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공항에서 차를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행 중 기분을 제일 가까이 음미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국민학교 3.4 학년 무렵
우리 큰언니는 우리집에서 버스를 갈아타며 서너시간 가야하는 산촌에 살고 있었습니다.

여름방학 내내 그곳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떠나는 날 언니와 헤어지기 싫어 슬프고 가슴 에리던 기억,
집으로 돌아온 후 집이 낯설어 서먹한 기분을 추스리는 게 매우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雪國에 빠졌다가 오니 이곳이 낯선 풍경이 되었기때문이었을까요.

이번 여행의 백미 눈... 눈보라,눈덮힌 들판,수정 고드름
온천,샤미센 소리,쓰가루 해협,사무라이 역사,엔가,그리고 다자이 오사무의 生家가 먼저 떠오릅니다.



*雪國

비행기에서 아키다 공항 근처를 내려다보니 온통 눈덮힌 山野
아! 소리가 절로 났습니다.

공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내 체중으로도 감당할 수없는 거센 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끌고 가던 가방을 급히 드는 모드로 바꿔서 겨우 균형을 맞춰 걸을 수 있었지요.

우리나라 최근에 이렇게 많이 온 눈을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그곳은 적설량에 끼지도 못할 눈이라는 것을 길 옆에 눈 높이를 재는 막대기를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  보았던 기억속에 저장된 雪景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며칠 뒤 쓰가루 해협을 가는 도중 벌판에 이는 눈보라가 다시 어린 시절을 반추해줬지요.
호텔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도 어릴 적 본 수정 고드름이었구요.
동심이 가장 순수한 마음이라는 공식 때문인지 자꾸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그래서 더 지금의 나이가 무거워지는 슬픔도 이번 여행 중 따라다녔습니다.






*온천

일본 여행하면 흔히 온천을 떠올리는데
눈덥힌 온천장에서 하는 야외 온천욕이 온천의 백미더군요
적당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구고 눈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분...

어느 때의 일본여행보다 온천이 좋다고 느낀 것은 온천을 하면서 바라본  눈 오는 前景 때문이었지요
남편은 직업 때문인지 이제껏 탕 속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었는데
3박 4일 동안 자발적으로 아침 저녁 온천을 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심신에 입힌 옷을 내려놓는 홀가분함이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게 합니다.



*죽음의 미학

어린이로 절대 돌아갈수도 없거니와 아무리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한들 죽음을 염두에 슬쩍 둔다한들
早老症이라고 야단맞지도 않을 나이에 이르렀기 때문인지 S선배님의 강의가 좋았습니다

마침 이라고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일행이 가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집,그도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경우였었구요.
`설국`을 써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다 야스나리도 그런 경우였지요.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이유 세가지, 현실 적응 실패 둘째,자기 삶을 자기 의지로 정리하려는, 또 하나 뭐 있었는데
아...생각이 나지 않네요 ㅎㅎㅎ

일본 사람들은 `할복`하는 방법에 따라 명예의 輕重이 가려진다니 가히 자살문화라 할만합니다.
사족입니다만 이번 여행팀 이름에 문화가 붙어서인지 50대에 마음좋은 아주머니 가이드는
사사건건 문화를 붙이더니 심지어는 운전을 하는 핸들에도 문화를 부치더군요 이름하여 핸들문화ㅎㅎ


*사무라이 역사

사무라이 어원이 싸울아비인 것 정도만 아는 제가 사무라이에 대해서 요약 정리된 강의를 두분 교수님 한테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수십년 전 대망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기억만 희미하게 있었는데 풍신수길에서 명치유신에 이르는 일본역사를
버스를 타고 가며 일본에 산야를 바라보면서 듣는 재미 각별했습니다.

그들 역사의 다양한 인물의 캐릭터를 들으면서
그 시대 우리 역사는 획일적인 단조로움만 우긴 것은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혹은 그들이 `역사 만들기`에 성공한 면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지요.



*쓰가루 해협

그곳을 가면서 `쓰가루`란 단어만 들리는 엔가를 들었는데
우리나라 트로트와 비슷한 음색이지만 가사는 심금을 울리는 것들이라고
H교수님 열강을 하셨지만 일본어를 모르니 모르지요.
알몸으로 눈위에 누우니 눈이 허리를 꼬집는 것 같았다는 가사가 있으면 그건 눈물이겠습니다.

쓰가루 해협에서 멀리 혹가이도가 보였습니다.
혹가이도 하면 `빙점` 아사히가와,오따루,삽뽀로가 떠오릅니다.
그러니 미우라 아야꼬란 작가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미우라 아야꼬도 마가렛 미첼처럼  대표작 `빙점` 이외의 작품은 민망한 것 투성이었지만
우리나이의 여성들은 `빙점`에 빠져든 시절이 있었지요.

해협 밑으론 북해도까지 가는 해저 터널이 있다지요.
1910년대에 착공해서 몇 십년 걸려 만든...일본 토목공사 기술을 세계에 알린 터널이랍니다.



*다자이 오사무

얼마 전에 `산이 있은집 우물이 있는 집`이란 책을 읽었는데
신경숙씨와 츠시마 유코라는 분이 서로 편지를 주고 받은 내용입니다.

일본작가의 아버지가 `다자이 오사무`라고 읽었기 때문에 집에 와서 그 부분을 찾으려니까 쉽게 찾을 수 없지만
아마 맞을겁니다.

작가는 1947년에 태어났고 아버지는 1948년에 자살.
아버지에 대한 영문모를  아픈 상처를 안고 사는 작가의 고백이 마음을 아프게했었는데 바로 그 아버지의 생가를
찾았습니다.

만석군은 될듯한 집안규모,잘생긴 얼굴의 다자이 오사무,동경제대 출신.
명문가 태생,최고 학벌,빼어난 외모를 갖춘 사람이 자살을?
왜? 하다가 그러니까...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실은 다자이 오사무 라는 작가를 처음 들은 것도 `빙점`에서 였으니까
이번 여행은 제대로 연상놀이가 되게 돼 있었습니다.

눈-눈보라-쓰가루-혹가이도-빙점--다자이 오사무-츠시마 유코-죽음-요오꼬(빙점의 주인공으로 자살을 시도)-사무라이-할복-처절한 삶-다시 눈(雪)




*에필로그

버스에서 소감을 말하는 시간에 어느 선배님이 여행의 즐거움 중에는 생각하는 즐거움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요,바삐 뛰어다니며 잡다한 것을 보는 여행은 소위 관광여행이구요
그래서 시간에 강간당하는 여행일 뿐입니다.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히우고 홀로 울리라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우리 가곡의 노랫말이 이번 여행 체험으로 더 심금을 울리게 됐습니다

우리 문화탐방은 이제 죽음의 미학을 생각해보는 경지에 이르렀다하면 너무 과장 내지는 엽기색조일까요?
어찌됐든 어린시절 감정의 깊은 동요를 오랫만에 체험한 시간...

이제 벌써 추억의  시간이 됐으며 또 낯선 시간이 될 그 시간을 즐기게 되어 행복했었구요
인생을 자~알 시마이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