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슴을 태우면 분홍빛 연기가 피어오르는가!


초여름같은 날씨가 연속되더니 우리 아파트 벚꽃이 예년보다 십여일 일찍 만개하였다.
19년을 보아온 꽃이지만 볼 때마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준다.
우유빛 살결에 얼비치는 수천 수만 분홍실핏줄의 들뜸이라니...
섬진강변의 매화는 강물에 잠겨 재첩이 되더니 우리 동네 벚꽃은 꿈자리에 수를 놓는다.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만이 봄날의 축제에 참가할 수 있고
겨울을 이겨낸 사람들만이 이 축제에 감격할 수 있다.
엉금엉금 기어다니던 우리아이가 대학생이 된 세월동안 저 나무들은 우리와 함께 했다.
어찌 그동안의 우여곡절이 사람에게만 있을까.
분홍구름을 피워내는 저 벚꽃이라고 어찌 순탄한 삶만 살았겠는가.
까맣게 탄 제 가슴살을 틑어내고 純綠의 새순을 뽑아올린 나무 앞에선
늘 콧날이 찡하다.

친구들아.
해마다 이 꽃그늘을 지나노라면 4월의 신부가 되는 상상을 한다.
마치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이 눈앞에 펼쳐진 듯 좌우 길은 꽃으로 갈라져있고
만발한 벚꽃 사이로 목련 또한 청초하니 저 멀리 개나리는 또 어떤가.
수줍고 귀여운 신부의 들러리같아라.
나는 맘껏 신부가 되는 상상을 한다.
이 길에서 시집가는 날.
하객들의 허밍에 맞춰 신랑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신부.
세상의 모든 길은 당신께로 가는 길.
그리움 속에 비단을 깔고 신부가 걸어오길 기다리는 신랑.
또 다른 나를 맞이하는 날.
그대여 오시라,
와서 스미라.
평생을 걸어도 닿을 수 없는 사이.
문득 새벽이슬과 함께 길 떠나는 新婦
그녀는 꽃이다.
봄꿈은 청초해서 좋아라.

봄이 강물처럼 흐르는 벚꽃터널로 흘러 들어가자.
서로 서로 이마를 맞대려고 온 영혼을 기울이는 저들의 몸짓에
손끝만이라도 닿기를 갈망하며 온 몸을 기울이는 저들의 삶에
우리의 심장을 포개보자.
어찌하면 고통이 꽃이 되는가.
얼마나 앓아야 하고 얼마나 피를 말려야 하는가.
얼마만큼 자신을 버리고 얼마만큼 자신을 세워야,
저리 허리가 휘도록 그리워하면서도 쓰러지지 않는가.

저들은, 편한 자리만 탐하는 부끄런 내 몸뚱이에도
봄물이 들게 하니 내 어찌 이 봄날을 환호하지 않으랴.
4월4일과 5일은 우리 동네 벚꽃축제이다.
축제라야 사람들 먹고 마시는 일이 主된 일이고
밤늦도록 자동차 불빛이 명멸하나 그 또한 축제임엔 틀림없다.
겨울의 검은 외투를 벗고 한껏 가벼운 날개짓으로 사람들은 꽃속에 스며든다.
오시라.
일상을 접어두고
꽃그늘 아래로 오시라.
혹 아는가.
막걸리 한 사발과 도토리 묵 한 점에
우리도 잊었던 처녀적 부끄럼을 되찾아올런지...
그리하여 <꽃에게 시집가는 날> 다시 한번 볼빛 화사한 신부가 되어볼런지..
좋은 시간을 택하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