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3시, 하던 일을 멈추고 길을 떠납니다.  고속도로와 고속도로,  Freeway 와 Freeway, 서로 이어져 뻗어있는 길을 따라 갑니다.  많은 다른 차들과 함께  줄을 맞춰 길을 오르고 내리며 바삐 달려갑니다.   언덕 위에  죽 늘어서 있는 많은, 풍력을 일으키는 큰 바람개비가 보기에도 시원하게 돌아갑니다.    

스탁톤에서 개스를넣고 맛있는 커피를 한 잔들고  88번을 따라 길을 떠납니다. 길가엔 과수원이 계속 이어져 있습니다.  이름모를 과일나무들이 햇빛을 받으며 맺힌 열매를 자랑하듯 서 있습니다.  큰 포도나무 밭을 지나서 무성한 잎에 아직 푸른 열매를 잔뜩 연 호두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실, 운전기사를 졸라 차를 세우고 어머니와 내가  확인해  보고서야  호두 열매인 줄 알았습니다.  

허허로운 넓은 들판을 지나고  작은 마을을 몇개 지나 이제 산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죽죽 뻗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앞 뒤로 다른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울창한 산속에 잘 닦여진 길이 신기하고 고맙습니다.  소나무 숲이 지나고 나무 숲이 바뀌었습니다.   삼나무인지 전나무인지 알 수 없는 나무들이 우뚝우뚝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언덕길을 급하게 내려오는데  나무 뒤에 경찰차가 서 있습니다.  다시 가슴을  쓸고 심호흡을 크게하고  산을 올라갑니다.  

내리막 길을 달려 가는데 맑은 푸른빛 호수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 옵니다.  달려 가던 길에서 잠시 빠져 나와 쉬라고 우리를  부릅니다. 호수 뒷편 산에는 흰 잔설이 바위사이에 남아 있습니다.  Silver Lake, Caples Lake,  Red Lake,  맑은 물에 손을 씻고  발을 담그고  싶지만 어둡기 전에 온천이 있는 State Park에 가야합니다.  높은산, 큰 나무 숲사이로,  호숫가에,  바위를 깨고 길을 닦아 놓은 분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사람도 없는 곳에 길을 참 잘 뚫어 놨구나.”  
“ 그렇지요, 오마니.  어디 가든지 길은 참 잘 만들었어요. 고맙지요. 그래서 미국 와 본 박 정희  대통령도 제일 먼저 경부 고속도로를 만들었어요.”    
“ 우리가  지금  예수님 믿는 것도 누군가 길을 잘 닦아 놓은 덕이지. 편안하게 믿고 있는거야.”  
“ 역시 권사님이시네.”  
시냇물이 졸졸 흐르듯,  바람이 솔밭사이로 솨아 지나가듯  그렇게 시어머니는 조용조용히 도란도란  말씀하십니다.  

3000m가 넘는  산봉우리가 즐비한  산자락엔 어둠이  빨리 찾아드나 봅니다.  어둠이  온 세상을 덮습니다. 운전사의 눈은 더욱 빛납니다.  길가에 노루인지 사슴인지가 놀라 꼼짝않고  서 있습니다.  내가 더 놀라 소리를 지릅니다.  
길을 따라 달려간 곳에는  예쁜  여자 Ranger 가 반갑게 웃으며 반깁니다.  
장작불을 피고 차콜에 고기를 굽습니다.  개스등이 환하게 솔밭 캠핑장을 밝힙니다.    

새소리에 눈을 뜨니 아침 햇살이  환하게 앞산을 비추고 있습니다.   온천장이 있는 산기슭 앞에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려져 있습니다.  캠핑장은  우뚝우뚝 솟은 큰 소나무 숲속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침 일찍  온천탕으로 들어갑니다.  미네랄이 풍부한 연두빛 온천의 따뜻함이 몸속으로 스며듭니다.  
두 계집아이와 백인부부가  함께 들어옵니다.  노란머리를 두갈래로 땋은 계집애의 웃음이 천진하니 귀엽습니다.  기둥 위엔 제비들이 지저귀고 길잃은 양  빨간  고추 잠자리와 노랑나비가  노천온천탕 위로 나르고 있습니다.

탕 밖으로 나오니 몸이 가쁜하니  기분이 상쾌합니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입어 보는 수영복 차림이  편안하니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수영복 차림이 걱정되어  다른 친구들에게  말도 않고  왔는데…  
“ 나 어때요?”  
“ 옷 입은 것보다 더 보기 좋은데.”  
옷으로 감쌌던 것을 훌훌 벗으니 날아갈듯 자유로운 기분입니다. 마음속에  꼭꼭 숨겼던 것도 훌훌 던져 버리면 편안하고 자유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어머님도 비키니 차림이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웃으시며 “ 그래, 한번 사진 찍어봐라 .”  
물속에서  여러모양으로 포즈를 취해 보며 배우라도 된양 물장난도 하십니다.  
“ 내가 미국오기 참 잘했다.  바닷가에 오래 살았어도  비키니 수영복 입어 보긴 처음이다.   하나님께서 날 정말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셨구나.”  

사내아이 셋을 데리고 한 가족이 들어 옵니다.  올망졸망 조그만 사내애들이 저희끼리 수영하며 잘 놀고 있습니다.  어쩐지 셋은 많아 보입니다.
‘ 내가 세 아들 데리고 다닌지가 엊그제 같은데…’  그  때가  참 좋았다 생각됩니다.  
그때가 그립습니다.  이제는 다들 커서 제 친구들, 제 여자 친구들과 지내는 걸 좋아하니 시간내기가 쉽지 않아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첫째는 할 일이 너무 많다하고. 둘째는 또 교회에서 멕시코로 수련회 간다하고, 막내는 친구들과  beach에  촬영하러 간다하고…  
‘ 결혼들 하면 일년에 한번은 무조건 함께 여행가자 해야지, 싫다면 결혼시키나 봐라.’  

온천장을 나와 소나무 그늘에 앉아 나른한 몸을 쉽니다.
솨아하고 숲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시원합니다.  어머니께서 시원한 수박을 잘라 주십니다.  “조그만 수박이 참 달구나.”
작고 동그란 빨간 수박이 이렇게 달고  맛있는지 몰랐습니다.  

이제 다시 집을 향하여 길을 따라 산을 내려가야 합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길을 터 놓았으니 이제 쉽게 떠나올 수 있겠지…  
바위틈으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 나란히 달려 갑니다.  


                                                                                    

                                                                           9월 7일  20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