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KBS F1라디오를 늘 틀어 놓다시피 하는데 그 중에서도 오후6시에 시작하는 김미숙의 "세상의 모든 음악"은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시간이라 싱크대에 붙어 있는 라디오를 통해 들으며 부엌일을 하게 되는데 가끔 음악회 티켓을 신청하라는 멘트를 듣게 되어도 나랑은 거리가 먼 얘기다 싶어 흘려 들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지난 여름 생각이 나면서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컴퓨터에 앉아 티켓 신청을 해 봤다. 지난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경희와 하루를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도 보고 분수 옆의 카페에서 분수를 바라 보며 식사도 하고 음악회도 갈 생각이었는데 미리 음악회 티켓을 예매하려 했지만 잘 안 되길래 그냥 현장에 가서 부딪쳐 보려 했는데 결국은 티켓을 못 구해 하루 계획 중 음악회만 못 본 일이 있어서...  그리곤 당첨자 발표를 보려고 수시로 들락거렸는데 그 사연에 힘입었는지 당첨이 되었더라구. 경희한테 이 소식을 전하고 토요일인 어제 하루 계획을 거창하게 잡았다.  일찌감치 만나 청계천 투어를 하고 음악회를 보고 여의도에서 하는 불꽃축제까지 보자고. 그런데 금요일에 경희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왔길래 못 갈 사정이 생겼나 싶었더니 감기가 너무 심해 못 올 것 같단다.  더구나 음악회라서 기침 소리도 염려가 된다며. 나 역시 감기 기운이 있어 수시로 재채기를 해 대는 처지라  걱정이 좀 되긴 했지만 경희 대신 이웃에 사는 친구와 로메로스 기타 4중주를 보러 갔다. 그 친구는 의외의 음악회에 초대된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점심에 커피에 주차비까지 자기가 나서서 내는 바람에 나는 그야말로 완전 공짜로 음악회 구경을 하게 되었다. 음악회 내내 기타와 관련된 여러 생각들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 간다. 대학 기숙사에 있을 때 빠듯한 용돈을 모아 기타를 하나 사서 겉 멋을 부리느라  키타 몸통에 원어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라고 새겨 넣고 폼을 잡았지만 결국 키타 배우는 일은 도중 하차 했는데  어느날 이효분과 외갓집에 간 일이 있었는데 그 때 효분이는 클래식 키타를 제법 잘 칠 때였고 나와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는 외삼촌도 비슷한 상태라 둘이 앉아 메뉴엣을 치는데 나는 너무 황홀했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곡이 연주될 때는 워낙 제목에는 관심없이 음악만 듣는 나는 제목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음악다방에 가면 신청곡을 쓸 수가 없는데 옆의 친구가 많이 듣던 곡인데 제목을 모르겠다는 소리에 갑자기 그 곡 이름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아직도 자신이 안 서긴하지만. 60년에 아버지와 세 아들로 구성되었던 4중주가 이제는 두 아들과 그들의 아들들로 40년 이상을 가족으로만 구성되어 세계를 돌며 연주하는 로메로스 4중주를 현장에서 듣게 된 것은 내게는 큰 기쁨이었다. 그것도 A석도 아닌 S석에서...

음악을 들어 보려면   http://www.romeroguitarquart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