

자리를 깔고, 우선 냉커피 한잔씩 하고, 각기 특징있는 이름의 방을 10분, 15분 들어갔다 나왔다 땀을 흘리다가

제일 맘에 드는(딱 한사람 밖에 없어서) 황토로 온통 발라놓은 방에 들어갔다. 쑥과 한약냄새가 은은히 퍼진다.


막내: "언니, 아버지 산소에 한번 가봐야지? 금년엔 못가봤잖아?
      
        가려고 하기 전날 이모부 돌아가셔서...."

둘째: "그래, 애들 데리고 더 추워지기 전에 가자. 꽃도 갈아야 하는데..."

첫째: "그래, 날을 잡아보자."

막내: "아~, 아버지 정말 보고싶다."

첫째: "너네들 그거 아니? 아버지가 옛날에 서울역에서....."


<첫째의 기억>


첫째: "언젠지는 잘 모르지만, 너희들이 중,고 다녔을때 였던 것 같아."

        "지팡이를 짚으시고 서울역 쪽에서 반대쪽으로 건너가셔야 하는데 그 거리가 대략난감 이셨다더라.

        차는 수도 없이 왔다갔다 하고, 신호등은 아버지가 반도 건너지 못했을때 빨간불로 바뀔 것 같고."

        "그래서 신호가 서너번 바뀌도록 하염없이 서계셨단다."

        "얼마간을 그러고 계셨다는데, 그때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가 '휘리릭~' 나더니

        눈 앞에 휙휙 지나다니던 차들이 한대 두대 서행하며 서기 시작 했다더라."

        "그리곤 한 교통순경이 아버지 앞으로 뛰어 오더니, '아저씨, 어서 건너세요,'하더란다."

        "그 교통순경이 아버지를 눈여겨 보고 있다가 아버지가 통 움직이지 않으시니까 모든 차를 세워 놓고

        아버지를 에스코트 해서 반대편까지 안전히 모셔 드렸다고 하더라."

막내: "언니, 그 사람 정말 좋은 사람이다."

        어느새 고인 눈물을 땀인양 씻어내며 감동어린 말투로 콧소리를 낸다.

둘째: "얘, 얘, 그때는 차도 별로 안 많았을꺼고, 또....

       그렇게 교통량이 많은 大路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교통체증으로 꽉꽉 길이 막힐텐데...
      
       그 경찰 오바한거 아니야?" - 저 한쪽 귀퉁이에 아까부터 우리 얘기를 듣고 있던 아줌마를 의식했던지
      
       그쪽을 쳐다보며 역시 눈가가 촉촉해 진다. 그 아줌마가 둘째 얘기를 듣고 빙긋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둘째의 마음 막내와 같으리라.

첫째: "그러고 집에 오셔서 엄마에게 그 때의 감동을 말씀하시는 것을 옆에서 들었었던 기억이 나."

둘째: "언니, 그래도 언니는 직접 겪지 않아서 그 심정 모를꺼야. 생각만 해도 아찔해."



<둘째의 기억>


둘째: "대학 2학년때인가? 아버지가 한창 병원에 다니실때야. 난 그 날 일이  지금도 눈에 훤해.

        어떻게 그 일이 나한테 떨어졌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서울대학병원에 아버지가 검사를 받으러 다니시는데

        내가 같이 동행을 했었자너."

        - 무슨 얘기일지 모르지만 목이 마르는지 스트로우를 입에 대고 냉커피를 한모금 빨아 마신다.

  
        "언니, 내가 그때 꽤 멋을 부리고 다녔잖아?"

        "초미니 스커트에 앞코 뾰죽한 하이힐 신고 양쪽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랑 시외버스를 탔는데.

        빈자리는 하나도 없고 서서있는 사람들도 꽤 많았어."

        "우리가 타니까 어떤 남자가 일어서서 아버지에게 앉으시라고 권하는데,

        괜찮다고 옥신각신하다가 - 언니, 그거 있잖아?  아버지는 아닌척하고 지팡이를 뒤로 가리고 서있는거. "

        나는 아버지의 지팡이 두개를 잡고 아버지  옆에 서있었잖아........."


       "깔깔깔깔~" - 갑자기 둘째가 다음 할 얘기가 우스웠는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글쎄, 뒷좌석에 앉은 어떤 남자가 나를 부르더니....ㅋㅋㅋ '아가씨, 여기 앉으세요.' 하잖아.

       내가 지팡이를 짚는 사람인줄 알고.... "

       "언니, 생각해봐, 미니스커트 입고, 닭다리 같은 하이힐 신고 지팡이를 짚겠어?"

       "괜찮다고, 아니라고 해도 이미 그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비집고 와서는 자리에 앉으라는거야. "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그냥 가 앉으라고 눈치를 주셔서

       할 수 없이 지팡이를 짚고 뒤뚱거리며 그 자리에 앉았지. 나도 모르게 뒤뚱거려지더라구."


       "문제는 그 다음이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측은하게 생각하며 쳐다보더라구, 젊은애가 안됐다... 하는 그런거.........."

       "그렇게 한참을 가서  우리가 내릴 때가 된거야."

       "자리를 내 준 사람은 서있고. 그 광경을 처음 부터 본 사람들도 드문드문 앉아 있었는데,

       내가 멀쩡히 걸으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아마 사기당한 느낌이 들꺼야."


      "일어나서 아버지에게 지팡이를 건네드려야 하는데....ㅋㅋ"

      "다시 지팡이를 짚고 뒤뚱거리며 앞으로 가서 아버지를 드리고 내가 먼저 잽싸게 문이 열리자 마자 내려버렸지뭐.

      아버지를 부축하지도 않고."

      저쪽 귀퉁이에 그 아줌마가 조금더  다가 앉아서 소리를 죽여 웃으며 눈을 맞춘다.


막내: -땀을 뻘뻘 흘리며 이젠 大字로 누워서 발을 파닥파닥 구르며 웃더니, 또 다시 눈이 벌개진다.

       "난 몰랐어. 그런 일이 있었는지. 그때 난 뭐하느라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지? "

       "그냥 난 아버지만 생각하면 맨날 고등학교때 일만 생각나서 가슴이 터질꺼 같애."



<막내의 기억>


막내: "내가 전에 처음으로 글로 쓴 얘기야. 맨날 속에 담아 두다가........ 내가 얘기 했었지?"

둘쨰: "그거? 걸스카웃?"

막내: "응." - 경청을 하고 있는 아줌마를 위해 이미 언니들이 알고 있는 얘기를 서비스 차원으로 다시 들려준다.

        "고1때, 각 학교의 스카웃들이 행진을 하는데, 길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는 중간에 아버지도 계셨었어."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고, 곧 아버지인줄 알았으니까.

        얼핏 보니까 아버지 친구도 옆에 계셨었어. 아버지는 그 친구 앞에서 막내를 자랑하고 싶으셨던거지."

        "근데 내가 어쨌는지 알지?'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를 못들은 척 그냥 앞만 보고 행진을 계속 한거야."- 울먹울먹.

       "친구들 앞에서 지팡이 짚은 아버지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거지."

       "모르긴 몰라도 아버지는 속으로 그러셨을꺼야. '아마 쟤가 못들었을꺼야.' 내가 모르는 척 한거 아시면서. 끄윽~끅~"

       "한동안은 아버지 얼굴을 제대로 보질 못했었어."

       "그날 저녁에, 아버지가 행사 잘 했냐고 하시면서, 집 근처로 지나가는 행사를 바빠서 못 보셨다고 하시는거야, 글쎄. ㅠㅠ"

        - 얘기를 듣던 아줌마 얼굴이 측은지심으로 변한다.  


      

첫째: "얘, 얘. 우리 최고로 오래 있었어. 20분을 채 못있었는데, 이번엔 30분이 넘었네?"

둘째: "언니, 언니, 얘는 본전 뽑았어. 땀좀 봐.  머리에서 부터 줄줄 흐르네."

       ..........

      
막내: "이번엔 내가 꼭 아버지 꽃을 챙겨 갈꺼야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