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씨다.  화창한  날씨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집을 나서니 공원 앞 길가 오동나무 두 그루에 보라빛 꽃이 만발하였다.  

은은한 향기가  몸속 깊숙히 스며든다. 그래, 내가 처음 오동나무꽃을 안 것은 제고 교정에서였다.  
고개도 제대로  못들고 땅만 보며 테니스장으로 걸어갈 때  아카시아꽃 향기와는  다른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살짝 들고 둘러 보았다.  
운동장 건너편 철봉대가 있고 옆의 나무에 보라색 꽃이 피어 있었다. 그 때 오동나무꽃과 그 향기를 비로소 알았다.  
웃옷을 벗고 농구하던 학생들을 보며 가슴 뛰고 얼굴이 발개지던 인천여중 시절 생각에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오늘은 혜경이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다.  언제나 먼저 전화주면서 재촉하지 않고 여유있게 약속을 해서 참 고맙다.  만날 때마다 다른 좋은 식당을 알아 골고루 맛도 보여주고 구경거리도 보여준다.  
지난번엔 딤섬에서 맛있는 만두들을 먹었는데 오늘은 싱가폴 말레이지아 식당이다.  
LA 다녀온 혜경이는 약간 얼굴에 살이 붙어 보기에 좋다.  파인애플 속을 파고 요리를 담고 빨간 우산을 꽂은 모양이 하와이 비치에 앉은 기분이다.  

LA 에서 성매 만난 이야기며 이민 변호사인 오빠 만난 이야기, UCLA 대학 친구 만난 이야기며 처음 미국와 도움 받은 분들 찾아 인사한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들려준다.  처음 미국와 고생한 이야기를 서로 나눌 때면 우리는 하나가 된다.   오늘도 잽싸게 혜경이가 점심값을 냈다.  왜그런지 혜경이가 점심이나 저녁값을 내도 마음이 편안하다. 남편도 그런가 보다.  
만날 때마다  다른 식당에서 맛을 즐기고, 볼거리를 찾아 소개도 해주는 혜경이는 나에게 언니같다.  아마 그래서 대접 받고도 항상 마음이 편안한가 보다.  

처음 혜경이를 만났을 때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 네 남편, 내가 ‘오빠’ 라고 불러도 되니?  옛날 오빠 친구들이 우리집에 잘 놀러와서 내가  오빠친구들께 ‘오빠, 오빠’ 했거든.”  
“ 안돼.”
그 때 혜경이는 놀란 얼굴에 무안한 표정이었다.    
아마 제고나온 자기 오빠와 친구니까  친밀한 마음에 그랬나본데, 난 딱 잡아 끊어 말했으니….    
이 말레이지아 음식들은 모두 단맛이 많은 것 같다.  

이제 스탠포드대학 미술 박물관으로 갔다.  
굵은 Palm Tree가 늘어 서 있는 대학입구는 언제봐도 웬지 마음이 든든하다.  
미술 박물관 밖에는 로댕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단테 ‘신곡’에 나오는 큰 지옥문이 있고  문 위에는 조그만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왜 지옥문 위에 ‘ 생각하는 사람’ 이 있을까?  
세상에 살다가 지옥문 앞에 와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야될까?    
오직 한번뿐인 삶이라면…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한 여인은 그랬다지?   진정으로 삶을 살기 전에 죽지말고  Live, Love, Laugh, 그리고 Learn !  

실내에 소장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은 한가운데에서 열심히 생각하고 있고, 그 옆에는 뜨겁게 사랑하는 남녀가 키스를 하고 있다.   남편은 그 조각품을 뱅글뱅글 돌며 무언가 배우고자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떤 여인은 살며시 웃고있다.  

혜경아, 우리 자주 만나자. 편안하게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웃고 살자.  
여고시절, 교실에서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나고 내일 만날 친구였던 것처럼, 이제 이곳 실리콘 벨리에서도 그렇게 만나 이야기하고 나누며 살자.
인일홈피에서도 만나고, LA도 같이 가고, 친구들도 같이 만나며  그렇게 다정하게 살자.  
혜경아, 우리 내일 만나 짜장면 같이 먹을래?  




                                                                                              6월 16일 200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