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수요일은 저희 아버지 께서 돌아 가신지 37주년 되는 기일 이었습니다.
온 형제들이 모여 아버지를 추모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손자들이 일어나  특별찬송을 힘차게, 웃으며 부르고 사위들이 각각 사회보고, 기도하고 간증하며 화기애애한 가운데 감사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작년에 목사님께서 오셔서 예배인도 하신 그 때를 생각하며 쓴 글을 조용히 읽었습니다.)



                                                      ~~  엄마 얘기만 나오면 ~~

                                                                                                        
지난 목요일에 우리 아버지 36주기 추모예배에 오셨던 새로오신 목사님께서, 어제 추수감사주일 예배시간에 우리 어머니 이야기를 하셨다.
남편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살다  돈 벌어 놓고 일찍가신, 앞에 앉은  50세의 미세스 리가 훌쩍 훌쩍 거린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40세의 미세스 장도 따라 울기 시작한다.
그 집 부부는 한국에서 잘 살다, 미국 지사로 온 뒤에, 새로 세탁소를 사서 일하며 애들 키우느라 아마 고생스러운가보다.  
앞 자리에 누군가도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친다.

우리 엄마는 동갑내기와 결혼하여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다, 39세에 과부가 되셨는데, 딸5 아들2의  7남매를 두고 고급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추운 겨울 날 그렇게 훌쩍 가셨다.  
세째 딸인 내가  중학교 시험보기 전날인 예비 소집일, 첫눈오던 날 이었다.
인천여중에 합격만 하면 내가 갖고 싶던  빨간 피겨 스케이트를 사 주신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웃으시며 약속 하셨는데……   막내가 6살, 큰 언니가 이화여대 1학년 때 이었다.

어머니는 갑자기 할 마땅한 일이 없어 행상으로 옷 장사를 하셨단다.  
아침 일찍 나가시는데 7남매의 도시락이 12개, 도시락 하나하나를 싸면서 “하나님께 이 7남매를 맡깁니다” 하시고, 나갔다 들어 오시면 빈도시락이 부엌에 하나 가득.    저녁하고 설겆이 끝나고 나면 밤12시,    누워 자는 7남매 머리에  일일이 손 얹고
“ 이 7남매를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기도 한 후 자고 나면 또 도시락 12개를 싸야 되고….

공부 잘 해 간호대 수석 입학했고 항상 웃는 얼굴의 제일 착하던 둘째 딸은 세상에서 고생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먼저 하늘나라로 불러 가시고……
지금은 시루속 콩나물 같이 무럭무럭 잘 자라준  6남매가 미국에서 옹기 종기 모여 살며 아들 딸 낳고 하나님 은혜로 모두모두 잘 살고 있다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는 요지였다.

친정 어머니도, 시 어머니도 우시고, 옆에 앉은 분들도 모두 모두 우셨단다.
친교실에서 함께 식사 하시던 연세드신 김 장로님께서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우셨다면서, 울먹이며 말씀하신다.
서울에 유학와, 다른 친구들은 힘들게 일해 돈 벌면서 공부 했지만 그 분은 공부만 했단다.   고향집에서 어머니와 동생들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지내면서 모아 보내준 그 돈으로  ….

또 얼마전 갑자기 모친상을 당한  정선생은,  
“어머니 돌아 가시고 나니 제일 가슴 아픈건, 어머니가 안 계시다는 사실보다도 살아 계실때 잘 못해 드린 것이더군요.” 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주일날  목사님은 왜 날 울리시는지"  모두 한마디씩.

나이가  40먹고 60먹고 80을 먹어도
어머니 얘기만 하면 왜 다들 그러는지……  

주님.  저희에게 주님의 따뜻한 손길대신 이 세상에 어머니를 보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저희 어머니, 오래오래 저희와 함께 있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