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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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전야
그 많은 설레며 기다리던 날들이 다가고 드디어 다음날이 결혼식이었다.
순서를 맡은 모두가 혼례예식을 드릴 교회에 가서
리허설을 끝내고, 모두 차이나타운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먹게되었다.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여름 한중같지 않았는데 신랑은 연방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레스토랑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일 맛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손님이 많아 그 식당만 밖에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고
예약한 시간, 7시에 맞춰주지 못했다.
우리는 덜덜 떨면서 밖에서 30분이상 기다려야했다.
연로하신 우리 부모님은 뉴저지에서 오셔서 3시간 시차에 일찍 주무시는 것이 습관이셔서
한밤중인데도 씩씩하니 잘 견디셨는데 많이 송구스러웠다.
메리는 차이나 드레스를 빨간 색으로 차려 입고
연방 큰 입으로 웃음을 띠고 신랑과 들어왔는데 너무나 행복해보였다.
신랑 신부가 젊고 예쁘게 보인다는 것이 모두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것일까?
그들의 기쁨이 전염이 되어 자꾸만 웃음이 차고 올라왔다.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
커다란 게를 두마리 튀긴 것을 한상에 하나씩 올림으로
10가지 음식 코스가 시작이 되었다.
식도락가인 동생 남편이 음식 맛이 최고로 좋다고 하니 분명 그 이름에 맞는 식당인 모양이었다.
10명씩 6 테이불에 앉아서 우리는 떠들어 대면서 음식을 정신없이 먹어제쳤다.
멀리 헤어져 지냈던 친지들이 오랜만에 만났으니 떠들어대는 것은 당연한 일,.
이번에 안 것이지만 한국 사람만 그렇게 크게 떠드는줄 알았더니
중국사람들은 더 떠드는 것 같았다.
큰소리로 웃어가며 모두들 즐거워했다.
음식을 다 끝내니 거의 밤 열시가 넘었다.
오늘밤은 메리가 처녀로는 마지막 밤인데
혼자서 호텔 스윗룸에서 잔다고하며 나보고 같이 자자고 한다.
잠 안올때는 엄마 혼자 자는 방에 와서 잠을 잘들던 딸이었으니...
그 방은 33층에 있어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안 전경이 두면으로 내려다보이는
정말로 아름다운 방이었다.
문제는 메리가 한달 전부터 기침을 해대었는데
점점 나아질꺼라는 기대를 꺽고
이날밤 제일 극성적으로 콜록이며 기침을 해대었다.
리허설 디너가 끝이 났어도 친구들끼리가서 한바탕 더 노느라
아주 늦게까지 밖에 있었는데 추운 밤바람에 기침이 덧이난 모양이었다.
긴장때문인지 아무 약도 효과가 없고 발발 떨기까지 하면서 기침을 해대니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걱정이 되어 자꾸 전화를 걸어서 빨리 와서 자라고 말렸어도
멀리서 온 친구들과 회포를 푸느라 내말은 듣지 않았다.
밤 1시 가까이 들어온 딸을 맞아
나는 내 손으로 그애 목과 다리를 녹여서 빨리 잠들기를 바랐는데
별 효과가 없이 많이 기침을 하느라 잠을 쉽게 못들고
모처럼 잠이 들면 기침하며 다시 깨곤 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부디 잠 잘자고 기침도 가라앉고 내일 결혼식에 아주 건강하고 예쁘게 보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무것도 할수 없을때 기도 할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 것인지!
밤은 깊어가고 무언지 알수 없는 슬픔 같은 것,
아쉬움 같은 것이 마음에 가득차서
그러지 않아도 잠 못이루는 밤이 길어만 갔다.
무언가 할말이 많이 쌓여 있는 것 같았지만
그때의 나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이제 30살이 꽉찬 딸에게 아무것도 가르칠것은 없었다.
아주 자주 “엄마 나는 참 행복해.”하는 말을 들어주고
함께 기뻐해주는 것 밖에는…
많은 기쁨을 시기심 없이 나눌사람은 흔치 않은 것이다.
(2007년 7월)
그 많은 설레며 기다리던 날들이 다가고 드디어 다음날이 결혼식이었다.
순서를 맡은 모두가 혼례예식을 드릴 교회에 가서
리허설을 끝내고, 모두 차이나타운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먹게되었다.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여름 한중같지 않았는데 신랑은 연방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레스토랑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일 맛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손님이 많아 그 식당만 밖에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고
예약한 시간, 7시에 맞춰주지 못했다.
우리는 덜덜 떨면서 밖에서 30분이상 기다려야했다.
연로하신 우리 부모님은 뉴저지에서 오셔서 3시간 시차에 일찍 주무시는 것이 습관이셔서
한밤중인데도 씩씩하니 잘 견디셨는데 많이 송구스러웠다.
메리는 차이나 드레스를 빨간 색으로 차려 입고
연방 큰 입으로 웃음을 띠고 신랑과 들어왔는데 너무나 행복해보였다.
신랑 신부가 젊고 예쁘게 보인다는 것이 모두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것일까?
그들의 기쁨이 전염이 되어 자꾸만 웃음이 차고 올라왔다.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
커다란 게를 두마리 튀긴 것을 한상에 하나씩 올림으로
10가지 음식 코스가 시작이 되었다.
식도락가인 동생 남편이 음식 맛이 최고로 좋다고 하니 분명 그 이름에 맞는 식당인 모양이었다.
10명씩 6 테이불에 앉아서 우리는 떠들어 대면서 음식을 정신없이 먹어제쳤다.
멀리 헤어져 지냈던 친지들이 오랜만에 만났으니 떠들어대는 것은 당연한 일,.
이번에 안 것이지만 한국 사람만 그렇게 크게 떠드는줄 알았더니
중국사람들은 더 떠드는 것 같았다.
큰소리로 웃어가며 모두들 즐거워했다.
음식을 다 끝내니 거의 밤 열시가 넘었다.
오늘밤은 메리가 처녀로는 마지막 밤인데
혼자서 호텔 스윗룸에서 잔다고하며 나보고 같이 자자고 한다.
잠 안올때는 엄마 혼자 자는 방에 와서 잠을 잘들던 딸이었으니...
그 방은 33층에 있어 샌프란시스코 북쪽 해안 전경이 두면으로 내려다보이는
정말로 아름다운 방이었다.
문제는 메리가 한달 전부터 기침을 해대었는데
점점 나아질꺼라는 기대를 꺽고
이날밤 제일 극성적으로 콜록이며 기침을 해대었다.
리허설 디너가 끝이 났어도 친구들끼리가서 한바탕 더 노느라
아주 늦게까지 밖에 있었는데 추운 밤바람에 기침이 덧이난 모양이었다.
긴장때문인지 아무 약도 효과가 없고 발발 떨기까지 하면서 기침을 해대니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걱정이 되어 자꾸 전화를 걸어서 빨리 와서 자라고 말렸어도
멀리서 온 친구들과 회포를 푸느라 내말은 듣지 않았다.
밤 1시 가까이 들어온 딸을 맞아
나는 내 손으로 그애 목과 다리를 녹여서 빨리 잠들기를 바랐는데
별 효과가 없이 많이 기침을 하느라 잠을 쉽게 못들고
모처럼 잠이 들면 기침하며 다시 깨곤 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부디 잠 잘자고 기침도 가라앉고 내일 결혼식에 아주 건강하고 예쁘게 보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무것도 할수 없을때 기도 할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 것인지!
밤은 깊어가고 무언지 알수 없는 슬픔 같은 것,
아쉬움 같은 것이 마음에 가득차서
그러지 않아도 잠 못이루는 밤이 길어만 갔다.
무언가 할말이 많이 쌓여 있는 것 같았지만
그때의 나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이제 30살이 꽉찬 딸에게 아무것도 가르칠것은 없었다.
아주 자주 “엄마 나는 참 행복해.”하는 말을 들어주고
함께 기뻐해주는 것 밖에는…
많은 기쁨을 시기심 없이 나눌사람은 흔치 않은 것이다.
(2007년 7월)
그곳은 결혼식 전야제가 있나보더라.
오래 전 참석해본 적이 있어.
`I am so happy` 딸이 말할 때 많이 행복했겠네
인선의 행복에 덩달아 마음 훈훈해지는 아침이다(: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