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모님의 죽음

오늘 아침 우리 교회 목사사모님이 소천하셨다.
만 6 년간의 암과의 투쟁은 암의 승리로 끝이났다.

마지막 호스피스에 가서 만나뵌 사모님은 온화한 웃음을 띄고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누운채로 눈을 간신히 뜨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천사같은 모습이었으나
너무나 깡마른 졸아든 몸이 얼마나 스산해보이는지 몰랐다.
노랗다못해 연두빛 얼굴을 하시고
잠이 들었다 깻다하며 정신도 들락이었지만
조금치라도 정신이 들면 입가에 웃음을 띄고
"감사합니다"를 하시는 사모님

평소에 사모님은 혹시라도 임종 가까이엔 너무 아파서 헛소리로 하나님 영광을 가릴까 걱정하며 기도해 오셨다.
"끝까지 잘해야해요" 수 없이 스스로 다짐하시곤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목사 사모 송종숙이 고통앞에 죄짓지 않으려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기도 제목이었다.
나는 사모님께서 얼마만한 고통을 감수하시며
마지막 까지 그렇게 미소를 잃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혹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셨을까
어찌 아프단 소리한번 내지르지 않으셨을까?

사모님께서 아직은 걸어다녔을때 마지막으로 온 힘을 기울여 하셨던 일은
4주전 12월 첫주일에 목사님 생신을 차려드린 일이다.
축하의 첫 과업은 꽃을 제단에 장식하는 일이었다. 복수가 차서 배가 부른 몸으로 마지막 힘을 짜내서 ..
여러송이의 백합과 같은색의 둥근 잎사귀의 화초를 조화한 멋진 제단 꽃은
보통 보아넘길 수없는 뛰어난 작품이었다.
사모님은 부자집 딸로 자라나 의상 디자이너와 꽃디자이너 강사로 일하시기도 했다한다.
난 기회를 타서 그꽃이 참 아름다웠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결국은 못해버렸다.

사모님과 7년이나 연애해서 결혼한 우리 목사님은 한양공대 출신 엔지니어였는데
결혼해서 애들 둘을 낳은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늦게야 주의 종이 되셨다.
목회자의 사모님 자리는 화려했던 그녀에겐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 였을까?
박사공부를 다 마치고 처음 간 목회지에서 젊은 유학생들 밥해대기가 너무나 힘드셨었다는 그분…
그곳을 사임하고 우리교회에 오실 그때 암이 처음 발견되었는데 그때가 6년전이었다.
사랑하시는 목사님의 55세 생신잔치는 얼마나 잘차렸는지!  
갈비에서 떡과 과일까지 풍성하게 음식을 장만하신것을 보고 우리 모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150여명이 푸짐히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나누고 있을때,  
케익을 자르는 순서 전에 온 교우들 앞에서
목사님은 병든 아내를 오래도록  포옹하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우리 모두 이번 목사님의 생일이 사모님에겐 마지막임이 절로 깨달아졌다.

그때 목사님곁에 서계신 사모님의 얼굴은 노랗게 병색이 가득하셔서 마주 쳐다보기가 민망하였다.
복수를 계속 일주일에 한번씩 빼고 계신때였으니까…
그다음 주일엔 사모님을 볼수 없었다. 몸을 가누기 힘드셔서 예배를 마치자 마자 집에 가신것이었다.
언제나 병든 몸을 이끌고 맨 뒷자석에 앉아 손을 높이들고 찬양하고 기도하셨었는데,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어린애같이 환하게 웃으셨었는데  
그 모습을 더이상 볼수없게 된 것이다.

그 주간에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사람을 못 알아보시고 눈도 못뜨신다고 했다.
이틀간의 사투끝에 다시 정신이 났을땐
음식도 잡숫고 싶다하시고 할렐루야를 외치고 찬송가를 여러곡 함께 부르셔서
모두가 기적이 일어나려나하며 좋아하였다.
그래도 병원에서는 더이상 해줄 일이 없다며  호스피스로 옮겨주었다.

거기서 열흘을 지내셨다.
그때 세번가서 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차례에 따라 목사님과 간호하시는 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갔는데
사모님께서도 된장국에 조기구이를 잡수셔야했다.
사모님을 위해서 달리 잡수실 만한 것을 마련하지 못한것이
너무나 죄송한 일이었다.
그것이라도 잡수시니 얼마나 고마왔는지, 다음날은 식혜를 만들어 갖다드렸다.
그날은 누워서 잠만 주무시는 사모님께 인사도 못하고 나왔는데 그후로는 뵐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호스피스는 날마다 한두 사람이 꼭 죽어나가는 곳이므로 울음소리가 자주 나는 곳이라한다.
너무나 시끄러워 쉴수가 없어서 사모님은 지난 수요일 집으로 퇴원하셨다.
집에오셔서 꼭 일주일만에 마지막 성탄절을 가족과 지내신 후
오늘 아침 눈을 감으신 것이다.

사모님을 위하여 만날 때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으나
한편 그 애쓰시는 것을 보면 애처러워서 “오래 살아주십시오”를 할수가 없었다.
내 동생이 암으로 죽던 날도 나는 “그렇게 아프다니 오래 살아달라고 할수가 없구나." 속으로 말했던 기억이 난다.
몹시 아픈 사람들을 보면 내가 먼저 포기하는 건 믿음이 없는 못된 일이겠지.
나를 위하여 “예배드리러 못 나올정도로 아프면 그때는 데리고 가주셔요.”라고 기도한적이 있지만
몸이 그토록 아픈 것은 견딜수 없을 것만 같다.

사모님께서 이제는 그 아픈 몸을 버리고 새몸을 입으셨을 것이다.
암이나 죄나 죽음이 다시는 근처도 못오는 아름다운 부활의 몸…
주님과 함께 환한 웃음을 띄고 계실 사모님을 그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사실은 암을 쓰러뜨리고 사모님이 이기신 것이다.
(2006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