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년 전 inil.org시절에 올렸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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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희','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아픈 사연 하나','2003-08-20',조횟수: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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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3월로 기억
첫 미팅은 경기고 출신까지는 생각나는데
어디 대학인지 기억조차도 없는 걸 보면
첫 미팅에 관하여 별볼 일이 없었던 게 틀림없다.

나는 여고시절 사고방식이  남학생을 사귀면 학교 선생님들의 도덕적(?) 가르침에 어긋나며
불건전하다고 캐캐묵은(지금 생각해보면 캐캐묵음)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 사고방식은 대학 때까지 이어졌다.(지금은 절대 아님<<--강조)
그래서 영양가 없었던 첫 미팅후 미팅을 하지 않았었다.

어느날.
미팅에 가기로 한 친구가 펑크가 났다고 나더러 대신 가달라고 하는 부탁에
안국동으로 기억되는 어느 찻집 땜빵용 파트너로 갔다
그런데 그 미팅은  쌍방이 좀 야시끄리한 친구들 미팅이었던 것이다
이화여고-이대 출신과 서울고-서울대 사회계열 들 중에
옷차림 부터가 가장 최신유행의 야시끄리한 것도 그렇거니와
여학생들도 한 인물 하는 팀이었고
남학생들은 또한 쭉빵에 훤칠한 미모(? )의 소유자들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나는 땜빵파트너로 갔고
옷차림새나 외모 또한 개밥의 도토리 격이었음을  참석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어째거나, 어니언스의 "편지"도  부르고 게임도 하고 어쩌고 시간이 잠시 흐르자
한팀 두팀 짝을 지어 나가기 시작했다.
외모가 잘 빠진 (?)  나의 파트너와 나도 찻집을 나와 버스를 탔다.
집으로 가기 위해 ...ㅎㅎㅎ 집으로... 집으로......

자신이 용산(정확치 않음)에 산다고 서울역에서 내리는 나와 같이
버스를 타고 안국동으로부터 서울역까지 오면서
참 즐거운 시간이었노라고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그 남학생의 비애(?)를 동정하였었다.
자신과 걸맞는 세련된 여학생을 파트너로 만나지 못한
그 남학생이 갑자기 불쌍해졌었다.

사실, 원래의 파트너 여학생은 앙징맞고 깜찍하고 초미니를 즐겨입고
쌩머리 길게 늘어뜨리고 다녔던
같은 전공학부의 이화여고를 졸업한 여학생이었으니
그 남학생 정말 복도 지지리 없었던 상황이라 동정이 갈밖에.

그렇게 서울역에서 나는 버스를 내린 후
미팅을 한 기억이 전혀 없는 것으로봐서 더 이상 없었지 싶다.
첫미팅은 기억도 거의 없지만,
사회계열의 그 남학생에 대한 사연들이 이 날까지 생생한 것을 보면
내 딴에는  그 날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그 쭉빵의 서울대 사회계열 남학생..
지금은 뭘하고 있을까?
고시패스 해서 판사님이 되었을까?
회사 다니다가 이사도 못되어보고 부장에서 명퇴하여 퇴직금 날리고 한숨 짓고 있을까?
사별하여 싱글로 살고 있을까?
혹시라도 .... 그날..촌스럽고 쑥맥이었던  그 미팅 여학생을 생각해본 적은 있을까?
쓰잘데 없는 상상을 하며
내 곁을 스쳐간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 아침에 고백하고 있다.

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