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2시간 못미치는 거리에 있는 5번도로 옆의 Ramada Inn 에서 여자들만의  수련회를 1박 2일동안 가졌습니다.  
남자는  200여명 중 오직 6분이었는데 운전기사 겸 사진사, 짐꾼인 남편들이었습니다.  
밴이 산길에 접어들어 호숫가를 지날 때 쯤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며칠 전 25년만에 한국에 다녀온 박선생님의 말씀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인천의 방주교회 목사님이 길거리의 거칠고 어려운 이들을 데려다 키우며 생활하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되어 만나뵈러 전철을 탔답니다.  전철에서는 장사꾼들이 계속 나타나 외쳐대는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대요.
머리빗이 몸속 여기저기서 나오는데 이것 공짜, 저것 공짜 해서 한다발에 단돈 천원, 일불이다. 공짜다.  새로운 것이 나타날 때마다 샀는데 가방으로 하나,  옆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더랍니다.    
동인천역 앞에서는 채칼장수가  신나게 선전하는데,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한참을 구경하다가  wife 한테 사랑 받겠다고,  만원주고 하나 사고…  

집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몇군데 둘러보았습니다.  사진 하나가 내 마음을 세게 때렸습니다.  사진 올린 분의 마음이 아직도 무언가 해결해야 할 것이 있는것 같았습니다.
“ 이제 나이 오십. 앞으로 잘 살아야  사오십년인데,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일만 하고 살아도 모자랄 것 같다. 남을 꼬집고 흉보고  큰소리로 야단치며 때린다고 변할까?  내가 변해야 한다. 내가 변해야  그들이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  

오늘은 참 거창하게 나왔습니다.  수련회에 함께 했던 남편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어렸을 적의 경험이 나의 현재 성격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며  Turning Point 를 찾는 이야기를 배웠습니다.  

그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53년 1월에 충청도 깡촌에서 태어났다.  그 마을 장정들이 군대나가  삼분의 이가 전사했다. 시아버님은 전쟁중 결혼하여 아들 얼굴도 못보고 군대에 나갔다.  마을의 장정들이 전사한 소식은 속속 들어오고  먹을 양식은 없었다.  그렇게 태어날 때 부터 죽음과 같은 삶을 시작했다.  아버님이 인천에 취직되고,  취학하기 위하여 이사오니 시골 같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답답하기 이를데 없었다.   창영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얼마나  애들이 많은지,  촌놈에겐 겁도나고, 옷입고  말하는게 세련되지 못해 주눅들어 지낼 뿐이었단다.  
불탄  송림국민학교  애들이 몰려와  강당에서 공부할 때는 반 끼리 걸레, 빗자루 들고 패싸움도 해 보고…  

3학년, 3학년이 되었다.   아직도 촌티는  여전하여, 고리땡으로 위아래 옷한벌 입고 다니는 촌놈이었단다.  그 때 눈부신 공주님들을 만나게 된다.  
이사간 동네에서 친구들과 교회에 갔는데, 성경암송 잘하고 퀴즈도 잘 맞추는,  눈부시게  예쁜 공주님을 보고 마음이 콩당콩당 뛰게 된다.   집도 한 동네라 우물가에서 친구들과 치마입고 고무줄하며 노는 모습을 볼라치면 혹시 못볼 것이라도 볼까  조마조마해 하며 고개 숙이며 다녔다.
그런데 학교에 가면 이 또한 똑똑하고 깜찍하게 예쁜, 회장되시는 공주님이 계신거라.  어린이 운영위원회, 회의라도 할라치면 한마디 한마디가 똑똑소리가 나니  그 앞에서는 얼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게양대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가끔 훔쳐본대나….  

그 때서 부터 두 공주님에게 잘 보일려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마음에 항상 즐거움이 넘치고,  친구들에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잘 해 주었다나.  착한 공주님들 때문에 나쁜 맘을 도저히 가질 수 없었다고…
학교에서 회장하고, 교회에서 칭찬들으며 일 할 수 있었던게 그 두 공주님 때문이라고.  
그런데 그 두 공주님이 둘 다 우리 인일여고생 이랍니다.  하나는 우리 동기이고…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어쨌든 마음에 응어리 진 것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우리 남편들 모두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짧은 인생, 항상 좋은 눈으로 좋은 마음으로 보고,  좋은 말만  좋은 일만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나누기엔, 너무 시간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 남편님들이여!  



                                                                                   9월 19일 20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