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뭉게구름이 파란 하늘에 둥실둥실 떠있다.
누런 언덕과 푸른 골프장 사이로 길게 뻗은 101을 따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달려간다.
아울렛과 마늘산지 Gilroy 에서 동쪽으로 152번을 타고 시골길로 들어선다.
딸기밭과 채소밭을 지나면 포도밭이 나오고 완만한 언덕에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있다.  
아직 포도잎은 푸른데 알알이 꽉 박힌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려 가을의 풍요로움을 더하고 있다.

내가 올갠을 치면 마음이 너무너무 편안하다고 피아노 반주자는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 젊은 지휘자는 좋다고 허깅을 하며 귀엽게 호들갑을 떤다.  목소리로 찬양하는 것도 좋지만 반주가 더욱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일년내내 많은 과일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Casa de Fruta 에서 르네상스 페어가 열리고 있다.  
손에 너도나도 잔을 들고 16세기 중세풍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큰소리로 떠들며 흥을 돋우고 있다.  장이 서있는 시내상가 사이사이에 Stage 가 있어 웃기는 연극도 하고 춤과 노래도하며 관객들과 어울려 즐겁게 재주를 뽐내고 있다.  

엘리자벳 여왕 앞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예나제나 무표정한 얼굴로 열심히 피리를 불고 있다.
하프타는 마음좋게 생긴 하얀 구레나룻의 아저씨는 신선같다. 그 하프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어느새 안개낀  잔잔한 호숫가 정자에 앉아 꿈꾸고 있는듯하다.  며칠전  신문에선 의식불명 환자에게  하프연주를 들려주면 반응이 있고 다른 사람들, 간호사들에게도 마음에 도움이 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만담을 엮어가며 만돌린과 바이올린, 어코디언을 흥겹게 연주하는 어저씨도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다.  허리를 돌리며 벨리댄스를 추는 여인은 눈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 바라보며 관객들의 혼을 빼고 있다.  차례를 기다리는 댄서도, 반주하는 이들도 여인과 함께 춤추듯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바느질하는 쳐녀들은 모여앉아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며 노래하고,  가슴 큰 아낙들은 길가는 동네 아저씨를 불러 희롱하듯 웃기고 있다.  봉고같은 타악기와 현악기에 맞춰 탭댄스를 추는 처녀들과  총각들,  술주정하듯 노래하는 걸인들,  여왕을 모시고 행진하는 악단들 모두가 흥겹게 노래하고 있다.  가끔씩 들리는 총소리도, 함성과 큰 박수소리도 모두 한데 어울려 신나는 축제분위기다.  

쟁반같이 큰 비눗방울 놀이하는 아이들과 팔뚝만한 구운 칠면조 다리를 한입 뜯으며 걷는 소년,  치즈와 마스타드, 소금을 뿌린 따끈따끈하게 찐 Pretzel 을 나눠 먹는 연인들,  아이스크림과 생맥주잔을 들고 가는 이들 모두가 싱글벙글 기분들이 마냥 좋다.  

시원한 콜라를 마시며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아저씨 앞에 선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나에게 윙크하며 그 아저씨는 동네가 떠나가듯 신나게 연주하고, 옆의 북치는 여인네는 샘내듯 가운데 끼어들며 박자를 맞추고 있다.    

언젠가 들어본듯한 멜로디는 옛추억에 잠기게 한다.  어디서 이 노래를 들어봤지?  
여행을 하다보면 많은 노래를 듣게 되는데 특별히 그 때 그 분위기에 맞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그 노래만 들으면 그 때의 추억이, 아름다웠던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으면 송도 유원지 요술거울 앞에 서서 둘이 웃던 생각과 뱃놀이 하던 생각이 나고…   모두 우리둘을 위하여 존재하는듯 행복했지.

치매로 부부도 자식도 못알아보며 오늘 내일 하시는 분들도 찬송가와 유행가를 들으면 함께 흥얼 거리며 부르신다했다.  보통 삼사십대 때 부르던 노래들이란다.  선교 다녀오신 분은 한국인 천명이 사는 캄보디아에도 가라오케 노래방이 있다고 하셨던가?   배제학당을 설립한 아펜셀러 선교사는 교가에서 까지 “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라고 말씀하시고…
아, 우리 동창회에서도 지금 합창대회가  있어 기별마다 비밀리에 맹렬히 연습하고 있다했지!  

어제는 약혼 30주년기념일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둘이서 호젓히 밤을 즐겼다.  그 옛날 생각을 하며.
유행가 하나 모르고 찬송가와 가곡 밖에 모르던 그 이는 양가친척과 헤어져 떠난  산장에서 저녁에 조용히 노래했었지.  청아한 목소리로.  
“ 떡갈나무 숲속에 졸졸졸 흐르는 …  나혼자 마시곤 아무도 모르라고… 도로 덮고 내려오는 이 기쁨이여~”  

동화속 그림같이 아름다운 추억도 언젠가 희미해지겠지만.  
나만을 사랑하던 그 따뜻한 마음, 그 노래는 내 가슴속에 그 때도 지금도 살아 있고 영원히 살아있어 나를 가슴뛰게 하겠지.  




                                                                          
                                                                                                                 9월 28일 200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