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글 수 1,334
정례와 허더슨 강변 숲을 거닐며
뉴욕 지하철은 위험하고 지저분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았고, 지하철을 타고 정례를 만나러 갔다.
맨하탄 66가에서 uptown 행, 1번을 타고 116가 콜럼비아 대학까지 갔다.
계단을 올라가니, 동상이 세워져 있는 건물이 콜럼비아 대학인 것 같았다.
길을 건너 정례 회사 방향으로 가다가, 곧 우리는 만났고
아이비리그의 유서 깊은 콜럼비아 대학의 교정을 잠시 거닐어 보았다.
수업 시간인지, 비교적 조용했다.
웅장하게 보이는 건물은 도서관,
유명한 철학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저곳은 문리대학 ,
정문 옆은 기숙사, 하면서 원래 설명을 잘하는 정례가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정례와는 지난 5월에 엘에이에서 한 번 만나고,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
때때로 전화로 대화를 나누어서 인지,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친구와 같다.
학교 때는 돌부처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말이 없었다는데
조근 조근 이야기도 잘하고, 사고와 이해의 폭이 넓다.
학교 앞 중국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허드슨 강변길의 숲으로 들어섰다.
몇 마일이나 계속되는 강변의 산책로!
걷고, 운동하고, 벤치에서 책을 읽기도 하는 휴식 공간.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러한 쾌적한 공간을 마련 할 수 있는,
의식을 가진 정책이 있어 선진국이라는 걸까?
정례가 일하는 선교센터도, 그 숲 앞에 있었다.
오래 된 유명한 교회 건물도 있고, 곳곳에 세워진 기념비와
그랜트 장군(남북 전쟁 당시 북군의 대장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음)의 조각도 세워져 있었다.
그 곳에 있는 은행나무에 달리는 은행을 올 가을에는 주워서
이웃과 나누리라고 단단히 결심하고 있다.
한 시간도 넘게 이야기하면서 걸었다.
회사 일이 몹시 바쁜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를 데리고 소호나 어디 다른 곳으로 안내하고 싶어
궁리하는 하는 정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산책하며 몇 시간 같이 보낸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섰다.
뉴저지에서 친구들을 만난 일요일 밤에
정례 차를 타고, 정례 집으로 갔다.
뒤뜰에 나뭇잎과 도토리가 떨어져 쌓인,
고적한 동네의 오래 된 2층 집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가을이 더 깊어 져, 뚝뚝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거나
눈 쌓인 겨울이면 더 쓸쓸할 것 같은 곳이었다.
주일 저녁인데도 여전히 일 꺼리가 쌓인 정례는 메일을 체크하고,
전화로 미팅을 해야 했다.
나는 책을 읽다가 자려고 하는데, 일을 다 끝냈다고 불렀다.
밤에 기온이 내려가 썰렁해져서 침대에 전기담요를 깔고
새벽 두시가 넘도록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콜럼비아 대학 앞에서 정례를 만나는 순간에도 느꼈지만,
정례에게서는, 미국의 중년 부인들에게 느껴지는 소탈함이 느껴진다.
전혀 가식이 없고, 적극적이고 열심히 산다.
분명한 목표와 사명 의식을 갖고 있는 목사님이기도 하다.
그녀의 삶의 당당함이 그 모습에 그대로 나타난다.
선교센터에서 하는, 머리 터지게 많은 일은 직업이지만,
개인 적으로 뜻을 두고 하는 일은, 북한 돕기 이다.
그 일은, 한국의 통일부와 관련이 되어 있으며, 북한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작년 한 해에 이백만명이 굶어죽은 나라가 북한이다.
북한을 돕지 않았다면, 김정일 정권이 벌써 무너졌을 거라고 들 하지만
그 날도 정례가 나가는 교회에서,
십만 불(한국 돈 거의 1억)을 기증받았다고 좋아했다.
아들과 딸에게, ‘세계를 품고 살라’고 가르쳤다는 정례.
딸은 웨스트포인트를 나온 장교로, 지금 독일에서 근무하고 있고,
전쟁터인 이락에 참전 한 것은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락 전쟁은 자기의 귀한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 있는 것이 못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딸이 말했다고 한다. 역시 똑똑하다.
6월에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아들은
몬트레이(샌프란시스코 아래에 있는 도시)에 있는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나사에서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친구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소신 있게, 또 소박하게 살아가지만,
정례는 또 다른 사명감을 갖고 살고 있는 것이다.
회의가 있어 라스베가스에 갔을 때,
자동차로 인근의 몇 협곡을 혼자 여행을 했다고,
때로는 혼자 하는 여행이 얼마나 좋은가 설명 한다.
날씨 좋은 휴일에 집 뒤의 베란다 탁자에 앉아
차 한 잔의 여유도 즐길 줄 아는 멋쟁이 정례다.
2007.10.15 19:38:38 (*.173.16.117)
바람직한 삶을 사는 냄새가 솔~솔나는 사람이 정례지.
정례와 좋은 시간을 보냈구나 수인아
니가 입고 있는 옷을 나는 알고 있다 ㅎㅎ;:)
정례와 좋은 시간을 보냈구나 수인아
니가 입고 있는 옷을 나는 알고 있다 ㅎㅎ;:)
2007.10.16 01:10:42 (*.219.253.233)
수인아,
허드슨 강변 산책길
사진으로 보니 더욱 운치있구나.
마음과 육신이 분주한 뉴욕커들에겐
잠시나마 자신을 성찰하고 휴식을 제공해주는 곳
사무실 건물 바로 길 건너 뒤안길인데…
다시금 네 글이 나를 깨우치는구나.
오늘은 걸어야 겠다.
고마와요.
그런데 한가지
네 글 속에 조금 이해를 돕고 싶은 내용이 있구나.
내가 북한돕기에 뜻을 두고 있는 건 사실인데
“한국의 통일부와 관련이 되어 있으며…”는 아니란다.
정부 조직과는 아무 관련이 없거던.
통일 문제는 우리 민족에게는 민감한 사안이라서 참 조심스럽다.
내가 소속한 교단 (미연합감리교회)내
한인교회들만의 조직이 있는데
그 산하에 우리 나라의 화해•평화•통일을
그리스도 정신으로 이해하고 추구하기 위한 위원회가 있단다.
지난 1995년부터 북한에 굶주림이 심해졌을 때,
이 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전국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오병이어 기금 모으기 (월 10불)>을 통해
북한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지.
그러니까 어려운 사람과 나누며 살자는 단순한 취지에 나도 동참했고,
언젠가 하나가 될 날이 올 때를 대비하여
서로 다름을 배우고 화해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연구와 활동에 꾸준히 조용히 참여해 왔었는데….
지난 4월에 그 위원회에서 책임을 맡아달라고 해서
과외활동으로 쩔쩔매고 있단다.
수인이 온 날은
마침 매월 마지막 일요일 밤,
전국에 흩어진 임원들이 tele-conference(전화 회의)를 하는 날이란다.
일요일 휴대폰 사용은 무료인데다가
목회자들에겐 교회 일 다 끝난 시간이라 마음의 여유도 있고
또 본업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 시간대이거던.
각자 휴대폰을 연결해서 하는 회의라서
경비 들이지 않고 전국회의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
그래야 교인들이 드리는 성금을 최대한 많이 북한 어려운 이웃 을 도울 수 있거던.
내가 출석하는 교회 담임 목사님이 그날 아침에 날 부르더니
우리 교회에서도 10만불을 2008년도에 후원하시겠다고 하더구나.
내가 회장이란 예기 목사님께 드린 적도 없는데… 하긴 이미 전국에 알려졌으니…
이처럼 알아서 참여해주시니 기쁠 수 밖에.
우리가 후원하는 북한 사역은 우리나라 정부와 미국 정부와는 무관하단다.
물론 우리와 전혀 다른 북쪽 체제하에선 국외인의 "마음대로"가 있을 수는 없고,
이미 인정받은 NGO들이 있어서 그들을 통해 지원하고 있어.
예를 들어
우리말로 <코리아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 CFK> 로 번역되는 미국인들의 NGO가 있어.
예전에 한국에 선교사로 일했던 미국인들의 후손들이 활발히 움직이더라고.
후원자에게는 후원금 적재 적소 사용 확인을 분명히 하고,
북측 관계자들에게는 철저한 박애정신으로 인정받아
양측의 신뢰를 받는 비영리단체 등이 꽤 있더구나.
이러한 단체들과 연대해서 일하지.
내가 속한 교단 선교사가 1907년에 세운 병원이 개성에 있는데
올해가 100주년이야.
현재는 <어린이 병원>으로 부르고 있더군.
석조 건물은 그대로 있지만 수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통해서 들었어.
우리가 직접 물건을 들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믿고 지원금을 그들을 통해 보낼 것인지 등을 우리 위원회가 결정해야되.
물론 했지.
그래서 다음 주 일요일엔
뉴욕 에 있는 한인교회가 30주년 창립을 맞이하여
<개성 어린이 병원> 수리 기금 음악회를 연단다.
선의의 일들을 사람들은 참 하고 싶어하는데
그 끈만 잘 연결시켜 주는 일도 보람있다고 느끼네.
이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아.
민족과 인종, 피부 색갈을 초월해서 참 많아.
그리고 선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음을
목회를 통해서 많이 경험하게 되더구나.
그래서 어떤 단체 (교회도 포함)던지 선한 일을 하면
후원금이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원래 분명한 목적을 갖고도
사심(私心)이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개입되면
그 때부터 부패하고 본래의 뜻을 이루기 어려워지는 걸
수없이 보게 되더구나.
이왕 북한 이야기 나왔으니, 방문 이야기도 간단히 해야겠다.
2001년은 두 아이가 대학생인데 경제적으로 둘다 자립하던 해였어.
그래서 내 생애에서 나 혼자만의 첫번째 휴가 - 시간과 저축을 보람있게 쓰고 싶었어.
이상하게도 북한이 제일 먼저 떠오르더라.
이산가족도 아니길레 갈길이 망망한데…
실제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마침 우리 연합감리교인들이 <오병이어 운동>으로
지원하고 있던 국수공장 방문단이 간다길레
임원도 아닌데 졸라 결국 평양을 다녀왔어.
딱 일주일!
다녀오고 나서 마음고생 참 많이 했단다.
체제가 너무 다르고, 게다가 굶주림은 심하고….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그 이후, <자유>와 <지도자의 사상과 역할> 이런 화두들이
아직도 나에게 생각을 몰아가게 만드네.
“절대적인 대문자 Truth (진리)라고 믿기에 이를 남에게 강요하면, 그 진리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남을 자유하게 못하기 때문” 이라는 글이 기억나. 그래서일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성서의 글귀를 새김질하게 되더군.
조국을 떠나 있어 마음이 더더욱 있는 걸까?
하지만
나의 생활방식, 정치 제제, 의식구조가 다르다고
조국을 떠난 마당에 뭘 내 문제로 삼을 필요가 있겠냐만
모른척 할 수 없는 이 가슴앓이가 주범이란다.
게다가 같은 언어와 풍습의 한 민족이
남과 북이라는 완전히 다른 이념과 통치 제제애 떨어져 살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멀어지고 원수가 될까봐서이기도 하고.
더구나 좁은 땅 떵어리인데 갈라져 있으니
국제사회에서 생존하려면 힘을 합치면 더욱 좋겠다는 안타까움도 깔려있네.
수천년 동서 역사를 통해 터득된 좋은 이념과 사상을 원칙으로 삼고
백성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섬기는 지도자가 통치하는 좋은 나라가
내 조국이 되길 소망하게 된다.
허드슨 강변 산책길
사진으로 보니 더욱 운치있구나.
마음과 육신이 분주한 뉴욕커들에겐
잠시나마 자신을 성찰하고 휴식을 제공해주는 곳
사무실 건물 바로 길 건너 뒤안길인데…
다시금 네 글이 나를 깨우치는구나.
오늘은 걸어야 겠다.
고마와요.
그런데 한가지
네 글 속에 조금 이해를 돕고 싶은 내용이 있구나.
내가 북한돕기에 뜻을 두고 있는 건 사실인데
“한국의 통일부와 관련이 되어 있으며…”는 아니란다.
정부 조직과는 아무 관련이 없거던.
통일 문제는 우리 민족에게는 민감한 사안이라서 참 조심스럽다.
내가 소속한 교단 (미연합감리교회)내
한인교회들만의 조직이 있는데
그 산하에 우리 나라의 화해•평화•통일을
그리스도 정신으로 이해하고 추구하기 위한 위원회가 있단다.
지난 1995년부터 북한에 굶주림이 심해졌을 때,
이 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전국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오병이어 기금 모으기 (월 10불)>을 통해
북한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지.
그러니까 어려운 사람과 나누며 살자는 단순한 취지에 나도 동참했고,
언젠가 하나가 될 날이 올 때를 대비하여
서로 다름을 배우고 화해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연구와 활동에 꾸준히 조용히 참여해 왔었는데….
지난 4월에 그 위원회에서 책임을 맡아달라고 해서
과외활동으로 쩔쩔매고 있단다.
수인이 온 날은
마침 매월 마지막 일요일 밤,
전국에 흩어진 임원들이 tele-conference(전화 회의)를 하는 날이란다.
일요일 휴대폰 사용은 무료인데다가
목회자들에겐 교회 일 다 끝난 시간이라 마음의 여유도 있고
또 본업에도 지장을 주지 않는 시간대이거던.
각자 휴대폰을 연결해서 하는 회의라서
경비 들이지 않고 전국회의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
그래야 교인들이 드리는 성금을 최대한 많이 북한 어려운 이웃 을 도울 수 있거던.
내가 출석하는 교회 담임 목사님이 그날 아침에 날 부르더니
우리 교회에서도 10만불을 2008년도에 후원하시겠다고 하더구나.
내가 회장이란 예기 목사님께 드린 적도 없는데… 하긴 이미 전국에 알려졌으니…
이처럼 알아서 참여해주시니 기쁠 수 밖에.
우리가 후원하는 북한 사역은 우리나라 정부와 미국 정부와는 무관하단다.
물론 우리와 전혀 다른 북쪽 체제하에선 국외인의 "마음대로"가 있을 수는 없고,
이미 인정받은 NGO들이 있어서 그들을 통해 지원하고 있어.
예를 들어
우리말로 <코리아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 CFK> 로 번역되는 미국인들의 NGO가 있어.
예전에 한국에 선교사로 일했던 미국인들의 후손들이 활발히 움직이더라고.
후원자에게는 후원금 적재 적소 사용 확인을 분명히 하고,
북측 관계자들에게는 철저한 박애정신으로 인정받아
양측의 신뢰를 받는 비영리단체 등이 꽤 있더구나.
이러한 단체들과 연대해서 일하지.
내가 속한 교단 선교사가 1907년에 세운 병원이 개성에 있는데
올해가 100주년이야.
현재는 <어린이 병원>으로 부르고 있더군.
석조 건물은 그대로 있지만 수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우리가 직접 물건을 들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믿고 지원금을 그들을 통해 보낼 것인지 등을 우리 위원회가 결정해야되.
물론 했지.
그래서 다음 주 일요일엔
뉴욕 에 있는 한인교회가 30주년 창립을 맞이하여
<개성 어린이 병원> 수리 기금 음악회를 연단다.
선의의 일들을 사람들은 참 하고 싶어하는데
그 끈만 잘 연결시켜 주는 일도 보람있다고 느끼네.
이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아.
민족과 인종, 피부 색갈을 초월해서 참 많아.
그리고 선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음을
목회를 통해서 많이 경험하게 되더구나.
그래서 어떤 단체 (교회도 포함)던지 선한 일을 하면
후원금이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원래 분명한 목적을 갖고도
사심(私心)이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개입되면
그 때부터 부패하고 본래의 뜻을 이루기 어려워지는 걸
수없이 보게 되더구나.
이왕 북한 이야기 나왔으니, 방문 이야기도 간단히 해야겠다.
2001년은 두 아이가 대학생인데 경제적으로 둘다 자립하던 해였어.
그래서 내 생애에서 나 혼자만의 첫번째 휴가 - 시간과 저축을 보람있게 쓰고 싶었어.
이상하게도 북한이 제일 먼저 떠오르더라.
이산가족도 아니길레 갈길이 망망한데…
실제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마침 우리 연합감리교인들이 <오병이어 운동>으로
지원하고 있던 국수공장 방문단이 간다길레
임원도 아닌데 졸라 결국 평양을 다녀왔어.
딱 일주일!
다녀오고 나서 마음고생 참 많이 했단다.
체제가 너무 다르고, 게다가 굶주림은 심하고….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그 이후, <자유>와 <지도자의 사상과 역할> 이런 화두들이
아직도 나에게 생각을 몰아가게 만드네.
“절대적인 대문자 Truth (진리)라고 믿기에 이를 남에게 강요하면, 그 진리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남을 자유하게 못하기 때문” 이라는 글이 기억나. 그래서일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성서의 글귀를 새김질하게 되더군.
조국을 떠나 있어 마음이 더더욱 있는 걸까?
하지만
나의 생활방식, 정치 제제, 의식구조가 다르다고
조국을 떠난 마당에 뭘 내 문제로 삼을 필요가 있겠냐만
모른척 할 수 없는 이 가슴앓이가 주범이란다.
게다가 같은 언어와 풍습의 한 민족이
남과 북이라는 완전히 다른 이념과 통치 제제애 떨어져 살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멀어지고 원수가 될까봐서이기도 하고.
더구나 좁은 땅 떵어리인데 갈라져 있으니
국제사회에서 생존하려면 힘을 합치면 더욱 좋겠다는 안타까움도 깔려있네.
수천년 동서 역사를 통해 터득된 좋은 이념과 사상을 원칙으로 삼고
백성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섬기는 지도자가 통치하는 좋은 나라가
내 조국이 되길 소망하게 된다.
2007.10.16 10:25:41 (*.191.176.87)
정례야!!!
뜻깊은 일에 동참한 너의 모습이 더욱 자랑스럽다
<코리아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 CFK> 같은
미국인들의 NGO들과 연대해서 일한다니 다행이다 만,
이곳에서 원조한 많은 물품이
굶주린 북한동포의 주린배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고
현물이 중국으로 빼돌려서 현금화되어 상부층에서 착복되거나,
무기화 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 할 필요는 있겠지...
아직도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을 위하여 지금과는 다른,
현실적인 큰 틀의 계기가 마련 되기를 바란단다
남과 북이라는 완전히 다른 이념과 통치 체제에 떨어져 살아왔기에
서로의 국가이념과 체제를 인정하고 평행선을 유지하며
상호간의 국가를 건실하게 이루어 나가는 것 만이
이념과 체제의 고통에서 해방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꼭 하나가 되어야 만 된다고 억지를 쓰는 것 보다는
북한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개방을 도와주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이 내생각이다
정례야!!!
중국에 있는 탈북자 어린이 캠프를 도와 줄 수는 없니???
그 아이들은 잡히면 북으로 송환되어 수용소에 격리되어
배고픈 고통과 죽음만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죽음을 감수하면서 한국,미국,제3세계로 탈출시켜야한단다
그 일을 LINK 라는 NGO단체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는데
그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단다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사랑과 인정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아껴주는 아름다운 이웃이 있는
희망에 찬 평화로운조국을 그리워하고 있지...
뜻깊은 일에 동참한 너의 모습이 더욱 자랑스럽다
<코리아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 CFK> 같은
미국인들의 NGO들과 연대해서 일한다니 다행이다 만,
이곳에서 원조한 많은 물품이
굶주린 북한동포의 주린배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고
현물이 중국으로 빼돌려서 현금화되어 상부층에서 착복되거나,
무기화 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 할 필요는 있겠지...
아직도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을 위하여 지금과는 다른,
현실적인 큰 틀의 계기가 마련 되기를 바란단다
남과 북이라는 완전히 다른 이념과 통치 체제에 떨어져 살아왔기에
서로의 국가이념과 체제를 인정하고 평행선을 유지하며
상호간의 국가를 건실하게 이루어 나가는 것 만이
이념과 체제의 고통에서 해방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꼭 하나가 되어야 만 된다고 억지를 쓰는 것 보다는
북한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개방을 도와주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이 내생각이다
정례야!!!
중국에 있는 탈북자 어린이 캠프를 도와 줄 수는 없니???
그 아이들은 잡히면 북으로 송환되어 수용소에 격리되어
배고픈 고통과 죽음만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죽음을 감수하면서 한국,미국,제3세계로 탈출시켜야한단다
그 일을 LINK 라는 NGO단체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는데
그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단다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사랑과 인정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아껴주는 아름다운 이웃이 있는
희망에 찬 평화로운조국을 그리워하고 있지...
2007.10.16 10:27:58 (*.172.221.40)
정례~
자세한 설명 고마워.
모른척 할 수 없는 , 그런 마음이 있어서
도울 수 있는 길도 모색하고
지도자로서의 길도 갈 수 있는 거겠지.
사람들은 왜 뭔가- 정치적인 목적이나, 명예 같은 것이라도 바라고
어떤 단체를 이루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거든.
어쨋든 순수한 니가 회장을 맡고 있어 참 좋구나.
선교사님들, 척박한 한국 땅에 와서 수고한 것도 고마운데,
그들의 후손이 또다른 모임을 만들어 계속해서 한국을 돕는 일을 한다니
정말 고맙구나.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참 복된 삶이라 믿는다.
보고 느끼는 것, 부딪치는 것들
종종 우리들에게도 알려주려므나.(:*)
자세한 설명 고마워.
모른척 할 수 없는 , 그런 마음이 있어서
도울 수 있는 길도 모색하고
지도자로서의 길도 갈 수 있는 거겠지.
사람들은 왜 뭔가- 정치적인 목적이나, 명예 같은 것이라도 바라고
어떤 단체를 이루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거든.
어쨋든 순수한 니가 회장을 맡고 있어 참 좋구나.
선교사님들, 척박한 한국 땅에 와서 수고한 것도 고마운데,
그들의 후손이 또다른 모임을 만들어 계속해서 한국을 돕는 일을 한다니
정말 고맙구나.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참 복된 삶이라 믿는다.
보고 느끼는 것, 부딪치는 것들
종종 우리들에게도 알려주려므나.(:*)
2007.10.16 15:03:37 (*.220.204.218)
이수인 선배님, 안녕하셨어요?
저 11회 김경숙이예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올린 호박사진 색깔이 예쁘다고 하셨었지요.
올리시는 글과 사진, 음악 아주 잘 듣고있어요.
사진에 가을 느낌이 물씬 나네요.
전형적인 한국미인 이수인 선배님.
무언지 모르는 힘이 제게 전달되어 오는 것 같은 느낌을 주시는 함정례 선배님,
이선배님, 사실은 함선배님께 인사드리고 싶어 들어왔어요.
함선배님, 저는 이성호 목사님이 계신 산타클라라 연합감리교회에 다닙니다.
한국에서 있었던 세계선교대회(?) 에서부터 선배님을 알게 되었어요.
말씀 중에 '오병이어' 선교를 담당하고 계신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드려요.
몇년전 부터 제 남편이 '오병이어'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뉴스레터에서 선배님 성함도 뵈었지요. 제 남편은 박인식 권사입니다.
아드님께서 몬트레이에 계시다 들었는데 혹 이쪽에 오실 일 있으시면 미리 연락주시면 좋겠네요.
수요일 저녁 이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오병이어 선교에 대해 말씀 듣고 싶어요.
사진모습이 보기 너무 좋아요. 건강하신 것 같고...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수인 선배님, 함정례 선배님 너무 아름다우세요.
저 11회 김경숙이예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올린 호박사진 색깔이 예쁘다고 하셨었지요.
올리시는 글과 사진, 음악 아주 잘 듣고있어요.
사진에 가을 느낌이 물씬 나네요.
전형적인 한국미인 이수인 선배님.
무언지 모르는 힘이 제게 전달되어 오는 것 같은 느낌을 주시는 함정례 선배님,
이선배님, 사실은 함선배님께 인사드리고 싶어 들어왔어요.
함선배님, 저는 이성호 목사님이 계신 산타클라라 연합감리교회에 다닙니다.
한국에서 있었던 세계선교대회(?) 에서부터 선배님을 알게 되었어요.
말씀 중에 '오병이어' 선교를 담당하고 계신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드려요.
몇년전 부터 제 남편이 '오병이어'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뉴스레터에서 선배님 성함도 뵈었지요. 제 남편은 박인식 권사입니다.
아드님께서 몬트레이에 계시다 들었는데 혹 이쪽에 오실 일 있으시면 미리 연락주시면 좋겠네요.
수요일 저녁 이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오병이어 선교에 대해 말씀 듣고 싶어요.
사진모습이 보기 너무 좋아요. 건강하신 것 같고...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수인 선배님, 함정례 선배님 너무 아름다우세요.
2007.10.16 15:18:00 (*.172.221.40)
경숙 후배~
왜 경숙후배를 모르겠어요?
만난 적도 있는데. 저 기억력이 꽤 좋답니다.
경숙후배의 순수하면서 정감있는 글도 제가 좋아해요.
감리교회를 다니셔서
우리 친구, 유명한 함정례 목사를 아시는군요.
정례도 반가워하겠네요.(:f)
왜 경숙후배를 모르겠어요?
만난 적도 있는데. 저 기억력이 꽤 좋답니다.
경숙후배의 순수하면서 정감있는 글도 제가 좋아해요.
감리교회를 다니셔서
우리 친구, 유명한 함정례 목사를 아시는군요.
정례도 반가워하겠네요.(:f)
2007.10.16 20:05:55 (*.125.0.102)
수인아,
네가 뉴욕 허드슨 강변 산책을 한 예기로 댓글이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만 내 댓글로 인해 삼천포로 빠졌네. 미안해
어제 점심 시간에 잠시 그길을 걸으며
네 생각 하였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중한 만남, 고맙고.
희자야,
"북한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개방을 도와주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이 내생각"에 나도 100% 동감.
하나됨은 한 백년 이후가 될지, 아무도 모를 일,
나라들은 갈라지고 합쳐지고
반복의 역사 속에서 길게 보면 그리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거던.
단지 동족상잔의 비극을 더 이상 갖지 않기를 바랄뿐이고,
배곺은 사람들에겐 역사보다 당장 생존이 문제이고
이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고...
탈북자, 이것도 우리들의 당면과제이지.
북한의 굶주림과 동시에 마땅히 다루어야 된다고 본단다.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네 글에선 참 많이 묻어난단다.
그래서 고마울 때가 많아.
경숙 후배,
반갑습니다.
산타클라라 KUMC
신실한 교회 중의 하나로 여겨
감사드릴 일이 많답니다.
20주년 창립 때에는 미원주민 선교를 위해,
또 30주년을 맞이해서는 타일랜드 선교를 위해
그래서 현재 Michael & Sherri Morrissey 선교사 파송이
산타클라라 교회의 지원으로 가능한 것이였지요.
내년 언젠가
한번쯤 아이 사는 모습 보러가게 되겠지요?
저도 뵙고 싶네요.
네가 뉴욕 허드슨 강변 산책을 한 예기로 댓글이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만 내 댓글로 인해 삼천포로 빠졌네. 미안해
어제 점심 시간에 잠시 그길을 걸으며
네 생각 하였어.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중한 만남, 고맙고.
희자야,
"북한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개방을 도와주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이 내생각"에 나도 100% 동감.
하나됨은 한 백년 이후가 될지, 아무도 모를 일,
나라들은 갈라지고 합쳐지고
반복의 역사 속에서 길게 보면 그리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거던.
단지 동족상잔의 비극을 더 이상 갖지 않기를 바랄뿐이고,
배곺은 사람들에겐 역사보다 당장 생존이 문제이고
이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고...
탈북자, 이것도 우리들의 당면과제이지.
북한의 굶주림과 동시에 마땅히 다루어야 된다고 본단다.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네 글에선 참 많이 묻어난단다.
그래서 고마울 때가 많아.
경숙 후배,
반갑습니다.
산타클라라 KUMC
신실한 교회 중의 하나로 여겨
감사드릴 일이 많답니다.
20주년 창립 때에는 미원주민 선교를 위해,
또 30주년을 맞이해서는 타일랜드 선교를 위해
그래서 현재 Michael & Sherri Morrissey 선교사 파송이
산타클라라 교회의 지원으로 가능한 것이였지요.
내년 언젠가
한번쯤 아이 사는 모습 보러가게 되겠지요?
저도 뵙고 싶네요.
모두 아름다운 내 친구들이지...
느이덜을 보며 내가 참 좋은 고등핵교를 나왔다고
생각한다.ㅎㅎㅎ
모두 건강하기 바란다.
내년 40주년 여행때 올꺼지?(: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