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례와 허더슨 강변 숲을 거닐며


뉴욕 지하철은 위험하고 지저분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았고, 지하철을 타고 정례를 만나러 갔다.
맨하탄 66가에서 uptown 행, 1번을 타고 116가 콜럼비아 대학까지 갔다.

계단을 올라가니, 동상이 세워져 있는 건물이 콜럼비아 대학인 것 같았다.
길을 건너 정례 회사 방향으로 가다가, 곧 우리는 만났고
아이비리그의 유서 깊은 콜럼비아 대학의 교정을 잠시 거닐어 보았다.
수업 시간인지, 비교적 조용했다.
웅장하게 보이는 건물은 도서관,
유명한 철학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저곳은 문리대학 ,
정문 옆은 기숙사, 하면서 원래 설명을 잘하는 정례가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정례와는 지난 5월에 엘에이에서 한 번 만나고,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
때때로 전화로 대화를 나누어서 인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친구와 같다.
학교 때는 돌부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말이 없었다는데
조근 조근 이야기도 잘하고, 사고와 이해의 폭이 넓다.

학교 앞 중국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허드슨 강변길의 숲으로 들어섰다.
몇 마일이나 계속되는 강변의 산책로!
걷고, 운동하고, 벤치에서 책을 읽기도 하는 휴식 공간.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러한 쾌적한 공간을 마련 할 수 있는,
의식을 가진 정책이 있어 선진국이라는 걸까?

정례가 일하는 선교센터도, 그 숲 앞에 있었다.
오래 된 유명한 교회 건물도 있고, 곳곳에 세워진 기념비와
그랜트 장군(남북 전쟁 당시 북군의 대장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음)의 조각도 세워져 있었다.

그 곳에 있는 은행나무에 달리는 은행을 올 가을에는 주워서
이웃과 나누리라고 단단히 결심하고 있다.

한 시간도 넘게 이야기하면서 걸었다.
회사 일이 몹시 바쁜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를 데리고 소호나 어디 다른 곳으로 안내하고 싶어
궁리하는 하는 정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산책하며 몇 시간 같이 보낸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섰다.


뉴저지에서 친구들을 만난 일요일 밤에
정례 차를 타고, 정례 집으로 갔다.
뒤뜰에 나뭇잎과 도토리가 떨어져 쌓인,
고적한 동네의 오래 된 2층 집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가을이 더 깊어 져, 뚝뚝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거나
눈 쌓인 겨울이면 더 쓸쓸할 것 같은 곳이었다.
주일 저녁인데도 여전히 일 꺼리가 쌓인 정례는 메일을 체크하고,
전화로 미팅을 해야 했다.
나는 책을 읽다가 자려고 하는데, 일을 다 끝냈다고 불렀다.
밤에 기온이 내려가 썰렁해져서 침대에 전기담요를 깔고
새벽 두시가 넘도록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콜럼비아 대학 앞에서 정례를 만나는 순간에도 느꼈지만,
정례에게서는, 미국의 중년 부인들에게 느껴지는 소탈함이 느껴진다.
전혀 가식이 없고, 적극적이고 열심히 산다.
분명한 목표와 사명 의식을 갖고 있는 목사님이기도 하다.
그녀의 삶의 당당함이 그 모습에 그대로 나타난다.

선교센터에서 하는, 머리 터지게 많은 일은 직업이지만,
개인 적으로 뜻을 두고 하는 일은, 북한 돕기 이다.
그 일은, 한국의 통일부와 관련이 되어 있으며, 북한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작년 한 해에 이백만명이 굶어죽은 나라가 북한이다.
북한을 돕지 않았다면, 김정일 정권이 벌써 무너졌을 거라고 들 하지만
그 날도 정례가 나가는 교회에서,
십만 불(한국 돈 거의 1억)을 기증받았다고 좋아했다.

아들과 딸에게, ‘세계를 품고 살라’고 가르쳤다는 정례.
딸은 웨스트포인트를 나온 장교로, 지금 독일에서 근무하고 있고,
전쟁터인 이락에 참전 한 것은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락 전쟁은 자기의 귀한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것이 못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딸이 말했다고 한다. 역시 똑똑하다.
6월에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아들은
몬트레이(샌프란시스코 아래에 있는 도시)에 있는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나사에서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친구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소신 있게, 또 소박하게 살아가지만,
정례는 또 다른 사명감을 갖고 살고 있는 것이다.
회의가 있어 라스베가스에 갔을 때,
자동차로 인근의 몇 협곡을 혼자 여행을 했다고,
때로는 혼자 하는 여행이 얼마나 좋은가 설명 한다.
날씨 좋은 휴일에 집 뒤의 베란다 탁자에 앉아
차 한 잔의 여유도 즐길 줄 아는 멋쟁이 정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