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빛 잔디 위에 살구색 블라우스를 입은 성희가 밝으레한 얼굴로 서 있다가  손을 흔들며 반긴다.  
달라스의 5월 하늘엔 구름이 끼어 덥지않아 잔치를 벌이고 손님을 맞는 손길들에 더욱 기쁨을 주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예배라니!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지 모른다.  
옆에  앉은 성희와 재순이, 아들과 나란히 앉은 병옥이도 경건한 모습으로 그렇게 앉아있다.

광고시간에 시원하게 몸집 크신 목사님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 가정을 위하여 조그만 선물가방을 들고 나오셨다.
머리 희끗희끗한  아버지와  자그마한 몸매의 엄마, 그리고 두 학생이 나온다.  빨간 티셔츠를 입은 두아들은 조금 전에  해설이 나오는 음악에 따라 연기한 무언극의 두 주인공이다.  
한 아들은 십자가를 지고 가며 조롱받던 예수님, 하나는 지쳐 쓰러진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메고 가던 구레네 시몬.  박사이신 아버지는 이곳서 예수 믿고 세례 받아  천국을 맛보며 사시다가 한국에서 부름을 받고 일하기 위해 떠나신단다.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를 시작하신 목사님은 목이 메어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기도를 잇지 못하신다.  
얼마나 한 생명 한 생명을 사랑하시는 눈물 많으신 목사님이신지, 얼마나 그들과 사랑을 나누셨는지 생각하니, 나의 두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어온다.  

예배 후 우린 서로 부둥켜 앉고 반가와했다.
달라스에서 영화의 한 장면같이 그리던 친구들을 만나다니…  
“어머, 넌 하나도 안 변하고 모습이 그대로다. 지나가다가도 금방 알아보겠다.”

어제 점심은 새콤달콤한 국물이 맛있는 냉면이었는데 오늘은 매콤한 비빔밥이다.    
병옥이 아들은 조용하게 앉아 30년만에  만나 나누는 엄마 친구들 이야기 들으며 살짝 살짝 웃고 있다.  대학 졸업하고 회계사 일을 하는데 24살 얼굴이 깨끗하고 맑다.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음식도 좋아하나보다. 엄마가 한국음식을 맛있게 잘 해 줄테니까…  

성희가 미리 답사한 달라스 수목원은 예쁜 꽃길을 따라 산책하기 좋게 꾸며져 있고 길 옆엔 편하게  Picnic을 즐길 수 있는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길가 꽃이 진 벚나무에는 조그만 버찌가  파랗게 열려있다. 나뭇가지에는 새가 날고 다람쥐는 눈망울을 열심히 굴리며 빨간 꽃잎을 먹고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걸었다. 성희는 마냥 즐겁고, 병옥이 아들은 엄마 뒤에서 앞에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다.  재순이는 흰가방을 메고 앳된 목소리로 예쁘게 예쁘게 말하며 걷고있다.  
피칸 호두나무 작은 숲을 지나니 백일홍나무가 양 옆으로 줄지어 서 있고 맨질맨질한 가지가 휘어져 서 있는 길이 시원하니 보기에 좋다.  
동굴처럼 아치를 이룬 아름다운 길 끝엔 분수가 시원하게 물을 뿜고있다.  

“ 예쁘게 서서 웃으세요. 하나, 둘, ….”
“셋은 안 하세요?”   “ 예, 그러면 다시요. 하나, 둘, …”   “어, 또 ….”  
어물쩡한 사진사를 보면서 우리는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다.  
꼬마가 분수에서 물장난하다 우리에게 밀려 엄마 아빠를 따라 뛰어간다.  

길가에 낮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단감나무에는 단감이 다닥다닥 파랗게 매달려 익어가고 있다.
꽃길을 따라 운행되는 Tram에는 나이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타고 앉아 예쁜 꽃들을 보며 지나가시다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신다.  
재순이가  좋아하는 넝쿨꽃문을 지나 우물같은 분수가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정답게 사진을 찍어본다.  

호수가 멀리 내려다 보이는 넓은 잔디밭이 시원하게 펼쳐져있다.  호수엔 하얀 돛을 단 배들이 윈드써핑을 즐기고 있다.  
“ 우리 여기서 엎드려 턱괴고 두다리들고 사진 한장 찍을래?”  
나무그늘 아래 두다리를 뻗고 앉아 다시 웃음꽃을 피운다.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 병옥이 아들이 사준 시원한  얼음쥬스를 마신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드레스를 살짝들고 웃으며 지나간다. 결혼사진 찍으러 왔나보다.  우리는 서로 이런저런 지내온 이야기를 나눈다.  
미국와서 자리잡고 하고싶은 일 열심히 재미있게 하며 살다보니 이제는 자녀들이 훌쩍 커 모두들 졸업하고, 이제는 오히려 부모님을 도와주며 독립해 일을 하면서  미국에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성희아들은 졸업 후 적성따라 플로리다로 갔는데 너무너무 하는 일이 재미있다하고, 성희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참한 병옥이 딸은 26살인데 보다 한국적인 남성을 찾는다며  기다리는데, 남동생은 제가 먼저 가겠다고  누나를 놀린다며 병옥이가 하얀 이를 반짝이며 살짝 웃는다.  
재순인 쌍둥이 아들이 17살인데 벌써부터 겁을먹고 걱정한다. 무조건 한국 사람이어야 한다고 세뇌교육을 시키는데 그게 잘 먹혀들어가진 않고 오히려 똑똑한 아들들 눈치만 보며 간접적으로 의사전달하고 있다고 털어 놓는다.  

“ 우리도 장가 안 간 아들 셋 있어요. 가까운 사이끼리 인일홈피에 결혼적령기 자녀에 대한 정보와  교제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큰 욕심 없이요.”  
그래, 우리에게 아들 딸 결혼 문제가 제일 크게 남아있지.  
우리 이렇게 30년만에 만나서 아무것도 모르고 헤어지지 말고 결혼하고 일해야하는 우리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도움주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으면 좋겠다.  
이 수목원에 심어져 꽃피고 열매맺고 있는 저 나무들처럼 굳게 뿌리 내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보고 돌봐주어야지.  

이제 돌아가야할 때가 되었다.  언제 다시 만나 볼 수 있을까?  
섭섭한 마음에 친구들이 선물을 사서 내게준다. 남편도 아들에게 준다고 두남녀가 껴안고 춤추는 목각인형을 샀다. 아마  큰아들 여자친구에게 주겠지.

운전하는 재순이는 낯선 길인데도 여유가 있다.  
앞자리에 앉은 성희는 신이나서 즐겁게 노래한다.  
“ 새가 날아드은다.  온갖 잡새가 날아드은다…….”  
어쩌면 저렇게 예쁜 목소리로 노래할까?  흥이 실려 어깨가 들썩인다.  
빵에 햄과 치즈먹고 대학 강단에서 항상 영어하며 살텐데 한국노래를 아직도 잊지 않고 참 잘하네.  
“ 성희야, 요들송도 해봐. 너 요들송 잘 하잖아.”
성희의 신나는 요들송이 차안에 가득 메아리친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친구들 웃음소리, 노랫소리에 시간 가는줄 몰랐다.  
언제 다시 친구들과 이런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친구야,  정말 즐거웠어. 우리 다시 만나 즐거운 시간 많이 많이 갖자.
아들 딸 걱정말고 자랑 자랑하면서 잘 하는것 잘 하게하고, 좋아하는 것 마음껏 즐기게 해 주면서 다음 만날 땐 좋은 소식 많이 많이 갖고 만나자.  

고운 친구들, 반가운 친구들, 아름다운 친구들
정말 고마워.  
친구야, 사랑해.


                                                                                              6월 1일 200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