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국가들의 수도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그 만큼 이야기가 많지 않을 것 같지만 나름대로 꽤나 흥미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776년7월4일 미국의 독립선언 당시 미국의 수도는 필라텔피아가 그 역할을 맡고 이었읍니다.
당시 미국은 13개 주 형태의 연방제로 시작되어서 사실 수도의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았고 ,1783년6월에 열린 대륙회의에서 처음으로 수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6년여 동안 여러 후보지역을 놓고 토론을 거듭하던 의회는 포토맥강(워싱턴을 남북으로 흐르는 강)가에 수도를 둔다는 남부출신의원과 북부출신의원들간의
정치적인 타협만 이룬채,최종위치의 결정은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에게 맡겨두게 된다.
조지 워싱턴은 상업적 잠재성에 초점을 두었고,행정구역은 북으로는 조지타운을,
남으로는 알렉산드리아로 정하였다.
1793년9월 워싱턴이 수도의 표석을 처음으로 설치하는 것을 시작으로 백악관 등의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고,이어서 각종 정부 청사와 의사당 등이 건립되어진다.
그러나,초기 워싱턴은 그야말로 황무지안에 도시를 의도적으로 건설한 형태였기에
여러가지 제반시설의 부족과 교통 불편 등이 뒤따라야 했고,
여러의원들과 시민들에 의해 끔찍한 도시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하여 초기 워싱턴은 끊임없는 천도 논쟁에 휩싸이게 된다.
남부와 북부출신 의원들이 각자 자기들 지역으로  수도 이전을 주장했고,
대부분의 시민들도 이에 호응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중 1814년에 미영전쟁의 여파로 영국군이 워싱턴에 진입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영국군은 백악관과 의사당을 태워버리려고 시도하였다.
이 사건으로 미국인들은 워싱턴이 자기들의 수도라는 사실이 보다 강하게 자각하게 되었고,이후 천도 논의는 사라지고 명실상부한 연방의 수도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남북 전쟁기간에도 남군은 북군의 사기를 꺽어버리기 위하여 워싱턴 탈환을 끊임없이 시도했고, 북군은 총력을 다하여 워싱턴을 사수 하였다.
짧은 역사를 딛고 세계  최강대국의 수도로 우뚝 선 워싱턴 D.C.

논쟁과 역경을 이겨낸 곳이기에 모든 미국인들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수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곳 워싱턴에,
인일여고 동문(약20명)들도 열심히 각자 자기 맡은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답니다.