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글 수 1,334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

<별이 빛나는 밤>

<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테오에게...나는 지금 아를의 강변에 앉아 있네... 욱신거리는 오른쪽 귀에서 강물 소리가 들리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두 男女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다네...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에 캔버스는 초라한 돛단배처럼 어딘가로 나를 태워 갈 것 같기도 하네.
테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네.
흔들리는 기차에서도 별은 빛나고 있었다네.
흔들리듯 가라앉듯 자꾸만 강물 쪽으로 무언가 빨려 들어가고 있네... 강변의 가로등,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어내고 있다네...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별빛을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네...
나는 노란색의 집으로 가서 숨죽여야 할 테지만
별빛은 계속 빛날 테지만. 캔버스에 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리네...
테오, 나의 영혼이 물감처럼 하늘로 번 져갈 수 있을까
트왈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네
<1889년 9월>
한 희원의 그림

<별이 내리는 밤>

<은하수가 있는 마을>

<여수로 가는 막차>

<별과 나무와 바람>

< 별 내리는 신창동>

<별과 바람과 나무>

<밤의 카페 테라스 >

<별이 빛나는 밤>

<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테오에게...나는 지금 아를의 강변에 앉아 있네... 욱신거리는 오른쪽 귀에서 강물 소리가 들리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두 男女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다네...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에 캔버스는 초라한 돛단배처럼 어딘가로 나를 태워 갈 것 같기도 하네.
테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네.
흔들리는 기차에서도 별은 빛나고 있었다네.
흔들리듯 가라앉듯 자꾸만 강물 쪽으로 무언가 빨려 들어가고 있네... 강변의 가로등,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어내고 있다네...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별빛을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네...
나는 노란색의 집으로 가서 숨죽여야 할 테지만
별빛은 계속 빛날 테지만. 캔버스에 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리네...
테오, 나의 영혼이 물감처럼 하늘로 번 져갈 수 있을까
트왈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네
<1889년 9월>
한 희원의 그림

<별이 내리는 밤>

<은하수가 있는 마을>

<여수로 가는 막차>

<별과 나무와 바람>

< 별 내리는 신창동>

<별과 바람과 나무>
2006.09.27 09:06:12 (*.102.194.113)
오우~~~~멋진 그림과 시와 글 그리고 음악!!!!
가히 아주 고급스러운 문화살롱입니다.
반 고호의 "별이 흐르는 밤"을 저도 많이 좋아라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갈 일이 있으면 고호때문에 퐁텐블로와 아를을
꼭 둘러보려 합니다,물론 오베르 쉬와즈도요...
고호의 동생 테오 고호와 나눈 편지를 묶은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짠했는지 모릅니다...지금은 누군가에게 있는데 못찾고 있어요.
프랑스에 가면 스트라스부르도 가 보고 싶은데
알퐁스 도데의 작품배경이 되는 곳이어서 입니다.
별이 그렇게 아름답고 영롱하게 반짝인다네요...
알자스 로렌지역이지요.
그런데 어쩌지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제 컴으론
들리질 않는군요.아주 훌륭한 곡인데요~~~~
지난번 오프라 하노이의 연주도 아주 인상깊었지요...
정말 멋진 문화살롱의 이방!!!!!
넘넘 사랑합니다.
5회선배님들~~~~존경합니다.^^
가히 아주 고급스러운 문화살롱입니다.
반 고호의 "별이 흐르는 밤"을 저도 많이 좋아라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갈 일이 있으면 고호때문에 퐁텐블로와 아를을
꼭 둘러보려 합니다,물론 오베르 쉬와즈도요...
고호의 동생 테오 고호와 나눈 편지를 묶은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짠했는지 모릅니다...지금은 누군가에게 있는데 못찾고 있어요.
프랑스에 가면 스트라스부르도 가 보고 싶은데
알퐁스 도데의 작품배경이 되는 곳이어서 입니다.
별이 그렇게 아름답고 영롱하게 반짝인다네요...
알자스 로렌지역이지요.
그런데 어쩌지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제 컴으론
들리질 않는군요.아주 훌륭한 곡인데요~~~~
지난번 오프라 하노이의 연주도 아주 인상깊었지요...
정말 멋진 문화살롱의 이방!!!!!
넘넘 사랑합니다.
5회선배님들~~~~존경합니다.^^
2006.09.27 09:22:40 (*.75.80.216)
수인아!!!
네가 올린 그림을 보니까,
왜 갑자기 마음이 아파오니,
너무 오랫만이라 그런가? 아니면
그림의 내면에서 품어내는 세월의 성숙함을 느껴서 인가?
수인아!
좋은 그림,음악들로 인해 문화살롱이 문전성시를 이루겠다
전시회가 성공적일 것같아....(:f)(:f)(:f)
네가 올린 그림을 보니까,
왜 갑자기 마음이 아파오니,
너무 오랫만이라 그런가? 아니면
그림의 내면에서 품어내는 세월의 성숙함을 느껴서 인가?
수인아!
좋은 그림,음악들로 인해 문화살롱이 문전성시를 이루겠다
전시회가 성공적일 것같아....(:f)(:f)(:f)
2006.09.27 09:24:30 (*.21.5.43)
인희씨~
벌써 들리셨네요.
음악을 올리다 계속 실패하다가, 바꾸었지요.
아를의 밤하늘의 별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저도 프랑스 여행을 하게되면 가고픈 곳이랍니다.
퐁텐블로와 아를, 오베르 쉬와즈,그리고
이름도 외우기 힘든 스트라스부르등.....
인희씨가 가고픈 곳을
저도 가보고 싶답니다.
고호는 평생을 외롭게, 슬픔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지만
그가 받은 것은 상처와 절망과 인생의 외로움뿐이었지요.
사람은 누구나가 본질적으로 외로움을 느낍니다.
고호는 그림을 통해 그의 슬픔과 외로움들을 달랬고
그의 모든 마음을 그림 속에 담았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이 작품에는 밤하늘의 풍경이 나타납니다.
아래쪽에는 고요하게 잠들어있는 마을이 있고
위쪽의 밤하늘은 화려하고 마치 살아 꿈틀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밤의 침묵 속에 하늘은 생동감 있게 활기를 띄고 있습니다.
이러한 밤의 정경은,
서정성과 신비성을, 그림속의 극명한 색의 대조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 작품은
고호가 환각, 발작 등 정신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힘든 상황 속에 있었던 고호는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고
이 그림을 그린 1년 후, 끝내 자살을 택했답니다.
벌써 들리셨네요.
음악을 올리다 계속 실패하다가, 바꾸었지요.
아를의 밤하늘의 별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저도 프랑스 여행을 하게되면 가고픈 곳이랍니다.
퐁텐블로와 아를, 오베르 쉬와즈,그리고
이름도 외우기 힘든 스트라스부르등.....
인희씨가 가고픈 곳을
저도 가보고 싶답니다.
고호는 평생을 외롭게, 슬픔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지만
그가 받은 것은 상처와 절망과 인생의 외로움뿐이었지요.
사람은 누구나가 본질적으로 외로움을 느낍니다.
고호는 그림을 통해 그의 슬픔과 외로움들을 달랬고
그의 모든 마음을 그림 속에 담았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이 작품에는 밤하늘의 풍경이 나타납니다.
아래쪽에는 고요하게 잠들어있는 마을이 있고
위쪽의 밤하늘은 화려하고 마치 살아 꿈틀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밤의 침묵 속에 하늘은 생동감 있게 활기를 띄고 있습니다.
이러한 밤의 정경은,
서정성과 신비성을, 그림속의 극명한 색의 대조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 작품은
고호가 환각, 발작 등 정신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힘든 상황 속에 있었던 고호는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고
이 그림을 그린 1년 후, 끝내 자살을 택했답니다.
2006.09.27 09:34:22 (*.102.194.113)
아유~~~~이수인선배님...너무 감사합니다.
고흐에 대한 설명~~~~잘 보았습니다.
이렇게 자꾸 응해 주시니
좋아라 하면서 염치없이 자주 오고 있습니다.
한희원님의 그림도 잘 보고 갑니다.
샬롬!!!!!!*^^*
고흐에 대한 설명~~~~잘 보았습니다.
이렇게 자꾸 응해 주시니
좋아라 하면서 염치없이 자주 오고 있습니다.
한희원님의 그림도 잘 보고 갑니다.
샬롬!!!!!!*^^*
2006.09.27 09:43:16 (*.16.190.248)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김환기 作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
2006.09.27 09:51:32 (*.16.190.248)
수인아 그림 선명하게 잘보이니 좋다.
음악은 고호를 그리며 작곡한 `빈센트`라는 곡이 있어.
우리 오기방에 내가 올려났었는데...(155번)
음악은 고호를 그리며 작곡한 `빈센트`라는 곡이 있어.
우리 오기방에 내가 올려났었는데...(155번)
2006.09.27 10:26:41 (*.21.5.43)
희자~
정열 하나 깊이 숨겨 논 여인이여~
네 속에 있는 감성을 건드렸나 봐....
고흐는 별들의 세계로 가기위해
죽음을 선택했을까..........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또 보자. (:w)
정열 하나 깊이 숨겨 논 여인이여~
네 속에 있는 감성을 건드렸나 봐....
고흐는 별들의 세계로 가기위해
죽음을 선택했을까..........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또 보자. (:w)
2006.09.27 10:56:55 (*.75.80.216)
수인아~
삶과 죽음의 동질성을 누가 설명 할 수 있을까?
고호는 고통스러운 삶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 죽음을 택했던 것 아니었을까?
신이 들었으면 이렇게 이야기 하는 나를 보고 '너도 미쳤다고' 하지 않았을까!!!!(:w)(:w)
삶과 죽음의 동질성을 누가 설명 할 수 있을까?
고호는 고통스러운 삶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 죽음을 택했던 것 아니었을까?
신이 들었으면 이렇게 이야기 하는 나를 보고 '너도 미쳤다고' 하지 않았을까!!!!(:w)(:w)
2006.09.27 11:53:23 (*.21.5.43)
경선~
좋은 그림과 글, 또 음악
맨날 어디서 퍼 오누?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별 하나를 쳐다본다 '
선택 된 그 별은,
필연인가, 우연인가?
택하고, 택함받은,결국은 택함이 아닐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빈센트란 음악, 다음에 고흐그림 올릴 때 사용할께. 고마워~ (:l)
좋은 그림과 글, 또 음악
맨날 어디서 퍼 오누?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별 하나를 쳐다본다 '
선택 된 그 별은,
필연인가, 우연인가?
택하고, 택함받은,결국은 택함이 아닐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빈센트란 음악, 다음에 고흐그림 올릴 때 사용할께. 고마워~ (:l)
2006.09.27 20:59:46 (*.111.180.12)
5기 선배님들, 정말 멋져요.
음악도 그림도 글도 마음의 여유도 .........
최고의 문화 살룡입니다.
제 마음엔 향기까지 느껴져요.
음악도 그림도 글도 마음의 여유도 .........
최고의 문화 살룡입니다.
제 마음엔 향기까지 느껴져요.
2006.09.28 00:56:44 (*.219.253.233)
축하한다!
이 세상 그 어디서엔가 음악, 그림, 글 삼박자를
적재적소에 잘 퍼오는 3인방 연출자 덕에
<문화살롱>이 북적될 거라고 장담해도 되겠지?
3인방의 벽을 깰 재간은 은퇴 후로 미루고...
수고하는 경선, 수인, 희자에게 고맙다는 인사차 가끔 들르련다.
너희 덕에 내 사무실이 작은 음악방 된 거 아니?
각 나라에서 찾아오는 손님들과 둥그런 탁자에 둘러앉아
은은한 음악 덕에 따듯한 녹차 한잔을 곁들이면 대화가 참 부드럽게 이어진단다.
물어보는 이에만 그림 살짝 보여주고,
정감한 글로 마음을 정화시키니
뉴욕 빌딩숲이 더 이상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더구나.
대학 시절,
음악 좋아 찾아다니던 '다방'이 생각나네.
한데...
'다방'하면 촌스럽고 '문화살롱'이라니 뭐쫌 격이 올라간 기분이 드네,
내 안에도
다른 나랏말 써야 멋져보이는 '문화'에 익숙해진 거겠지?.
'세상이 바뀌어도 한참인데 구식 소리하네" 귓속을 간지르는
내소리에 깜작 놀란다. (:~)
이 세상 그 어디서엔가 음악, 그림, 글 삼박자를
적재적소에 잘 퍼오는 3인방 연출자 덕에
<문화살롱>이 북적될 거라고 장담해도 되겠지?
3인방의 벽을 깰 재간은 은퇴 후로 미루고...
수고하는 경선, 수인, 희자에게 고맙다는 인사차 가끔 들르련다.
너희 덕에 내 사무실이 작은 음악방 된 거 아니?
각 나라에서 찾아오는 손님들과 둥그런 탁자에 둘러앉아
은은한 음악 덕에 따듯한 녹차 한잔을 곁들이면 대화가 참 부드럽게 이어진단다.
물어보는 이에만 그림 살짝 보여주고,
정감한 글로 마음을 정화시키니
뉴욕 빌딩숲이 더 이상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더구나.
대학 시절,
음악 좋아 찾아다니던 '다방'이 생각나네.
한데...
'다방'하면 촌스럽고 '문화살롱'이라니 뭐쫌 격이 올라간 기분이 드네,
내 안에도
다른 나랏말 써야 멋져보이는 '문화'에 익숙해진 거겠지?.
'세상이 바뀌어도 한참인데 구식 소리하네" 귓속을 간지르는
내소리에 깜작 놀란다. (:~)
2006.09.28 06:49:48 (*.235.90.12)
"문화살롱의 3인방" 너무 멋있다.
이렇게 먼 곳에서 서로 만나 이런 문화생활을 하게 되다니 정말 현대의 과학에 경의를 표해야겠다.
정례야! 신식과 구식은 합쳐져야 제 맛이 나는거 아니니?
예전 일본 노래중에 "펌프킨파이와 시나문 티"라는 게 있었어.
우리또래의 사다 마사시라는 가수가 젊은시절 만든노래인데
(이사람은 원래 클래식 바이얼린을 하다가 가수로 전향했는데 톡톡튀는 머리로 멋진 가사를 써서
작곡 작사 노래까지 혼자 다했지)
가사 내용은 "펌프킨 파이와 시나문 티는 30000원 호박파이와 계피차는 3000원" 이라는 식으로
그당시 일본의 외래어 문화를 재치있게 꼬집었는데 그게 갑자기 생각난다.
더 많은 친구들이 와서 즐겼으면 좋겠다.
얘들아! 감기들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l)
이렇게 먼 곳에서 서로 만나 이런 문화생활을 하게 되다니 정말 현대의 과학에 경의를 표해야겠다.
정례야! 신식과 구식은 합쳐져야 제 맛이 나는거 아니니?
예전 일본 노래중에 "펌프킨파이와 시나문 티"라는 게 있었어.
우리또래의 사다 마사시라는 가수가 젊은시절 만든노래인데
(이사람은 원래 클래식 바이얼린을 하다가 가수로 전향했는데 톡톡튀는 머리로 멋진 가사를 써서
작곡 작사 노래까지 혼자 다했지)
가사 내용은 "펌프킨 파이와 시나문 티는 30000원 호박파이와 계피차는 3000원" 이라는 식으로
그당시 일본의 외래어 문화를 재치있게 꼬집었는데 그게 갑자기 생각난다.
더 많은 친구들이 와서 즐겼으면 좋겠다.
얘들아! 감기들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l)
2006.09.28 08:00:32 (*.21.5.43)
야덜아~
순호가 끓여온 차에
후배님들의 축하에
오신도신, 즐거운 파티구나.
그 시절 음악다방이 좋았지.
곡명을 좍~ D.J에게 주면, 순서대로 음악 들려주던 곳.
팝송을 즐기고 베토벤에 흠뻑 빠졌던 시절.......
후회가 있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
나는 고거이 후회가 된다.
더 많은 친구들이 참여하면 좋으련만
눈팅만 하나봐.
그래도 명례, 명옥이~ 자주 볼 수 있어 좋구나.(:f)(:u)
순호가 끓여온 차에
후배님들의 축하에
오신도신, 즐거운 파티구나.
그 시절 음악다방이 좋았지.
곡명을 좍~ D.J에게 주면, 순서대로 음악 들려주던 곳.
팝송을 즐기고 베토벤에 흠뻑 빠졌던 시절.......
후회가 있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
나는 고거이 후회가 된다.
더 많은 친구들이 참여하면 좋으련만
눈팅만 하나봐.
그래도 명례, 명옥이~ 자주 볼 수 있어 좋구나.(:f)(:u)
2006.09.28 08:28:56 (*.102.194.113)
안녕히 주무셨어요?
날씨가 이곳의 음악과 어우러지면서 분위기가 좋습니다.
조금 글루미하니까요~~~~
문화살롱~~~이방에 자꾸 오게 되네요.^^

날씨가 이곳의 음악과 어우러지면서 분위기가 좋습니다.
조금 글루미하니까요~~~~
문화살롱~~~이방에 자꾸 오게 되네요.^^

2006.09.28 09:10:33 (*.102.194.113)
***<별,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
<마종기>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마라.
순간적이 아니 인생이 어디에 있는가.
내게도 지난 몇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2003)
<마종기>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모든 모순 위에서 당신을 부른다.
괴로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마라.
순간적이 아니 인생이 어디에 있는가.
내게도 지난 몇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2003)
2006.09.28 09:24:40 (*.21.5.43)
인희 후배~
마종기님의 마음을 적시는 시를 가져왔군요.
별, 별, 별.........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우리들 가슴 속에도 소망 하나 가지고 살아야 겠지요.
한희원님의 그림도 아주 서정적이며 시적입니다.
아래에 고흐와 동생 테오가 아를에서 살았던 노란 집을 올립니다.

마종기님의 마음을 적시는 시를 가져왔군요.
별, 별, 별.........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우리들 가슴 속에도 소망 하나 가지고 살아야 겠지요.
한희원님의 그림도 아주 서정적이며 시적입니다.
아래에 고흐와 동생 테오가 아를에서 살았던 노란 집을 올립니다.

2006.09.28 10:10:08 (*.75.80.216)
살아 있다는 것,사랑 한다는 것,
이 행복을 같이 나누는 친구가 있다는 것,
가슴시리도록 절절한 아름다움 이겠지.
멀리 시애틀에서 한영희가 전화가 왔어,
가슴이 쌓였던 아픔이 터질 것같았는데
5기방에 들어와 훌훌 털어내고 있고,
삶이 가치를 정리하고 있데,
경선이와 수인이에게 너무 고맙다고 전해....(:k)(:y)
앞으로도 많은 수고 바란다네(:f)(:f)(:f)
이 행복을 같이 나누는 친구가 있다는 것,
가슴시리도록 절절한 아름다움 이겠지.
멀리 시애틀에서 한영희가 전화가 왔어,
가슴이 쌓였던 아픔이 터질 것같았는데
5기방에 들어와 훌훌 털어내고 있고,
삶이 가치를 정리하고 있데,
경선이와 수인이에게 너무 고맙다고 전해....(:k)(:y)
앞으로도 많은 수고 바란다네(:f)(:f)(:f)
2006.09.28 10:11:48 (*.102.194.113)
반 고흐가 정신병에 걸려 입원했던
아를의 정신병원 사진입니다.
얼마 전 병원을 리모델링하면서 그림의 색과 비슷하게
복원을 했다는군요.작품은 "아를병원의 안뜰"입니다.

아를의 정신병원 사진입니다.
얼마 전 병원을 리모델링하면서 그림의 색과 비슷하게
복원을 했다는군요.작품은 "아를병원의 안뜰"입니다.

2006.09.28 10:32:41 (*.75.80.216)
또 돌아와서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손에서 붓이 떨어지려고 한다.
나는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다시 3점의 대작을 완성한다.
그것은 폭풍의 하늘에 휘감긴 보리밭의 전경을 그린 것으로
나는 충분한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테오에게의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오베르의 종말기에 그는 옆으로 길게 된,
그에게 있어 새로운 규격의 그림을 시도했다. 지평선에의 넓은 전망에 대한
그의 잠재의식이 예견한 종말의 의식과 함께,
대지가 폭풍 속에서 바다처럼 사납게 일렁이는
거기에 까마귀가 활개치며 나르는 불안한 화면을 통하여
그는 영혼의 고독과 슬픔을 절규하고 있다. '앞날의 예감도 어둡다.
나는 미래를 행복한 빛 속에서 보는 것은 전혀 되지 않는다.
' 절망감은 그를 못견디게 하고 있다.
[18세의 빈센트 반 고흐] 1853년, 네덜란드 남쪽의 작은 마을 프로트 준데르트 출생.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80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할 때까지
화상점원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였다. 하지만 점원이라는 직업은
그의 격정적인 성격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목사가 되기를 결심한
그는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전도사의 길을 걸으며 미래의 자신을 준비하지만
그 역시 실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프랑스의 아를르에 정착하면서부터 고흐는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이미 그의 나이가 서른을 넘어선 시기였다.
북프랑스의 오베르에 있는 가셰박사의 병원 생활과 자살에 이르기까지,
그는 4~5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진정으로 찾아 헤맸던 내면 세계로의 여행을 떠난다.
1879~1880년경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고흐는 데생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밀레의 작품들을 모사하며 수많은 습작으로 데생에서 가능한 모든 테크닉을 익히고 실험했다.
1884년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그의 색조는 은은한 서정성과 함께
어둡고 두터운 색조를 보이며 변화를 꾀한다.
브뤼셀•헤이그•앙베르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언제나 노동자•농민 등 하층민 모습과 주변생활과 풍경을 담았다.
초기 걸작 [감자 먹는 사람들](1885)도 이 무렵의 작품이다.
그리고 급속하게 변화된 그의 회화 기법은 1886년 파리에 정착하면서 활짝 피기 시작했다.
색조를 분할하고, 빛을 표현해 내기 위해 어지럽게 진동하는 붓의 터치는
바로 이 시기에 나타난 결과물이었다.
1886년 화상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생 테오를 찾아서 파리에 나온
고흐는 코르몽의 화숙(畵塾)에서 베르나르와 로트레크를 알게 되었다.
인상파의 밝은 그림과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인물 중심의 풍속화] 판화에 접함으로써
그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풍(風)의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화풍으로 바뀌었으며,
정열적인 작품활동을 하였다. 자화상이 급격히 많아진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그러나 곧 파리라는 대도시의 생활에 싫증을 느껴
1888년 2월 보다 밝은 태양을 찾아서 프랑스 아를로 이주하였다.
아를로 이주한 뒤부터 죽을 때까지의 약 2년 반이야말로 고흐 예술의 참다운 개화기였다.
그는 그곳의 밝은 태양에 감격하였으며 [아를의 도개교(跳開橋)] [해바라기]와 같은 걸작을 제작했다.
한편 새로운 예술촌 건설을 꿈꾸고 고갱과 베르나르에게 그곳으로 올 것을 끈질기게 권유하였다.
그리하여 고갱과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으나 성격차이가 심하여 순조롭지 못하였다.
그해 12월 크리스마스 이브에 고흐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 후 고흐의 생활은 발작과 입원의 연속이었으며, 발작이 없을 때에는
그 동안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마구 그려댔다.
발작과 그림 제작에 지쳐 파리 근교 오베르에 있는 의사 가셰에게 찾아간 것은 1890년 5월이었다.
쌩 레미를 떠나 오베르 쉬르 와즈로 간 고흐는 의사 가셰박사의 집에 기거하면서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준비한다.
그는 일시적인 진정의 상태를 맞이했지만 또다시 발작을 일으키고 이성을 잃었다.
한때 건강회복으로 발작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듯하였으나 다시 쇠약해져 끝내 권총자살을 하였다.
그의 유작은 매우 많다. 지금은 온 세계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정열적인 작풍이 생전에는 끝내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인상을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준 것은 1903년의 유작전 이후였다.
따라서 그는 20세기 초의 포비슴 화가들의 최초의 큰 지표가 되었다.
고흐가 살다간 세기말은 우울한 시대였다.
자본주의와 과학 문명의 급속한 발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었다.
리얼리즘과 인상주의가 시대적인 방황을 틈타 등장했으나, 이들은 금세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본질적인 정신세계를 직시했던 고흐에게는 외부 세계의 물질적인 변화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회화 세계는 인간의 내면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절망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또한 동시대의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고흐는 그들의 빛에 많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빛에 의해 반사되는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태양 그 자체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태양은 그의 내적 세계를 신과 연결시켜 주는 절대적인 길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많은 태양의 그림이 등장한다.
회오리치는 듯한 그의 태양湧?정신적인 혼돈의 세계를 대변하는 동시에
그 갈등의 폭만큼이나 거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에 가장 많이 있는데, 40점 가까운 자화상 이외에도
[빈센트의 방]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삼(杉)나무와 별이 있는 길]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이 있다.
(고흐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나 다시 3점의 대작을 완성한다.
그것은 폭풍의 하늘에 휘감긴 보리밭의 전경을 그린 것으로
나는 충분한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테오에게의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오베르의 종말기에 그는 옆으로 길게 된,
그에게 있어 새로운 규격의 그림을 시도했다. 지평선에의 넓은 전망에 대한
그의 잠재의식이 예견한 종말의 의식과 함께,
대지가 폭풍 속에서 바다처럼 사납게 일렁이는
거기에 까마귀가 활개치며 나르는 불안한 화면을 통하여
그는 영혼의 고독과 슬픔을 절규하고 있다. '앞날의 예감도 어둡다.
나는 미래를 행복한 빛 속에서 보는 것은 전혀 되지 않는다.
' 절망감은 그를 못견디게 하고 있다.
[18세의 빈센트 반 고흐] 1853년, 네덜란드 남쪽의 작은 마을 프로트 준데르트 출생.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880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할 때까지
화상점원 등 여러 직업에 종사하였다. 하지만 점원이라는 직업은
그의 격정적인 성격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목사가 되기를 결심한
그는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전도사의 길을 걸으며 미래의 자신을 준비하지만
그 역시 실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프랑스의 아를르에 정착하면서부터 고흐는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선다.
이미 그의 나이가 서른을 넘어선 시기였다.
북프랑스의 오베르에 있는 가셰박사의 병원 생활과 자살에 이르기까지,
그는 4~5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진정으로 찾아 헤맸던 내면 세계로의 여행을 떠난다.
1879~1880년경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고흐는 데생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밀레의 작품들을 모사하며 수많은 습작으로 데생에서 가능한 모든 테크닉을 익히고 실험했다.
1884년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그의 색조는 은은한 서정성과 함께
어둡고 두터운 색조를 보이며 변화를 꾀한다.
브뤼셀•헤이그•앙베르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언제나 노동자•농민 등 하층민 모습과 주변생활과 풍경을 담았다.
초기 걸작 [감자 먹는 사람들](1885)도 이 무렵의 작품이다.
그리고 급속하게 변화된 그의 회화 기법은 1886년 파리에 정착하면서 활짝 피기 시작했다.
색조를 분할하고, 빛을 표현해 내기 위해 어지럽게 진동하는 붓의 터치는
바로 이 시기에 나타난 결과물이었다.
1886년 화상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생 테오를 찾아서 파리에 나온
고흐는 코르몽의 화숙(畵塾)에서 베르나르와 로트레크를 알게 되었다.
인상파의 밝은 그림과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繪:인물 중심의 풍속화] 판화에 접함으로써
그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풍(風)의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화풍으로 바뀌었으며,
정열적인 작품활동을 하였다. 자화상이 급격히 많아진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그러나 곧 파리라는 대도시의 생활에 싫증을 느껴
1888년 2월 보다 밝은 태양을 찾아서 프랑스 아를로 이주하였다.
아를로 이주한 뒤부터 죽을 때까지의 약 2년 반이야말로 고흐 예술의 참다운 개화기였다.
그는 그곳의 밝은 태양에 감격하였으며 [아를의 도개교(跳開橋)] [해바라기]와 같은 걸작을 제작했다.
한편 새로운 예술촌 건설을 꿈꾸고 고갱과 베르나르에게 그곳으로 올 것을 끈질기게 권유하였다.
그리하여 고갱과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으나 성격차이가 심하여 순조롭지 못하였다.
그해 12월 크리스마스 이브에 고흐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 후 고흐의 생활은 발작과 입원의 연속이었으며, 발작이 없을 때에는
그 동안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려는 듯 마구 그려댔다.
발작과 그림 제작에 지쳐 파리 근교 오베르에 있는 의사 가셰에게 찾아간 것은 1890년 5월이었다.
쌩 레미를 떠나 오베르 쉬르 와즈로 간 고흐는 의사 가셰박사의 집에 기거하면서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준비한다.
그는 일시적인 진정의 상태를 맞이했지만 또다시 발작을 일으키고 이성을 잃었다.
한때 건강회복으로 발작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듯하였으나 다시 쇠약해져 끝내 권총자살을 하였다.
그의 유작은 매우 많다. 지금은 온 세계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정열적인 작풍이 생전에는 끝내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인상을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준 것은 1903년의 유작전 이후였다.
따라서 그는 20세기 초의 포비슴 화가들의 최초의 큰 지표가 되었다.
고흐가 살다간 세기말은 우울한 시대였다.
자본주의와 과학 문명의 급속한 발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었다.
리얼리즘과 인상주의가 시대적인 방황을 틈타 등장했으나, 이들은 금세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본질적인 정신세계를 직시했던 고흐에게는 외부 세계의 물질적인 변화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회화 세계는 인간의 내면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절망을 느껴야 했던 것이다.
또한 동시대의 인상파 화가들과 달리 고흐는 그들의 빛에 많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빛에 의해 반사되는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태양 그 자체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태양은 그의 내적 세계를 신과 연결시켜 주는 절대적인 길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많은 태양의 그림이 등장한다.
회오리치는 듯한 그의 태양湧?정신적인 혼돈의 세계를 대변하는 동시에
그 갈등의 폭만큼이나 거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에 가장 많이 있는데, 40점 가까운 자화상 이외에도
[빈센트의 방]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삼(杉)나무와 별이 있는 길]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이 있다.
(고흐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6.09.28 11:10:28 (*.16.190.248)
희자야~
영희한테서 얼마 전에 전화 받았어.
가슴 아픔을 이 방에서 털어냈다니 방에 퀄리티가 굉장히 up되는 것 같다.
미국에 친구들이여~
모두들 사랑스럽구나(:l)
오늘 우리 동기 이사회 모임이 있어
희자 오고 싶지?
사진 올릴께
영희한테서 얼마 전에 전화 받았어.
가슴 아픔을 이 방에서 털어냈다니 방에 퀄리티가 굉장히 up되는 것 같다.
미국에 친구들이여~
모두들 사랑스럽구나(:l)
오늘 우리 동기 이사회 모임이 있어
희자 오고 싶지?
사진 올릴께
2006.09.28 11:17:19 (*.17.204.40)
고흐와 한희원님 그림이 제 마음을 우주로 향하게 만드네요.

이렇게 단순한 별도 있답니다.
명화의 별, 만화의 별... 부끄~ ::$

이렇게 단순한 별도 있답니다.
명화의 별, 만화의 별... 부끄~ ::$
2006.09.28 11:47:14 (*.75.80.216)
경선아~
잘 다녀와,
너희들이 고생 많이 한다
그대신 우리는 네 덕분에 행복을 누리잖니!
친구야 사랑한다.;:)(:f)(:l)
잘 다녀와,
너희들이 고생 많이 한다
그대신 우리는 네 덕분에 행복을 누리잖니!
친구야 사랑한다.;:)(:f)(:l)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그 별을 빛나게 해주는 일이야.
밤하늘에 저렇게 별들이 빛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별들이
빛나기 때문이지.
정호승님의 <밤하늘> 전문
위에 올린 그림이
문화 살롱 명명에 걸맞는 작품이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