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글 수 1,334
우리 사모님의 죽음
오늘 아침 우리 교회 목사사모님이 소천하셨다.
만 6 년간의 암과의 투쟁은 암의 승리로 끝이났다.
마지막 호스피스에 가서 만나뵌 사모님은 온화한 웃음을 띄고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누운채로 눈을 간신히 뜨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천사같은 모습이었으나
너무나 깡마른 졸아든 몸이 얼마나 스산해보이는지 몰랐다.
노랗다못해 연두빛 얼굴을 하시고
잠이 들었다 깻다하며 정신도 들락이었지만
조금치라도 정신이 들면 입가에 웃음을 띄고
"감사합니다"를 하시는 사모님
평소에 사모님은 혹시라도 임종 가까이엔 너무 아파서 헛소리로 하나님 영광을 가릴까 걱정하며 기도해 오셨다.
"끝까지 잘해야해요" 수 없이 스스로 다짐하시곤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목사 사모 송종숙이 고통앞에 죄짓지 않으려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기도 제목이었다.
나는 사모님께서 얼마만한 고통을 감수하시며
마지막 까지 그렇게 미소를 잃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혹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셨을까
어찌 아프단 소리한번 내지르지 않으셨을까?
사모님께서 아직은 걸어다녔을때 마지막으로 온 힘을 기울여 하셨던 일은
4주전 12월 첫주일에 목사님 생신을 차려드린 일이다.
축하의 첫 과업은 꽃을 제단에 장식하는 일이었다. 복수가 차서 배가 부른 몸으로 마지막 힘을 짜내서 ..
여러송이의 백합과 같은색의 둥근 잎사귀의 화초를 조화한 멋진 제단 꽃은
보통 보아넘길 수없는 뛰어난 작품이었다.
사모님은 부자집 딸로 자라나 의상 디자이너와 꽃디자이너 강사로 일하시기도 했다한다.
난 기회를 타서 그꽃이 참 아름다웠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결국은 못해버렸다.
사모님과 7년이나 연애해서 결혼한 우리 목사님은 한양공대 출신 엔지니어였는데
결혼해서 애들 둘을 낳은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늦게야 주의 종이 되셨다.
목회자의 사모님 자리는 화려했던 그녀에겐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 였을까?
박사공부를 다 마치고 처음 간 목회지에서 젊은 유학생들 밥해대기가 너무나 힘드셨었다는 그분…
그곳을 사임하고 우리교회에 오실 그때 암이 처음 발견되었는데 그때가 6년전이었다.
사랑하시는 목사님의 55세 생신잔치는 얼마나 잘차렸는지!
갈비에서 떡과 과일까지 풍성하게 음식을 장만하신것을 보고 우리 모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150여명이 푸짐히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나누고 있을때,
케익을 자르는 순서 전에 온 교우들 앞에서
목사님은 병든 아내를 오래도록 포옹하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우리 모두 이번 목사님의 생일이 사모님에겐 마지막임이 절로 깨달아졌다.
그때 목사님곁에 서계신 사모님의 얼굴은 노랗게 병색이 가득하셔서 마주 쳐다보기가 민망하였다.
복수를 계속 일주일에 한번씩 빼고 계신때였으니까…
그다음 주일엔 사모님을 볼수 없었다. 몸을 가누기 힘드셔서 예배를 마치자 마자 집에 가신것이었다.
언제나 병든 몸을 이끌고 맨 뒷자석에 앉아 손을 높이들고 찬양하고 기도하셨었는데,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어린애같이 환하게 웃으셨었는데
그 모습을 더이상 볼수없게 된 것이다.
그 주간에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사람을 못 알아보시고 눈도 못뜨신다고 했다.
이틀간의 사투끝에 다시 정신이 났을땐
음식도 잡숫고 싶다하시고 할렐루야를 외치고 찬송가를 여러곡 함께 부르셔서
모두가 기적이 일어나려나하며 좋아하였다.
그래도 병원에서는 더이상 해줄 일이 없다며 호스피스로 옮겨주었다.
거기서 열흘을 지내셨다.
그때 세번가서 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차례에 따라 목사님과 간호하시는 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갔는데
사모님께서도 된장국에 조기구이를 잡수셔야했다.
사모님을 위해서 달리 잡수실 만한 것을 마련하지 못한것이
너무나 죄송한 일이었다.
그것이라도 잡수시니 얼마나 고마왔는지, 다음날은 식혜를 만들어 갖다드렸다.
그날은 누워서 잠만 주무시는 사모님께 인사도 못하고 나왔는데 그후로는 뵐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호스피스는 날마다 한두 사람이 꼭 죽어나가는 곳이므로 울음소리가 자주 나는 곳이라한다.
너무나 시끄러워 쉴수가 없어서 사모님은 지난 수요일 집으로 퇴원하셨다.
집에오셔서 꼭 일주일만에 마지막 성탄절을 가족과 지내신 후
오늘 아침 눈을 감으신 것이다.
사모님을 위하여 만날 때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으나
한편 그 애쓰시는 것을 보면 애처러워서 “오래 살아주십시오”를 할수가 없었다.
내 동생이 암으로 죽던 날도 나는 “그렇게 아프다니 오래 살아달라고 할수가 없구나." 속으로 말했던 기억이 난다.
몹시 아픈 사람들을 보면 내가 먼저 포기하는 건 믿음이 없는 못된 일이겠지.
나를 위하여 “예배드리러 못 나올정도로 아프면 그때는 데리고 가주셔요.”라고 기도한적이 있지만
몸이 그토록 아픈 것은 견딜수 없을 것만 같다.
사모님께서 이제는 그 아픈 몸을 버리고 새몸을 입으셨을 것이다.
암이나 죄나 죽음이 다시는 근처도 못오는 아름다운 부활의 몸…
주님과 함께 환한 웃음을 띄고 계실 사모님을 그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사실은 암을 쓰러뜨리고 사모님이 이기신 것이다.
(2006년 12월 26일)
오늘 아침 우리 교회 목사사모님이 소천하셨다.
만 6 년간의 암과의 투쟁은 암의 승리로 끝이났다.
마지막 호스피스에 가서 만나뵌 사모님은 온화한 웃음을 띄고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
누운채로 눈을 간신히 뜨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천사같은 모습이었으나
너무나 깡마른 졸아든 몸이 얼마나 스산해보이는지 몰랐다.
노랗다못해 연두빛 얼굴을 하시고
잠이 들었다 깻다하며 정신도 들락이었지만
조금치라도 정신이 들면 입가에 웃음을 띄고
"감사합니다"를 하시는 사모님
평소에 사모님은 혹시라도 임종 가까이엔 너무 아파서 헛소리로 하나님 영광을 가릴까 걱정하며 기도해 오셨다.
"끝까지 잘해야해요" 수 없이 스스로 다짐하시곤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목사 사모 송종숙이 고통앞에 죄짓지 않으려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기도 제목이었다.
나는 사모님께서 얼마만한 고통을 감수하시며
마지막 까지 그렇게 미소를 잃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혹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셨을까
어찌 아프단 소리한번 내지르지 않으셨을까?
사모님께서 아직은 걸어다녔을때 마지막으로 온 힘을 기울여 하셨던 일은
4주전 12월 첫주일에 목사님 생신을 차려드린 일이다.
축하의 첫 과업은 꽃을 제단에 장식하는 일이었다. 복수가 차서 배가 부른 몸으로 마지막 힘을 짜내서 ..
여러송이의 백합과 같은색의 둥근 잎사귀의 화초를 조화한 멋진 제단 꽃은
보통 보아넘길 수없는 뛰어난 작품이었다.
사모님은 부자집 딸로 자라나 의상 디자이너와 꽃디자이너 강사로 일하시기도 했다한다.
난 기회를 타서 그꽃이 참 아름다웠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결국은 못해버렸다.
사모님과 7년이나 연애해서 결혼한 우리 목사님은 한양공대 출신 엔지니어였는데
결혼해서 애들 둘을 낳은 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늦게야 주의 종이 되셨다.
목회자의 사모님 자리는 화려했던 그녀에겐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 였을까?
박사공부를 다 마치고 처음 간 목회지에서 젊은 유학생들 밥해대기가 너무나 힘드셨었다는 그분…
그곳을 사임하고 우리교회에 오실 그때 암이 처음 발견되었는데 그때가 6년전이었다.
사랑하시는 목사님의 55세 생신잔치는 얼마나 잘차렸는지!
갈비에서 떡과 과일까지 풍성하게 음식을 장만하신것을 보고 우리 모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150여명이 푸짐히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나누고 있을때,
케익을 자르는 순서 전에 온 교우들 앞에서
목사님은 병든 아내를 오래도록 포옹하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우리 모두 이번 목사님의 생일이 사모님에겐 마지막임이 절로 깨달아졌다.
그때 목사님곁에 서계신 사모님의 얼굴은 노랗게 병색이 가득하셔서 마주 쳐다보기가 민망하였다.
복수를 계속 일주일에 한번씩 빼고 계신때였으니까…
그다음 주일엔 사모님을 볼수 없었다. 몸을 가누기 힘드셔서 예배를 마치자 마자 집에 가신것이었다.
언제나 병든 몸을 이끌고 맨 뒷자석에 앉아 손을 높이들고 찬양하고 기도하셨었는데,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어린애같이 환하게 웃으셨었는데
그 모습을 더이상 볼수없게 된 것이다.
그 주간에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사람을 못 알아보시고 눈도 못뜨신다고 했다.
이틀간의 사투끝에 다시 정신이 났을땐
음식도 잡숫고 싶다하시고 할렐루야를 외치고 찬송가를 여러곡 함께 부르셔서
모두가 기적이 일어나려나하며 좋아하였다.
그래도 병원에서는 더이상 해줄 일이 없다며 호스피스로 옮겨주었다.
거기서 열흘을 지내셨다.
그때 세번가서 뵌 것이 마지막이었다.
차례에 따라 목사님과 간호하시는 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갔는데
사모님께서도 된장국에 조기구이를 잡수셔야했다.
사모님을 위해서 달리 잡수실 만한 것을 마련하지 못한것이
너무나 죄송한 일이었다.
그것이라도 잡수시니 얼마나 고마왔는지, 다음날은 식혜를 만들어 갖다드렸다.
그날은 누워서 잠만 주무시는 사모님께 인사도 못하고 나왔는데 그후로는 뵐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호스피스는 날마다 한두 사람이 꼭 죽어나가는 곳이므로 울음소리가 자주 나는 곳이라한다.
너무나 시끄러워 쉴수가 없어서 사모님은 지난 수요일 집으로 퇴원하셨다.
집에오셔서 꼭 일주일만에 마지막 성탄절을 가족과 지내신 후
오늘 아침 눈을 감으신 것이다.
사모님을 위하여 만날 때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으나
한편 그 애쓰시는 것을 보면 애처러워서 “오래 살아주십시오”를 할수가 없었다.
내 동생이 암으로 죽던 날도 나는 “그렇게 아프다니 오래 살아달라고 할수가 없구나." 속으로 말했던 기억이 난다.
몹시 아픈 사람들을 보면 내가 먼저 포기하는 건 믿음이 없는 못된 일이겠지.
나를 위하여 “예배드리러 못 나올정도로 아프면 그때는 데리고 가주셔요.”라고 기도한적이 있지만
몸이 그토록 아픈 것은 견딜수 없을 것만 같다.
사모님께서 이제는 그 아픈 몸을 버리고 새몸을 입으셨을 것이다.
암이나 죄나 죽음이 다시는 근처도 못오는 아름다운 부활의 몸…
주님과 함께 환한 웃음을 띄고 계실 사모님을 그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사실은 암을 쓰러뜨리고 사모님이 이기신 것이다.
(2006년 12월 26일)
2006.12.27 10:41:00 (*.17.243.170)
먼저 보내드리는 일은 힘든 일이지요?
제게도 슬픔이 몰려 옵니다.
선배님의 슬픔도 느껴지구요 ::´(::´(::´(::´(
제게도 슬픔이 몰려 옵니다.
선배님의 슬픔도 느껴지구요 ::´(::´(::´(::´(
2006.12.27 11:25:08 (*.172.201.208)
인선아~
홈피에 이제 들어와 아직 잘 몰라서
가장 편한 우리 5기방에 올렸지?
경선이 말대로
소모임에 가서, 산문이나, 시는 글사랑 방에
기독교는 종교란에 올리려므나.
인선아~
이제 눈물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그 곳에서
안식을 누리 실 그 분을 생각하며, 감사하자.
나도 어제, 성탄 예배 후
암 치료를 받고 있는, 아들 친구의 부인을 보러갔었지.
유방암 수술 후, 완치 되어 조심하며
매달 검사 받는데, 폐와 뇌에 다시 전이 되었다는구나.
2주 전에 병원에 가서 보고온 후부터, 매일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
두 돌이 채 안 된, 아들을 보며
내 마음이 무척 아프고 안타까웠다.
'고난 당한 것이 유익'이라고
붙들 분은 주님 밖에 안계시어
그 의 영혼을 위해서는 참 유익이라 생각했어.
그러나, 계속 기도한다.
회복되어,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아들을 잘 키울 수 있도록.
인생이 풀의꽃과 같다고, 야고보서에 나오지?
홈피에 이제 들어와 아직 잘 몰라서
가장 편한 우리 5기방에 올렸지?
경선이 말대로
소모임에 가서, 산문이나, 시는 글사랑 방에
기독교는 종교란에 올리려므나.
인선아~
이제 눈물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그 곳에서
안식을 누리 실 그 분을 생각하며, 감사하자.
나도 어제, 성탄 예배 후
암 치료를 받고 있는, 아들 친구의 부인을 보러갔었지.
유방암 수술 후, 완치 되어 조심하며
매달 검사 받는데, 폐와 뇌에 다시 전이 되었다는구나.
2주 전에 병원에 가서 보고온 후부터, 매일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
두 돌이 채 안 된, 아들을 보며
내 마음이 무척 아프고 안타까웠다.
'고난 당한 것이 유익'이라고
붙들 분은 주님 밖에 안계시어
그 의 영혼을 위해서는 참 유익이라 생각했어.
그러나, 계속 기도한다.
회복되어,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아들을 잘 키울 수 있도록.
인생이 풀의꽃과 같다고, 야고보서에 나오지?
2006.12.27 12:09:58 (*.75.110.219)
인선아!!!
마음이 많이 아프겠다
사람들은 죽음은 인생의 끝이고
완전한 종말로 생각하며 두려워하지.
그러나 죽음은 되도록 지지 않아야 할 수고로운 짐이며,
벗어버려야 할 고난으로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나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죽음은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죽음조차 친구라고 생각하면 죽음도 감사하단다.
오래 산다고 반드시 좋은 것일 수만은 없지 않을까?.
편안한 날을 얼마 더 산다면 모를까?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를 데려가시는 그 순간이 가장 적당한 때 였을거야,
그러니 죽음도 행복인 것이며
죽음 앞에서 감사를 고백해야 하기 위하여
건강 할 때에 모든 것을 나눔으로 정리 하는 것도
생을 마무리 하는 방법일 것같아
인선아!
너무 슬퍼하지말아라!
이승에서 너무 슬퍼하면 맴돌며 떠나지 못한데
천국으로 가시게 웃으면서 보내드리렴

극락조화
마음이 많이 아프겠다
사람들은 죽음은 인생의 끝이고
완전한 종말로 생각하며 두려워하지.
그러나 죽음은 되도록 지지 않아야 할 수고로운 짐이며,
벗어버려야 할 고난으로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나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죽음은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죽음조차 친구라고 생각하면 죽음도 감사하단다.
오래 산다고 반드시 좋은 것일 수만은 없지 않을까?.
편안한 날을 얼마 더 산다면 모를까?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를 데려가시는 그 순간이 가장 적당한 때 였을거야,
그러니 죽음도 행복인 것이며
죽음 앞에서 감사를 고백해야 하기 위하여
건강 할 때에 모든 것을 나눔으로 정리 하는 것도
생을 마무리 하는 방법일 것같아
인선아!
너무 슬퍼하지말아라!
이승에서 너무 슬퍼하면 맴돌며 떠나지 못한데
천국으로 가시게 웃으면서 보내드리렴

극락조화
2006.12.27 12:54:09 (*.13.165.82)
경선아, 회원가입이 안되어
그쪽에 글을 올릴수가 없더라.
원하면 그쪽으로 옮기던지 나는 상관이 없어.
그러나 글은 자기 표현이므로 자기 색이 안나올수는 없는것 같아.
그냥 읽는 사람이 판단하고 알아서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난 한국서 만든 비데오 보다가 대화중에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동시에 부르는 것을 보면 참 유치하게 생각되어.
모든 사람 다 만족하게 하려다가 천박으로 떨어지고
한사람도 만족시킬수 없다고...
다른 종교인의 글에 대해... 나는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말할수 있어.
인생을 배우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서 기회 있을떄마다 읽곤하거든.
읽는다고 내 믿음에 금이 간다거나 손상이 될수는 없을 뿐아니라
오히려 어떤 진리는 통하는 데가 많이 있던걸.
만약 그사람들이 내 종교의 비위를 맞추려고
골자들을 빼놓거나 모호하게한다면 읽을 가치도 없는 글이 되고 말거야.
아무튼 지나치게 기독교색채를 일부러 낸것 같아 미안하다.
앞으로 조심할 것을 약속할께. 자신은 좀 없지만...
대신 가입을 해줘도 좋겠다. 자꾸 이메일 주소가 이미 있는거라고 나오더라.
그쪽에 글을 올릴수가 없더라.
원하면 그쪽으로 옮기던지 나는 상관이 없어.
그러나 글은 자기 표현이므로 자기 색이 안나올수는 없는것 같아.
그냥 읽는 사람이 판단하고 알아서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난 한국서 만든 비데오 보다가 대화중에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동시에 부르는 것을 보면 참 유치하게 생각되어.
모든 사람 다 만족하게 하려다가 천박으로 떨어지고
한사람도 만족시킬수 없다고...
다른 종교인의 글에 대해... 나는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말할수 있어.
인생을 배우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서 기회 있을떄마다 읽곤하거든.
읽는다고 내 믿음에 금이 간다거나 손상이 될수는 없을 뿐아니라
오히려 어떤 진리는 통하는 데가 많이 있던걸.
만약 그사람들이 내 종교의 비위를 맞추려고
골자들을 빼놓거나 모호하게한다면 읽을 가치도 없는 글이 되고 말거야.
아무튼 지나치게 기독교색채를 일부러 낸것 같아 미안하다.
앞으로 조심할 것을 약속할께. 자신은 좀 없지만...
대신 가입을 해줘도 좋겠다. 자꾸 이메일 주소가 이미 있는거라고 나오더라.
2006.12.27 13:11:13 (*.13.165.82)
인옥후배, 열심히 읽고 댓글 써주니 고맙네..
수인아, 죽음과 병고를 가까이서 보아서 통하는 것 같구나.
죽음, 고통, 시련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라고...
우리가 풀과 같고 우리의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희자야, 죽음이 친구라고, 참 좋은 표현이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므로
그를 데려간 그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그럴것이란 깨달음
감사한다.(:f)
수인아, 죽음과 병고를 가까이서 보아서 통하는 것 같구나.
죽음, 고통, 시련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라고...
우리가 풀과 같고 우리의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희자야, 죽음이 친구라고, 참 좋은 표현이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므로
그를 데려간 그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그럴것이란 깨달음
감사한다.(:f)
2006.12.27 13:30:54 (*.173.16.64)
인선! 잘 받아들여줘서 편해지는구나.
종교에 관한 화제 자체가 매우 예민한 부분이라 신경 조금 썼었지.
나 개인적으로는 범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어렸을 때부터의 습관으로라도 기독교적인 것에 기울어져 있단다.
종교에 관한 화제 자체가 매우 예민한 부분이라 신경 조금 썼었지.
나 개인적으로는 범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어렸을 때부터의 습관으로라도 기독교적인 것에 기울어져 있단다.
2006.12.28 04:36:16 (*.173.16.64)
인선아~ 11회 안광희가 홈피 다짐지기거든.
Anne이란 별호를 사용하지.
그 후배에게 이멜 보내서 도움을 요청해라.
자게판에 Anne을 클릭하면 멜보내기가 나온단다.
나는 도와주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네.
Anne이란 별호를 사용하지.
그 후배에게 이멜 보내서 도움을 요청해라.
자게판에 Anne을 클릭하면 멜보내기가 나온단다.
나는 도와주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겠네.
2006.12.28 05:30:54 (*.116.230.155)
인선선배님!!!
오늘 처음으로 5기방에 들어왔다가 선배님이 올리신 이 귀한 글을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읽었답니다.
어쩜 글도 그렇게 잘 쓰시는지.........
그 사모님처럼 마지막날 그렇게 고통중에도 웃으면서"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을런지
정말 그렇게 마지막을 모든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며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남편 목사님께서 아내가 마지막으로 차려준 상을 받으며 아내에게 오래 포옹하신
그 광경이 보이는 듯 합니다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생각앤 이런글은 꼭 종교란에 안 올려도 될것 같아요.
그 방은 많은 동문들이 가는 방은 아닌 것 같애요.
다시한번 이런 감동적인 글을 올리신 인선선배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처음으로 5기방에 들어왔다가 선배님이 올리신 이 귀한 글을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읽었답니다.
어쩜 글도 그렇게 잘 쓰시는지.........
그 사모님처럼 마지막날 그렇게 고통중에도 웃으면서"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을런지
정말 그렇게 마지막을 모든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며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남편 목사님께서 아내가 마지막으로 차려준 상을 받으며 아내에게 오래 포옹하신
그 광경이 보이는 듯 합니다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 생각앤 이런글은 꼭 종교란에 안 올려도 될것 같아요.
그 방은 많은 동문들이 가는 방은 아닌 것 같애요.
다시한번 이런 감동적인 글을 올리신 인선선배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006.12.28 06:47:17 (*.209.168.180)
춘자후배,
내가 더 감사하네.
음식도 싱싱한 재료면 맛도 좋듯이
재료가 좋으니 글이 되는것 같아요.
인일 홈피에?너무나 훌륭한 글들을 많이 접하다보니
창작욕이 조금 생기는 중이랍니다.
우리 목사님은 끝까지 사모님께 참 잘하시데요.
긴병에 효자 없다던데
그렇지 않았어요.
내 남편같으면 석달이 못되어 정신이 돌던지
도망가지나 않았을까? 상상하니 괜히 슬프네 흑흑.
목사님이 속히 기운을 얻으시기만
숨 죽여 기도해드릴 뿐이랍니다.
thank you. you made my day!
(:ab)
내가 더 감사하네.
음식도 싱싱한 재료면 맛도 좋듯이
재료가 좋으니 글이 되는것 같아요.
인일 홈피에?너무나 훌륭한 글들을 많이 접하다보니
창작욕이 조금 생기는 중이랍니다.
우리 목사님은 끝까지 사모님께 참 잘하시데요.
긴병에 효자 없다던데
그렇지 않았어요.
내 남편같으면 석달이 못되어 정신이 돌던지
도망가지나 않았을까? 상상하니 괜히 슬프네 흑흑.
목사님이 속히 기운을 얻으시기만
숨 죽여 기도해드릴 뿐이랍니다.
thank you. you made my day!
(:ab)
2006.12.30 20:36:28 (*.51.73.54)
선배님, 우연히 5기방에 들어왔다가 선배님의 글을 읽으며 울고 있었어요.
옆에 우리 아들들에게도 아름다운 사모님의 모습을 읽어줬구요... (목이 메이는군요.)
마지막 선배님의 말씀에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아, 사실은 암을 쓰러뜨리고 사모님이 이기신 것이다!"
선배님때문에 다시금 새 힘을 얻고 나갑니다. "you raise me up!" (:l)(:ab)
옆에 우리 아들들에게도 아름다운 사모님의 모습을 읽어줬구요... (목이 메이는군요.)
마지막 선배님의 말씀에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아, 사실은 암을 쓰러뜨리고 사모님이 이기신 것이다!"
선배님때문에 다시금 새 힘을 얻고 나갑니다. "you raise me up!" (:l)(:ab)
2006.12.31 09:26:54 (*.13.165.64)
경숙후배 읽어줘서 고맙구요.
오늘 사모님 장례를 치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들 날아왔는지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어요.
또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 들을 많이 남겨놓고 가셨는지
감격의 도가니였어요.
예를 들면 호스피스에 계실때 어떤 분을 불러 오라고 하시더래요.
그분은 교회는 가끔 오시지만 아직 믿기로 결단한것이 아니라
사모님께서 몇번 세례 받기를 격려하셨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했었던 분입니다.
그분이 사모님의 마지막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어서
지난 성탄절엔 세례를 받으셨지요.
그몸으로 한달 전까지 열심히 병원 심방도 다니시고요.
다 이야기할수 없어 참 안타깝군요.
조용하고 잔잔한 웃음...
승리한 우리 사모님...
얼마나 존경이가고 그의 행복한 삷이 부럽던지요!
30년 더 살고 덜살고는 문제가 아닐겁니다. ::)
오늘 사모님 장례를 치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들 날아왔는지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어요.
또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 들을 많이 남겨놓고 가셨는지
감격의 도가니였어요.
예를 들면 호스피스에 계실때 어떤 분을 불러 오라고 하시더래요.
그분은 교회는 가끔 오시지만 아직 믿기로 결단한것이 아니라
사모님께서 몇번 세례 받기를 격려하셨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했었던 분입니다.
그분이 사모님의 마지막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어서
지난 성탄절엔 세례를 받으셨지요.
그몸으로 한달 전까지 열심히 병원 심방도 다니시고요.
다 이야기할수 없어 참 안타깝군요.
조용하고 잔잔한 웃음...
승리한 우리 사모님...
얼마나 존경이가고 그의 행복한 삷이 부럽던지요!
30년 더 살고 덜살고는 문제가 아닐겁니다. ::)
고통,절망,죽음 등을 견뎌내는데 그 힘은 더 위력이 있는 것 같아 경외스럽네.
인선아~ 요즈음 글을 자주 올리니 우리 오기방 활성화 되고 정말 좋구나
그런데 小責을 맡은 내가 또 한가지 일러둘께. 양해할 수 있지?
몇 년전에 기독교 목사부인인 후배가 동문광장 자게판에
꽤 감동스런 글을 연작으로 게재했댔어
그러다가 잘은 모르지만 너무 종교색으로 되는 것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모든 동문이 기독교만 믿는 것은 아니라서인지
종교란으로 그가 쓰는 글을 올리게 했었지 아마.
소모임 종교에 가면 각종 종교가 한 방씩 자리하고 있단다.
그곳에는 불교도 천주교도 기타 종교도 공존하고 있어
믿는 종교에 따라 자신의 종교가 최고이며 일반화 된 것으로 생각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타종교를 믿는 친구들에게는...혹시? 저어되는구나.
아마도 이런 글 종교방에 올린다면 더 감동받는 독자가 많으리란 생각에 조심스럽게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