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디가 가고 싶어?


10 년 전인가 큰 딸이 생전 처음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파리행 비행기 표를 사와서 둘이서만 일주일간 다녀 왔던 적이 있었다.
근근히 살 뿐, 여유가 없어 여행은 잘 못 챙기는 엄마를
미안히 여기는 딸들이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
나의 오래된 꿈…로마 여행이 35년 만에 실현된 것도
둘째 딸의 착한 마음 때문이었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외국 여행은 당분간 힘들거라고,
"엄마, 어디가 가고 싶어? 시간이 있는 김에 함께 다녀 오자."는 것이었다.
다녀와서 돈을 벌어 비용을 갚을테니 걱정말고 같이 가자고..

결혼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그래도 괜찮으냐고 했더니 새 신랑이 허락했단다.
그애 언니는 "결혼한지 넉달 밖에 안된 새신랑을 놔두고 어딜 가느냐?"
나 같으면 절대로 그렇게 안한다."고 야단했지만 나는 모르는체 하기로 하였다.
일과 공부를 둘다 하느라 바쁜 그에게 시간을 주자하는 생각과
남편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남편은 바닷가에서 어슬렁 거리는 일이나 산을 타고 걷는 것이나 좋아할까
미술관 박물관 다니며 공부 비슷하는 여행은 딱 질색이다.
그런 것은 골치가 아플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나와 함께 가줄것은 꿈도 안 꾸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내가 많이 가고 싶어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옳다 됐다" 하고 딸하고 가라고 밀어 주는 것이었다.  

요즈음 딸은 레지던트 졸업 후 결혼과 신혼여행, 전문의 시험을 핑게로 5 달을 쉬고 있어서
수중에 돈이 다 떨어진 상태였다.
비행기 표를 외상으로 사놓고 다녀 와서 돈을 벌어 비용을 갚으려면
그리고 학자금 떼빚을 갚으려면
직장을 구해 놓고 가야하는 것이 큰 과제 였다.

딸은 10월 전문의 시험이 끝나기 전부터 로마로 떠나기 전까지
열심히 인터뷰를 하고 돌아 다녔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경기가 나빠 병원도 닫는 데가 많아 졌다고 하고
더구나 샌프란시스코는 우수한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 있어서
직장 구하기가 다른데 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들었다.  
조급해진 마음으로 하다못해 파트타임 일이라도 잡아 놓고 떠나려고,
떠나는 그날, 한 곳인지 약속의 멜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들어보니 자기 집에서 2 시간이나 떨어진 곳이란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제공하는 호텔에서 자며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맙소사!
나는 사흘 나중에서야 듣고 절대로 그리하면  안된다고 말렸다.
신혼에 그 무슨 엉뚱한 발상인지…

그래서 딸은 그 일을 캔슬하고 좀 더 일이 적은
가까운 곳의 파트타임 일을 택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먼 직장에서 벌써 환자 스케줄을 다 짜 놓았다고 난리다.
사흘만에 캔슬이 안된다니 이게 무슨일인가 …
이미 또 다른 곳에 일하러 간다고 멜을 보냈는데
양쪽에 누가 되고 차질이 생길까봐 딸은 전전 긍긍이었다.

그러다가 걱정을 떨치기 힘든지, “엄마 기도하자” 하며 손을 잡는다.
어릴 때보다 믿음이 떨어졌는가 늘 염려하지만 기도하자고 해서 참 기뻣다.
나는 “이 일은 시작 조차 안했으니까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주며
"파트 타임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진짜 원하는 풀 타임 일…
카이저 병원의 일을 주시도록 기도하자” 하고
그렇게 함께 기도하고 잠을 잤다.
다음 날로 먼 직장 건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무튼 직장도 없이 다니니 짠 여행을 할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얼마나 유로화가 강세인지 100 불이면 60 유로 밖에 안쳐줘서
그까짓 여행 기념품도 선물도 사지 않기로 했다.
오직 하나, 케미오 브로치를 건졌다. 늘 갖고 싶었던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구경할 곳은 될수 있는대로 빼놓지 않았고,
나폴리까지 기차 타고 가서 책에 나온 피짜를 먹었고,
물어 가며 잘한다는 집의 이탤리안 음식과
젤라도라고 부르는 아이스크림은 실컷 먹었다.

딸이랑 마음이 척척 맞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옛날 대학으로 떠난 후 이처럼 오래 붙어서 다닌 적은 정말 오랜만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 사촌들, 친구들....모든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딸과 함께 자라난 아이들 이야기도 하며
십년 이상의 회포를 단번에 다 풀수 있었다.
    
겨울이라도 여행객은 아주 많았다.
여름에는 얼마나 더 많을까, 차라리 겨울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이 되었다.
딸은 여행가이드 책 하나를 열심히 읽어가며
중요한 곳은 빼놓지 않고 설명까지 해줘가며 구경을 시켜주었다.
전에 자기는 가본 적이 있다는 플로렌스가 아주 아름다운 곳이라고
기차를 타고 가서 이틀을 묵기까지 했다.

총 경비를 나중 계산해보니 7 박 8 일, 둘이서
비행기 값까지 합하여 3000 불보다 조금 덜 썼다.
팩캐지 여행이었다면 한 사람이 들 비용으로 둘이 한셈이니  
얼마나 싸구려 여행이었냐만
겨울이기 때문에 모든 호텔이 반값인 것이 도움이 조금 되었다.
알뜰 부리는 싸구려라 더 재미있는 것도 있고..

돌아오는 날은 비행기가 캔슬이 되었다.
그런 일은 여러번 비행기를 타도 처음이었는데
조종실 유리창에 금이 갔다는 것이니 이해 할만도 했다.

많은 혼란과 지체후에 다른 비행기편으로 연결을 시켜주어서
큰 지장이 없이 돌아 올수 있었다.
그 와중에 딸은 피닉스를 들러 아빠 생일잔치도 보고 가려던 계획을 바꿔
샌프란시스코로 곧장 갈수 밖에 없게 되었다.

전화를 날마다 해서 알았지만 새 신랑이 사나흘이 지나가면서 견디기 힘들어 하던 터에
오히려 아주 잘된 일이다 싶었다.
이틀이나 더 빨리 도착하게 되었으니 신랑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아까운 새 색시를 장모에게 빌려준 효심에 상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딸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났다.
취직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고 싶어하던 카이저 병원에서.
뉴욕에서 비행기를 나눠 탈 때까지 모르던 소식을
공항에 나를 마중 나온 남편이 말해주니 믿을 수가 없어서 몇번이나 다시 물어보았다.
"뭘 잘 못 안 것 아니야? 파트타임 일 시작한다는 것 말이지?" 
 
내가 뉴욕에서 피닉스로 오는 새에 그런 일이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그렇게 빠른 응답이 기다릴 줄이야…
제일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 주신 응답이었다.

나는 확신한다.
효도하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더 받는다고..
넷 중에 제일 전화도 자주 하고 아빠를 챙기는 아이인데
그 딸 아이를 축복하시고 상을 주시기 시작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엄마, 이제는 어디가 가고 싶어?"
다음에는 자기 부부와 함께 홍콩에 아빠랑 모두 같이 가자고 말하는 딸...
내 엄마에게는 그런 말을  한번도 물어 보지 못한
주변 머리 없고 시시한 내게
이렇게 귀한 딸들을 주셔서 호사 시켜주시는 주님께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이글을 써보았다.
(2007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