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인천에 이사와 위치도 높은 아파트에 자리를 잡았다.
겨울엔 바닷바람과 차가운 북풍으로 귀가 떨어져 나갈 지경이지만
여름엔 나름대로 산을 뒤에 두고있어 시원한 바람이 제법 살만한 느낌이 든다.
정문으로 다니기엔 시장이고 찻길이고 간에 한바퀴를 돌아야 하기 때문에
아파트 옆에 변칙(개구멍)으로 구멍을 뚫고 난 가파른 작은 길로 다니곤 했는데,
아마도 그 다음해인가?
저녁나절에 헬스를 하러 가다가 발목을 삐어서 반년을 고생한 적이 있었다.
(고백한 적 있었던 얘기임: 쓰레기를 몰래 버리고 도망가다가 발목이 그만...)
재작년에 그 구멍을 막아버리고 가파른 공터를 메워 빌라 몇 동을 짓는다는 공고가 붙었다.
그리고 금년 봄,

우리에게 당연히 볼 수 있어야 할 빌라는 오직 큰 길가 쪽으로 한동만 있을 뿐.
큰 공터는 그대로 건축 자재들로 어지러워져 있었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건축주가 재정상태가 무너져서 짓다 말고 도망갔다 한다.

또 다시 늦은 봄,
이제는 건축의 소음도 없고, 높낮이는 들쭉날쭉이지만 빤히 보이는 지름길을 사람들이 놓칠리가 없었다.
고속도로의 소음휀스보다 더 높이 막아놨던 그 울타리에 구멍이 생기더니
옆에 있는 고등학교로 가는 학생들, 버스를 타러 갈 사람들, 문학산으로 산행을 갈 사람들이
그 구멍을 점점 더 넓혀 놨다.

본론,
건축자재, 쓰레기로 온통 뒤덮혀 30도 가량 경사가 지기도하고 평지도 드문드문 있는
그 넓은 공터는 어느날 문득 보니 초록색으로 뒤덮혀 있었다.
윗집의 꼬부랑 할머니가 손바닥 만큼의 돌로 온통 덮힌 땅에 씨를 뿌린 것이 시작이었다.
하루종일 돌을 골라내고 호미질을 하여 땅을 고르고
당신 땅의 영역표시로는 주변을 돌로 주욱 막아놓고,
씨앗을 뿌리기 위해 일정 간격을 파서 그 마무리를 해놓으셨다.

다음날 가보면 그 옆에 또 다른 구획의 밭이 새로 생기고, 그 다음날에는 뚝 떨어져서
학교 축대 밑에 새로운 밭이,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리곤 정리된 그 밭들에 파릇파릇한 고추모종, 상추모종, 깻잎, 호박, 파등등..
사람들이 겨우 지날만큼의 꼬불꼬불한 길만 내놓았을 뿐 온통 모종들로 파랗게 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여기서 내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이다.
처음에 이사왔을때도 건축한다고 막기 이전까지의 이 공터는 온통 푸른 채소들로 만원이였었다.
이 곳은 내가 여기저기 나무를 꽂고 '몇동 몇호 귀동이네꺼'라고 해놓으면
바로 우리땅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법적으론 상관없지만.

집에와서는 배 아파 아예 드러누울 지경이 되었다.
'그 땅에 무우, 배추,상추,고추, 옥수수, 호박,파등을 심으면 일년 사계절 푸성귀 걱정은 안할텐데...'

아침에 가봤다.
요즘의 뜨거운 뙤약볕에 아주머니들이 땀을 흘려가며 새로운 땅을 고른다.
일일히 돌을 골라서 대야에 담아 저 멀리 보이는 돌무더기로 가져가고,
수도시설이 전혀 되어있지 않아서 각자의 집에서 들통으로 물을 퍼 나르기도 하고....

점심에도 가봤다.
아직도 그 아주머니들이 돌을 나르고 있다. 얼굴이 벌겋다.
한쪽에서는 무더기로 자란 모종을 나누어서 새로 심고 물을 주기도 하고 있었다.

저녁무렵에 운동을 다녀오다 또 들여다 봤다.
kkil kkil kkil~~ 아직도 모두들...
새로운 땅주인이 다시 휀스를 두르고 뒤집어 엎으면 모두다 헛일 일텐데...
그래도 땅을 갈아 돌을 고르고 씨를 뿌려 점점 커가는 농작물을 바라다 보면 안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다.
에고,에고, 아직도 요기조기  손이 안닿은 땅이 보이던데, 난 왜 이렇게 손이 안갈까?

그래, 결심했어. 마음을 비우자.
누군가 깔끔하게 정리하고 씨앗 뿌려서 파릇하게 순이 나온 저 밭을 조건없이 거저 나에게 주어도
그 다음의 작업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기야 하겠지만............. 나는 포기하련다.
저 수많은 작업을 야채를 수확할때까지 완수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부지런한 사람들만이 땀흘려 지은 작물을 수확할 자격이 있기 때문에.
(속셈: 윗집, 옆집 아줌마들이 그래도 간간히 뭔가 챙겨주겠지, 전에도 그랬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