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共生의 세계 알리고 싶었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



시오노 나나미의 대작 『로마인 이야기』 15권이 완간됐다. 그의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에서보다 오히려 한국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와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고 통역을 해 온 이현진 데쓰카야마(帝塚山)대학 교수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내 왔다. 이 교수는 이코노미스트 일본 통신원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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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의 『로마인 이야기』 15권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일본 서점에 깔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12월 15일. 그에 맞춰 일본 언론은 앞다퉈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튿날 주요 매체가 참석한 가운데 도쿄 상공회의소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자리에 앉자 ‘여러분 젊어 보이시네요. 이 책이 시작됐을 때 여러분은 몇 살이셨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시오노의 『로마인 이야기』 마지막 15권은 유난히 두껍다.
400자 원고지 800장 분량. “마지막 권은 라틴어 식으로 말하면 로마 제국의 종언이 아니라 로마 세계의 종말이다.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기원 395년에서 410년 정도로 잡았다. 2부는 410년에서 476년, 보통 말하는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그렸다.

보통은 여기서 끝난다.
제국의 종말을 학문적으로 엄밀히 따지기는 어렵다
햇수로는 476년에 종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이 있어 나는 제3부를 포스트 임페리얼이라는 제목으로 ‘ 제국의 멸망 그 후’의 7세기까지를 그렸다.

지중해는 말 그대로 땅속의 바다라는 뜻이다. 하나의 문명 속의 바다, 하나의 세계 속의 바다였다.
그것이 7세기쯤 되면 지중해는 땅속의 바다가 아니라 기독교와 이슬람의 경계선이 돼 간다.
로마 세계의 수평선상에 이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때를 중세의 시작으로 보았다.

고대는 다신교 세계, 중세는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일신교 세계다.
로마제국의 종말이 아니라 문명의 종말을 그리고 싶었기에 여기까지 잡았다.
이것이 다른 로마사와 차이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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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독자는 머리가 좋은 사람”

*5년간 매년 한 권씩 내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약속을 지키는 것은 당연지사다. 의사는 일부러 피해다녔다.
병이 밝혀져 이름이 주어지면 병이지만 모르면 병이 아니니까.
병으로 중단됐다해도 독자들은 기다려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 중단했다면 내가 다시 계속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번 중단하면 새로 시작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니까.”

*손으로 직접 원고를 쓰는 이유는?

“컴퓨터를 눈앞에 두고서는 2000년 전 세계로 갈 수가 없다.
15권의 원고 총량은 400자 원고지로 1만 500장 정도다.”

*로마인의 위대함으로 유능한 지도자·개방성·인프라·노블레스 오블리주 등을 들 수 있겠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들자면?

“로마인들은 자기들이 모든 것을 하려들지 않았다.
더 뛰어난 다른 나라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맡겼다.
일본의 경우 역사 자체가 개방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깨우치고 있는 것 같다.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일본은 한국과는 독도 문제, 북한과는 납치 문제, 중국과는 과거사 문제 등으로 부닥치고 있다.

*이웃나라와의 트러블에 대한 해법은?

“원래 옆 나라와는 잘 되기 힘들다. 전쟁만 아니면 잘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어떤 ‘역사적 사실’은 공유 가능하다. 하지만 ‘역사 인식’은 다른 쪽에서 보면 달리 보인다.
달리 보이는 인식을 하나로 하려는 의도 자체가 시간과 경비의 낭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해법이라면 서로의 인식을 바꿔 보는 것이다.

한국이 보는 독도와 일본이 보는 다케시마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면 어느 부분은 공감할 만한 곳이 있을 것이고, 그리 되면 서로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억지로 하나의 ‘인식’을 만들려고 해선 안 된다.

나는 일본인이고 특정 종교가 없으니 내 로마사는 비유럽인, 비기독교인에 의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독교도의 유럽인이 쓴 로마사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 로마사를 영어로 번역본을 내고 싶다.
그러면 지금까지와 다른 로마사를 기독교도의 유럽인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여러 생각에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의 시각밖에 없다면 그건 사고의 강요나 다름없다.”

*다른 서양인이 쓴 것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책에서 알리고 싶었던 내용은 ‘공생’의 세계다. 모든 사람은 생존의 이유가 있다.
2000년 전 민족·피부색·신앙·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끼리 로마 세계 안에서 더불어 같이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관용 있는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

지금 보라. 이슬람과 기독교가 으르렁거려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다행히도 아시아는 비교적 긴장감의 밖에 있다. 하지만 종교적인 긴장감이 없다면 인간은 다른 긴장거리를 만들 것이다.
그 하나가 독도 문제 아닐까? 종교가 개입되면 문제가 어려워진다.

종교적인 광기와 내셔널리즘을 배제하고 냉철하게 생각한다면 의외로 문제는 해결하기 쉬울 것이다.
일본과 한국이 사이가 나빠지면 중국만 좋아할 뿐이다. 중국 좋으라고 두 나라가 으르렁거려야 하나.
내 독자들은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다.

그런 머리 좋은 일본과 한국의 독자들이 서로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혹시 고대 로마라면 독도는 황제령이 되었겠다.
그래서 일본인과 한국 사람이 나란히 고기를 잡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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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남을 생각하는 사람”

*나라의 위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번영과 쇠퇴가 온다. 어떤 경우에 성쇠가 나뉘는가?

“어느 정도는 정신적인 면이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아직 기력이 있을 때 위기가 온다면 이걸로 끝낼 수는 없다는 기개로 위기를 극복해 낼 것이요,
그럼으로써 재차 중흥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긍지가 있다면 재기 가능할 것이요, 그 긍지가 없다면 다시 못 일어날 것이다.
가장 좋지 않은 예는 눈앞의 이익에 휘말려 수단이 목적이 되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의외로 많다.

중흥했지만 금방 없어진 나라가 얼마나 많은가?
구체적인 예를 들면 아테네 피렌체는 충분한 힘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외부에 적을 두고도 내부 갈등에 너무 힘을 소모했다.
작은 문제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큰 문제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나라가 넘어간 것이다.
요즘 일본의 좁은 의미의 내셔널리즘 또한 그 나쁜 예라고 본다.”

*리더는 어떻게 다른가?

“보통 사람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하지만 리더는 남을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다.
개인이 자신의 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리더는 조직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유럽 여행을 하면 베르사유 궁전 등 굉장한 건물들을 많이 봤을 것이다.

로마는 개인 유적보다 공공유적이 많다.
리더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리더에게 힘을 위탁했다는 말이요, 기회를 주었다는 말이다.
로마의 리더들은 자기를 뽑아주고 기회를 줘 성과를 남길 수 있게 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신전이며 회당이며 포럼 같은 공공 건물을 기증했다.

로마인조차 피라미드가 대단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 한 사람의 사후를 위한 것이다. 로마인들은 살아 있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을 건설하는 데 힘썼다.
나는 베네치아의 통사도 썼다. 그 민족도 개인보다 공공이 우선된 나라다. 그 점에서 로마와 비슷하다.”

*품에서 강력한 지도력은 강력한 권력에서 나온다고 했다. 카이사르나 오현제 같은 지도자가 현대에도 나올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때와는 정치제도가 다르다. 직접 민주제도에서는 불가능하다.
의회민주제에서도 불가능하다. 아직도 민주주의가 되지 않은 곳은 많다.
그런 곳이라면 강력한 지도력은 어쩌면 유익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기능을 하려면 교육 수준이 높아야 한다.

또한 경제적 수준도 그렇다. 적어도 우리는 어느 정도 그런 수준에 도달됐다고 본다.
일본이나 한국 같은 곳에서 그런 강력한 리더가 나온다면 그건 말기 증상으로 절망적인 상황이 아닐까?
바꿔 말해 지금 우리는 아직 절망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이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민족이다.”

*카이사르 외에 좋아하는 남자는?

“역사 속의 남자들은 아무리 허물이 있어도 좋은 점이 없지 않았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 그런지 이제는 얌전한 남자가 좋아 보인다.
해당 남자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

*유능한 지도자와 국가의 흥망에 대한 비례관계는?

“마키아벨리는 리더의 3요건으로 역량·운·시대와의 부합성을 들었다.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지녔다 해도 시대가 쇠퇴해갈 무렵이라면 제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그 미움 받던 네로도 외교와 금융정책은 성공했다. 그것은 로마의 중흥기라서 가능했다.
개인의 능력만 뛰어나면 지도자로서 어떻게 되리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같은 재능을 갖고도 주어진 여건에 의해 결과가 달라지니까. 그래서 역사가 재미있는 것이다.”

*언제부터 로마인을 구상했나.

“첫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를 썼다.
르네상스는 1000년의 중세식 사고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시대 위기에 봉착했다. 르네상스 후로도 이미 500년이 지났다. 하지만 나아진 게 없다.
자연히 일신교가 아닌 세계는 어땠을까 하고 르네상스인이 가졌던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지금까지 역사는 문화에만 치중했던 것 같다.
난 문명을 쓰고 싶었다.”

*미국의 국제정책과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팍스 아메리카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인에 의한 세계의 질서라는 뜻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경우 미국이 세계 질서를 잡을 각오와 의욕이 없다고 본다.
팍스 차이니즈는 가능할까? 헤게모니(패권)와 팍스는 다른 것이니까.”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일본에도 하는 말이고, 한국인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자 한다.
즉 독자로서 차별을 두고 있지 않는다는 말이다. 난 여러 문제에 대해 해결법을 주고 있지 않다.
내 책이 최고라고 말한 적도 없다.
그저 옛날에 이런 민족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제 독자는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이렇게나 많이 읽히고 있다니 한국인의 지적 능력을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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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후기
당신 회사는 성공에 안주하고 있는가?

  


필자는 『로마인 이야기』뿐 아니라 그의 모든 작품이 같이 소개돼야 한다는 것을 한길사에 추천했고,
그의 몇몇 에세이를 번역하게 된 인연으로 이번에 두 번째 통역을 맡게 됐다.
7월 7일에 태어났다고 나나미(七生)란 이름을 갖게 됐으니 반년 후면 그는 만 일흔이다.

이미 할머니라고 불릴 나이지만 웬걸. 사실 6년 전 인터뷰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긴 했다.
무엇보다 전보다 마른 손마디에서 연륜이 느껴졌지만 400자 원고지로 1만 장이 넘도록 써댔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아름답게 손톱을 꾸미고 있는 매니큐어며 아직도 풍성한 머리숱이 잘 손질된 헤어스타일,
맵시 있게 입어 낸 품위 있는 모드, 정성들여 고른 듯한 멋진 핸드백(그의 인생에 대한 정열의 증거라고 『다시 남자들에게』에 쓴 적이 있었기에 만날 때마다 눈여겨보고 있다),
손가락에는 옷 색에 맞춘 흑요석 반지…. 이탈리아에 살면 축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했지만, 패션 또한 그런 걸까?

처음 시오노가 소개될 무렵 여류작가 하면 중성적이고 소탈하며 패션이라곤 무심한 그런 스테레오 타입을 가졌는지 하나같이 그런 식으로 언론에 소개됐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작품 내용도 그렇지만 일반인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을 그의 라이프워크로 삼았나 싶을 정도로 내가 가진 상식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읽을 때마다, 만날 때마다 그는 느끼게 해준다.

통역도 통역이지만 기회가 되면 시오노에게 물어보려고 내심 준비한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국가의 흥륭도 쇠퇴도 같은 요인의 결과라는 가설’이 증명됐다고 보는지….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쓸 때부터 그는 이 말을 해 왔다.

“베네치아는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대업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 방침을 관철한 탓에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고대 로마 또한 마찬가지다.
이쪽은 반대로 문호를 연 것으로 대국이 됐으나 쇠퇴도 같은 원인에 의해 일어났다.
국경을 넓혀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준 것으로 대제국이 됐지만 그것으로 수도 로마의 속이 비게 되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는 말했다. 인간에게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인 수명이 있듯 국가에도 수명이 있다고. 문제는 언젠가 다가올 수명을 어떻게 하면 늦출 수 있나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쇄국을 택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A+를 주기 충분한 나라였다.

반대로 개국을 택한 로마제국도 같은 정도로 장수를 했다.
아무튼 속국 출신에게도 황제 자리를 선뜻 내줄 정도였으니 개국의 정도도 철저했다.
시오노가 사랑해 마지않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그저 살려주는 정도를 넘어 조상의 성마저도 무찌른 부족장들에게 선뜻 내 줄 정도다.

새해를 맞아 시오노의 로마사를 다시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시오노가 그리고자 한 ‘관용의 정신으로 공생했던 로마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당신의 회사는 성공에 안주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하고, 그 성공의 이유가 회사의 앞길에 발목을 잡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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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시오노 나나미 (鹽野七生, Shiono Nanami)  
출생 : 1937년
출신지 : 일본
직업 : 작가
학력 : 가쿠슈인대학
데뷔 : 1969년 소설 '르네상스의 여인들'
수상 : 1999년 시바 료타로상
1993년 신조 학예상
대표작 : 로마인 이야기,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살로메 유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