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5시. 밥을 올려 놓고 시금치 데치고, 단무지와 계란, 고기를 넣어  김밥을 쌌다.  정상에 올라 거기서 점심을 먹기에는 김밥이 최고지. 오늘은 아마 힘든 산행이 될것 같다.   gala 사과와 함께  배낭에  넣고, 오늘은 누가 오실까 손꼽아본다.  
창 밖엔 새들이 고운 소리로 서로들 지저귀고  있다.

두시간만에 도착한 Pinnacles는 아주 딴세상이다.  
주차장  옆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돌틈 사이에 노란 poppy꽃이 피어있다.
앞에는 기괴한 모양의 뽀족 뽀족한 돌산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서있다.  
저 높고 험한 돌산을 어떻게 오르겠다고….  
시냇물가를 따라 양쪽으로 노란  들꽃들이 줄지어 피어있다.  졸졸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정겹다.  Trail을 따라 피어있는 보라빛과 흰색 꽃잎이 함께 어울린 루핀이  밝게 우리를 맞이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오르는가 보다.  앞에 보이는 큰 바위의 위용이 놀랍다.  S자로 계속 돌고 돌아 산을 오른다.  뒤에서 올라오는 젊은 한쌍에게 인사를 하고 앞 세운다.   오르는 길가에 노란꽃들이 피어있어 지루하지 않다.  앞서가던 남자 두분이 나무 그늘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급할것 없이 차근차근히 걸어 가시는 미세스함과 미세스 리가 있어 마음이 편하다. 미세스 안과 남자 두분은 앞에서 가고 있다. 우리 셋은 천천히 산을 오른다.  

한구비 두구비 돌면서 올라온 산 밑을 내려다 본다.  돌아 오를 때마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View가  또 다른 장관을 이룬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하얀점으로 점점이 보인다.  시원한 터널을 지나 바위위에 올라 산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미세스 리가 은근히 힘들어한다.   산 밑에  모든 것이 한 눈에 보이니 사람이 보잘것 없이 초라하게 작아 보인다.  하물며  하나님이 내려다 보시는 이 세상의 인간들은 어떻게 보이실까? 멀리 산과 들, 마을이 구름의 그림자로  군데군데 까맣게 드리워져있다.
“ 저 밑 마을 사람들은 구름이 잔뜩끼어 흐렸다고 할 거 아냐?”  
우리가 보기엔  구름 한조각의 그림자가 작게 마을을 덮고 있을 뿐인데…..  

백팩을 멘 등에 땀이 난다.  나이드신 함선생님은 무겁게 짊어 지셨으니 힘이 들텐데…  아무 말씀없이 묵묵히 올라 가신다.  미세스 안은 좋은 point라며 폼을 잡고  누워 사진을 찍는다.  멀리 산봉우리에, 로프를 메고 암벽을 타는 두 젊은이의 땀난 등이 반짝거린다.
정상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싸온 김밥을 먹는다.  빨간 딸기 냄새가 향긋하다.  따로 건강식을 드시던 함선생님,  “ 밥에 설탕을 뿌린 것 처럼 밥맛이 달구만.  한국에서 산에 올라 끓여 먹던 찌게 맛이 일품이었지!”
“ 아, 옛날 생각나네, 다음에는 꼭 삶은 달걀과 사이다를 가져와야지.”
높은 바위 위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명랑하다.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스친다.

“ 모두들 여기까지 잘 올라 오셨습니다.  대단들 하십니다. 다음부터는 길이 좁고 가파르니까 발밑을 조심하세요.”  
눈앞에 나타나는 기암 괴석들이, 멀리 내려다 보이는 풍경과 함께 어울려 입체영화를 보는 것 같다.  오묘한 하나님의 솜씨에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
“ 대전을 거쳐 올랐던 대둔산과 흡사하네요. 험한 돌산도 그렇고 아찔한 절벽밑도 그렇고…”  

드디어, 드디어 문제가 생겼다.  가파른 암벽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바위에 발디딜 자리만  깎은 급한 계단과 쇠파이프 난간이 만들어져 있다.  담력이 필요한  난코스다. 두다리와 두 팔을 다 이용하여 난간을 잡고 돌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보이지 않는 난 코스가 얼마나 더 있을까?  함선생님이 앞장 서 올라 가신다.  아무도 따라가는 사람이 없다.  엄두도 못낸다.  손짓하시는 함선생님을 따라 미세스 함이 올라가신다.  위의 선생님을 향해  중간쯤  올라가시다  “ 쉽네, 올라와.” 하며   조금 더 올라 가시던 미세스 함은 밑을 내려다 보시고  갑자기 초주검이  되셨다.  
놀란 눈, 파랗게 질린 얼굴,  겁에 질린 목소리를 들으며 밑에서 우리들은 웃었다.  멈추지 않는 웃음에 한참동안이나  그렇게 산위에 서 있었다.  
지도를 보니 우리가 있는 곳이 해발 800미터, 산 아래 주차장이 해발 400미터.  
까마득한 400미터 아래를 난간에 매달려 내려다 봤으니…   아마  미세스 함은 대둔산의 흔들리는 구름다리 위에서 까마득한 밑을 내려다  본 것 같으셨겠지.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너무 웃어 힘이 빠져서… 다음을 다시 기약하며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들은 서로 자랑스럽게 여겼다. 여기까지 올라 왔으니 , 참 대견스럽다.  
혼자였으면 어떻게 올라올 수 있었을까.  서로 의지하고 힘내면서, 이야기 나누며 여기까지 올라왔지.  나같이 속으로는 서로 지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었겠고.  
이렇게  서로 어울려 함께 하면 힘든 일도, 어떤 큰 일도 뭐든지 할 수 있을것 같다.  

Van에 몸을 싣고 오는 길에는 모두 잠에 빠져 들어갔다.
힘든 만큼 정상에 오른 기쁨도 큰 하루였다.  


                                                                               5월 21일 20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김 경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