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이야기

지난 토요일, 남편과 나는 늘상 집에 오는 길을 벗어나 좀더 달려 보기로했다.
그리로 더 내려가면 투산 가는 길이 된다는 소리도 들었고 남산으로 가는 길도 될것 같아서였다.
피닉스에 와서 2년동안 그쪽으로는 한번도 가본 일이 없었다.

5분도 못가서 새로 지은 집들은 간곳이 없어졌다.  
황량한 사막에 드문드문 지어진 오래된 시골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땅이 넓으니까 그런지 터를 넓게 잡고 집들을 지은 것이었다.
사막답게 먼지속에 비쩍 말라붙은 황토색 나무들이 드문드문 있고
길은 한없이 갈수있게 뻗어 있었다.

벌써 봄기운이 감돌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 창문을 열고 운전을 하니 아주 기분이 좋았다.  
겨우 10분 쯤 내려가니 카지노가 하나 보였다.
얼핏 카지노가 그쪽에 있다는 얘기가 기억이 났지만 그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좀더 달리다가 볼만한 것도 없고 남산도 나오지 않으므로 다시 차를 돌렸다.
카지노에라도 한번 들어가 봄으로 그날의 무료한 드라이브를 만회해 볼 심산으로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세상에! 이 한적한 곳에 왠 차가 그리 많이 있는지!
수백대가  파킹되어 있는 것이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상당한 숫자의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돈잃고 행패하는 사람들 때문일까?
들어가보니 담배 연기가 자욱하고 기계마다 사람들이 앉아서 당기고들 있었다.
잠시도 참지 못할 공기의 탁함에 놀라 얼른 한바퀴만 돌고 나와버렸다.

우리 가족과 카지노는 영 상관이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직 다섯살 미만으로 어릴 때, 시카고를 떠나 엘에이를 가는 길에 라스베가스를 들렀던 적이 있었다.
모텔 주인이 베이비시터를 해줄터니 나가서 놀다 오라고 했다.
라스베가스는 카지노나 쇼 등 재미가 많은 곳이니 그냥 지나칠순 없지 않은가?
하다못해 극장이라도…
그런데도 우리 바보 두사람은  아이들과 함께 잠자고 일찍 도망치듯 그 환락의 도시를 빠져나오고 말았다.
그 얘기를 하면 친구들이 숙맥이라고 놀려대었다.

그리고는 막둥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아빠만 일터에 남겨두고 두째 딸은 뉴욕에 있고,
두 아들과 큰 딸과 나, 넷이서 뉴올린즈에 휴가를 나갔었다.
그곳에 있을 때 아들 둘은 수퍼볼을 구경갔다.
딸과 나는 그 시간동안 저녁식사를 하고도 시간이 남아
시내를 운전하고 다니다가 카지노들을 지나게 되었다.
나는 "저기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자"고 말했다.
그때 딸은 펄쩍뛰며 “아냐, 엄마 절대로 안돼.” 하는 것이 아닌가?  
딸이 기독학생회에 다니며 착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줄은 알지만 그렇게까지 분명 할줄은 몰랐다.
어느새 딸이 자라서 엄마같이 굴었다.
나는 “구경도 못하냐 뭐?” 했지만 엄마같은 딸의 말에 감사하고 따르기로했다.
큰 딸이 그러니 동생들도 찍 소리 못하고 가지 않는건 당연하다.

라스베가스에 사는 사촌이 지지난해 결혼을 해서 갈일이 생겼었다.
거기 있는 동안 어른들을 모시고 카지노에 가서 하루 논 일이 있었다.
딸의 말이 생각이 났으나 라스베가스 온 기념으로 어른들이 가자하는데 안 따라갈수 없었다.
생전에 한번도 못 구경한것도 우스운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딱지는 떼자고 생각했고.
그래서 5불은 잃어주고 간다하고  잠간 당기는 것 을 해보았다.
너무 쉬워서 배울것도 없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카지노 연습은 5불로 끝을 냈다.
5불을 잃어버림으로 카지노는 완전히 졸업했다.
5불을 순식간에 잃던데 그런 것을하며 하루종일, 밤새도록, 눈이 빨개져서 앉아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한심한가?
도대체 얼마나들 잃을까? 돈 뿐 아니라 건강도 잃을 것이요, 모든 것을 잃는다고 들었다.

내가 아는 이중문화 가정 여자중에 아주 착실하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분이 있었다.
아주 단정하고 품위가 있었고 돈도 잘 벌었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한번 라스베가스를 다녀 오더니 돈을 땃다나, 노름중독이 들었다.  
얼마 못가서 착실히 모아놓았던 돈을 다 잃어버리고 이혼도 당하였다.
그위에  어떤 미국 남자에게 만여불을 빌린다고  빼앗아 도망한 사건이 우리 동네에서 일어났었다.
경찰에 지명 수배된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참 아깝기 그지 없었다.
그리 예쁘게 살던 사람이 망가졌으니…
홈레스가 되어 떠돌 그녀를 생각하면 참 마음 아프다.

우리가 미국에 처음 올 때만 해도 노름은 라스베가스에 가야만 할수 있었다.
지금은 큰 도시에는 어디든지 다 허가를 해줘서 수 많은 사람이 노름에 미쳐간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이 노름장에 많이 드나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슬픈 이야기가 아닐수 없다.

이렇게 집 가까이까지 쳐들어온 카지노….
카지노는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말아야한다고 하면 그 딸에 그 엄마?(2007년 2월26일)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