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과 메밀묵 -굶주리던 시절을 추억하며 먹는 음식, 억고반(憶苦飯)


전통적인 농사에 의존해온 농민들은
기후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알맞은 작물들을 선택해 슬기롭게 대처하며,
이런 와중에서도 절묘한 먹을거리들을 탄생시키는
뛰어난 기지를 보여주었다.
억고반憶苦飯은 이처럼 고생스럽던 시절에 빚어낸
토속적인 먹을거리들을 일컫는 말로,
선비들의 서찰이나 인사말에 담겨 전해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어려움을 기억하며 먹는 음식이다.
구황식보다는 뜻이 한결 선명하고 잔잔한 감흥마저 안겨준다.

소박한 음식이지만 표현의 차이만큼이나
상차림이 갖춰진 모습이고, 이들 대부분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음식문화에 깊숙이 뿌리내려
토속음식으로 그 맥이 이어져온다.
더욱이 요즘처럼 먹을거리가 차고 넘치는 때에
이런 음식들은 오히려 별미 겸 웰빙 푸드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어 격세지감마저 느끼게 한다.  



가뭄이나 홍수 등 재난이 휩쓸고 지나간 텅 빈 논밭에
닥쳐올 가을을 앞두고 2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이 남았다면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까.
단기간에 수확이 가능한 작물이라면 단연 메밀을 꼽는다.
서둘러 밭을 갈아엎거나 토사를 걷어내고
메밀 씨앗을 파종해 무서리가 내리기 전
무릎 높이까지만 자라도 예상한 수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도정을 하지 않고 통메밀로 저장해놓으면 저장성 또한 뛰어나
그때그때 직접 절구에 찧어 가루를 내
국수를 눌러 먹거나 녹말을 내려 묵을 쑤어 별미로 즐겼다.
비교적 조리과정이 손쉬운 음식들이어서
산간오지에서도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만들 수 있었다.
메밀로 만든 국수와 묵은 김칫국에 말면
긴긴 겨울밤 출출한 허기를 달래주었고,
보릿고개를 넘길 때에도 큰 힘이 돼주었다.

특히 강원 산간지방의 토속별미로 뿌리내려온
막국수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속껍질을 알맞게 섞어 갈면
그 농도에 따라 색깔이 다소 검거나 회색 빛깔을 띠면서
하얀 냉면사리보다 오히려 더 구수하고 깊은 맛을 안겨준다.
이름난 막국수집들 대부분이
본고장인 강원도 지역에 터를 닦고 있지만
멋과 세련미로는 서울의 몇 안 되는 막국수집들이 나름대로
특색 있는 면모를 보여주어 별미로 즐기기에도 손색이 없다.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