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답게 만드는 음식…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어떤 미친 사람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웨딩 가운을 사러오겠나?
까짓것 손님도 없을 거구, 가게 문을 닫고 놀기로 했다.
어제 주일부터 연속 삼일을 오랜만에 놀려하니
입가에 웃음이 근질댄다.

비록 세상걱정 할것이 많지만 사흘만큼은 깡그리 잊어버리기로 하고…
조용한 우리 집에서 대낮부터 컴을 켜고 시간 보내는 것이
아주 즐겁다 못해 환상적이다.

어제 교회에서 성탄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서는 그렇게 지냈고
따뜻하게 잘 자고 일어났다.
일을 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더욱 평안한 마음으로 새벽을 연다.

명절을 명절 답게 만드는게 무엇인가? 음식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국수를 말아 먹고 나서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동치미 김치, 감주, 단팥죽, 부침개…
손이 빠른 내가 순식간에 이런 음식들을 해주니
항상 배고픈 남편의 불평이 쏙 들어갔다.

간식을 잘 안 먹고 세때 오직 밥,밥,밥만 먹던 사람인데
맵고 짠 음식을 삼가게 되니 먹을 것이 제한이 되어
할수 없이 이런 음식을 먹을 수 밖에 없다.
남의 불행이 나에게는 다행한 일인가...
  
내 친정은 항상 먹을 것이 풍성하고 간식거리를 집에서 손수 둘러앉아  만들어 먹곤 했었다.
이집에 시집 온뒤로 떡도 싫다, 만두도 싫다, 밀가루 음식도 싫다하고 투정이어서
모든 간식을 하지 않고 지냈었는데
불평없이 국수를 아침부터 먹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내가 밥보다 좋아하던 이런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기 시작한 것은
우리집 역사가 바뀐 신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특별식은 부침개!
감주를 할때 남는 엿기름 찌꺼미를 항상 그냥 버리며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것에다가 밀가루와 찹쌀가루를 더 넣고
계란을 풀어 넣고 설탕도 좀 넣고 케익믹스를 만들었다.
그것으로 동글동글 부침개를 만들어
잣을 하나씩 가운데 박아 마무리를 했더니 일류 과자처럼 되었다.
그 맛의 독특함이란! 이렇게 음식의 창작품을 성공하다니
나도 일류 요리사가 된듯 기분이 여간 좋다.
"이것 좀 봐요, 나도 하면 잘 한다구요!"

냉장고에서 잘익은 동치미 국물과 함께 부침개 열댓개씩을 먹고 나니
이제는 감주가 다 되어간다.
감주도 전기 밥솥에 하면 아주 쉽고 잘 된다.
오랜만에 뜨거운 감주를 먹는 맛이란!
내 어릴적 시골집에서 먹던 맛 그대로이다.

왜 그렇게 늦게야 다 끝을 내시는지는 몰라도
밤중에 우리들을 깨워서 “얘들아 감주먹고 자거라” 하신다.
그러면 우리는 자다말고 벌떡 일어나 그것을 한도 없이 먹어 제꼈다.
잠보다도 더 달콤한 그 맛, 뜨거운 감주!
그때 맛을 들여 평생을 좋아하는 것이 뜨거운 감주다.

이제 동지 팥죽 차례이다.
그런데 새알을 만들 찹쌀가루가 다 떨어졌다.
시장에 나가서 찹쌀가루를 사야하니 일단 준비만 다 해놓고
밤늦게 성탄 축하예배를 드린 후에야 끝을 내려고 한다.
이번엔 달지 않게 소금으로 간을 맞춘 팥죽을 해보련다.

이렇게 많은 음식을 누가 먹냐고?
아이들이 하나도 안 온 명절이니 우리 두사람이 다 먹어 없애기는 그렇다.
그렇다고 이집 저집 나눠 줄 만큼 넉넉지도 않다.
그래서 내일 새벽 기도회에 갈때 가지고 가서 함께 먹으려고 한다.
성탄절이 이 뜨거운 음식들로 인해 명절답게 되기를 바라며..
(2007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