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글 수 1,334
세탁소와 나
미국에 오자마자 아이를 갖기시작하여 첫5년은 네 아이를 키우느라 집에 붙어있었다.
막둥이가 1살이 되면서 나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은 짧은 영어에 미국 의사 생활이 버거운지
사업을 하면 돈버는게 더 쉬울꺼란 생각을하였다.
그래서 내가 나서서 비지네스를 하는것을 장려하였다.
남편의 월급이 조금 모이면 그돈을 가지고 식당, 식품점, 구두수선소 등을 열어
구경도 못해본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돈 번것을 다 갖다가 버린 셈이다.
식당은 헐값에 팔고,
친정집이 이민오니까 그들에게 식품점은 넘겼다.
나중 화려한 몰 안에 장소를 얻어 구두수선소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어느날
남편은 과장과 다툰끝에 좋은직장을 헌신짝같이 내버리고 와버렸다.
나는 그의 고집을 알기때문에 돌이킬 생각을 하지못하고 내 맘을 돌렸다.
그동안 우릴 먹이느라 혼자 애쓴 셈이니 이제 내가 본격적으로 나서서 도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구두 수선소만 가지고는 우리 살림이 안될것 같아 무얼할까 생각을 하였는데
그때 제일 만만한 것이 세탁소였다.
여동생이 뉴욕에서 새로 차렸는데 아주 잘하고 있다는 소식이요,
내 주위에도 세탁소로 돈벌어 의사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결정을 하고는
세탁소를 보러 여러군데를 다닌 것이 아니라 꼭 한군데만 가보고 그냥 샀다.
평생 꼼꼼히 재보는것을 하지않고
급한 결정을 해서 고생을 사서한 적이 많았는데 그때도 꼭 그랬다.
빨래가 많이 있다는 것만 보고 사기로한 것이었다.
나중보니 남의 드랍스토어 몇군데에서 픽업해가지고 온것이었고
그런건 이익보다 골치가 더 아픈 것인데
세탁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정말 그냥 샀다.
나는 우리집 둘째 딸이요,
언니 아니면 동생이 궂은 일은 다하고
나는 요리조리 잘 빠지는 식으로 살았었다.
착한동생에게 “언니는 시집가서 일 못해서 쫒겨 올꺼야”
악담을 듣기도 했으니까 얼마나 얌체였을까.
일이 뭔지도 모른 나와 해본건 공부밖에 없는남편,
최악의 콤비가 세탁소를 시작했으니 볼을 보듯 고생이 뻔한 것이었다.
일꾼 댓명을 데리고 일을 하는데 아무리해도 일이 안끝났다.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7시에 닫는데 어떤날에는 5-6시까지 뒷일이 끝이 안나는 것이었다.
뒷일이 끝나야 앞엣 일을 끝내는데 말이다.
어떤 날엔 밤 9시 10시까지 해도 밀린 옷수선 일이 끝나지 않기도했다.
익숙해지기 전 처음 몇달 동안은 마치 눈이 뒤로 빠져 나가는 것같고
다리도 후들후들 떨렸다.
일꾼들이 일을 안끝내고 다 도망을 가버리면
혼자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기도 여러번.
여름에는 얼마나 더웠는지!
땀이 비오듯 흘렀는데 지옥보다는 덜뜨거울거라고 서로 위로했다.
그 더운데 뜨거운 열로 프레스를 하는건
꼭 오븐 안에서 일하는것 같았다.
물을 한도 없이 마시며 견뎠다.
겨울에는 뒷일이 끝나면 보일러를 껏는데
즉시 추운 시카고 날씨에 덩달아 식어버려서 한기가 올라왔다.
전기 난로를 한두군데 켜도 시카고 추위를 당할수 있으랴만
난방비를 아끼려면 보일러를 켤수는 없었다.
덜덜 떨면서 중학교 재봉시간에 배운실력으로 옷수선을
틈틈히 손님 받아가면서 하는 것이다.
눈설미도 있고 손재주라면 자신있는 내가 생각나는 대로 고쳐주면
잘했다는 말을 해주는 손님도 있었다.
나중에는 단골이 많아져 옷수선 일만으로도 년5만불은 벌었다.
기계도 가끔 고장이 났다.
그 많은 기계가 차례로 고장이 나는 것이었다.
기계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남편과 나는
큰돈을 들여가며 기술자를 데려와서 고쳤다.
왠만한 사람들은 남편들이 고쳐가며 쓴다고 하지만
내 남편은 기계를 쳐다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할줄 아는게 그렇게도 없는 무재주일까.
남편은 20년 가까이 세탁소를 했지만 끝까지 스커트하나 옳게 찍지 못했고,
가장 기본이던 바지하나 제대로 다려서 걸지못했다.
세탁소 20년에 바지 하나 못 끝내는 사람은 내 남편 하나뿐이 없을것이다.
그래도 할일이 많아서 이리왔다 저리갔다하며 일하는 흉내는 내주는게 고마왔다.
남편은 그 많은 일 중에서 배달일, 종업원 월급주는일, 청소, 빨래 거는일,
그리고 짝 맞추는 일들을 했는데
옷을 잘못 맞춰 골탕을 먹일때도 많았다.
한개라도 잘못 엮어지면 그걸 찾아내느라 얼마나 시간이 들고 속이 상했는지!
그리고 그가 점심식사를 책임졌다.
남편이 먹자고 졸라대지 않으면 먹지 못하고 일만 했을것이다.
일만하다 죽었을것이다.
나는 앞에서 손님 받는것 부터 시작하여,
빨래를 챙겨 기계에 넣는것,
거는것, 스팟 빼는것, 프레스하는것, 뒷 손질하는것, 짝 맞추는것,
카버 씌우는것 제자리에 파일해 놓는것,
옷수선하는것 등, 일꾼들이 하다만것들을 닥치는대로 다하였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돈은 맘대로 벌리지 않았다.
남들은 다 떼 돈벌은 세탁소 인데
우리는 교회 헌금내고
애들 넷 학교 보내고 근근히 살 정도 였다.
아이들 넷은 자기들끼리 컸다.
지금도 그때 못먹이고 못 입히고 키운것이 한스럽고 미안하다.
그렇게 근근히 살다가 늙어가는 남편이 남의 옷 배달하는게 보기 싫어서 다 떼버리고
우리것만 하기시작하였더니
드디어 차차 나아졌다.
나중 3-4년은 돈도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였다.
3 년전 두째딸 의과 대학 졸업식을 뉴욕 카네기홀에서 했는데
그곳에 가는 기념으로 그 세탁소를 팔았다.
팔때도 재지 않고 팔아버렸다.
처음에 일하기 힘들어서 팔고 싶었을때는 그렇게 안팔리더니
이제 좀 된가 싶으니 당장 팔수가 있었다.
나를 쏭 버드(노래하는 새)라고 부르던 단골 손님들에게는
한마디 예고도 상의도 안한 미안한 일이었다만 얼마나 시원했던지!
지금은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세탁소! 내 훈련소!
꿈에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남의 나라에서 아이들 넷과 먹고 산 터전이었으니
고마와해야 할것이다.(2006년 12월).
(x8)
미국에 오자마자 아이를 갖기시작하여 첫5년은 네 아이를 키우느라 집에 붙어있었다.
막둥이가 1살이 되면서 나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은 짧은 영어에 미국 의사 생활이 버거운지
사업을 하면 돈버는게 더 쉬울꺼란 생각을하였다.
그래서 내가 나서서 비지네스를 하는것을 장려하였다.
남편의 월급이 조금 모이면 그돈을 가지고 식당, 식품점, 구두수선소 등을 열어
구경도 못해본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돈 번것을 다 갖다가 버린 셈이다.
식당은 헐값에 팔고,
친정집이 이민오니까 그들에게 식품점은 넘겼다.
나중 화려한 몰 안에 장소를 얻어 구두수선소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어느날
남편은 과장과 다툰끝에 좋은직장을 헌신짝같이 내버리고 와버렸다.
나는 그의 고집을 알기때문에 돌이킬 생각을 하지못하고 내 맘을 돌렸다.
그동안 우릴 먹이느라 혼자 애쓴 셈이니 이제 내가 본격적으로 나서서 도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구두 수선소만 가지고는 우리 살림이 안될것 같아 무얼할까 생각을 하였는데
그때 제일 만만한 것이 세탁소였다.
여동생이 뉴욕에서 새로 차렸는데 아주 잘하고 있다는 소식이요,
내 주위에도 세탁소로 돈벌어 의사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결정을 하고는
세탁소를 보러 여러군데를 다닌 것이 아니라 꼭 한군데만 가보고 그냥 샀다.
평생 꼼꼼히 재보는것을 하지않고
급한 결정을 해서 고생을 사서한 적이 많았는데 그때도 꼭 그랬다.
빨래가 많이 있다는 것만 보고 사기로한 것이었다.
나중보니 남의 드랍스토어 몇군데에서 픽업해가지고 온것이었고
그런건 이익보다 골치가 더 아픈 것인데
세탁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정말 그냥 샀다.
나는 우리집 둘째 딸이요,
언니 아니면 동생이 궂은 일은 다하고
나는 요리조리 잘 빠지는 식으로 살았었다.
착한동생에게 “언니는 시집가서 일 못해서 쫒겨 올꺼야”
악담을 듣기도 했으니까 얼마나 얌체였을까.
일이 뭔지도 모른 나와 해본건 공부밖에 없는남편,
최악의 콤비가 세탁소를 시작했으니 볼을 보듯 고생이 뻔한 것이었다.
일꾼 댓명을 데리고 일을 하는데 아무리해도 일이 안끝났다.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7시에 닫는데 어떤날에는 5-6시까지 뒷일이 끝이 안나는 것이었다.
뒷일이 끝나야 앞엣 일을 끝내는데 말이다.
어떤 날엔 밤 9시 10시까지 해도 밀린 옷수선 일이 끝나지 않기도했다.
익숙해지기 전 처음 몇달 동안은 마치 눈이 뒤로 빠져 나가는 것같고
다리도 후들후들 떨렸다.
일꾼들이 일을 안끝내고 다 도망을 가버리면
혼자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기도 여러번.
여름에는 얼마나 더웠는지!
땀이 비오듯 흘렀는데 지옥보다는 덜뜨거울거라고 서로 위로했다.
그 더운데 뜨거운 열로 프레스를 하는건
꼭 오븐 안에서 일하는것 같았다.
물을 한도 없이 마시며 견뎠다.
겨울에는 뒷일이 끝나면 보일러를 껏는데
즉시 추운 시카고 날씨에 덩달아 식어버려서 한기가 올라왔다.
전기 난로를 한두군데 켜도 시카고 추위를 당할수 있으랴만
난방비를 아끼려면 보일러를 켤수는 없었다.
덜덜 떨면서 중학교 재봉시간에 배운실력으로 옷수선을
틈틈히 손님 받아가면서 하는 것이다.
눈설미도 있고 손재주라면 자신있는 내가 생각나는 대로 고쳐주면
잘했다는 말을 해주는 손님도 있었다.
나중에는 단골이 많아져 옷수선 일만으로도 년5만불은 벌었다.
기계도 가끔 고장이 났다.
그 많은 기계가 차례로 고장이 나는 것이었다.
기계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남편과 나는
큰돈을 들여가며 기술자를 데려와서 고쳤다.
왠만한 사람들은 남편들이 고쳐가며 쓴다고 하지만
내 남편은 기계를 쳐다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할줄 아는게 그렇게도 없는 무재주일까.
남편은 20년 가까이 세탁소를 했지만 끝까지 스커트하나 옳게 찍지 못했고,
가장 기본이던 바지하나 제대로 다려서 걸지못했다.
세탁소 20년에 바지 하나 못 끝내는 사람은 내 남편 하나뿐이 없을것이다.
그래도 할일이 많아서 이리왔다 저리갔다하며 일하는 흉내는 내주는게 고마왔다.
남편은 그 많은 일 중에서 배달일, 종업원 월급주는일, 청소, 빨래 거는일,
그리고 짝 맞추는 일들을 했는데
옷을 잘못 맞춰 골탕을 먹일때도 많았다.
한개라도 잘못 엮어지면 그걸 찾아내느라 얼마나 시간이 들고 속이 상했는지!
그리고 그가 점심식사를 책임졌다.
남편이 먹자고 졸라대지 않으면 먹지 못하고 일만 했을것이다.
일만하다 죽었을것이다.
나는 앞에서 손님 받는것 부터 시작하여,
빨래를 챙겨 기계에 넣는것,
거는것, 스팟 빼는것, 프레스하는것, 뒷 손질하는것, 짝 맞추는것,
카버 씌우는것 제자리에 파일해 놓는것,
옷수선하는것 등, 일꾼들이 하다만것들을 닥치는대로 다하였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돈은 맘대로 벌리지 않았다.
남들은 다 떼 돈벌은 세탁소 인데
우리는 교회 헌금내고
애들 넷 학교 보내고 근근히 살 정도 였다.
아이들 넷은 자기들끼리 컸다.
지금도 그때 못먹이고 못 입히고 키운것이 한스럽고 미안하다.
그렇게 근근히 살다가 늙어가는 남편이 남의 옷 배달하는게 보기 싫어서 다 떼버리고
우리것만 하기시작하였더니
드디어 차차 나아졌다.
나중 3-4년은 돈도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였다.
3 년전 두째딸 의과 대학 졸업식을 뉴욕 카네기홀에서 했는데
그곳에 가는 기념으로 그 세탁소를 팔았다.
팔때도 재지 않고 팔아버렸다.
처음에 일하기 힘들어서 팔고 싶었을때는 그렇게 안팔리더니
이제 좀 된가 싶으니 당장 팔수가 있었다.
나를 쏭 버드(노래하는 새)라고 부르던 단골 손님들에게는
한마디 예고도 상의도 안한 미안한 일이었다만 얼마나 시원했던지!
지금은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세탁소! 내 훈련소!
꿈에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남의 나라에서 아이들 넷과 먹고 산 터전이었으니
고마와해야 할것이다.(2006년 12월).
(x8)
2006.12.23 07:21:57 (*.173.16.64)
겪은 얘기를 담담히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 체험이 네게 이미 소중한 체험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일거야.
인선아 ~글에 대한 격려 고마워.댓글은 이곳에 쓸께.
어줍잖게도 어떤 글이 명문인지를 좀 알기 때문에
글쓰기에 많은 방해를 받는다.
아마 이 마음도 욕심이겠지만.아니 욕심이지 뭐...
개인적으로는 군더더기 없는 단문을 선호하지.
그런데 쓰려면 그게 안되더라구.
글이란 매력있는 만큼 어렵기만 하구나.
그렇지만 진솔한 우리 얘기들을 쓰다보면 일취월장되지 않겠니?
머리속에 기승전결의 구도를 대충 잡고 꾸미지 않은 마음을 써내려가면 되지 않겠나...
아마추어인 우리가 감동을 주는 부분까지 신경쓸 필요는 조금도 없으니
오히려 부담도 없고 편하기도 하지.
그리구 인선아 홈피에는 내가 조금 먼저 들어왔으니까 한가지 귀뜸할께
읽는 이들이 수월하게 글을 읽게 하려면
한 문장이 끝나면 다음 문장은 아래 줄로 내려주는 게 좋을거야.
너와 홈피에서 이렇게 노닥일 수 있는 거
인터넷 혁명이라더니 정말 그렇구나.
앞으로도 진솔한 좋은 글 기다릴께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라. (:g)(:f)
그 체험이 네게 이미 소중한 체험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일거야.
인선아 ~글에 대한 격려 고마워.댓글은 이곳에 쓸께.
어줍잖게도 어떤 글이 명문인지를 좀 알기 때문에
글쓰기에 많은 방해를 받는다.
아마 이 마음도 욕심이겠지만.아니 욕심이지 뭐...
개인적으로는 군더더기 없는 단문을 선호하지.
그런데 쓰려면 그게 안되더라구.
글이란 매력있는 만큼 어렵기만 하구나.
그렇지만 진솔한 우리 얘기들을 쓰다보면 일취월장되지 않겠니?
머리속에 기승전결의 구도를 대충 잡고 꾸미지 않은 마음을 써내려가면 되지 않겠나...
아마추어인 우리가 감동을 주는 부분까지 신경쓸 필요는 조금도 없으니
오히려 부담도 없고 편하기도 하지.
그리구 인선아 홈피에는 내가 조금 먼저 들어왔으니까 한가지 귀뜸할께
읽는 이들이 수월하게 글을 읽게 하려면
한 문장이 끝나면 다음 문장은 아래 줄로 내려주는 게 좋을거야.
너와 홈피에서 이렇게 노닥일 수 있는 거
인터넷 혁명이라더니 정말 그렇구나.
앞으로도 진솔한 좋은 글 기다릴께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라. (:g)(:f)
2006.12.23 15:42:35 (*.102.133.71)
지난 번의 시 "세탁소의 하루" 도 잘 읽고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있어서
어떤 글인가 궁금해서 들어왔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와 이름이 두자나 같은 선배님이시네요.
반갑습니다.
선배님~~~~건강하시고 내년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샬롬!!!

어떤 글인가 궁금해서 들어왔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와 이름이 두자나 같은 선배님이시네요.
반갑습니다.
선배님~~~~건강하시고 내년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샬롬!!!

2006.12.23 17:33:48 (*.183.209.232)
누구든지 첨엔 자리 잡기가 힘든거겠지만
부부가 합심해서 오늘날이 있게 되었구나...!
애도 넷이나 낳아 기르고 용~타~(:y)
넌 애국자야...(x8)
대한민국땅 에서 이사만 가도 내 자리 같지 않고
괜히 주눅들어 어리버리 한데 하물며
그 먼 이국 땅에서 자리 잡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니? ::o
인선아~!
<젊은날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 라는 건 옛말이다.
요즘은 <젊은날 고생은 늙어서 신경통>이란다.
그간 고생 많이 했으니 운동 많이 하고 건강해서
부부가 오래오래 해로 하기 바란다....(:l)
부부가 합심해서 오늘날이 있게 되었구나...!
애도 넷이나 낳아 기르고 용~타~(:y)
넌 애국자야...(x8)
대한민국땅 에서 이사만 가도 내 자리 같지 않고
괜히 주눅들어 어리버리 한데 하물며
그 먼 이국 땅에서 자리 잡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니? ::o
인선아~!
<젊은날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 라는 건 옛말이다.
요즘은 <젊은날 고생은 늙어서 신경통>이란다.
그간 고생 많이 했으니 운동 많이 하고 건강해서
부부가 오래오래 해로 하기 바란다....(:l)
2006.12.24 00:02:40 (*.125.0.234)
인선아,
세탁소에서의 너와 부군의 모습이 영상으로 눈에 밟혀오네.
지금에야 <훈련소>로 고백하는 세탁소,
순수한 네 마음이 글 속에 촉촉히 적셔나오는구나.
그래서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리고.
이민자의 삶의 현장을 대변해주어 참 고마와.
토요일 은행갈 적이면 들리는 동네 세탁소
좋은 일군 아저씨를 두고 혼자 일하는 주인 아줌마를 통해 네 체험을 투영할 수 있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 중노동 후 집에 오면
2층 침실까지 갈 기력 잃은 엄마 위해
1층 family room에 목욕실 만들어 엄마 방으로 꾸미자는 2007년 계획
세 딸 효녀들의 61살된 세탁소 아줌마.
바로 세탁소 인선이를 보는 것 같애.
하지만 이런 고달픈 삶의 과거지사를
지난 후 담담히 예기할 수 있다는 건
감사의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한 은혜의 체험이
있기 때문이었을거야.
***
오늘 새벽 6시 45분,
동네 세탁소에서 커피 한잔 얻어 마시고
촉촉히 비 내리는 1마일 거리를
옷포장 비닐로 온 몸 감싸고 걸어 집에 왔다.
어제 밤 집에 온 큰 아들 한뜻과 함께 세탁소 아줌마네 인사차 들렀다가
"양국화" 나오는 비디오 보다 그만 폭삭 의자에서 꿈을 꿨거던.
잠에 빠진 아들 나중에 쓰라고 내 차 그집에 나두고
아줌마 차 얻어탔거던.
얼마전 아줌마가 급히 외출을 해야 한다기에
1시간 손님 받는 일을 대신 해준 적이 있어.
다행히 바쁜 날이 아니라서 얼떨떨이 손님 받는데
인사 깍드시 한 것으로 손님 놓치지 않으려 재주 부린 기억만 나네.
인선아,
"아이들 넷 먹고 산 터전"
자녀들이 그래서 엄마 아빠처럼 열심히 사니
헛된 훈련소는 아닌 듯 싶다.::o
세탁소에서의 너와 부군의 모습이 영상으로 눈에 밟혀오네.
지금에야 <훈련소>로 고백하는 세탁소,
순수한 네 마음이 글 속에 촉촉히 적셔나오는구나.
그래서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리고.
이민자의 삶의 현장을 대변해주어 참 고마와.
토요일 은행갈 적이면 들리는 동네 세탁소
좋은 일군 아저씨를 두고 혼자 일하는 주인 아줌마를 통해 네 체험을 투영할 수 있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 중노동 후 집에 오면
2층 침실까지 갈 기력 잃은 엄마 위해
1층 family room에 목욕실 만들어 엄마 방으로 꾸미자는 2007년 계획
세 딸 효녀들의 61살된 세탁소 아줌마.
바로 세탁소 인선이를 보는 것 같애.
하지만 이런 고달픈 삶의 과거지사를
지난 후 담담히 예기할 수 있다는 건
감사의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한 은혜의 체험이
있기 때문이었을거야.
***
오늘 새벽 6시 45분,
동네 세탁소에서 커피 한잔 얻어 마시고
촉촉히 비 내리는 1마일 거리를
옷포장 비닐로 온 몸 감싸고 걸어 집에 왔다.
어제 밤 집에 온 큰 아들 한뜻과 함께 세탁소 아줌마네 인사차 들렀다가
"양국화" 나오는 비디오 보다 그만 폭삭 의자에서 꿈을 꿨거던.
잠에 빠진 아들 나중에 쓰라고 내 차 그집에 나두고
아줌마 차 얻어탔거던.
얼마전 아줌마가 급히 외출을 해야 한다기에
1시간 손님 받는 일을 대신 해준 적이 있어.
다행히 바쁜 날이 아니라서 얼떨떨이 손님 받는데
인사 깍드시 한 것으로 손님 놓치지 않으려 재주 부린 기억만 나네.
인선아,
"아이들 넷 먹고 산 터전"
자녀들이 그래서 엄마 아빠처럼 열심히 사니
헛된 훈련소는 아닌 듯 싶다.::o
2006.12.24 00:40:40 (*.13.165.82)
댓글을 달은 뒤로는 글을 수정할수가 없나봐.
첫 10년이 아니라 5년 밖에 집에서 아이 키우며 논적이 없는것.
74년에 첫아이를 낳고 78년에 네째 아이를 낳았지.
뿐아니라 고쳐야할데가 여러곳 보이네.
경선아
교회 신문 쓴다고 바닥바닥 써 버릇해서 그런것 같아.
컴퓨터엔 자리가 한도 없으니까
좀더 읽는사람을 고려하여 써야 하는구나. 알았스, 땡큐.
인희 후배, 이름이 두자나 같네 더블로 반갑고.
격려도 고밥고.
순호야
그래 아이들 넷 때문에 늘 감사하며 살지.
제일 부자라고 생각하고..
근데 젊어서 고생했다고 늙어서 신경통은 아니다.
내 또래중에서 내가 제일 안늙은편이라고 자부하거든.
즐거운 맘으로 일하면 운동하는 것과 똑같은 게 아닐까
아니 내 맘에 계신 주님을 사랑하면서 사는것이
항상 행복하고 젊게 만드는 것일게야.
(:l)(x1)(:l)(x1)
첫 10년이 아니라 5년 밖에 집에서 아이 키우며 논적이 없는것.
74년에 첫아이를 낳고 78년에 네째 아이를 낳았지.
뿐아니라 고쳐야할데가 여러곳 보이네.
경선아
교회 신문 쓴다고 바닥바닥 써 버릇해서 그런것 같아.
컴퓨터엔 자리가 한도 없으니까
좀더 읽는사람을 고려하여 써야 하는구나. 알았스, 땡큐.
인희 후배, 이름이 두자나 같네 더블로 반갑고.
격려도 고밥고.
순호야
그래 아이들 넷 때문에 늘 감사하며 살지.
제일 부자라고 생각하고..
근데 젊어서 고생했다고 늙어서 신경통은 아니다.
내 또래중에서 내가 제일 안늙은편이라고 자부하거든.
즐거운 맘으로 일하면 운동하는 것과 똑같은 게 아닐까
아니 내 맘에 계신 주님을 사랑하면서 사는것이
항상 행복하고 젊게 만드는 것일게야.
(:l)(x1)(:l)(x1)
2006.12.24 04:02:35 (*.211.77.190)
정례야
양국화 나오는 비디오 귀엽지?
우리엄마도 영화보면 졸기 일수였는데 나도
비데오보면 잘 존단다.
우리 아빠는 끝나는 시간까지
꼼짝 않고 졸지도 않고 잘봐서
교회가서 졸때마다 얼마나 미운지
꼬집어준단다. 비데오 광신자라고 구박해주지.
너도 존다하니 우습다.(:f)
눈은 좀 어떠니? 혹 백내장 수술해야되는거 아닌지 한번 알아봐.
울엄마 백내장 수술 하고 80세인 아직도 안경 안쓰고
책을 읽으시거던.
나도 안경안쓰고 책을 읽는게 엄마닮아서 그런가봐.
근데 약간 흐린것 같기도해서 나도 백내장 수술해야되나
생각해봤어.
양국화 나오는 비디오 귀엽지?
우리엄마도 영화보면 졸기 일수였는데 나도
비데오보면 잘 존단다.
우리 아빠는 끝나는 시간까지
꼼짝 않고 졸지도 않고 잘봐서
교회가서 졸때마다 얼마나 미운지
꼬집어준단다. 비데오 광신자라고 구박해주지.
너도 존다하니 우습다.(:f)
눈은 좀 어떠니? 혹 백내장 수술해야되는거 아닌지 한번 알아봐.
울엄마 백내장 수술 하고 80세인 아직도 안경 안쓰고
책을 읽으시거던.
나도 안경안쓰고 책을 읽는게 엄마닮아서 그런가봐.
근데 약간 흐린것 같기도해서 나도 백내장 수술해야되나
생각해봤어.
2006.12.24 05:21:44 (*.183.209.203)
인선아~!
수정할 수 있어.
1...............ID, PASSWORD,를 쓰고 <로그인> 한다.
2...............댓글 맨밑에 <수정>을 클릭 한다.
3...............본문이 나오면 <수정>한 후 <작성 완료>를 클릭한다.
해봐~ (:l)
정례야~!
잘 갔구나?
못만나서 미안하구나....::$
난 밤엔 운전 잘 안해...너무 초저녁 잠이 많아서
동행 못해서 미안해.
낮에 움직일 때 시간내서 만나자...(x8)
수정할 수 있어.
1...............ID, PASSWORD,를 쓰고 <로그인> 한다.
2...............댓글 맨밑에 <수정>을 클릭 한다.
3...............본문이 나오면 <수정>한 후 <작성 완료>를 클릭한다.
해봐~ (:l)
정례야~!
잘 갔구나?
못만나서 미안하구나....::$
난 밤엔 운전 잘 안해...너무 초저녁 잠이 많아서
동행 못해서 미안해.
낮에 움직일 때 시간내서 만나자...(x8)
2006.12.24 06:29:22 (*.183.209.203)
동문이면 다 되는데....
니가 글을 올린다는건 회원가입이 이미 되있기 때문이야.
이~상하네?(x3)
내가 회장할때 홈피 관리자로 부터 니가 회원으로
가입 되었다고 연락 왔었는데.....
니가 글을 올린다는건 회원가입이 이미 되있기 때문이야.
이~상하네?(x3)
내가 회장할때 홈피 관리자로 부터 니가 회원으로
가입 되었다고 연락 왔었는데.....
2006.12.24 07:29:32 (*.125.0.234)
순호야,
전화로 음성 들은 것 만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다음에 여유있게 한국갈 기회 있으면 꼭 낮에 짬을 낼께.
그리고 나도 밤 운전 몹시 싫어해.
자꾸 길 옆 언덕백이로 올라가는 것 같구
일 땜에 꼭 필요한 곳만 다닌단다.
인선아,
아까 성탄 인사 하려고 몇번 집과 모빌, 모두 했는데
잘 안되대.
좋은 성탄 보내렴.
내 눈 걱정해주어 정말 고마와.
이번 한국 간김에 동네에서 안경 새로 해왔어.
혹 안경 때문일수도 있다 싶어서.
아직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는데
피곤해서 눈의 피로가 쉽게 온다는 생각으로
이번 성탄과 년말 휴식을 잘 취하면 낳을지도 모르지.
얼마전 의사말로는 백내장은 아니라던데...
눈물샘 약으로도 잘 안드는 게 찜찔하네.
1월 중순에 안과 약속을 해 놓긴 했어.
이 모든 게 내가 건강관리 잘 하지 못한 때문인걸
마음대로 잘 쉬지 못하는 우를 범하네.
모두 모두 성탄 잘 보내렴
전화로 음성 들은 것 만도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다음에 여유있게 한국갈 기회 있으면 꼭 낮에 짬을 낼께.
그리고 나도 밤 운전 몹시 싫어해.
자꾸 길 옆 언덕백이로 올라가는 것 같구
일 땜에 꼭 필요한 곳만 다닌단다.
인선아,
아까 성탄 인사 하려고 몇번 집과 모빌, 모두 했는데
잘 안되대.
좋은 성탄 보내렴.
내 눈 걱정해주어 정말 고마와.
이번 한국 간김에 동네에서 안경 새로 해왔어.
혹 안경 때문일수도 있다 싶어서.
아직 효과를 보지는 못하고 있는데
피곤해서 눈의 피로가 쉽게 온다는 생각으로
이번 성탄과 년말 휴식을 잘 취하면 낳을지도 모르지.
얼마전 의사말로는 백내장은 아니라던데...
눈물샘 약으로도 잘 안드는 게 찜찔하네.
1월 중순에 안과 약속을 해 놓긴 했어.
이 모든 게 내가 건강관리 잘 하지 못한 때문인걸
마음대로 잘 쉬지 못하는 우를 범하네.
모두 모두 성탄 잘 보내렴
"세탁소의 하루"
지난번에 실린글 말이야.
중학교 미술선생을 하던 내게
이민 생활은 정 딴판의 길이었지만
또다른 체험으로 인생의 깊이를 얻었다고
말할수 있다. (x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