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에서 인숙과 함께 보낸 하루


으악~ 똑 같구나. 나를 보자 인숙이 입에서 튀어나온 첫 말이다.
무엇이? 무엇이 똑 같다는 말인가?
못 본, 몇 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여전히 호리호리 하고, 여전히 선해 보이는 맑은 눈가에 잡히는 주름 몇 개로
우리가 중년의 고개를 훨씬 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본 인숙이도 똑 같았다.
생각 속에 있는 아이일 적의 느낌과 분위기가.

인숙을 생각 하면, 인숙의 대학 초년생(나는 재수생)의 겨울에
인숙의 파란색 코트가 떠오르고, 하얀 스타킹과 끈을 매는 검정색 구두,
메리 홉킨스가 부르는 Those were the Days가 떠오른다.
나는 무슨 옷을 입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길옆에는 내린 눈이 희끗희끗 쌓여있는데
우리는 차가 달리는 도로변으로,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숭의동에서 경동까지 걸었다.
그 뒤에는 아마도, 짐 다방에 갔으리라.

오십하고도 후반에 있는, 아니 턱걸이 하면 육십인 우리는,
날씨 좋은 구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링컨센터 앞에서 만났다.
변하지 않은 인숙의 말버릇, ‘너무나’ “어머 말도 안 돼‘ 이 말을
아직도 너무도 자주 사용해서 웃었다.

어설피 보낸 우리들의 청년기가
향기를 머금고, 바람처럼 기억을 스친다.
박하사탕의 싸함 같은 것이 가슴에 앙금을 남기면서.

친구는 만나면 늘 즐거웠었지.

마찬가지로 지금도 친구를 만나니 즐겁다.
센트럴 파크의 정문을 지나서, 인숙이가 딸에게 부탁해서 알아 낸,
분위기 있는 곳, 음식 맛 좋은 곳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우리는 사람들 틈에 휩싸여 걸었다.
정말 많이 걸으며, 젊은이 들이 좋아하는 Apple 매장,
뉴욕 시립 도서관, 오래 된 성 패트릭 성당, 록펠러 센터, 등 많은 곳을 들렸다.
우리는 Bryant Park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주말의 오후를 즐기는
뉴욕의 다른 사람들처럼 쉬며 앉아서 이야기했다.
도대체 얼마 만에 이렇게 같이 앉아 있는 것인가?

맨하탄의 중심이 되는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를 지날 때는,
옛날 명동거리를 걷는 듯,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녔다.
미국의 다른 도시들은 다운타운의 몇몇 건물을 빼 놓으면 고층 건물이 거의 없다.
처음 미국 왔을 때, 1, 2층의 낮은 집과 건물들을 보고,
미국이 이런 곳인가 하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브로드웨이는 뮤지컬의 본고장답게, 뮤지컬 간판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라이온 킹, 맘마미야, 레미제라블, Wicked 등.
몇 년씩 계속해도 항상 사람은 꽉 찬다.
나도 인숙과 만난, 며칠 뒤에 레미제라블 뮤지컬 한 편을 관람했다.
CBS방송국의 유명한 레트맨의 Late Show 하는 곳에서
사진도 찍으며, 카네기 홀에서의 연주 시간 전까지 쏘다녔다.
인숙이가 나를 위해 카네기 홀에서의 연주회 티켓을 사 놓은 것이다.

저녁식사로 뉴욕피자를 먹었다.
뉴욕에서는 뉴욕피자를 꼭 먹어봐야 한다고, 내가 오기 전에 아들이 그랬다.
스타벅스에서 따뜻한 차 한 씩을 마시고, 카네기 홀로 갔다.
카네기 홀 앞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같은 공간과 높은 계단이 있으리라 상상했었다.
건물에 붙어 있는 포스터가 아니면 알아 볼 수 없으리만치, 화려한 장식도 없이
번화가의 한 복판에 오래되고 품위 있는, 수수한 카네기 홀이 서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연주회장은 열 개도 넘을 것 같았다.

네 명의 여자들이 연주하는, 플륫 연주회였다.
인숙이도 플륫을 수준급으로 연주한다.
교회에서 성가대를 도와 플륫을 연주 할 정도이다.
세종문화회관 연주회에도 제대로 못 가 본 내가,
카네기 홀을 다 가보다니, 내게 이런 날도 있는가 싶었다.
오래 기억에 남을, 좋은 연주회였다.

늦은 밤, 우리는 앰트랙(Amtrack)을 타고 뉴저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