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저 아줌마가 아닐까?


토론토 공항에 내리면서 약간 걱정이 되었다.
전화도 이메일도 직접 안하고 다른 애들을 통해 연락하다니 조금 어리석었나?...

유영희가 어떻게 생겼을까?
나를 알아볼까? 혹시 못 만나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곧 염려를 접기로 했다.
어떻게 되겠지…문제 생기면 그때 걱정해야지..
일본에 있는 유영희와 캐나다에 있는 유영희 둘 다 가물가물 했다.

캐나다 관세청을 지나 밖으로 나오기 직전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맞이하는 장소가 있는데
서로 부르고 껴안고 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공연히 외로워져서 그냥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가 보니 차가 온 것 같지는 않았다.
누가 나올까 하고 두리번 거리는데
어떤 동양 남자가 머세이즈 벤즈를 타고 왔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영희가 남편을 보낼수도 있구나..했다.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고 다시 보니 그 남자는 중국 남자 같았다.
나중에 그 얘기를 했더니 영희가 많이 웃었다.  

조금 왔다 갔다 하는데 어떤 파란색의 토요타가 나를 지나서 멈춰섰다.
그안에 두명의 여자가 있었는데 나는 예감이 달라서 그 차 가까이로 다가갔다.

머무적 대고 나오지 않지만 문을 열었길래 얼른 “나는 이인선이야…”했다.
그랬더니 한 여자가 내리면서 막 깔깔 대면서 “네가 인선이냐?” 하는 것이 아닌가 ?
처음에는 누군지 알아볼수 없었다.
그 애가 구자열이었다.
자열이도 내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40년 만이니까 서로 알아보지 못해도 용서해주기로했다.

운전하는 사람은 유영희인데 금방 알아볼수 있었다.
"네가 그 유영희로구나. 나는 너를 알아!"
세월이 흘러간 흔적을 제외하고는 금방 알아볼수 있었던것이 신기롭다.

자열이는 처음엔 몰라보겠더니
금방 그녀의 옛 얼굴이 오버랩이 되고 알아볼수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못 봤다지만 6년의 세월을 함께 보낸 우리가 아닌가!

나를 태우고 둘이서 웃기를 시작했다.
시간이 좀 늦었는데  오면서 궁리를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나를 만나 알아볼 자신이 없어서 영희는 머리를 굴려  
자열이에게 나를 찾아내는 과업을 미뤘단다.

“내가 너를 차에 태워줬으니까 네가 나가서 인선이를 찾아라.”했다나,
머리 좋은 것을 자랑하며 웃겼다. ㅎㅎㅎ
둘다 자신이 없었는데 너무나 쉽게 나를 찾은 것이었다.

자기들도 서서 기다리는 나를 보자마자 느낌이 이상해서 자열이 왈,
“저 아줌마가 인선이가 아닐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금방 내가 다가와서 “나는 이인선 이야” 했고..

서로 몰라볼까 벌벌 떤 일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는지, 웃음이 나와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끼리 쓰는 호칭으로 아줌마라는 말은 또 얼마나 안 어울리는지 !
60이 내일 모레인 우리지만 마음만은 중고등학교때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서
한바탕 웃고 또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시작해서 끝날때까지 줄창 떠들었으니까...

한시간 후에 도착하는 연재를 기다리며 비행장을 빙빙 돌면서
쉴새없이 웃고 떠드는 우리를 누가 감히 육십 가까운 아줌마들이라고 할수 있는가?
벌써 할머니 된 사람이 대부분 이기는 하지만….

연재는 2년전 캘거리 용화집에서 만난 일이 있어서 잘 기억하고들 있었다.
연재를 픽업한 후 한국 식당에 가서 저녁을 거나하게 먹고.
이미 도착한 미국 친구들이 벌써 가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 앞 힐톤 호텔을 향해
밤길을 한시간 이상 운전하였다.

다행히 국제공항에서 미아가 안된 나는  
무척 즐거운 여행이 되리라는 예감으로 더욱 신나는 밤이었다.
(2007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