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글 수 1,334
엄마 어디가 가고 싶어?
10 년 전인가 큰 딸이 생전 처음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파리행 비행기 표를 사와서 둘이서만 일주일간 다녀 왔던 적이 있었다.
근근히 살 뿐, 여유가 없어 여행은 잘 못 챙기는 엄마를
미안히 여기는 딸들이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
나의 오래된 꿈…로마 여행이 35년 만에 실현된 것도
둘째 딸의 착한 마음 때문이었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외국 여행은 당분간 힘들거라고,
"엄마, 어디가 가고 싶어? 시간이 있는 김에 함께 다녀 오자."는 것이었다.
다녀와서 돈을 벌어 비용을 갚을테니 걱정말고 같이 가자고..
결혼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그래도 괜찮으냐고 했더니 새 신랑이 허락했단다.
그애 언니는 "결혼한지 넉달 밖에 안된 새신랑을 놔두고 어딜 가느냐?"
나 같으면 절대로 그렇게 안한다."고 야단했지만 나는 모르는체 하기로 하였다.
일과 공부를 둘다 하느라 바쁜 그에게 시간을 주자하는 생각과
남편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남편은 바닷가에서 어슬렁 거리는 일이나 산을 타고 걷는 것이나 좋아할까
미술관 박물관 다니며 공부 비슷하는 여행은 딱 질색이다.
그런 것은 골치가 아플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나와 함께 가줄것은 꿈도 안 꾸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내가 많이 가고 싶어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옳다 됐다" 하고 딸하고 가라고 밀어 주는 것이었다.
요즈음 딸은 레지던트 졸업 후 결혼과 신혼여행, 전문의 시험을 핑게로 5 달을 쉬고 있어서
수중에 돈이 다 떨어진 상태였다.
비행기 표를 외상으로 사놓고 다녀 와서 돈을 벌어 비용을 갚으려면
그리고 학자금 떼빚을 갚으려면
직장을 구해 놓고 가야하는 것이 큰 과제 였다.
딸은 10월 전문의 시험이 끝나기 전부터 로마로 떠나기 전까지
열심히 인터뷰를 하고 돌아 다녔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경기가 나빠 병원도 닫는 데가 많아 졌다고 하고
더구나 샌프란시스코는 우수한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 있어서
직장 구하기가 다른데 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들었다.
조급해진 마음으로 하다못해 파트타임 일이라도 잡아 놓고 떠나려고,
떠나는 그날, 한 곳인지 약속의 멜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들어보니 자기 집에서 2 시간이나 떨어진 곳이란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제공하는 호텔에서 자며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맙소사!
나는 사흘 나중에서야 듣고 절대로 그리하면 안된다고 말렸다.
신혼에 그 무슨 엉뚱한 발상인지…
그래서 딸은 그 일을 캔슬하고 좀 더 일이 적은
가까운 곳의 파트타임 일을 택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먼 직장에서 벌써 환자 스케줄을 다 짜 놓았다고 난리다.
사흘만에 캔슬이 안된다니 이게 무슨일인가 …
이미 또 다른 곳에 일하러 간다고 멜을 보냈는데
양쪽에 누가 되고 차질이 생길까봐 딸은 전전 긍긍이었다.
그러다가 걱정을 떨치기 힘든지, “엄마 기도하자” 하며 손을 잡는다.
어릴 때보다 믿음이 떨어졌는가 늘 염려하지만 기도하자고 해서 참 기뻣다.
나는 “이 일은 시작 조차 안했으니까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주며
"파트 타임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진짜 원하는 풀 타임 일…
카이저 병원의 일을 주시도록 기도하자” 하고
그렇게 함께 기도하고 잠을 잤다.
다음 날로 먼 직장 건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무튼 직장도 없이 다니니 짠 여행을 할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얼마나 유로화가 강세인지 100 불이면 60 유로 밖에 안쳐줘서
그까짓 여행 기념품도 선물도 사지 않기로 했다.
오직 하나, 케미오 브로치를 건졌다. 늘 갖고 싶었던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구경할 곳은 될수 있는대로 빼놓지 않았고,
나폴리까지 기차 타고 가서 책에 나온 피짜를 먹었고,
물어 가며 잘한다는 집의 이탤리안 음식과
젤라도라고 부르는 아이스크림은 실컷 먹었다.
딸이랑 마음이 척척 맞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옛날 대학으로 떠난 후 이처럼 오래 붙어서 다닌 적은 정말 오랜만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 사촌들, 친구들....모든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딸과 함께 자라난 아이들 이야기도 하며
십년 이상의 회포를 단번에 다 풀수 있었다.
겨울이라도 여행객은 아주 많았다.
여름에는 얼마나 더 많을까, 차라리 겨울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이 되었다.
딸은 여행가이드 책 하나를 열심히 읽어가며
중요한 곳은 빼놓지 않고 설명까지 해줘가며 구경을 시켜주었다.
전에 자기는 가본 적이 있다는 플로렌스가 아주 아름다운 곳이라고
기차를 타고 가서 이틀을 묵기까지 했다.
총 경비를 나중 계산해보니 7 박 8 일, 둘이서
비행기 값까지 합하여 3000 불보다 조금 덜 썼다.
팩캐지 여행이었다면 한 사람이 들 비용으로 둘이 한셈이니
얼마나 싸구려 여행이었냐만
겨울이기 때문에 모든 호텔이 반값인 것이 도움이 조금 되었다.
알뜰 부리는 싸구려라 더 재미있는 것도 있고..
돌아오는 날은 비행기가 캔슬이 되었다.
그런 일은 여러번 비행기를 타도 처음이었는데
조종실 유리창에 금이 갔다는 것이니 이해 할만도 했다.
많은 혼란과 지체후에 다른 비행기편으로 연결을 시켜주어서
큰 지장이 없이 돌아 올수 있었다.
그 와중에 딸은 피닉스를 들러 아빠 생일잔치도 보고 가려던 계획을 바꿔
샌프란시스코로 곧장 갈수 밖에 없게 되었다.
전화를 날마다 해서 알았지만 새 신랑이 사나흘이 지나가면서 견디기 힘들어 하던 터에
오히려 아주 잘된 일이다 싶었다.
이틀이나 더 빨리 도착하게 되었으니 신랑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아까운 새 색시를 장모에게 빌려준 효심에 상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딸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났다.
취직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고 싶어하던 카이저 병원에서.
뉴욕에서 비행기를 나눠 탈 때까지 모르던 소식을
공항에 나를 마중 나온 남편이 말해주니 믿을 수가 없어서 몇번이나 다시 물어보았다.
"뭘 잘 못 안 것 아니야? 파트타임 일 시작한다는 것 말이지?"
내가 뉴욕에서 피닉스로 오는 새에 그런 일이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그렇게 빠른 응답이 기다릴 줄이야…
제일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 주신 응답이었다.
나는 확신한다.
효도하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더 받는다고..
넷 중에 제일 전화도 자주 하고 아빠를 챙기는 아이인데
그 딸 아이를 축복하시고 상을 주시기 시작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엄마, 이제는 어디가 가고 싶어?"
다음에는 자기 부부와 함께 홍콩에 아빠랑 모두 같이 가자고 말하는 딸...
내 엄마에게는 그런 말을 한번도 물어 보지 못한
주변 머리 없고 시시한 내게
이렇게 귀한 딸들을 주셔서 호사 시켜주시는 주님께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이글을 써보았다.
(2007년 12월)
10 년 전인가 큰 딸이 생전 처음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파리행 비행기 표를 사와서 둘이서만 일주일간 다녀 왔던 적이 있었다.
근근히 살 뿐, 여유가 없어 여행은 잘 못 챙기는 엄마를
미안히 여기는 딸들이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
나의 오래된 꿈…로마 여행이 35년 만에 실현된 것도
둘째 딸의 착한 마음 때문이었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외국 여행은 당분간 힘들거라고,
"엄마, 어디가 가고 싶어? 시간이 있는 김에 함께 다녀 오자."는 것이었다.
다녀와서 돈을 벌어 비용을 갚을테니 걱정말고 같이 가자고..
결혼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그래도 괜찮으냐고 했더니 새 신랑이 허락했단다.
그애 언니는 "결혼한지 넉달 밖에 안된 새신랑을 놔두고 어딜 가느냐?"
나 같으면 절대로 그렇게 안한다."고 야단했지만 나는 모르는체 하기로 하였다.
일과 공부를 둘다 하느라 바쁜 그에게 시간을 주자하는 생각과
남편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남편은 바닷가에서 어슬렁 거리는 일이나 산을 타고 걷는 것이나 좋아할까
미술관 박물관 다니며 공부 비슷하는 여행은 딱 질색이다.
그런 것은 골치가 아플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나와 함께 가줄것은 꿈도 안 꾸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내가 많이 가고 싶어하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옳다 됐다" 하고 딸하고 가라고 밀어 주는 것이었다.
요즈음 딸은 레지던트 졸업 후 결혼과 신혼여행, 전문의 시험을 핑게로 5 달을 쉬고 있어서
수중에 돈이 다 떨어진 상태였다.
비행기 표를 외상으로 사놓고 다녀 와서 돈을 벌어 비용을 갚으려면
그리고 학자금 떼빚을 갚으려면
직장을 구해 놓고 가야하는 것이 큰 과제 였다.
딸은 10월 전문의 시험이 끝나기 전부터 로마로 떠나기 전까지
열심히 인터뷰를 하고 돌아 다녔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경기가 나빠 병원도 닫는 데가 많아 졌다고 하고
더구나 샌프란시스코는 우수한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 있어서
직장 구하기가 다른데 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들었다.
조급해진 마음으로 하다못해 파트타임 일이라도 잡아 놓고 떠나려고,
떠나는 그날, 한 곳인지 약속의 멜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들어보니 자기 집에서 2 시간이나 떨어진 곳이란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제공하는 호텔에서 자며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맙소사!
나는 사흘 나중에서야 듣고 절대로 그리하면 안된다고 말렸다.
신혼에 그 무슨 엉뚱한 발상인지…
그래서 딸은 그 일을 캔슬하고 좀 더 일이 적은
가까운 곳의 파트타임 일을 택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먼 직장에서 벌써 환자 스케줄을 다 짜 놓았다고 난리다.
사흘만에 캔슬이 안된다니 이게 무슨일인가 …
이미 또 다른 곳에 일하러 간다고 멜을 보냈는데
양쪽에 누가 되고 차질이 생길까봐 딸은 전전 긍긍이었다.
그러다가 걱정을 떨치기 힘든지, “엄마 기도하자” 하며 손을 잡는다.
어릴 때보다 믿음이 떨어졌는가 늘 염려하지만 기도하자고 해서 참 기뻣다.
나는 “이 일은 시작 조차 안했으니까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주며
"파트 타임이 문제가 아니라 네가 진짜 원하는 풀 타임 일…
카이저 병원의 일을 주시도록 기도하자” 하고
그렇게 함께 기도하고 잠을 잤다.
다음 날로 먼 직장 건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아무튼 직장도 없이 다니니 짠 여행을 할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얼마나 유로화가 강세인지 100 불이면 60 유로 밖에 안쳐줘서
그까짓 여행 기념품도 선물도 사지 않기로 했다.
오직 하나, 케미오 브로치를 건졌다. 늘 갖고 싶었던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구경할 곳은 될수 있는대로 빼놓지 않았고,
나폴리까지 기차 타고 가서 책에 나온 피짜를 먹었고,
물어 가며 잘한다는 집의 이탤리안 음식과
젤라도라고 부르는 아이스크림은 실컷 먹었다.
딸이랑 마음이 척척 맞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옛날 대학으로 떠난 후 이처럼 오래 붙어서 다닌 적은 정말 오랜만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 사촌들, 친구들....모든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딸과 함께 자라난 아이들 이야기도 하며
십년 이상의 회포를 단번에 다 풀수 있었다.
겨울이라도 여행객은 아주 많았다.
여름에는 얼마나 더 많을까, 차라리 겨울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이 되었다.
딸은 여행가이드 책 하나를 열심히 읽어가며
중요한 곳은 빼놓지 않고 설명까지 해줘가며 구경을 시켜주었다.
전에 자기는 가본 적이 있다는 플로렌스가 아주 아름다운 곳이라고
기차를 타고 가서 이틀을 묵기까지 했다.
총 경비를 나중 계산해보니 7 박 8 일, 둘이서
비행기 값까지 합하여 3000 불보다 조금 덜 썼다.
팩캐지 여행이었다면 한 사람이 들 비용으로 둘이 한셈이니
얼마나 싸구려 여행이었냐만
겨울이기 때문에 모든 호텔이 반값인 것이 도움이 조금 되었다.
알뜰 부리는 싸구려라 더 재미있는 것도 있고..
돌아오는 날은 비행기가 캔슬이 되었다.
그런 일은 여러번 비행기를 타도 처음이었는데
조종실 유리창에 금이 갔다는 것이니 이해 할만도 했다.
많은 혼란과 지체후에 다른 비행기편으로 연결을 시켜주어서
큰 지장이 없이 돌아 올수 있었다.
그 와중에 딸은 피닉스를 들러 아빠 생일잔치도 보고 가려던 계획을 바꿔
샌프란시스코로 곧장 갈수 밖에 없게 되었다.
전화를 날마다 해서 알았지만 새 신랑이 사나흘이 지나가면서 견디기 힘들어 하던 터에
오히려 아주 잘된 일이다 싶었다.
이틀이나 더 빨리 도착하게 되었으니 신랑이 얼마나 좋아했을까…
아까운 새 색시를 장모에게 빌려준 효심에 상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딸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났다.
취직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고 싶어하던 카이저 병원에서.
뉴욕에서 비행기를 나눠 탈 때까지 모르던 소식을
공항에 나를 마중 나온 남편이 말해주니 믿을 수가 없어서 몇번이나 다시 물어보았다.
"뭘 잘 못 안 것 아니야? 파트타임 일 시작한다는 것 말이지?"
내가 뉴욕에서 피닉스로 오는 새에 그런 일이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그렇게 빠른 응답이 기다릴 줄이야…
제일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 주신 응답이었다.
나는 확신한다.
효도하는 자식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더 받는다고..
넷 중에 제일 전화도 자주 하고 아빠를 챙기는 아이인데
그 딸 아이를 축복하시고 상을 주시기 시작한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엄마, 이제는 어디가 가고 싶어?"
다음에는 자기 부부와 함께 홍콩에 아빠랑 모두 같이 가자고 말하는 딸...
내 엄마에게는 그런 말을 한번도 물어 보지 못한
주변 머리 없고 시시한 내게
이렇게 귀한 딸들을 주셔서 호사 시켜주시는 주님께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이글을 써보았다.
(2007년 12월)
2007.12.11 20:46:19 (*.167.44.10)
앗, 광숙 후배 이시간에 같이 있었네~ 재밌어요.
나는 아직 시차가 적응 안되어 일찍자고
너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어제 올린 글을 수정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수정해도 경선이 글처럼 멋진 글이 되기는 멀었지만 ㅎㅎㅎ
읽어줘서 고맙고 박수쳐줘서 고맙고...
나는 아직 시차가 적응 안되어 일찍자고
너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어제 올린 글을 수정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수정해도 경선이 글처럼 멋진 글이 되기는 멀었지만 ㅎㅎㅎ
읽어줘서 고맙고 박수쳐줘서 고맙고...
2007.12.12 08:52:15 (*.173.16.117)
겨울 딸과의 로마 여행
멋~있~다 인선!
니글을 보니 정말 여름보다는 겨울이 낫겠어.
나는 몇년 전 초가을에 갔다가 인파(그야말로 엄청난 인파였어)에 떠밀려 성베드로성당이던가?
그곳에 있는 그 유명한 피에타도 보지 못하고 왔지 뭐니
로마를 다시 찾아야하는 이유로 남겨두자고 다시 허겁지겁 뛰어가서 보지 않았어.
위의 광숙이처럼 나도 네게 갈채를...(:y)
멋~있~다 인선!
니글을 보니 정말 여름보다는 겨울이 낫겠어.
나는 몇년 전 초가을에 갔다가 인파(그야말로 엄청난 인파였어)에 떠밀려 성베드로성당이던가?
그곳에 있는 그 유명한 피에타도 보지 못하고 왔지 뭐니
로마를 다시 찾아야하는 이유로 남겨두자고 다시 허겁지겁 뛰어가서 보지 않았어.
위의 광숙이처럼 나도 네게 갈채를...(:y)
2007.12.12 10:50:36 (*.167.44.10)
경선아 그래... 좋은 것은 아껴두는 법이니까
다시 찾아야하는 이유로 괜찮네.
나도 플로렌스 우피찌 미술관에서 유명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못보고 나왔는데 다음에 또 오자고 하고 다시 찾아 가지 않았어.
다리도 너무 아프고...
그런데 요즈음 순호 어디갔니?
다시 찾아야하는 이유로 괜찮네.
나도 플로렌스 우피찌 미술관에서 유명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못보고 나왔는데 다음에 또 오자고 하고 다시 찾아 가지 않았어.
다리도 너무 아프고...
그런데 요즈음 순호 어디갔니?
2007.12.12 10:57:58 (*.59.68.212)
인선이 언니!
안녕하세요.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축하드려요.
그리고 카이저 병원은 우리 8기 최상희가 내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암튼 내내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g)(:g)(:g)
안녕하세요.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축하드려요.
그리고 카이저 병원은 우리 8기 최상희가 내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암튼 내내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g)(:g)(:g)
2007.12.12 20:07:40 (*.53.186.144)
인선언니!!!
너무 부러워요!!!
아름다운여행을 따님과같이 하셨으니 더 부럽네요 !!
위에글을 읽으면서 카이저 병원의 최상희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부지런한 세숙이가 벌써 소식을 전하였네요 !!
따님이 근무하고싶어하는병원에 근무할수있게되서 축하드립니다 !!
선배님께서 올려주시는글은 매번 아주 잘읽고 있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함께 2008년 새해에도 만사형통하시기 기원합니다
너무 부러워요!!!
아름다운여행을 따님과같이 하셨으니 더 부럽네요 !!
위에글을 읽으면서 카이저 병원의 최상희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부지런한 세숙이가 벌써 소식을 전하였네요 !!
따님이 근무하고싶어하는병원에 근무할수있게되서 축하드립니다 !!
선배님께서 올려주시는글은 매번 아주 잘읽고 있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함께 2008년 새해에도 만사형통하시기 기원합니다
2007.12.13 07:32:53 (*.167.45.134)
세숙후배 처음인데...이름이 예쁘네요.
상희 후배가 일하는 카이저는 어디있는 병원인지요?
아마 동네가 다르면 다른 곳이지 싶어요. 우리 딸은 산타 클라라라고 하던데...
우리 후배중에 내과 의사가 있다니 참 좋네요.
가까우면 다니면 좋을텐데...
상희 후배가 일하는 카이저는 어디있는 병원인지요?
아마 동네가 다르면 다른 곳이지 싶어요. 우리 딸은 산타 클라라라고 하던데...
우리 후배중에 내과 의사가 있다니 참 좋네요.
가까우면 다니면 좋을텐데...
2007.12.13 07:35:55 (*.167.45.134)
자미후배...이름도 예뻐요.
똑같은 생각을 했군요.
같은 근무지면 참 좋을텐데... 어딘지 좀 알아봐요.
후배님들이 글을 읽어주고 댓글도 달아주고 오늘 참 기분이
많이 좋네요.
자주 만납시다. 성탄과 새해 뜻깊은 날들이 되기를!
똑같은 생각을 했군요.
같은 근무지면 참 좋을텐데... 어딘지 좀 알아봐요.
후배님들이 글을 읽어주고 댓글도 달아주고 오늘 참 기분이
많이 좋네요.
자주 만납시다. 성탄과 새해 뜻깊은 날들이 되기를!
2007.12.13 08:03:58 (*.133.164.104)
인선아~!
한동안 안보이더니 딸과 함께 여행다녀왔구나?
딸과의 여행은 참 나즉하면서도 독특한 행복이 샘솟더라.
나도 9월에 딸과 함께 중국에 다녀왔단다.
그때 썼던것 올려볼께.....
<딸과 함께>
딸과 함께 중국에 다녀왔다.
1년간 휴직하는 동안 매일 애기하고 지내니
자기도 답답한지 실실 일을 벌린다.
난 혼자서도 일을 잘벌리니 친구 하나달고
슬그머니 떠나려 했는데 찰싹 달라붙는다.
나혼자 같으면 한 일주일짜리 일벌리려고 했는데
딸이 따라 붙으니 애기 때문에 널널하게 다녀 올순 없고
할수 없이 3박4일 짜리로 낙착되었다 .
인터넷을 뒤져 최대한 비싼 여행사와 똑같은 코스로
싼 여행사를 찾았고 호텔이야 뭐 아무러믄 워떠랴~!
작은 여행사 10명가는 일행이고 299,000짜리로...
딸이 내준다니 좀 비싼걸로 가도 되는데
고거이가 또 그렇게 되질 않는다.
자식밥은 서서 먹는다더니...
황공무지해서 그곳 경비는 내가 다쓰기로 했다.
이러구러 우리는 떠났다.
그것도 사위가 노는 토,일 껴서...
하루만 연차내면 애기를 돌볼 수 있으니깐~
9월8일(토)
따로 가방을 갖고 가면 편한데 딸네가 이사하면서
함받고 신혼여행 갖고 갔던 가방을 잃었다.
그러니 큰가방에 두사람 짐을 쌀 수 밖에...
둘이 씩씩 밀고 끌고 BUS타고 가서 공항3층에서 팀을 만났다.
만만디로 수속하고 면세점을 들어가니 시간이 30분 밖에 안남았다.
달리기를 하면서 쌕하나 잡고 화장품 하나 건져서
다른건 보지도 못하고 뱅기에 올라타뻐렸다.
기내식 한번 먹구 커피한잔 마시니 벌써 항주에 도착했다.
황산으로 직접가는 뱅기도 있지만 기왕이면 중국의 산야도 볼 겸
항주에서 내려 3시간 버스로 달리는 코스로 택했다.
첫날 버스 자리가 삼박사일을 좌우하니 노인네들이 계신데
철판깔고 먼저 뛰어 올라가 둘째칸에 앉았다.
어디든지 앞자리는 가이더 자리이니까....
노인네 두분은 가이더 자리인지 모르고 얼른
앞자리에 앉으셨다가 맨 뒷자리로 다시 옮기셨다.
내가 일어 나고 싶었으나 워낙 멀미를 하니 어쩔수 없이
둘째칸에 앉아 갈수 밖에 없었다.
항주에서 황산가는길은 아주 신나게 잘 뚫려 있었다.
주위 경치도 좋고 차도 없어 뉘엿 해가 지고 나니
산적이라도 나타나면?
아프카니스탄 처럼 탈레반 같은 무리들이 나타나면?
은근히 겁도 나고 휴게소 화장실도 얼마나 크고
사람도 없는지 어둑어둑한데 그동넨 불도 안킨다.
거리에 사람은 많으나 불을 안켜 몹시 어두웠다.
황산에 늦게 도착해 저녁을 먼저 먹고 호텔에 들었다.
9월9일 일요일
이른 아침을 먹고 버스를 한시간쯤 타고가니 웅장한 산세가 보인다.
오기전에 얼마나 인터넷으로 공부를 많이 했는지
언제 한번 와봤던것 처럼 친근하다.
입구에 대나무로 그늘이 져있고
케이블카를 타려니 한참 기다려야 할것 같다고
VIP용 케이블카로 단숨에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안개가 자욱해 멀리는 잘 안보이고
비도 아니고 눅눅한것이 우비 입기도 뭣하고
좀 찝찌부리 하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좀 가슴이 답답했다.
이곳은 해발 1700고지 이므로 숨찰 걱정은 안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한숨쉬고 주위 경치도 보면서 올라가고 싶은데
누가 따라 오는지 기급사팔을 하고 가이더가 데리고 올라간다.
제일 앞에서 시작했으나 점점 뒤쳐져 꼬래비가 되었다.
난 원래 올라갈 땐 아주 천천히 걷는다.
숨도 차고 각자 자기 체질대로 걷는것이므로 절대 무리 하지 않는다.
아니 근데 저기 좀 나이 들어 보이는 할미들은 워째 저렇게 날라들 가시는지....
우리 딸이 쪽팔린다고 내 배낭을 짊어 지고 걷는다.
다섯걸음 걷고 쉬고 다섯걸음 걷고 쉬고 이러니 내가 가서 합류하면
내빼고....씩씩대고 합류하면 또 내빼고...
경치고 뭐고 따라 붙느라고 정신이 없다.
가이더가 뭐...뭐...뭐 이러면서 설명하는데
좀 알아들을 만한 거리에 가면 벌써 끝내고 움직인다.
에고~에고~ 돈많이 벌어서 혼자 뎃구 다니는 가이더랑 오던지 해야지
갸 꽁지만 보다가 시간 다 갔다.
난 첨엔 서해대협곡 트레킹을 하려 했다.
근데 떠나기 한달쯤 전에 발을 삐었다.
그러니 한동안 걷기 운동도 못했고
숨쉬기 운동만 했으니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몸이 얼마나
무거웠을 것인가.
할수 없이 깊은 산은 포기하고 그저 산 등성이 한바퀴
도는 코스인데도 이렇게 숨이 찼다.
그 와중에 화장실은 왜 그리 자주 가는지...
나도 날 잘 모르것다. ::(
그들은 무섭다.
그 높은 곳에 돌을 날라 돌계단을 쌓았다.
그러니 암만 사람이 많이 올라와도 흙이 무너지지 않는다.
군데군데 공안원 같은 사람들이 지키고
짐나르는 사람들은 그짐을 긴장대를 이용해 나른다.
아름다운 경치보다 주위가 너무 잘 정돈 되어 있어
앞사람 꽁지 따라 다니다가 뭘 봤는지 모르것다
종일 오르락 내리락 숨을 껄떡대며 돌아다녔다.
한바퀴 휘 돌고 서해대협곡 입구까지 가는데
머릿속에서 꽝꽝 소리가 난다.
내 용량은 넘어선 듯 싶다.
니덜 다녀 오라하고 경치 좋은 길목에 주저앉아
배낭을 뒤져 귤,밤,양갱,쵸코렛,사탕,....
닥치는대로 씹어 삼켰다.
잘못하다간 신문에 나게 생겨서 내가 나를 중지 시켰다.
앞에 가시는 인간님들은 인간도 아녀~! 이러면서...ㅎ
퍼질러 앉아 한참 쉬고 나니 그들이 돌아온다.
무지 좋았다나?
기려~! 나도 무쟈게 맛있는것 많이 묵어서 기운난다.U~E~C~!
다시 케이블카를 VIP쪽으로 내려와 비취계곡으로 간다.
(기냥 호텔로나 가지~!)
중국영화<와호장룡> 촬영지라고 들썩거리는데
가보니 정말 계곡물은 비취색이었다.
일행이 발을 씻으려고 신을 벗으니 공안원이 말리더란다.
얼마나 관리들을 하는지 깨끗하긴 하나 지키는 눈이 많아 무섭기도 했다.
거기까진 2K정도 걷는데 거의 평지 수준이라 힘들지 않았다.
이상 야리꾸리한 음식으로 저녁을 먹는데
도저히 넘길수 없어 갖고 간 햇반에 김싸서 먹었다.
9월10일 월요일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항주로 넘어간다.
올때 깜깜해져서 못 보던 곳을 다시 자세히 보며 지나갔다.
도로도 넓고 깨끗하나 차가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새로 닦은 고속도로란다.
깊은 시골을 지날 땐 우리나라 초가집 처럼 무너져 가는듯한 집들이 많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인도보다 많이 富해 보인다.
새로 지은 집들도 많다.
그곳은 집들이 작은 연립같다.
3층으로 되어 있고 한층에 문이 서너개 씩 있는것 으로 봐서
몇집 씩 같이 지내는것 같다.
항주에 도착해 西湖에 들렀다.
날씨가 좀 덥고 사람도 많다.
넓은 호수에 보트가 배터리로 가는것이라
조용하면서도 고즈넉하다.
공해때문에 많이 애쓰는 것 같다.
이점은 우리도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 한강 처럼 사람이 주위에 무지 많다.
가이더 꽁지 놓칠까봐 주위 경치보기가 겁났다.
가이더가 西湖에 대해 뭐라구 뭐라구 설명 해줬는데
난 원래 재미 없는건 잘 안듣는 습관이 있어
왜 생긴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인공호수 인것 만은 사실인것 같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내가 갖고간 단무지와 깻잎이 인기였다.
믹스커피도 갖고 가서 계속 보온병에
커피 담아 갖고 다니며 홀짝대고
생수도 20병 갖고 가서 물도 고프지 않았다.
짐은 많았지만 일전에 인도 갈 때
다니면서 물을 사먹으니 비싸기도 했지만
물맛이 션치 않아 좀 고생 스러웠다.
배아플까봐 무척 조심하며 다녀 몸은 좋았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식식대고 쫒아다니느라 딸 하고 진솔한 대화도 못해
좀 미진했는데 마침 둘이 똑같이 잠을 설쳐 밤을 새고 얘기했다.
어릴 때 더 큰사랑을 못해준 것에 대한 나의 후회에
딸은 엄마의 사랑은 넘치도록 받았다고 응수했다.
다만 엄마와 잠깐 떨어져 있을 때 늘 배가 고팠었다고....
아~! 가슴이야
여행의 白眉는 이것 이었다.
난 딸을 꼭 끼어 안았다.
널 잠깐이라도 배고프게 해서 미안했다고....
그러나 배불렀으면 지금 보다 더 뚱뚱했을꺼라고~하며
나를 달랬다.
9월11일 화요일
항주에서 뱅기타고 샌드위치 한쪽 먹고 커피 한잔 마시니
인천공항이다.
딸은 시댁으로 애데리러 가고 난 혼자 반겨주는 사람 없는 내집으로 돌아왔다.
사돈 어른들께선 버스 정류장까지 애 데리고
마중 나오시고 집에 데려가 냉면 만들어 먹이시고
분당 집에 까지 데려다 주시곤 자는 애안고 집에 까지 올려다 주셨다.
하~! 자기 팔자대로 사는거지 뭐~!!!(x23)
에고~! 내년 북유럽 가는 새끼줄이나 꼬아보자.(x9)
한동안 안보이더니 딸과 함께 여행다녀왔구나?
딸과의 여행은 참 나즉하면서도 독특한 행복이 샘솟더라.
나도 9월에 딸과 함께 중국에 다녀왔단다.
그때 썼던것 올려볼께.....
<딸과 함께>
딸과 함께 중국에 다녀왔다.
1년간 휴직하는 동안 매일 애기하고 지내니
자기도 답답한지 실실 일을 벌린다.
난 혼자서도 일을 잘벌리니 친구 하나달고
슬그머니 떠나려 했는데 찰싹 달라붙는다.
나혼자 같으면 한 일주일짜리 일벌리려고 했는데
딸이 따라 붙으니 애기 때문에 널널하게 다녀 올순 없고
할수 없이 3박4일 짜리로 낙착되었다 .
인터넷을 뒤져 최대한 비싼 여행사와 똑같은 코스로
싼 여행사를 찾았고 호텔이야 뭐 아무러믄 워떠랴~!
작은 여행사 10명가는 일행이고 299,000짜리로...
딸이 내준다니 좀 비싼걸로 가도 되는데
고거이가 또 그렇게 되질 않는다.
자식밥은 서서 먹는다더니...
황공무지해서 그곳 경비는 내가 다쓰기로 했다.
이러구러 우리는 떠났다.
그것도 사위가 노는 토,일 껴서...
하루만 연차내면 애기를 돌볼 수 있으니깐~
9월8일(토)
따로 가방을 갖고 가면 편한데 딸네가 이사하면서
함받고 신혼여행 갖고 갔던 가방을 잃었다.
그러니 큰가방에 두사람 짐을 쌀 수 밖에...
둘이 씩씩 밀고 끌고 BUS타고 가서 공항3층에서 팀을 만났다.
만만디로 수속하고 면세점을 들어가니 시간이 30분 밖에 안남았다.
달리기를 하면서 쌕하나 잡고 화장품 하나 건져서
다른건 보지도 못하고 뱅기에 올라타뻐렸다.
기내식 한번 먹구 커피한잔 마시니 벌써 항주에 도착했다.
황산으로 직접가는 뱅기도 있지만 기왕이면 중국의 산야도 볼 겸
항주에서 내려 3시간 버스로 달리는 코스로 택했다.
첫날 버스 자리가 삼박사일을 좌우하니 노인네들이 계신데
철판깔고 먼저 뛰어 올라가 둘째칸에 앉았다.
어디든지 앞자리는 가이더 자리이니까....
노인네 두분은 가이더 자리인지 모르고 얼른
앞자리에 앉으셨다가 맨 뒷자리로 다시 옮기셨다.
내가 일어 나고 싶었으나 워낙 멀미를 하니 어쩔수 없이
둘째칸에 앉아 갈수 밖에 없었다.
항주에서 황산가는길은 아주 신나게 잘 뚫려 있었다.
주위 경치도 좋고 차도 없어 뉘엿 해가 지고 나니
산적이라도 나타나면?
아프카니스탄 처럼 탈레반 같은 무리들이 나타나면?
은근히 겁도 나고 휴게소 화장실도 얼마나 크고
사람도 없는지 어둑어둑한데 그동넨 불도 안킨다.
거리에 사람은 많으나 불을 안켜 몹시 어두웠다.
황산에 늦게 도착해 저녁을 먼저 먹고 호텔에 들었다.
9월9일 일요일
이른 아침을 먹고 버스를 한시간쯤 타고가니 웅장한 산세가 보인다.
오기전에 얼마나 인터넷으로 공부를 많이 했는지
언제 한번 와봤던것 처럼 친근하다.
입구에 대나무로 그늘이 져있고
케이블카를 타려니 한참 기다려야 할것 같다고
VIP용 케이블카로 단숨에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은 안개가 자욱해 멀리는 잘 안보이고
비도 아니고 눅눅한것이 우비 입기도 뭣하고
좀 찝찌부리 하였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좀 가슴이 답답했다.
이곳은 해발 1700고지 이므로 숨찰 걱정은 안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한숨쉬고 주위 경치도 보면서 올라가고 싶은데
누가 따라 오는지 기급사팔을 하고 가이더가 데리고 올라간다.
제일 앞에서 시작했으나 점점 뒤쳐져 꼬래비가 되었다.
난 원래 올라갈 땐 아주 천천히 걷는다.
숨도 차고 각자 자기 체질대로 걷는것이므로 절대 무리 하지 않는다.
아니 근데 저기 좀 나이 들어 보이는 할미들은 워째 저렇게 날라들 가시는지....
우리 딸이 쪽팔린다고 내 배낭을 짊어 지고 걷는다.
다섯걸음 걷고 쉬고 다섯걸음 걷고 쉬고 이러니 내가 가서 합류하면
내빼고....씩씩대고 합류하면 또 내빼고...
경치고 뭐고 따라 붙느라고 정신이 없다.
가이더가 뭐...뭐...뭐 이러면서 설명하는데
좀 알아들을 만한 거리에 가면 벌써 끝내고 움직인다.
에고~에고~ 돈많이 벌어서 혼자 뎃구 다니는 가이더랑 오던지 해야지
갸 꽁지만 보다가 시간 다 갔다.
난 첨엔 서해대협곡 트레킹을 하려 했다.
근데 떠나기 한달쯤 전에 발을 삐었다.
그러니 한동안 걷기 운동도 못했고
숨쉬기 운동만 했으니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몸이 얼마나
무거웠을 것인가.
할수 없이 깊은 산은 포기하고 그저 산 등성이 한바퀴
도는 코스인데도 이렇게 숨이 찼다.
그 와중에 화장실은 왜 그리 자주 가는지...
나도 날 잘 모르것다. ::(
그들은 무섭다.
그 높은 곳에 돌을 날라 돌계단을 쌓았다.
그러니 암만 사람이 많이 올라와도 흙이 무너지지 않는다.
군데군데 공안원 같은 사람들이 지키고
짐나르는 사람들은 그짐을 긴장대를 이용해 나른다.
아름다운 경치보다 주위가 너무 잘 정돈 되어 있어
앞사람 꽁지 따라 다니다가 뭘 봤는지 모르것다
종일 오르락 내리락 숨을 껄떡대며 돌아다녔다.
한바퀴 휘 돌고 서해대협곡 입구까지 가는데
머릿속에서 꽝꽝 소리가 난다.
내 용량은 넘어선 듯 싶다.
니덜 다녀 오라하고 경치 좋은 길목에 주저앉아
배낭을 뒤져 귤,밤,양갱,쵸코렛,사탕,....
닥치는대로 씹어 삼켰다.
잘못하다간 신문에 나게 생겨서 내가 나를 중지 시켰다.
앞에 가시는 인간님들은 인간도 아녀~! 이러면서...ㅎ
퍼질러 앉아 한참 쉬고 나니 그들이 돌아온다.
무지 좋았다나?
기려~! 나도 무쟈게 맛있는것 많이 묵어서 기운난다.U~E~C~!
다시 케이블카를 VIP쪽으로 내려와 비취계곡으로 간다.
(기냥 호텔로나 가지~!)
중국영화<와호장룡> 촬영지라고 들썩거리는데
가보니 정말 계곡물은 비취색이었다.
일행이 발을 씻으려고 신을 벗으니 공안원이 말리더란다.
얼마나 관리들을 하는지 깨끗하긴 하나 지키는 눈이 많아 무섭기도 했다.
거기까진 2K정도 걷는데 거의 평지 수준이라 힘들지 않았다.
이상 야리꾸리한 음식으로 저녁을 먹는데
도저히 넘길수 없어 갖고 간 햇반에 김싸서 먹었다.
9월10일 월요일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항주로 넘어간다.
올때 깜깜해져서 못 보던 곳을 다시 자세히 보며 지나갔다.
도로도 넓고 깨끗하나 차가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새로 닦은 고속도로란다.
깊은 시골을 지날 땐 우리나라 초가집 처럼 무너져 가는듯한 집들이 많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인도보다 많이 富해 보인다.
새로 지은 집들도 많다.
그곳은 집들이 작은 연립같다.
3층으로 되어 있고 한층에 문이 서너개 씩 있는것 으로 봐서
몇집 씩 같이 지내는것 같다.
항주에 도착해 西湖에 들렀다.
날씨가 좀 덥고 사람도 많다.
넓은 호수에 보트가 배터리로 가는것이라
조용하면서도 고즈넉하다.
공해때문에 많이 애쓰는 것 같다.
이점은 우리도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 한강 처럼 사람이 주위에 무지 많다.
가이더 꽁지 놓칠까봐 주위 경치보기가 겁났다.
가이더가 西湖에 대해 뭐라구 뭐라구 설명 해줬는데
난 원래 재미 없는건 잘 안듣는 습관이 있어
왜 생긴건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인공호수 인것 만은 사실인것 같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내가 갖고간 단무지와 깻잎이 인기였다.
믹스커피도 갖고 가서 계속 보온병에
커피 담아 갖고 다니며 홀짝대고
생수도 20병 갖고 가서 물도 고프지 않았다.
짐은 많았지만 일전에 인도 갈 때
다니면서 물을 사먹으니 비싸기도 했지만
물맛이 션치 않아 좀 고생 스러웠다.
배아플까봐 무척 조심하며 다녀 몸은 좋았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식식대고 쫒아다니느라 딸 하고 진솔한 대화도 못해
좀 미진했는데 마침 둘이 똑같이 잠을 설쳐 밤을 새고 얘기했다.
어릴 때 더 큰사랑을 못해준 것에 대한 나의 후회에
딸은 엄마의 사랑은 넘치도록 받았다고 응수했다.
다만 엄마와 잠깐 떨어져 있을 때 늘 배가 고팠었다고....
아~! 가슴이야
여행의 白眉는 이것 이었다.
난 딸을 꼭 끼어 안았다.
널 잠깐이라도 배고프게 해서 미안했다고....
그러나 배불렀으면 지금 보다 더 뚱뚱했을꺼라고~하며
나를 달랬다.
9월11일 화요일
항주에서 뱅기타고 샌드위치 한쪽 먹고 커피 한잔 마시니
인천공항이다.
딸은 시댁으로 애데리러 가고 난 혼자 반겨주는 사람 없는 내집으로 돌아왔다.
사돈 어른들께선 버스 정류장까지 애 데리고
마중 나오시고 집에 데려가 냉면 만들어 먹이시고
분당 집에 까지 데려다 주시곤 자는 애안고 집에 까지 올려다 주셨다.
하~! 자기 팔자대로 사는거지 뭐~!!!(x23)
에고~! 내년 북유럽 가는 새끼줄이나 꼬아보자.(x9)
싸구려(?)여행이
따님과의 함께였으니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효도하는 따님이었기에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카이저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으니,
더 이상의 바램이 뭔 필요 있겠어요?
언니, 박수 보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